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기의 현장
이경모 / 눈빛 / 199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진기자는 어디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2] 이경모, 《격동기의 현장》(눈빛,1989)



 1926년에 태어나 1946년부터 호남신문사 사진부장으로 일했던 이경모 님은 《격동기의 현장》이라는 사진책에서 1945∼1951년 무렵 이 나라 삶자락을 하나하나 보여줍니다. 이경모 님이 일하던 신문사는 사라졌고, 한국전쟁 때 국방부 정훈국 보도과에서 뛰며 찍은 사진은 현상처리가 나빠 이 책에 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따로 갖고 있던 사진기에 담았던 필름이 남아 있어 이 사진책 하나를 꾸릴 수 있었답니다.

 우리한테 사진 문화가 조금이나마 있었다면 해방 이야기를 호남신문사에서 1945년에 내놓을 수 있었을 테며, 한국전쟁 이야기를 국방부에서 1953년에 펴낼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무렵에 사진책으로 엮지 않았기에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삶자락을 담은 사진은 하나둘 자취를 감춥니다. 아니, 처음부터 빛을 보지 못합니다. 박도 님이 엮은 《그들이 본 한국전쟁》이라는 사진책이 있습니다만, 미국에 있는 도서관에 있든 누군가 개인으로 갖고 있든 오래도록 빛을 보지 못한 채 묻혀 있는 사진들은 이보다 훨씬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지난 1996년에 《끝나지 않은 전쟁》(조지 풀러 사진,눈빛 펴냄)이라는 사진책이 나온 적 있습니다. 한국전쟁 모습을 미국 군인이 빛깔 사진으로 담아 엮은 책입니다. 우리 지난 삶자락을 돌아보는 더없이 애틋한 사진책이지만, 이 사진책은 거의 눈길을 못 받고 사랑 또한 못 받은 채 묻혀 있습니다. 사진책으로 나오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 우리 나라인데, 애써 사진책으로 나왔다 할지라도 제대로 읽히거나 보이지 못하는 우리 나라입니다. 제아무리 잘 팔린 사진책이라 할지라도 1만 권 넘게 팔리는 일이란 몹시 드물고, 10만 권이나 100만 권 팔렸다는 사진책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이름있는 사진기들이 몇 만 대씩 팔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사진을 찍는 아름답거나 해맑은 길을 보여주는 사진책들이 조용히 묻혀 있는 모습이란 그다지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슬프기 짝이 없습니다.

 이경모 님은 지난 2001년 5월 17일에 눈을 감았습니다. 사진과 얽혀 여러 가지 큰일을 했다지만 우리 문화와 역사에는 거의 아무런 자국을 남기지 못했고, 눈을 감은 소식을 찾아보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진을 찍었건 저런 사진을 남겼건 이 땅에서는 제대로 알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 이런 눈물이 있건 저런 사람들 저런 웃음이 있건 이 나라에서는 찬찬히 헤아려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격동기의 현장》이 나온 1989년을 돌아보면 이경모 님이 1945∼1951년치 사진을 찍은 지 거의 쉰 해 만입니다. 어쩌면 군부독재 정권이 무너졌기에 이런 사진책 하나 비로소 나올 만하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해방 무렵 사진이란 해방을 맞이하고 쉰 해가 지나서야 빛을 볼 만한 사진은 아닐 텐데, 이 나라 책마을이나 사진마을은 이와 같은 사진을 두루 살펴서 널리 나누고자 힘쓰지 못했습니다. 이런 흐름은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요즈음 우리 삶터를 요즈음 차근차근 돌아보며 요즈음에 알뜰살뜰 묶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여느 사람들이 복닥이고 있는 눈물과 웃음이 어린 삶을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그때그때 옮기며 웃고 울며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반가울까요. 수수한 사람들 투박한 땀방울과 착한 손길을 그날그날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함께할 수 있으면 얼마나 기쁠까요.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 자리에서 어느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면서 글을 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 어느 동무하고 손을 맞잡으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 터전에서 어느 겨레붙이하고 부대끼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해방도 격동기이지만 입시지옥도 격동기입니다. 한국전쟁도 격동기이지만 국가보안법도 격동기입니다. 여수ㆍ순천 사건도 격동기이지만 비정규직도 격동기입니다. 우리는 지난날과 오늘날과 앞날 격동기를 어느 만큼 헤아리면서 어느 만큼 올바른 눈썰미로 어느 만큼 알차게 보듬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글쟁이와 그림쟁이와 사진쟁이들만 탓할 수 없습니다. 정치꾼만을 탓한다고 정치가 달라지거나 나아지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며 우리 스스로 꾸리는 삶을 나무라며 가다듬는 가운데 정치를 바로세우도록 힘을 모아야 합니다. 바로 우리 스스로를 굽어살피며 우리 스스로 일구는 삶을 꾸짖고 뜯어고치는 가운데 문화와 예술이 살가이 꽃피우도록 뜻을 그러모아야 합니다.

 사진기자가 비틀어 보이는 거짓 사진에 홀리고 있는 우리들이라 한다면 몇몇 엉터리 사진기자들은 참을 비트는 사진을 자꾸자꾸 찍어서 내보냅니다. 사진기자가 엉터리 사진을 내놓을 때에 ‘이런 쓸개빠진 엉터리!’ 하면서 손가락질할 줄 안다면, 사진기자들이 우리들 앞에서 부끄러워 할 뿐 아니라 우리들을 두려워 하며 옳고 바른 사진으로 나아가고자 힘을 쓸밖에 없습니다. 엉터리 정치꾼이 나오는 까닭은 엉터리 유권자 때문이며, 엉터리 사진이 쏟아지는 까닭은 엉터리 독자 때문입니다. 참다운 정치꾼이 나오려면 참다운 유권자로 거듭나야 하며, 참다운 사진책이 나오려면 참다운 사진 독자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마땅한 노릇인데, 이제 어느 누구도 1945∼1951년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을 수 없습니다. 2009년 이야기 또한 어느 누구도 사진으로 찍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2010년 올해 이야기만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으며, 5월 17일 어제나 5월 16일 그제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을 수조차 없습니다. 오로지 5월 18일 오늘 이야기만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으며, 하루하루 새로 맞이하는 그날그날 삶과 사람을 사진으로 엮을 수 있습니다. 사진쟁이란 언제나 바로 그때 그곳에 있지 않고서는 아무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글쟁이와 그림쟁이는 바로 그때 그곳에 없었어도 글과 그림을 낳지만, 사진쟁이만큼은 총알이 빗발치든 군화발이 으르릉거리든 바로 그때 그곳에 머물며 삶과 죽음이 가로지르는 터에서 참거짓을 마주해야 합니다. 사진책 《격동기의 현장》은 이경모 님이 사진기자였기 때문에 낳을 수 있던 책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 가로놓인 자리에 두 다리 튼튼하게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낳은 보배덩어리입니다. (4343.5.18.불.ㅎㄲㅅㄱ)

― 격동기의 현장 (이경모 사진,눈빛 펴냄,1989.11.10./판 끊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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