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확인
소크나 솔크나 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압도적으로 소크를 사용했으니 솔크보다는 소크가 맞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타 찾기
유대배경으로 읽는 복음서/감은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페스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거에 들어 보지도 못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아이들을 위해서 2주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자는 총리의 간곡한 부탁에 많은 국민들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외출을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일이 항상 그렇듯이 모든 사람이 여기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 하나쯤이야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젊음을 과신하면서 이럴 때 더 놀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니고 습관에 젖어서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있고, 권고는 권고일뿐 강제가 아니라는 신념으로 혹은 그러한 생각도 없이 전국을 활보하다가 여행지에서 확진 판정을 받는 사람도 있다.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말이 전 모씨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전국에 있는 많은 교회의 교인들, 그리고 목사들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기독교인으로서 민망함을 금할 수 없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한달째 청년들과 인스타에서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나로서는 그저 이 상황이 속상할 뿐이고, 이 문제가 빨리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다. 텔레비전에서 보는 질본 본부장의 나날이 야위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코로나-19라는 아주 작은 바이러스가 사람을 여럿 잡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현실 속에서 문득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골라든 책이 페스트, 콜레라 시대의 사랑, 데카메론이다. 질병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 시대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 시대의 기록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담고 있는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훨씬더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해서 전염병을 배경으로 하는 문학 작품을 몇개 골라두고 틈틈이 읽고 있다. 첫번째 책으로 페스트를 선택하고 읽기 시작한지 1주일만에 다 읽었다. 작품의 분량이 대단히 많아서 1주일을 꼬박 읽어야 했던 것은 아니다. 분량으로 치자면 내 팔을 두껍게 만든 류시화의 책에 비하면 1/3 수준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는데 1주일이나 걸린 이유는 첫째로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면서 내 체력이 많이 떨어지고 생활 리듬이 깨졌기에 집중이 되지 않는 까닭이요, 둘째는 책장을 넘기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내용 자체가 철학적이어서 어려운 것이라기보다는 소름끼치도록 이 시대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4장을 읽어가면서 오통의 아이가 죽어가는 장면을 읽으면서는 목에 무엇인가 걸려서 숨이 쉬어지지 않는 경험까지 하게 되었다. 파늘루 신부의 설교를 듣고 노라면 오늘날 보수적인 교회에서 목사들이 행하는 설교와 크게 다르지 않음에 놀라고, 페스트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사협회와 오랑시 책임자들의 관료주의에서 의사협회 관계자들과 대구시장, 그리고 정부에게 딴지 걸려는 미통당 관계자들의 작탤르 발견한다. 어떻게해서든 살려보려다가 지쳐가는 리유와 그의 동료들의 모습에서 오늘도 의료 일선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의료진들의 눈물겨운 싸움을 조금이나마 엿보게 된다. 떠들썩하게 살면서 자신들의 안전을 과시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클럽과 주점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전염병을 틈타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코타르와 주변 인물들을 통하여 마스크 매점 매석을 통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실현하려는 이들의 추악함을 보게 된다.


  책을 읽어가면서 만나는 많은 인간 군상의 모습은 결코 소설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주위에서 너무나 쉽게 발견되는 모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카뮈의 페스트를 읽어가면서 코로나-19라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삶의 모습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 된다.


  도피자의 모습으로 서 있는 랑베르, 이상과 현실의 갈등 속에서 결국은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파늘루, 자신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서 페스트라는 상황을 즐기는 코타르와 주변 인물들, 뚜렷한 이상이나 생각없이 흘러가는 대로 돕는 자의 위치에 서는 그랑, 타인을 위한 삶 그러다가 결국 자신이 맞서 싸운 페스트에 패해 죽는 그래서 성자의 삶과 가장 닮아 있는 타루, 의사로서의 책임을 감당하면서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깨닫지만 끝까지 싸우는 리유, 진실을 숨기는데 더 관심을 갖는 의사와 시 당국자, 가족들과의 이별을 슬퍼하는 그러다가 나중에는 슬퍼할 힘마저도 잃어버리는 많은 사람들. 페스트를 코로나-19로만 바꾸어 놓는다면 이 시대 우리의 모습이다. 


  소설을 통해서 우리는 너무나 분명하게 리유와 타루의 삶을 가장 바람직한 모습으로 꼽을 것이다. 만약 이 소설이 수능에 지문으로 나온다면 학원에서도 리유와 타루의 이름을 기록하고 밑줄 쫙, 반드시 외울 것이라고 가르칠 것이다. 그렇지만 소설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모습으로 읽는다면, 그 자리에 나를 대입한다면 어떻게 할까? 파늘루일 수도, 타루일 수도, 리유일 수도, 오통일 수도, 그랑일 수도, 코타르일 수도, 오통의 아들일 수도, 랑베르일 수도 있다. 또는 이름없이 스쳐지나간 사람들의 입장일 수도 있다. 각자 내가 옳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옳음과 정의를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페스트를 이긴 것은 연대의 힘이다.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페스트 시기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연대의 힘이다. 랑베르처럼 겉돌아도, 타루처럼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덤벼들어도, 파늘루처럼 고민과 체념으로 살아도, 리유처럼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접해도, 그랑처럼 어찌어찌 시작해도 결국은 타인을 향해 손을 내뻗는 연대의 힘, 함께 함의 힘이 페스트의 위기를 견디게 만들었음을 이 책은 분명하게 말한다. 이 시대에 정말로 필요한 것이 이것이다. 여야로, 남녀로, 좌우로 갈라져서 싸우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을 넘어 혐오하기에 최선을 다하는 이 시대가 소설 페스트의 시대보다 더 암울하게 보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선거 때문에 재난소득 분배를 4월 16일부터로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연대의 힘을 믿어야 하고, 발견할 수 있을까? 씁쓸한 하루가 오늘도 저물어 간다. 정총리의 사회적 거리두기 당부 후 8일째가 저물어 간다.


