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21인의 위험한 뇌 243p
쳔연두=>천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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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2
김만중 지음, 송성욱 옮김 / 민음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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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습의 금오신화를 읽은 후에 바로 집어든 책이 김만중의 구운몽이다. 고등학생이던 시절 시험을 위해서 머릿 속에 꾹꾹 눌러 넣었던 책들이다. 내용이야 간략하게 요약한 것으로 읽었으니 줄거리는 알고 있지만, 한번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을 했다. 형식이 어디서 눈에 많이 익는다 했더니 구운몽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니 "홍루몽"와 비슷한 스토리 형식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구운몽은 읽지 않았지만 홍루몽은 찾아서 읽은 것을 보니 나도 평범한 남고학생의 성장과정을 겪어 온 것 같다. 아마 문학에 관심이 있는 남학생이 아니라고 해도, 홍루몽과 금병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한번씩은 손에 들어봤을 것이다.


  금오신화와 구운몽을 따로 읽었으면 쉽게 눈치채지 못했을 테지만, 금오신화와 구운몽을 연달아 읽으니 그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소설의 저자가 처한 상황이 그 안에 그대로 담겨 있다고 할까? 금오신화가 은둔한 천재인 김시습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에 속세를 멀리하고, 세속적인 삶의 허무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구운몽은 철저하게 세속의 욕망을 투사하고 있다. 학생 시절에 책을 읽어 보지 않고 구운몽은 세속적인 삶의 허무함을 극복하는 갈망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배웠는데, 책의 내용을 읽어보니 전혀 반대로 읽혀진다. 물론 내용이야 세상의 온갖 부귀 영화를 누리다가 미몽에서 깨어나 깨달음의 길을 갔다는 그러한 스토리 라인을 따라간다면 그렇게 이해할 수가 있지만, 행간에 담긴 마음은 전혀 그렇게 읽혀지지가 않는다. 뭐라 표현할 수 없어서 비속어를 사용하지만 "꼰대짓"이 아닐까?


  김만중은 세도가에서 자랐다. 배경도 지위도, 부와 권력도 다 가져본 사람이다. 그러다가 유배를 당하고, 방환되었다가 다시 유배를 당한다. 그리고 두번째 유배지에서 병사한다. 그 내용 때문에 과거에는 두번째 유배지인 남해에서 기록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나중에는 첫번재 유배지인 선천에 유배되었을 때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하여 지은 소설이라고 정정된다. 아마도 허무함을 극복하기 위한 소설이라는 입장에서 남해에서 지어진 소설로 이해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승려 성진이 스승의 명으로 용왕을 만나고 오다가 팔선녀를 만나고 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이야기가 구운몽의 주된 줄거리이다. 다시 태어난 성진은 팔선녀가 환생한 미녀들을 만나는데, 그들은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기생에서부터 공주, 시비, 심지어는 자객과 용왕의 딸까지.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성진을 만나면서 금방 혹 한다는 것이다. 용모면 용모, 음악이면 음악, 무예면 무예 그 어느 것 하나 빠지 않는 이가 성진이 환생한 양소유이다. 내노라하는 모든 미녀들이 양소유만 만나면 한눈에 반하는 설정은 처음에는 고전이니까하고 넘어가지만 몇번 반복되면 "이건 뭐 장난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개연성이 없어진다. 양소유가 나라를 역적을 토벌하고 나라는 구하는 단계에 이르면 뻥도 적당히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나라에 양소유 외에 인물이 없단 말인가? 편지 한 장에 반란군들이 마음을 돌이켜 천자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는 것은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개연성이 많이 떨어진다. 아무리 어머니를 위해 지은 소설이라지만 정도껏 했어야...


