자가용을 버려야 책을 읽는다
 ― 늘어나는 자동차만큼 무너지는 나라


 늘어나는 자동차만큼 텔레비전이 늡니다. 이제는 버스나 전철을 타면서 손전화로 텔레비전을 즐길 수 있습니다. 차를 몰면서 손전화를 받으면 다른 차를 받을까 걱정이라고 하던 소리는 까마득히 잊힙니다. 눈과 귀는 자가용 한켠에 붙인 작은 텔레비전에 꽂힙니다.

 자가용 손잡이를 붙들고 텔레비전 모습과 소리에 마음을 기울이는 가운데 길가 한쪽에서 달리는 자전거를 눈여겨보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골목에서 자전거 타는 어린이를 쉬 알아채지 못하곤 합니다. 누군가 차를 몰고 있으면, 차 바깥에서 걷다가 서 있던 사람은 물러서야 합니다. 아무리 무거운 짐을 이고 골목을 걷거나, 잠든 아이를 품에 안고 비탈을 오르고 있더라도, 사람이 차한테 길을 내주어야 합니다.

 사람이 뭐 잘나서 길 한복판을 걷느냐 하실 분이 있을 테지요. 네, 사람은 잘나지 않았습니다. 못난 사람인 까닭에, 골목마다 빼곡히 들어서 있는 자동차를 비껴 걷자니 골목 한복판을 걷고, 이러다 보면 쉴새없이 오가는 차 때문에 길가에 선 차 사이사이에 구겨져 옴쭉달싹 못하고 찡기는 몸이 됩니다. 무거운 짐이나 잠든 아이를 들고 안고 기다립니다.

 자동차는 거님길에까지 올라와 있기까지 합니다. 오토바이라고 다르지 않으며, 오토바이는 거님길에서 쌩쌩거리며 무시무시하게 내달립니다. 못나고 구지레한 ‘걷는 사람’은 모든 차한테 업신받고 놀림받습니다.

 예부터 ‘걷는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거나 시를 읊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책을 읽거나 들꽃을 바라보거나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새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걷는 사람’은 이 가운데 어느 하나조차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걷는 사람’이 할 수 있으며 해야 하는 일은 오가는 자동차 살피기입니다. 오가는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안 밟고 씽씽 쌩쌩 휭휭 내달릴 수 있게끔 비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달리는 차를 멈춰 어르신 짐을 싣고 댁에까지 모셔 드린다든지 하는 일은 오늘날로서는 꿈조차 꿀 수 없습니다. 1980년대 끝무렵까지 제가 살던 골목동네에서는 어르신 앞을 자가용이 함부로 앞지르거나 빵빵거리지 않았으며, 아이 손을 잡고 걷거나 아이를 안고 걷는 어버이한테 윽박지르지 못했습니다.

 자가용을 몰면서 손전화를 받고 텔레비전을 봅니다. 영화를 내려받아 볼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가용을 몰면서 책을 읽지는 못합니다. 달리는 차를 멈추고 낮잠을 자거나 사랑을 나누는 사람은 있습니다. 고속도로 쉼터에서 밥을 사먹는 사람은 있습니다. 그러나, 달리는 차에서는 책을 읽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달리는 차를 멈추어 책을 읽겠다는 사람을 아직까지 못 보았고, 이런 사람이 있다는 얘기 또한 못 들었습니다. 책을 읽어야 하기에 자동차를 기꺼이 내동댕이친 사람 이야기는 아직 들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가용을 장만하겠다고 생각한 바로 이때부터 책하고는 등을 돌리는 셈입니다. 운전학원 값이면 책이 몇 권일까요. 차 한 대 값이면, 여느 사람으로서는 죽을 때까지 신나게 책을 사읽고 둘레에 선물해도 돈이 남아돕니다. 책 사읽을 값을 아이한테 물려주어도 다 못 쓸 수 있을 만한 차값입니다. 아니, 차에 넣는 기름값만큼 다달이 책을 사읽으려 한다면, 우리는 다달이 얼마나 많은 책을 넓고 깊게 살피며 마음밭을 살찌울 수 있을는지요.

 나는 꿈을 꿉니다. 현대, 대우, 삼성, 기아 들이 자가용 더 팔려고 용을 쓰지 말고, 자동차공장을 이제 줄이며, 우리 삶을 사랑하고 아끼는 책마을을 조그맣게 온나라 곳곳에 세우면 얼마나 기쁠까 하고. 자동차 만들던 일꾼이 온나라 곳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글을 쓰고 책을 만들어 저마다 뿌리내린 마을에서 스스로 일구어 먹고사는 한편 슬기롭고 아름다운 마음결 북돋우는 배움마당을 꾸릴 수 있으면 이 얼마나 좋으랴 꿈을 꿉니다.

 전라도 함평이나 경상도 거창뿐 아니라, 대구 시내와 서울 한복판에까지 아스팔트와 시멘트를 걷어내고 아파트를 허문 다음에 논밭을 일구며 조촐한 ‘농사짓는 책마을’을 아주 앙증맞도록 자그맣게 꾸리며 섬길 수 있으면, 땅과 사람과 삶 모두 따스하고 넉넉히 보듬을 수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자동차를 버려야 전쟁을 막는다고 읊은 동화 할배가 있습니다. 자동차를 버리면 전쟁뿐 아니라 독재를 막고, 4대강을 비롯한 숱한 막개발이니 신자유주의이니 한미자유무역협정이니 국가보안법이니 학벌주의이니 무어니 모두를 막을 수 있습니다. 이러면서 우리는 누구나 맑고 밝은 가슴과 넋으로 정갈한 먹을거리를 스스로 일구어 저마다 어여쁘고 훌륭한 사람으로 튼튼히 설 수 있습니다. (4343.5.1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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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0-05-22 22:11   좋아요 0 | URL
현실적으로 책마을을 만드는 것은 어렵겠지요. 정말 꿈으로 끝나겠지요. 그렇지만 자동차를 줄여야 책을 본다는 말에는 십분 동의 합니다. 당장 저마저도 걸어다니거나 대중 교통을 이용하면 책을 보지만 운전을 하면 거기에 온통 신경을 솓아야 하니 말이지요.