PS. 소설과는 상관이 없지만 카뮈는 참 잘 생겼다. 개인적으로 잘생긴 철학자와 문인을 뽑자면 카뮈와 비트겐슈타인을 꼽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마 복음 강의 - 예수의 잃어버린 가르침을 찾아서
오쇼 라즈니쉬 지음, 류시화 옮김 / 청아출판사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마 복음 강의라는 말에 속아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가라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그래도 읽기 시작한 책이라 끝을 보자는 마음으로 읽었다. 그래서 인지 꽤 오랜 시간 동안 읽었다. 잘 넘어가지도 않고, 책도 무겁다. 

  책이 잘 읽히지 않는 이유는 이 책을 쓴 사람이 힌두교 계통의 요기이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예수의 가르침이라는 부제 때문에 읽었지만 책은 종 잡을 수가 없다. 동서양을 오락가락하면서 자신의 논지를 펴는데, 과연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점이 무엇인지 저자는 알고는 썼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고, 다시 한번 류시화는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도마복음은 잊혀진 복음서임은 분명하다. 정경에 들어가지고, 그렇다고 외경에 들어가지고 못하는 위경이다. 도마복음은 다른 복음서처럼 예수의 일대기를 기록한 책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의 가르침에 집중하고 있는 책이다. 도마에게 주어진 예수의 비밀한 어록에 대한 책, 구원에 대한 비밀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이해되었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에게 중요한 성경으로 받아들여졌고, 영지주의가 몰락하면서 함께 사라진 책이다. 세월이 흘러 그 사본이 발견되고 최근에야 대중에게 알려진 책이다. 최근에 알려졌다는 이야기는 2000년에 비해서 최근이라는 말이지 1~2년이라는 말은 아니다. 

  도마복음이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던 이유는 교회라는 시스템에 의해 편집되지 않았다는 평가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라는 시스템에 의해서 배제되었다는 것을 그저 기득권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잊혀졌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예수의 가르침과 거리가 있다는 말이며, 이것은 곧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리와는 거리가 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해석을 하고 살펴보는 것도 조심스러워야 하는데 저자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만의 이야기로 풀어 나간다. 타 종교의 경전을 자신의 이야기로 풀어 나간다는 점에서는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는 곧 더 많은 연구와 공부가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책 어디에도 그러한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끌어다 놓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예수가 인도에서 공부했고, 그가 말하는 모든 가르침이 힌두교의 가르침과 맞닿아 있다는 철지난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것 또한 불편하다. 도마복음이라고 쓰지 않고 도마 복음이라고 쓴 데에서도 책의 저자가, 그리고 편집자들이 얼마나 성경에 대해서 무지한지를 단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힘들고, 불편하고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거의 1000페이지에 육박하는 책을 읽고 얻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 그저 내 팔뚝만 굵어졌다는 것은 무척이나 서글픈 일이다. 

  왜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말이 나왔는지 잘 가르쳐 주는 책이다. 도올의 도마복음 강의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도올의 도마복음 강의로 넘어가보려고 하는데 약간 걱정이 되기도 한다. 누가 나에게 물어본다면 철대 추천하지 않을 책 가운데 하나다. 그럼에도 별점을 두 개나 준 것은 끝까지 읽은 내 자신이 기특해서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 물건을 버린 후 찾아온 12가지 놀라운 인생의 변화
사사키 후미오 지음, 김윤경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며칠 후에 이사한다. 그래서 책을 치우고 있다. 예전에 선물로 받았던 책들, 그리고 열심히 사들였던 책들. 그 중에 버리지 못하고 아까워서 간직했던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작은 도서관을 하고 있는 지인에게 주기 위해서 정리를 시작했다. 한권 두권 빼다 보니 140권이 되었다. 이렇게나 많이 사 모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많이 쌓아두고 아이들에게 말한다.


  "얘들아 책 많지? 이 책들 아빠가 다 읽은 건데 뭔가 느끼는게 없니?"


  아이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어"라는 짧은 반응과 함께 다시 게임과 유튜브에 몰입한다. 우리 아이들이 책을 안 읽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아이들에게 독서는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는 분야인것이 분명하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정리한 책 중에 이 책이 끼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책들은 읽었던 책이지만 이 책은 정리하기 위하여 읽은 책이다. 단순하게 살기 위해서, 책을 버리기로 결심하고, 버릴 책으로 이 책을 선택했다. 역시나 이런 부류의 책이니만큼 쉽게 읽혀진다. 윤동주 시인이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진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했는데, 책이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2시간 만에 책을 다 읽었다. 줄 간격도 넓고 사진도 많고,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게다가 계속 물건을 버리는 이야기, 버릴 때의 기준과 권고 사항 등을 기록해 놓았는데 내용을 굳이 읽지 않고 제목만 읽어도 충분하다. 물론 책의 내용을 다 읽었기 때문에 그러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참 많은 물건을 가지고 살고 있고, 많은 물건을 갖고 싶어하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가진 물건 중에 과연 필요해서 산 것이 얼마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 떳떳하게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열두 발자국에서 정재승씨가 한 말이 우리는 물건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물건을 사기 위해서 필요를 만들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는데 그 말이 딱 맞다. 필요 없는데 굳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버리는 것도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이긴 하겠다. 그래도 말이다. 나는 책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단순하게 쉽게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본다.


  그러면서 이런 책이라면 단순하게 사는 것이 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