  어머니를 위한 소설이라고 하지만 난 그 소설 안에 담겨 있는 김만중의 욕망이 느껴진다. 많은 미녀들과 더불어 높은 권력을 누리면서, 심지어는 조금의 부침도 없이 대를 이어 명문가를 만들어간다는 당시 권문세족들의 욕심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니 나중에 꿈에서 깨어난다는 일장춘몽의 설정도 민망해서 끼워 맞춘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불교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장자에 대해서도 무시하는 정통 유학자가 그 사상을 가져다가 깊이 있게 다룬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금오신화와 비슷한 소재임에도 느껴지는 분위기가 다를 수 밖에. 한바탕 꿈에서 깨어난 성진과 팔선녀가 깨달음을 얻어서 많은 이들에게 칭송을 받고 부처의 가르침을 전하고 극락으로 갔다는 이야기는 한국 불교식의 입신양명이 아니겠는가? 결국 구운몽의 몸통은 유교라는 체제 안에서의 성공을, 끝머리는 불교라는 체제 안에서의 성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웃긴 생각이 떠올랐다. 윤석열 국민의 힘 경선 후보의 가난 발언 말이다. "고시원에서 고시생들과 생라면도 먹고..." 운운 했던 발언 말이다. 가난에 대해서 모른다, 그렇지만 무시하지 않겠다라고 말하면 되는데 자신이 가난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 생라면 먹는 이야기를 운운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웃기는 짬뽕이다. 구운몽이 그렇다. 한껏 성공해본 사람, 유배에서 풀려나서 성공할 것을 꿈꾸던 사람의 이야기로 밖에 들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내겐 깨달음이 아니라, 성공해본 사람의 꼰대짓 내지는 욕망의 발산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고등학생 시절에 이런 생각을 했다면 입시에 상당히 불리했을 것이다. 그러니 고전을 읽히지 않고, 고전의 줄거리만 머릿 속에 주입시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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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4
김시습 지음, 이지하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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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종의 충신으로 꼽히는 사람들이 있다. 사육신과 생육신이 그들이다. 사육신은 단종의 복위를 시도하다가 죽임을 당한 대표적인 여섯 사람을 말하며, 생육신은 살아있지만, 세조의 세상에서는 벼슬을 하지 않겠다면서 은거한 사람들을 말한다. 물론 이들은 무능력하여 은거한 사람들이 아니라 능력이 있음에도 은거한 사람들이다. 그 중에 가장 처음으로 꼽는 사람이 "김시습"이다. 생육신 가운데 가장 첫 머리에 꼽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능력이 출중하며,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금오신화"라는 말은 금오산에서 유래한 말이다. 경주에 금오산이 있는데 김시습이 금오산에 있는 용장사에서 은거하면서 지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금오신화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신화라는 말이 "神話"가 아니라 "新話"라는 점이다. 내용이 몽환적이고, 귀신과 맺어지는 이야기도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神話"로 오해할 소지가 충분하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김시습은 "新話"라는 제목을 택했다. 새로운 이야기라는 의미이다. 도대체 무엇이 새로운 이야기라는 말일까? "소설"이라는 의미의 장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새로운 이야기일 것이고, 중국이 아닌 한국이 배경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새롭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가장 새로운 것은 김시습의 인생이 꿈꾸는 방향이 당시의 시대와 전혀 달라졌다는 것이리라. 물론 그의 책 여기 저기에 여전히 유교의 가치관에 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유교적인 틀을 깨고 나가려는 시도가 눈에 보인다. 비록 충이라는 가치관 때문에 은거하였지만, 그 기간이 인생과 재능을 낭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유교를 제일로 치던 모습에서 탈피하여 불교의 사상과 도교의 사상을 같이 이야기하면서 통합적인 사상의 틀을 이야기로 풀어낸 점이 흠이롭다.


  딱딱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금오신화를 보면서 한가지 발견하게 되는 재미있는 사실은 주인공들이 대체로 귀신에 홀려서 죽는다는 것이다. 애절한 사랑 때문이든지, 아니면 깨달음 때문이든지, 아니면 천명이든지 주인공들이 죽는다. 주인공이 죽는 것이 흥미로울 이유가 없지만, 그들의 죽음이 모두 귀신에 홀려서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렇게 귀신에 홀려서 죽으면 원한을 품는 것이 당연한 논리적인 흐름인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귀신에 홀려 죽은 이들 가운데 어던 이는 신선이되고, 어떤 이는 염라대왕이 되기도 한다. 잠깐 옆으로 살짝 비껴나가지만 "신과 함께"에서 염라대왕이 되는 부분이 "남염부주지"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은 아닐까 싶다. 이와는 별개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또 이 부분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 죽음 이후의 문제들에 대해서 유불선의 사상이 아주 적은 분량에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의 죽음이 흥미로운 것은 죽음이 완전한 멸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음 이후에 주인공들은 새로운 세계의 일원으로, 그것도 그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존재가 된다. 그들을 통하여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새로운 경지에 이르게 된다. 마치 김시습이 입신양명의 길을 버리고 은거하면서 새로운 지평을 연것 처럼 말이다. 만약 그에게 단종의 폐위와 죽음이라는 역사적인 비극이 없었다면, 잘 짜여진 입신양명의 길을 걸어가 편협한 유학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최초의 한글 소설인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과 상당히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고 할수 있다. 최초의 한문 소설의 저자 김시습, 최초의 한글 소설의 저자 허균, 최초와 최초가 통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들을 담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오히려 그들은 현실 너머를 보는 비범한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PS. 썩 재미있지는 않다. 개인적으로는 삼국유사가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남염부주지" 편이 머릿 속에 꽤 많이 남고, 나중에 시간을 두고 몇번을 더 곱씹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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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다가 한 기사를 보았다. 한국 일보의 기사이다. 