파란놀 2010-05-23 07:34   좋아요 0 | URL
경기도 파주에 수천 억을 들여 짓는 책마을이 아닌, 수천만 원조차 아닌 땀방울로 작게 여미는 책마을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책을 사 주어 돈을 번 출판사들은 건물 하나 짓는 데에 수십 억씩 쓰면서 엉터리 책마을을 꾸며 놓았으니. 참 슬픕니다..
 
격동기의 현장
이경모 / 눈빛 / 199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진기자는 어디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2] 이경모, 《격동기의 현장》(눈빛,1989)



 1926년에 태어나 1946년부터 호남신문사 사진부장으로 일했던 이경모 님은 《격동기의 현장》이라는 사진책에서 1945∼1951년 무렵 이 나라 삶자락을 하나하나 보여줍니다. 이경모 님이 일하던 신문사는 사라졌고, 한국전쟁 때 국방부 정훈국 보도과에서 뛰며 찍은 사진은 현상처리가 나빠 이 책에 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따로 갖고 있던 사진기에 담았던 필름이 남아 있어 이 사진책 하나를 꾸릴 수 있었답니다.

 우리한테 사진 문화가 조금이나마 있었다면 해방 이야기를 호남신문사에서 1945년에 내놓을 수 있었을 테며, 한국전쟁 이야기를 국방부에서 1953년에 펴낼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무렵에 사진책으로 엮지 않았기에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삶자락을 담은 사진은 하나둘 자취를 감춥니다. 아니, 처음부터 빛을 보지 못합니다. 박도 님이 엮은 《그들이 본 한국전쟁》이라는 사진책이 있습니다만, 미국에 있는 도서관에 있든 누군가 개인으로 갖고 있든 오래도록 빛을 보지 못한 채 묻혀 있는 사진들은 이보다 훨씬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지난 1996년에 《끝나지 않은 전쟁》(조지 풀러 사진,눈빛 펴냄)이라는 사진책이 나온 적 있습니다. 한국전쟁 모습을 미국 군인이 빛깔 사진으로 담아 엮은 책입니다. 우리 지난 삶자락을 돌아보는 더없이 애틋한 사진책이지만, 이 사진책은 거의 눈길을 못 받고 사랑 또한 못 받은 채 묻혀 있습니다. 사진책으로 나오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 우리 나라인데, 애써 사진책으로 나왔다 할지라도 제대로 읽히거나 보이지 못하는 우리 나라입니다. 제아무리 잘 팔린 사진책이라 할지라도 1만 권 넘게 팔리는 일이란 몹시 드물고, 10만 권이나 100만 권 팔렸다는 사진책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이름있는 사진기들이 몇 만 대씩 팔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사진을 찍는 아름답거나 해맑은 길을 보여주는 사진책들이 조용히 묻혀 있는 모습이란 그다지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슬프기 짝이 없습니다.

 이경모 님은 지난 2001년 5월 17일에 눈을 감았습니다. 사진과 얽혀 여러 가지 큰일을 했다지만 우리 문화와 역사에는 거의 아무런 자국을 남기지 못했고, 눈을 감은 소식을 찾아보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진을 찍었건 저런 사진을 남겼건 이 땅에서는 제대로 알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 이런 눈물이 있건 저런 사람들 저런 웃음이 있건 이 나라에서는 찬찬히 헤아려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격동기의 현장》이 나온 1989년을 돌아보면 이경모 님이 1945∼1951년치 사진을 찍은 지 거의 쉰 해 만입니다. 어쩌면 군부독재 정권이 무너졌기에 이런 사진책 하나 비로소 나올 만하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해방 무렵 사진이란 해방을 맞이하고 쉰 해가 지나서야 빛을 볼 만한 사진은 아닐 텐데, 이 나라 책마을이나 사진마을은 이와 같은 사진을 두루 살펴서 널리 나누고자 힘쓰지 못했습니다. 이런 흐름은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요즈음 우리 삶터를 요즈음 차근차근 돌아보며 요즈음에 알뜰살뜰 묶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여느 사람들이 복닥이고 있는 눈물과 웃음이 어린 삶을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그때그때 옮기며 웃고 울며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반가울까요. 수수한 사람들 투박한 땀방울과 착한 손길을 그날그날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함께할 수 있으면 얼마나 기쁠까요.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 자리에서 어느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면서 글을 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 어느 동무하고 손을 맞잡으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 터전에서 어느 겨레붙이하고 부대끼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해방도 격동기이지만 입시지옥도 격동기입니다. 한국전쟁도 격동기이지만 국가보안법도 격동기입니다. 여수ㆍ순천 사건도 격동기이지만 비정규직도 격동기입니다. 우리는 지난날과 오늘날과 앞날 격동기를 어느 만큼 헤아리면서 어느 만큼 올바른 눈썰미로 어느 만큼 알차게 보듬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글쟁이와 그림쟁이와 사진쟁이들만 탓할 수 없습니다. 정치꾼만을 탓한다고 정치가 달라지거나 나아지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며 우리 스스로 꾸리는 삶을 나무라며 가다듬는 가운데 정치를 바로세우도록 힘을 모아야 합니다. 바로 우리 스스로를 굽어살피며 우리 스스로 일구는 삶을 꾸짖고 뜯어고치는 가운데 문화와 예술이 살가이 꽃피우도록 뜻을 그러모아야 합니다.

