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23 : 김예슬 님과 고집장이 동생
무슨 책을 읽어야 내 넋을 아름다이 가꿀 수 있는가를 옳게 살피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삶을 꾸려야 내 얼을 곱게 여밀 수 있는가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고운 목숨 하나 선물받아 이어가는 누리에서 얼마나 사람다운 삶을 보듬느냐는, 내가 품은 꿈이 아니라 내가 하루하루를 맞이하는 매무새에 달려 있습니다.
대학교 졸업장을 거스른 채 ‘고졸자’가 되겠다고 외친 김예슬 님은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느린걸음,2010)라는 작은 책을 써냈습니다. 대자보 하나 쓴 다음 대학교 앞문에서 한 시간 남짓 서 있으며 보여주는 모습만으로는 대학생들과 대학생이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고졸자로 살아가는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얼마 나누기 힘들었을 테지요. 김예슬 님 당신 스스로 어줍잖은 몸부림이 아니요 뽐내는 몸짓이 아님을 밝히려 한다면, 이렇게 살을 붙이고 옷을 입힌 책 하나를 써내야 했을 테지요.
“자신의 경험과 개성을 바탕으로 해서 스스로 생활을 꾸려 나가는 일은, 삶에서 진정 필요한 일은 모조리 시장으로 떠넘겨 버렸다(58∼59쪽).”는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합니다. 김예슬 님이 작은 책 하나에 적바림한 이야기는 김예슬 님 당신이 잘나서 풀어내는 이야기가 아닌 한편, 당신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나 익히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알면서 아는 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야기요, 알고 있기에 등돌리거나 모른 체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알고 있으면서 옳은 길로 안 가고 있는 우리들이요, 알고 있기 때문에 굶어죽을 수 없다고 여기는 우리들입니다.
석유가 펑펑 남아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석유 걱정을 하는 사람 또한 없습니다. 석유가 바닥나면 다른 뭔가가 있겠거니 생각합니다. 자가용 한 대 장만하는 값이란 우리 삶을 얼마나 빛내거나 돌볼 수 있는 돈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차 한 대 뽑아 굴릴 만한 돈으로 책을 사읽는다거나 힘든 이웃을 돕는다든가 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파트 한 채 장만할 돈으로 영화를 찾아 본다든지 어려운 동무를 거든다든가 하는 사람 또한 만나지 못합니다. 더 많이 벌어 더 많이 쓰는 길을 살피는 오늘날 우리들입니다. 알맞게 일하고 알맞게 벌며 알맞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길을 찾지 않는 요즈음 우리들입니다.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동서문화사,1982)이라는 살가운 어린이문학이 지난 2007년에 《못 말리는 내 동생》이란 이름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고집 잘 부리는 어린 동생은 이웃집 할매가 뜨개질을 한번 배워 보라는 말에 “배우고 싶지 않아요.” 하고 고집을 부리는데, 이웃집 할매는 빙그레 웃으며 “그렇지만 다시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것을 떠 줄 수 있단다. 크리스머스 선물도 만들 수 있고 생일 선물도 만들 수 있단다. 물론 자기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란다.” 하며 따스한 목소리로 얘기합니다. 마땅한 노릇일 텐데, 할매 말씀을 듣고 난 고집장이 여동생은 이내 뜨개질을 배웁니다. 한동안 몹시 얌전하고 착하고 조용히 누군가한테 선물할 뜨개질을 합니다. 돈과 앎과 이름값이 아닌 땀과 손길과 사랑이 무엇인지를 어릴 적부터 시나브로 익힙니다. 이 고집장이 여동생은 앞으로 더는 고집장이에 머물 까닭이 없습니다. (4343.5.17.달.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