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용을 버려야 책을 읽는다
 ― 늘어나는 자동차만큼 무너지는 나라


 늘어나는 자동차만큼 텔레비전이 늡니다. 이제는 버스나 전철을 타면서 손전화로 텔레비전을 즐길 수 있습니다. 차를 몰면서 손전화를 받으면 다른 차를 받을까 걱정이라고 하던 소리는 까마득히 잊힙니다. 눈과 귀는 자가용 한켠에 붙인 작은 텔레비전에 꽂힙니다.

 자가용 손잡이를 붙들고 텔레비전 모습과 소리에 마음을 기울이는 가운데 길가 한쪽에서 달리는 자전거를 눈여겨보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골목에서 자전거 타는 어린이를 쉬 알아채지 못하곤 합니다. 누군가 차를 몰고 있으면, 차 바깥에서 걷다가 서 있던 사람은 물러서야 합니다. 아무리 무거운 짐을 이고 골목을 걷거나, 잠든 아이를 품에 안고 비탈을 오르고 있더라도, 사람이 차한테 길을 내주어야 합니다.

 사람이 뭐 잘나서 길 한복판을 걷느냐 하실 분이 있을 테지요. 네, 사람은 잘나지 않았습니다. 못난 사람인 까닭에, 골목마다 빼곡히 들어서 있는 자동차를 비껴 걷자니 골목 한복판을 걷고, 이러다 보면 쉴새없이 오가는 차 때문에 길가에 선 차 사이사이에 구겨져 옴쭉달싹 못하고 찡기는 몸이 됩니다. 무거운 짐이나 잠든 아이를 들고 안고 기다립니다.

 자동차는 거님길에까지 올라와 있기까지 합니다. 오토바이라고 다르지 않으며, 오토바이는 거님길에서 쌩쌩거리며 무시무시하게 내달립니다. 못나고 구지레한 ‘걷는 사람’은 모든 차한테 업신받고 놀림받습니다.

 예부터 ‘걷는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거나 시를 읊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책을 읽거나 들꽃을 바라보거나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새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걷는 사람’은 이 가운데 어느 하나조차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걷는 사람’이 할 수 있으며 해야 하는 일은 오가는 자동차 살피기입니다. 오가는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안 밟고 씽씽 쌩쌩 휭휭 내달릴 수 있게끔 비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달리는 차를 멈춰 어르신 짐을 싣고 댁에까지 모셔 드린다든지 하는 일은 오늘날로서는 꿈조차 꿀 수 없습니다. 1980년대 끝무렵까지 제가 살던 골목동네에서는 어르신 앞을 자가용이 함부로 앞지르거나 빵빵거리지 않았으며, 아이 손을 잡고 걷거나 아이를 안고 걷는 어버이한테 윽박지르지 못했습니다.

 자가용을 몰면서 손전화를 받고 텔레비전을 봅니다. 영화를 내려받아 볼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가용을 몰면서 책을 읽지는 못합니다. 달리는 차를 멈추고 낮잠을 자거나 사랑을 나누는 사람은 있습니다. 고속도로 쉼터에서 밥을 사먹는 사람은 있습니다. 그러나, 달리는 차에서는 책을 읽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달리는 차를 멈추어 책을 읽겠다는 사람을 아직까지 못 보았고, 이런 사람이 있다는 얘기 또한 못 들었습니다. 책을 읽어야 하기에 자동차를 기꺼이 내동댕이친 사람 이야기는 아직 들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가용을 장만하겠다고 생각한 바로 이때부터 책하고는 등을 돌리는 셈입니다. 운전학원 값이면 책이 몇 권일까요. 차 한 대 값이면, 여느 사람으로서는 죽을 때까지 신나게 책을 사읽고 둘레에 선물해도 돈이 남아돕니다. 책 사읽을 값을 아이한테 물려주어도 다 못 쓸 수 있을 만한 차값입니다. 아니, 차에 넣는 기름값만큼 다달이 책을 사읽으려 한다면, 우리는 다달이 얼마나 많은 책을 넓고 깊게 살피며 마음밭을 살찌울 수 있을는지요.

 나는 꿈을 꿉니다. 현대, 대우, 삼성, 기아 들이 자가용 더 팔려고 용을 쓰지 말고, 자동차공장을 이제 줄이며, 우리 삶을 사랑하고 아끼는 책마을을 조그맣게 온나라 곳곳에 세우면 얼마나 기쁠까 하고. 자동차 만들던 일꾼이 온나라 곳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글을 쓰고 책을 만들어 저마다 뿌리내린 마을에서 스스로 일구어 먹고사는 한편 슬기롭고 아름다운 마음결 북돋우는 배움마당을 꾸릴 수 있으면 이 얼마나 좋으랴 꿈을 꿉니다.

 전라도 함평이나 경상도 거창뿐 아니라, 대구 시내와 서울 한복판에까지 아스팔트와 시멘트를 걷어내고 아파트를 허문 다음에 논밭을 일구며 조촐한 ‘농사짓는 책마을’을 아주 앙증맞도록 자그맣게 꾸리며 섬길 수 있으면, 땅과 사람과 삶 모두 따스하고 넉넉히 보듬을 수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자동차를 버려야 전쟁을 막는다고 읊은 동화 할배가 있습니다. 자동차를 버리면 전쟁뿐 아니라 독재를 막고, 4대강을 비롯한 숱한 막개발이니 신자유주의이니 한미자유무역협정이니 국가보안법이니 학벌주의이니 무어니 모두를 막을 수 있습니다. 이러면서 우리는 누구나 맑고 밝은 가슴과 넋으로 정갈한 먹을거리를 스스로 일구어 저마다 어여쁘고 훌륭한 사람으로 튼튼히 설 수 있습니다. (4343.5.1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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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0-05-22 22:11   좋아요 0 | URL
현실적으로 책마을을 만드는 것은 어렵겠지요. 정말 꿈으로 끝나겠지요. 그렇지만 자동차를 줄여야 책을 본다는 말에는 십분 동의 합니다. 당장 저마저도 걸어다니거나 대중 교통을 이용하면 책을 보지만 운전을 하면 거기에 온통 신경을 솓아야 하니 말이지요.

숲노래 2010-05-23 07:34   좋아요 0 | URL
경기도 파주에 수천 억을 들여 짓는 책마을이 아닌, 수천만 원조차 아닌 땀방울로 작게 여미는 책마을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책을 사 주어 돈을 번 출판사들은 건물 하나 짓는 데에 수십 억씩 쓰면서 엉터리 책마을을 꾸며 놓았으니. 참 슬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