 사진기자가 비틀어 보이는 거짓 사진에 홀리고 있는 우리들이라 한다면 몇몇 엉터리 사진기자들은 참을 비트는 사진을 자꾸자꾸 찍어서 내보냅니다. 사진기자가 엉터리 사진을 내놓을 때에 ‘이런 쓸개빠진 엉터리!’ 하면서 손가락질할 줄 안다면, 사진기자들이 우리들 앞에서 부끄러워 할 뿐 아니라 우리들을 두려워 하며 옳고 바른 사진으로 나아가고자 힘을 쓸밖에 없습니다. 엉터리 정치꾼이 나오는 까닭은 엉터리 유권자 때문이며, 엉터리 사진이 쏟아지는 까닭은 엉터리 독자 때문입니다. 참다운 정치꾼이 나오려면 참다운 유권자로 거듭나야 하며, 참다운 사진책이 나오려면 참다운 사진 독자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마땅한 노릇인데, 이제 어느 누구도 1945∼1951년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을 수 없습니다. 2009년 이야기 또한 어느 누구도 사진으로 찍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2010년 올해 이야기만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으며, 5월 17일 어제나 5월 16일 그제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을 수조차 없습니다. 오로지 5월 18일 오늘 이야기만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으며, 하루하루 새로 맞이하는 그날그날 삶과 사람을 사진으로 엮을 수 있습니다. 사진쟁이란 언제나 바로 그때 그곳에 있지 않고서는 아무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글쟁이와 그림쟁이는 바로 그때 그곳에 없었어도 글과 그림을 낳지만, 사진쟁이만큼은 총알이 빗발치든 군화발이 으르릉거리든 바로 그때 그곳에 머물며 삶과 죽음이 가로지르는 터에서 참거짓을 마주해야 합니다. 사진책 《격동기의 현장》은 이경모 님이 사진기자였기 때문에 낳을 수 있던 책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 가로놓인 자리에 두 다리 튼튼하게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낳은 보배덩어리입니다. (4343.5.18.불.ㅎㄲㅅㄱ)

― 격동기의 현장 (이경모 사진,눈빛 펴냄,1989.11.10./판 끊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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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23 : 김예슬 님과 고집장이 동생

 무슨 책을 읽어야 내 넋을 아름다이 가꿀 수 있는가를 옳게 살피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삶을 꾸려야 내 얼을 곱게 여밀 수 있는가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고운 목숨 하나 선물받아 이어가는 누리에서 얼마나 사람다운 삶을 보듬느냐는, 내가 품은 꿈이 아니라 내가 하루하루를 맞이하는 매무새에 달려 있습니다.

 대학교 졸업장을 거스른 채 ‘고졸자’가 되겠다고 외친 김예슬 님은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느린걸음,2010)라는 작은 책을 써냈습니다. 대자보 하나 쓴 다음 대학교 앞문에서 한 시간 남짓 서 있으며 보여주는 모습만으로는 대학생들과 대학생이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고졸자로 살아가는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얼마 나누기 힘들었을 테지요. 김예슬 님 당신 스스로 어줍잖은 몸부림이 아니요 뽐내는 몸짓이 아님을 밝히려 한다면, 이렇게 살을 붙이고 옷을 입힌 책 하나를 써내야 했을 테지요.

 “자신의 경험과 개성을 바탕으로 해서 스스로 생활을 꾸려 나가는 일은, 삶에서 진정 필요한 일은 모조리 시장으로 떠넘겨 버렸다(58∼59쪽).”는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합니다. 김예슬 님이 작은 책 하나에 적바림한 이야기는 김예슬 님 당신이 잘나서 풀어내는 이야기가 아닌 한편, 당신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나 익히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알면서 아는 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야기요, 알고 있기에 등돌리거나 모른 체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알고 있으면서 옳은 길로 안 가고 있는 우리들이요, 알고 있기 때문에 굶어죽을 수 없다고 여기는 우리들입니다.

 석유가 펑펑 남아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석유 걱정을 하는 사람 또한 없습니다. 석유가 바닥나면 다른 뭔가가 있겠거니 생각합니다. 자가용 한 대 장만하는 값이란 우리 삶을 얼마나 빛내거나 돌볼 수 있는 돈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차 한 대 뽑아 굴릴 만한 돈으로 책을 사읽는다거나 힘든 이웃을 돕는다든가 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파트 한 채 장만할 돈으로 영화를 찾아 본다든지 어려운 동무를 거든다든가 하는 사람 또한 만나지 못합니다. 더 많이 벌어 더 많이 쓰는 길을 살피는 오늘날 우리들입니다. 알맞게 일하고 알맞게 벌며 알맞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길을 찾지 않는 요즈음 우리들입니다.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동서문화사,1982)이라는 살가운 어린이문학이 지난 2007년에 《못 말리는 내 동생》이란 이름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고집 잘 부리는 어린 동생은 이웃집 할매가 뜨개질을 한번 배워 보라는 말에 “배우고 싶지 않아요.” 하고 고집을 부리는데, 이웃집 할매는 빙그레 웃으며 “그렇지만 다시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것을 떠 줄 수 있단다. 크리스머스 선물도 만들 수 있고 생일 선물도 만들 수 있단다. 물론 자기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란다.” 하며 따스한 목소리로 얘기합니다. 마땅한 노릇일 텐데, 할매 말씀을 듣고 난 고집장이 여동생은 이내 뜨개질을 배웁니다. 한동안 몹시 얌전하고 착하고 조용히 누군가한테 선물할 뜨개질을 합니다. 돈과 앎과 이름값이 아닌 땀과 손길과 사랑이 무엇인지를 어릴 적부터 시나브로 익힙니다. 이 고집장이 여동생은 앞으로 더는 고집장이에 머물 까닭이 없습니다. (4343.5.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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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말리는 내 동생 난 책읽기가 좋아
도로시 에드워즈 지음, 조세현 옮김, 셜리 휴즈 그림 / 비룡소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151 ― 고집장이 딸아이를 키우는 아빠
 : 도로시 에드워즈,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



- 책이름 :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
- 글 : 도로시 에드워즈
- 옮긴이 : 최경림
- 펴낸곳 : 동서문화사 (1982.12.25.)
- 2007년에 ‘비룡소’에서 《못 말리는 내 동생》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옴.