  대선이 이상하다... 악재 터져도 이재명·윤석열 지지율은 '언터처블' (hankookilbo.com)


  기사를 읽으면서 많은 공감이 간다. 대선을 앞두고 너무 시끄럽다. 고발사주냐? 제보사주냐? 대장동이냐? 너무 시끄러워서 기사를 듣는 것도 쉽지 않고 피곤하다. 그런데 묘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재명 도지사를 공격하는 "대장동 이슈"가 거의 대부분의 지면을 차지한다. 아마도 국민의 힘에서는 이재명을 이것으로 낙마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최선을 다하는 모양새이다. 심지어는 "화천대유는 누구것입니까?"라는 현수막까지 붙었고, 국민의 힘 쪽에서는 이재명 캠프를 향하여 "화천대유는 누구것입니까?"라는 질문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이재명 캠프 쪽에서는 돈 한 푼 받은 것이 없다라고 말하면서 반박을 하고 있다. 검찰을 못믿겠으니 특검을 하자고 주장한다. 검찰은 공수처에 관련 사안을 이첩했다.


  뭔가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어디선가 본적이 있지 않는가? 한국일보 기사에서도 적었듯이 15년 전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당시 이명박 vs 정동영이라는 구도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계속되었다. 문국현, 권영길은 처음은 존재감이 있었지만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면서 묻혀 버렸다. 이회창만이 간신히 존재감을 드러내었을 뿐이다. 최재형, 심상정, 안철수의 존재감은 이미 희미해져 버렸고, 그 뒤를 받치고 있는 것이 이낙연, 홍준표이다. 그리고 윤석열과 이재명이 다투고 있는 형국이다. 윤석열과 이재명의 자리를 홍준표와 이낙연이 차지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판세가 비슷해져 간다. 이것을 더 분명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은 수없이 많은 악재에도 지지율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후보의 흠결과 실수가 지지율 변동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 선거가 정상적인 선거인가? 이러한 경향은 "답정너"와 같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찍기만 해. 이번 선거의 모습이다. 그러니 윤석열 쪽에서는 여당의 정치 공작이라고 말하고, 이재명 쪽에서는 야당의 발목 잡기라고 말한다. "저는 그런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의 이재명 버전이 "돈 한 푼 받지 않았습니다."가 아니겠는가?


  2007년과 비슷한 구도를 보이는 현 상황을 보면서 국민들의 삶이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당시 이명박 후보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이 아니다. BBK는 누구 것입니까, 다스는 누구것입니까 물었지만, 국민들은 합리적인 의심과 결론을 이미 도툴했었다. 그럼에도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은 잘 살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15년 후인 지금 그 기대감이 한국 사회를 다시 사로잡고 있다. 이 후보를 뽑으면 잘 살게 해주겠지, 보다 나아지겠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곧 정치인의 흠결이 문제가 아니라 치적이나 비록 지키지 않을 공약이라고 해도 747과 같은 장미빛 미래를 제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이 사실을 모르나 보다. 계속해서 화천대유는 누구것입니까를 외치는 것을 보니 말이다. 화천대유는 누구것입니까를 묻는 것은 이재명 후보를 국민들의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국민의 힘 정치인들은 아는지 모르겠다. 이재명을 코끼리로 만드는 국민의 힘을 보면서 어지간히 공부안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2007년의 기시감을 느끼는 정치인이 있다면, 지금 국민들의 마음이 그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아야 할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로 모든 것을 치환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지만, 지금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 많이 민감하다는 것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여러분 잘 살게 해드리겠습니다라는 이명박의 경제대통령과 우리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꿈이 있다면서 중통령의 시대를 이야기했던 정동영 중에 누가 이겼는가? 이것을 생각하면 "새로운 대한민국, 이재명은 합니다."라는 구호 하에 기본 시리즈를 내세우는 이재명과 "공정과 상식으로 국민과 함께 만드는 미래"라는 구호 하에 이렇다할 정책이 없는 윤석열. 누가 이길지는 뻔히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국민의 팍팍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할 것이다. 그렇지않고 집토끼만 지키다 보면 이번 선거는 역대급으로 재미없고 투표율이 낮은 선거, 기대감이 없는 선거가 될 것이다. 그렇게 당선된 대통령은 또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래저래 기시감이 느껴져서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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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어떻게 전쟁을 기억하는가(이상미/인물과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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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명칭은 통일 되어야 모두 롭스크인데 여기만 로프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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