 (1) 쉬지 않고 놀며 밥 안 먹는 아이


 2007년 6월에 옆지기하고 함께 살면서 충북 음성에 살고 계신 부모님 댁에 찾아갔습니다. 이날 아버지는 당신 아들이 당신한테 아무런 이야기도 없이 혼인해서 함께 산다고 한 옆지기와 저한테 몹시 못마땅하다 했고, 이때부터 2010년 4월까지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 몇 차례 부모님 댁에 찾아갔으나 이때마다 아버지는 다른 데에 볼일이 있어 집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10년 4월에 거의 세 해 만에 아버지가 어머니하고 인천으로 찾아왔고, 이날 아버지는 당신 손녀인 딸아이를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나이와 몸뚱이만으로 할아버지가 아니라 참으로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는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셔서 따로 전화를 했습니다. 당신 손녀 얼굴이나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고 음성으로 자주 놀러 오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찾아온 다음주에 음성으로 찾아가려 했으나 사진잔치하고 새로 낼 책에 시간을 쏟느라 인천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하고 어머니한테서 한 번씩 전화가 왔습니다. 온다고 하더니 왜 안 오느냐고.

 저저번 주말, 아버지하고 어머니는 한 번 더 인천으로 찾아왔습니다. 제 사진잔치를 보러 오신다고 했으나, 사진잔치보다 손녀를 보고픈 마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머니는 아침에 전화를 걸어 두 시간 뒤에 닿는다 했습니다. 애 아빠 된 저는 아이가 언제나 낮잠 없이 내내 놀자고 해대는 통에 몹시 고단하고 힘겨워 그예 곯아떨어져 있다가 이 전화를 받고는 벌떡 일어납니다. 집으로 오신다면 집을 치워야 하니까요.

 드디어 오늘 집식구가 즐거이 음성으로 마실을 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제와 그제에 걸쳐 아이랑 부대낀 하루가 그지없이 고단해 몸살이 걸립니다. 도무지 움직일 수 없고 물을 만진다거나 뭘 하기 힘듭니다. 그렇지만 애 엄마는 오랫동안 몸이 아픈 사람이라 당신 몸 건사하기조차 벅찬 노릇입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면서 겨우 방바닥을 쓸고 닦은 다음 빨래를 합니다. 아이가 하도 밥 투정을 하느라 밥 먹이기까지는 못하고 옆지기한테 맡깁니다. 고단하고 아픈 몸으로 아이 바깥바람을 쏘이고, 한동안 드러누웠다가 다시 아이하고 어울리며, 깜빡 잠들었다 일어나 보니 아이는 여태 낮잠 없이 온 집안을 들쑤시며 놀다가 바지에 똥을 누었습니다.

 골골거리며 하루를 보내며 어느덧 저녁을 맞이합니다. 이제 하룻밤 자고 어찌 되든 음성으로 마실을 가려 하는데, 우리 아이는 언제쯤 잠들어 줄는지 모르겠습니다. 옷을 껴입고 끙끙거리며 생각합니다. 우리 어머니 된 분이라고 쇳덩이로 만든 몸은 아니었을 텐데, 두 아들내미를 키우고 집살림하며 앓아누운 시아버지 병수발까지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당신이 아플 때에 누가 돌봐 준 사람이 없었을 텐데 어떤 마음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아프면 수건을 이마에 질끈 동여매고 한손으로 벽 짚고 한손으로 허리 두들기며 끝끝내 집일 모두 하고 시아버지 병수발과 똥오줌 치우기 모두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잠 없이 혼자 잘 논다 싶던 아이는 책을 밟고 창문가에 서서 인형을 들고 놀다가 갑자기 쭈그려앉더니 소리가 나도록 쉬를 갈깁니다. 틀림없이 스스로 오줌을 눌 줄 알면서 심통을 부리거나 졸리거나 골이 날 때 보여주는 몸짓입니다. 책과 바닥에 흐르는 오줌을 걸레로 훔치고 아이 바지를 갈아입히며 이마를 짚습니다. 한숨이 절로 터져나옵니다. ‘얘야, 아빠가 어떡하면 좋겠니? 이 몸으로는 너무 힘들어 널 업어서 재워 주지 못하겠는데.’

 잘 떠오르지 않는 어린 날을 떠올려 봅니다. 어머니는 거의 성을 부리지 않았다고 느끼는데, 저하고 형이 다투었다든지 뭔가 말썽거리가 있으면 큰소리를 내며 꾸짖었고 구두주걱 따위로 엉덩이와 종아리를 후려갈겼습니다. 엉엉 울며 잘못했다고 빌어야 비로소 후려갈기기를 그치셨습니다.

 형은 집에서 낳고 저는 병원에서 낳았다는데, 형이나 제가 언제쯤 똥오줌을 가렸다거나 똥오줌을 아무렇게나 싸질러 얼마나 고달팠는지를 여쭈면, 어머니는 그때가 언젠데 생각이 나느냐며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제가 얼마나 말썽을 피웠다라든가, 제가 얼마나 걱정스러운 짓을 했다라든가 또한 생각나지 않으신답니다.

 곰곰이 따지고 보면, 아기였을 때와 어린이였을 때만 고달플 아이키우기는 아니라고 느낍니다. 나이를 먹으면 나이를 먹는 대로 갖가지 어려움과 힘겨움이 있습니다. 아이를 다 길렀다 싶은 이웃 분들은 정작 힘들고 어려울 때는 아직 멀었다고들 말씀합니다. 이즈음 보여주는 온갖 모습은 외려 귀엽고 재미있기까지 하답니다. 참말 그럴까 궁금하고, 아마 그럴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나날이 부대끼는 삶만큼 앞날이 고단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고단하다면 오늘 하루가 고단하지 다가올 모레나 글피가 고단하지 않습니다. 모레나 글피를 헤아릴 겨를이 없달까요.

 숨을 돌리고 싶어 아이는 집에 두고 혼자 구멍가게로 찾아가 먹는샘물 여섯 통을 사 옵니다. 아이를 데리고 가면 오르막길에서 아이를 안은 채 십이 리터들이 물통을 한손으로 들어야 하기에, 오늘처럼 아픈 몸으로는 아이를 데려갈 수 없습니다. 아이는 아빠가 밖으로 나갈 낌새를 보이자 얼른 저도 따라 나서겠다며 신발을 찾습니다. 아빠는 쌀쌀맞게 문을 닫고 혼자 나갑니다. 아이는 문간에서 빽빽 소리를 지르며 왜 저는 두고 가느냐며 투덜거립니다.

 여느 때에는 한 번에 오르는 오르막을 여러 차례 쉬어 가며 오릅니다. 물을 사들고 돌아오는 길에 가만히 생각을 기울입니다. 아픈 채 보내는 오늘 하루를 잊지 않으려고 오늘 일을 적바림해 놓고 있는데, 이렇게 적바림해 놓지 않는다면 나 또한 우리 어머니처럼 우리 아이가 어릴 적 겪거나 치른 일을 하나도 못 떠올리지 않으랴 싶습니다. 옆지기는 아이 예전 사진을 보며 아이가 그렇게 더 어린 적이 있었느냐며 묻곤 합니다. 고작 한두 해 지난 일을 떠올리지 못합니다.

 어머니한테는 사진기가 없었을 뿐더러 사진기가 있었어도 사진기로 당신 삶을 적바림할 틈을 못 내셨으리라 봅니다. 저한테는 사진기가 있고 글을 쓰는 셈틀이 있습니다. 허구헌날 아이 이야기를 쓰다 보니 투덜거리는 애 아빠 잔소리요, 아이 때문에 오늘 하루 또한 얼마나 고달프고 이마에 주름살이 늘었느냐는 푸념뿐입니다. 그래,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며 어찌 이토록 잔소리와 푸념만 가득한가 싶습니다. 아이를 찍은 사진을 혼자서 돌아보거나 옆지기랑 아이하고 함께 돌아보노라면 이 아이가 얼마나 곱고 착한가 하고 느끼면서, 정작 살을 부비고 있는 동안에는 고달프고 힘에 부친다는 생각에 젖어 있습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제가 아주 어릴 적 어머니를 고단하게 하던 모습이 오늘날 우리 아이가 저를 고단하게 하는 모습하고 같지 않으랴 싶습니다. 제가 어머니한테 궁금하게 여기는 대목은 바로 오늘 하루 아주 실컷 느끼거나 배우고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바깥으로 돈 벌러 나다니지 않고 집안에서 식구들하고 내내 복닥이고 있기 때문에, 날이면 날마다 힘겹고 벅차지만 힘겹고 벅찬 만큼 내 어린 삶을 되짚습니다. 우리 아이 어린 나날 삶을 적바림하여 둘레에 들려주면서 나중에 우리 아이가 더 클 무렵 ‘아이를 키우는 여느 어버이 삶과 넋’이 어떠한가를 조금이나마 짚는 데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이 키우기란 어버이 키우기요, 아이 키우기란 사람 키우기이며, 아이 키우기란 다름아닌 내 삶을 키우는 나날이라고 뼛속 깊이 느낍니다.
 





 (2) 어린이문학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


 1982년에 처음 우리 말로 옮겨진 뒤 2007년에 다시 나온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이라는 어린이문학을 읽습니다. 헌책방에서 이 책을 알아보던 지지난달, 무엇보다 책이름에 눈길이 이끌렸습니다. ‘고집장이’라. 나한테는 여동생이니 남동생이니 아무도 없지만, 바로 우리 아이야말로 고집장이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은 퍽 오래된 서양 어린이문학인데, 우리 나라에 옮겨지는 숱한 어린이문학마냥 ‘판타지’가 아닙니다. 아주 수수한 ‘삶이야기’입니다. 누구나 겪었음직한 이야기요, 어디에서나 봄직한 이야기를 담은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입니다. 동생이 있어 본 사람이라면 으레 느꼈음직하며, 아이를 낳아 키우는 어버이라면 늘 부대끼고 있음직한 이야기가 조곤조곤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에 나오는 고집장이 여동생은 한낱 고집장이이지만은 않습니다. 어느 때에는 벼락맞을 고집장이 짓을 하지만, 어느 때에는 둘도 없이 착하고 얌전한 아이 몸짓을 합니다. 여동생은 저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품과 가슴을 알고 있습니다. 여동생은 저를 미워하거나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 눈길과 손길을 알고 있습니다. 여동생은 저를 아끼거나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착하고 얌전합니다. 여동생은 저를 미워하거나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끔찍하게 고집장이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나 스스로 우리 집 아이를 고집장이로 만들고 있지 않느냐고. 우리 아이가 먼저 고집장이일 리 없으나, 애 아빠 된 내가 툭하면 힘들다느니 걸핏하면 지친다느니 핑계를 잔뜩 늘어놓으며 아이하고 제대로 놀아 주지 않으니 아이가 자꾸자꾸 고집장이에다가 떼쟁이 짓을 하지 않느냐 싶어요.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에 나오는 어머니를 보면 이토록 따스하며 넉넉한 사람이 어머니로구나 하며 새삼 깨닫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아버지를 보면 이다지도 무뚝뚝하고 제 일거리만 찾는 사람이 어머니로구나 하며 남달리 배웁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저부터 아이를 더 살가이 보듬지 못하면서 아이 탓만 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리 힘들고 저리 고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힘든 만큼 보람 있고 고된 만큼 아름다운 삶임을 잊고 있기에 아이를 키우는 나날을 즐거이 받아들이지 못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다른 누구한테 읽으라고 건넬 책이 아닌 저 스스로 여러 차례 거듭 읽을 책이요,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읽어 줄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한테 책을 읽어 주며 애 아빠 된 저 스스로 얼마나 고집장이 짓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아이를 어르고 달래고 쓰다듬고 품에 안고 어부바를 하면서 아이가 너르고 따순 사랑을 듬뿍 받아먹도록 할 노릇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바라보는 자리에 따라 달라지는 삶이요 부대끼는 몸짓에 따라 새로워지는 삶인데, 아이가 고집을 부리는 까닭을 살피고 아이가 고집을 피우는 뿌리를 헤아리며 곱게 손을 내밀어야지 싶습니다.


 (3) 조곤조곤 되읽는 말마디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이라는 어린이문학에는 돋보이는 고빗사위는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몹시 부드럽습니다. 큰일이란 한 가지도 나오지 않습니다. 어디에서나 흔하고 너른 이야기만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어린이문학은 몹시 재미있고 애틋합니다. 바로 이 어디에서나 흔하고 너른 이야기야말로 우리 삶을 북돋우는 이야기이며, 이와 같이 흔하고 너른 이야기를 사랑하는 가슴이 될 때에 우리 삶을 아끼고 돌보며 힘차게 다시 태어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글월 하나하나에 웃음을 지으며 읽고, 글줄 하나하나마다 눈물을 지으며 덮습니다. 제가 앞으로 써야 할 글이라면 다름아닌 이런 이야기여야 한다고 새삼 느끼고, 나 스스로 날마다 복닥이는 삶을 제대로 사랑하고 알뜰히 건사하면서 저부터 참되고 착하고 고운 어버이로 자리잡도록 힘써야겠다고 다시금 곱씹습니다. (4343.5.17.달.ㅎㄲㅅㄱ)


[9, 12, 14, 16쪽] 사진을 찍을 때 웃으라고 하면 꼬마 여동생은, “난 웃기 싫어!”라고 했읍니다. 그러나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 같은 것을 주면 동생은, “고맙습니다!” 하고 생글생글 웃었읍니다 … “얘, 너의 꼬마 여동생이 물속에 들어갔다!” 큰일났읍니다.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은 신과 양말도 벗지 않은 채 물속에 들어와 고기를 잡으려고 했읍니다 … “말 안 들으면 끌어낼 거야!” 그러자 동생은 물속에서 달아나려고 했읍니다. 동생은 정말 바보 같은 아이입니다. 물속에서 달아나려고 하다가 넘어져서 옷이 온통 젖고 말았읍니다 … 꼬마 여동생은 샌드위치를 다 먹어 버렸읍니다. 동생은 자기 샌드위치를 다 먹고, 내 샌드위치와 내 친구들의 샌드위치까지 다 먹어 버리고 말았읍니다. 다 먹고 나서는 또다시 엉엉 울었읍니다. 이번에는 꼬마 여동생에게 주스를 주었읍니다. 동생은 주스를 밭에 뿌려 버리고 또 엉엉 울었읍니다.

[20, 22∼23쪽] 내가 아직 어렸을 때 내 꼬마 여동생은 늘 아침 식사는 남기지 않고 다 먹었읍니다. 점심도 남김없이 다 먹었읍니다. 저녁도 남김없이 다 먹었읍니다. 무엇이든지 남기는 것이 없었읍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은 아침을 조금도 먹으려고 하지 않았읍니다 … 어머니는 동생에게 나들이할 때 입는 푸른색 새 드레스를 입히고 흰 양말에 새하얀 신을 신겼는데, 그 사이에도 동생은 조금도 어머니를 돕지 않았읍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다 알 거여요. 동생은 그냥 멍청히 선 채, 옷을 입혀도 소매에 팔을 넣을 생각도 하지 못했고 신을 신겨도 발을 들어 주려고도 하지 않았읍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말하셨읍니다. “할 수 없다. 너는 두고 가야 할 것 같다.” 그 말을 듣자 고집장이 꼬마 동생은 얼른 발을 들었읍니다.

[33, 36∼37, 40쪽] 동생은 우유배달 아저씨나 빵집 아저씨, 석탄집 아저씨나 유리창 닦는 아저씨, 그밖에 장사로 오는 사람들과 늘 이야기를 잘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오면 방해가 될 만큼 잘도 재잘댑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누구나 다 고집장이 꼬마 동생을 좋아했읍니다 … “의사는 싫어!” 하면서 시트 아래에 얼굴을 묻었읍니다. 그러나 문을 두드린 사람은 의사 선생님이 아니라 동생이 좋아하는 우유배달 아저씨였읍니다. 우유배달 아저씨는 동생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는 옆줄이 쳐진 노트와 파란 연필을 두고 가면서, 말했읍니다. “빨리 나아야지.” … 유리창 닦는 아저씨도 지지 않았읍니다. “의사가 싫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데. 너는 가엾은 꼬마 아가씨로구나. 귀로 듣는 청진기도 입안에 넣는 체온계도 그리고 의사의 가방 속에 있는 그 많은 신기한 것들도 다 못 보고 말다니 정말 안 됐다…….”

[45∼46쪽] 동생은 도토리에 대해서는 나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읍니다. 혼자만 비밀로 간직했읍니다. 그리고 그날 하루 종일, 고집장이 꼬마 동생은 도토리를 심은 곳에 가서는 돌멩이와 잎사귀와 가지를 보았읍니다 … “누구냐? 아빠의 꽃밭을 마구 파헤쳐 놓은 사람이?” 아빠가 물으셨읍니다.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이 대답했읍니다. “아빠, 내가 그랬어요.” “그래? 그렇다면 너는 나쁜 아이다. 아빠가 뿌린 꽃씨를 다 못 쓰게 만들어 놓지 않았니.” 그러자, 동생이 말했읍니다. “꽃씨 같은 것은 아무려면 어때서요. 반짝이는 갈색 도토리를 심었는데요.”

[47, 51쪽] 정말 모르는 것이 없는 우리 어머니는 병에 물을 담고 어떻게 하면 병 아가리에 도토리를 심을 수 있는지를 동생에게 가르쳐 주었읍니다 … 동생이 나무를 심자, 어머니는 주위의 흙을 어떻게 눌러 주는지를 가르쳐 주었읍니다.

[66∼68쪽] 어머니는 화가 나셨읍니다. 동생 옆에 가서 인형을 뺏으려고 하셨읍니다 … 벌로 어머니는 동생을 자기 방에 가두어 버렸읍니다. 그렇게 나쁜 일을 했으니까 당연한 벌이지요. 나의 소중한 요정인형은 마당의 흙탕물 속에 거꾸로 처박혔읍니다 … 두 인형은 무척 예뻐져서 병원에서 돌아왔읍니다. 그러나 동생은 병원에서 돌아온 로지 프림로즈를 보더니 아주 실망했읍니다. 왜냐하면 로지 프림로즈는 몰라보게 고운, 다른 얼굴이 되어 있었고, 오랫동안 아무것도 없던 머리에는 곱슬머리가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99∼102쪽] 꼬마 여동생이 날마다 존즈 아주머니네 집으로 갔기 때문에 존즈 아주머니네 아저씨는 우리 집과 아주머니네 집 사이에 조그만 문을 만들어 주었읍니다. 아저씨는 그 문 위에 조그만 아치를 만들고 그 문 위에 덩굴이 자라도록 덩굴 한 그루를 심었읍니다. 동생이 얼마나 행복했겠어요? 그래서 존즈 아주머니와 나의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과 아주 친하게 되었읍니다 … 어느 날이었읍니다. 코코아 존즈 아주머니가 고집장이 나의 꼬마 여동생에게 말했읍니다. “너, 뜨개질을 배우고 싶지 않으냐?” 그러자 동생이 대답했읍니다. “배우고 싶지 않아요.” “그렇지만 다시 생각하는 것이 좋겠어.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것을 떠 줄 수 있단다. 크리스머스 선물도 만들 수 있고, 생일 선물도 만들 수 있다. 물론 자기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란다.” 그 말을 듣자 꼬마 여동생은 뜨개질을 배우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대답했읍니다. “그럼 배울래요. 진짜 배워 주는 거지요?”

[118∼119, 122∼123, 125쪽] 다음날 아침 동생은 일찍 일어나 난생 처음으로 자기가 옷을 입었읍니다. 정말이어요. 단추도 자기가 잠그고 양말도 자기가 신었읍니다. 자기가 얼마나 옷을 잘 입는가를 선생님께 자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아침밥을 짓는 동안 마당에 나가 자기 꽃밭에서 꽃을 꺾어 예쁜 꽃다발을 만들었읍니다. 선생님에게 가져다 드리려고요. 그러니까 나의 꼬마 여동생도 가끔은 아주 착한 아이였읍니다 … 아이들은 대답하려고 손을 들었읍니다. 그러자 나의 꼬마 여동생도 덩달아 손을 들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다 웃었읍니다. 선생님이 말하셨읍니다. “웃으면 안 돼요.” 그리고 선생님은 나의 꼬마 여동생에게, 진짜 큰 아이에게 하는 것처럼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동생은 또박또박 맞는 대답을 했읍니다. 그 대답을 들은 선생님은 말하셨읍니다. “아주 좋은 대답을 했으니까 선생님은 90점을 주겠어요.” 학교에서 90점을 받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여러분도 잘 아시지요? 선생님은 동생을 위해서 손수 90점이라고 써서 진흙 바구니 옆에다 붙여 놓았읍니다 … 동생은 그날 참으로 좋은 아이였읍니다. 그런데 다음 시간에 우리가 교실에 돌아와서 책읽기를 시작했을 때 동생은 소리없이 가만히 있었읍니다. 왜 그런지 아셔요? 동생은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어 버린 것입니다.

[130쪽] 아버지는 의자와 책상을 마당으로 내갔읍니다. 꼬마 여동생도 마당으로 나갔읍니다. 아버지가 옆에 있기 때문에 동생은 아주 얌전하게 놀았읍니다. 꽃밭에 들어가 마구 짓밟지도 않았고 꽃을 꺾지도 뽑지도 않았으며 나쁜 짓은 조금도 하지 않았읍니다. 동생은 아버지가 다시 화난 얼굴을 하시는 것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 “아빠, 나 물 마시고 싶어요. 목이 말라요.” 물을 가져다 달라고 하는 것은 동생으로서는 아주 좋은 일이었읍니다. 왜냐하면 동생은 가끔 빗물통에서 더러운 물을 마실 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한창 일을 하실 때였기 때문에 동생이 자주 귀찮게 구는 것이 싫으셨읍니다.

[139쪽] 블레이크 할아버지는 동생을 내쫓았다고 우리를 무척 못마땅해 하고 있었읍니다.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도 내가 데려오려고 하자 화를 내며 말했읍니다. “싫어. 블레이크 할아버지와 같이 있는 것이 더 좋아.” 블레이크 할아버지는 동생에게 달걀을 삶아 주었고 신문지에 싼 빵과 치즈를 꺼내어 가죽 자르는 칼로 잘게 썰어 주기도 했읍니다. 어머니도 화가 나셨읍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집에 돌아와서 맛있는 차를 끓여 마시려고 했는데, 동생을 찾느라고 그럴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도 화가 났읍니다. 나는 동생만 블레이크 할아버지의 가게에서 즐겁게 지낸 것이 샘이 났기 때문입니다. 기뻐한 사람은 아버지뿐이었읍니다. “아, 이제 살았다. 이제 장난꾸러기 딸에게 정신을 팔지 않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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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0번 읽을 책값 9800원


 꽤나 비싸구려 책이 있고 꽤나 싸구려 책이 있습니다. 비싸구려 책이라 해서 사기 어렵거나 싸구려 책이라 해서 사기 쉽지 않습니다.

 오늘날 둘레에서 마주하는 사람들 가운데 먹고살기 넉넉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 둘레에서 먹고살기 넉넉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치고 저보다 벌이가 적거나 저보다 작은 집에서 살거나 저보다 손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주머니가 변변하지 못한 주제에 마음을 사로잡는 책이 있으면 서슴지 않고 장만합니다. 돈벌이가 시원찮은 주제에 마음을 살찌우는 책이 있으면 머뭇거리지 않고 마련합니다. 집하고 도서관 달삯을 낼 때마다 갤갤대는 주제에 마음을 건드리는 책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사들입니다.

 그림책이든 만화책이든 사진책이든 글책이든, 저한테 좋은 책이기에 기쁘며 좋은 마음으로 사서 읽고 꽂아 놓으며 바지런히 다시 끄집어 내어 읽습니다.

 장만한 책을 한 번만 읽는 일은 없습니다. 아무리 어줍잖은 책이라 할지라도 세 번은 읽습니다. 꽤 괜찮은 책이라면 서른 번은 읽는다 할 만하고, 아주 훌륭한 책이라면 즈믄 번은 읽는다 할 만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성경책을 끼고 살곤 합니다. 저잣거리에서 장사하는 아주머니 아저씨 가운데에도 성경책만 되풀이해서 읽는 분이 제법 많습니다. 그야말로 얼핏 보면 ‘골수 예수쟁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며 얘기를 나누면 ‘살가운 이웃’입니다. 당신들이 성경책을 끼고 사는 까닭은 당신들한테 성경책처럼 수백 수천 번을 되풀이해 읽어도 아름답고 훌륭한 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늘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쓰는 글과 책이 온누리에서 가장 아름답거나 거룩하거나 훌륭한 글이나 책이 되리라 꿈꾸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를 생각합니다. 나는 나 스스로 내 글과 책이 나한테 성경책과 같도록 땀을 흘리고 마음을 기울이고 사랑을 바쳐야 한다고 꿈꿉니다. 한 번 글을 쓸 때마다 수없이 깎고 다듬고 고칩니다. 여러 해에 걸쳐 다시 쓰고 손질하고 가다듬습니다. 책으로 내놓는다면 다시 읽고 거듭 읽으며 다듬어 놓습니다. 책으로 찍혀 나오면 옆지기와 나란히 찬찬히 되읽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누구보다 저 스스로 제 글을 읽으며 웃음을 짓거나 눈물을 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 스스로 내 글을 읽을 때에 내 웃음과 내 눈물을 자아내지 못한다면 내 글은 더할 나위 없이 엉터리라고 느낍니다. 나부터 내 글을 애틋하게 여기고 살가이 돌볼 수 있을 때에, 내 둘레 사람들한테 ‘이 글도 한 번 읽어 주셔요’ 하고 내밀 만합니다. 마땅한 노릇인데, 제 글이 성경책처럼 거룩하거나 훌륭하지 못할지라도 성경책과 다름없이, 또는 성경책과는 또다른 테두리에서 거룩하거나 훌륭할 수 있도록 내 삶을 추스르고 다스리면서 글로 엮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어느 애 아버지께서 책값 9800원을 못 쓰겠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따로 대꾸하지 않았으나 속으로 생각합니다. ‘참 아름다운 이런 책을 아이들한테 사서 읽히는 한편, 어버이 또한 함께 읽으면 아주 좋답니다. 책값 9800원을 쓰면 살림살이가 엉망이 되시나요? 책값 9800원이라고 하지만, 이 대단한 그림책은 한 번이 아니라 즈믄 번은 볼 책이에요. 즈믄 번을 보는 책이라 하면, 이 책을 장만한 값은 10원이 안 됩니다.’

 온누리에 비싼 책이란 없습니다. 온누리 모든 책은 제값을 합니다. 십만 원짜리 책이라 할지라도 백 번을 되읽는 책이라 할 때에는 천 원을 치르고 산 책입니다. 즈믄 번을 되읽는 책이라 하면 고작 백 원을 치르고 산 책일 테지요.

 우리 식구 가운데 저부터 즈믄 번을 읽고 옆지기가 즈믄 번을 읽으며 아이가 즈믄 번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책값이 얼마나 싼지 모릅니다. 더구나, 이렇게 온 식구가 즈믄 번씩 읽은 책은 우리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아이한테 사랑스러울 옆지기를 만나 저희네 아이를 낳아 기를 때에도 보고, 또 이 아이가 나중에 커서 새로운 옆지기를 만나 새로운 아이를 낳아 기를 때에도 볼 터이니, 얼마나 값싸고 고마운 책이 될까요.

 참말 책값처럼 싸디싼 값이 없습니다. 참으로 책값처럼 적은 돈을 들이며 마음을 살찌우고 북돋우며 일구는 빛줄기가 없습니다. 참 책처럼 적은 돈으로 사랑과 믿음을 일깨워 따스하고 넉넉하도록 도와주는 스승이란 없습니다. (4343.5.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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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mssim 2010-05-17 13:45   좋아요 0 | URL
좋은 책을 만났을 때의 기쁨은 어디에도 비할 바 없지요.
저도 가끔 그런 책을 만나면 아껴가며(?) 읽습니다.
아, 성경도 좀 많이 읽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파란놀 2010-05-18 05:53   좋아요 0 | URL
무슨 책이든 사람들이 좋다고 할 만한 아름다운 책을 하나쯤 간직하고 있으면 아주 기쁘겠어요..

카스피 2010-05-18 18:57   좋아요 0 | URL
ㅎㅎ 아무리 비싼 책이라도 많이 읽으면 결국 싸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