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표 다섯 장


 시골버스를 탈 때에 내는 표를 미리 스무 장 끊어 놓았다. 그런데 막상 스무 장을 끊은 뒤로 보름 동안 이 시골버스를 탈 일이 없었다. 우리 집에서 읍내로 나갈 때에는 음성읍으로 가고, 면내로 갈 때에는 생극면으로 가는데, 생극면으로 갈 때에는 맞돈으로 1200원을 내고 음성읍으로 갈 때에는 표로 1050원짜리를 낸다.

 오늘 보름 만에 읍내로 다녀오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며 표를 끊고 헤아리니 아까 나오는 버스를 탈 때에 그만 표를 석 장을 넣었더라. 낱낱으로 세어 두 장을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손님이 간수하는 표’를 살피니 다섯 장이다.

 교통카드로 찍는다면 이런 일은 없겠지. 그런데 우리가 갖고 있는 교통카드로는 이곳 시골에서는 안 찍힌다. 아마 교통카드를 새로 받아야 비로소 시골버스에서도 찍히리라. 아니면 시골버스에서 찍히는 교통카드를 새로 만들든지.

 아이는 돌아오는 버스에서 곯아떨어졌고, 시골길을 걸어 들어오는 동안 잠에서 깨지 않는다. 이제 아이한테 기저귀를 채우고 엄마에 이어 아빠가 씻으면 오늘 하루는 즐겁게 마무리를 짓는다. 어느덧 모레면 한가위를 맞이하는구나. 올 한가위에는 지난주에 새로 나온 내 책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책을 들고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인사를 하겠네. 아버지가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다치지 않으면 좋겠다.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쓴 글이 아님을 헤아려 주시리라 믿는다. (4343.9.2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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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투의 유혹 - 일본어가 우리말을 잡아먹었다고?
오경순 지음 / 이학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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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앞뒤로 살을 조금 붙인다. 예전 글대로만 놓아 두면, 제대로 헤아리지 못할 분이 있겠다고 새삼 느낀다. 마음을 쏟아 댓글을 달아 주며 이야기를 걸어 오는 분들이 고맙다. (2010.10.31.) 


 스스로 번역투에 사로잡힌 슬픈 책
 [책읽기 삶읽기 1] 오경순, 《번역투의 유혹》(이학사,2010)



 일본 문학을 우리 말로 꾸준히 옮기는 오경순 님이 내놓은 책 《번역투의 유혹》을 읽다. 드디어 이런 말을 하는 번역쟁이 한 사람 태어났구나 생각하며 몹시 기쁘게 받아들어 읽다. 그러나 이 책은 여느 사람들이 읽도록 마음을 쏟아 쓴 글이 아니라 오경순 님이 ‘박사학위 논문’으로 쓴 글을 조금 손질해서 묶었다. 처음 책을 쥐었다가 덮을 때까지 오직 한 군데에서만 밑줄을 그을 만한 대목을 보았다. 바로 머리말에 적은 “십여 년간 늘 번역을 가까이 하며 온몸으로 깨달은 사실 하나-역시 질 좋은 번역은 뛰어난 외국어 실력보다는 한국어 실력으로 판가름 난다-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5∼6쪽).”는 대목.

 슬프다. 그렇지만 어쩌랴. 밑줄을 그은 이 한 줄조차 “십여 년 간”으로 띌 대목을 붙였고, “가까이하며”로 붙일 대목을 띄어 놓았는데. 자잘한 띄어쓰기조차 곰곰이 살피지 못하는 이야기로 어찌 ‘일본 번역투가 우리 말투에 얼마나 끔찍하게 스며들었는가’를 밝힐 수 있겠는가.

 어찌 보면 오경순 님이나 출판사 일꾼으로서는 “십여 년간”이라 적바림할 수밖에 없는지 모른다. ‘간’이라는 낱말이 1989년부터 뚱딴지처럼 ‘명사’에서 ‘접사’로 바뀐 까닭이나 흐름을 읽지 못한다면 이와 같이 적을밖에 없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제는 잘 살피지 않지만, 한글학회 국어사전에서는 ‘간’을 이름씨로 다룬다. 1989년까지 사람들이 쓰던 맞춤법은 바로 한글학회에서 마련한 맞춤법이다. ‘間’이라는 낱말은 ‘동안’을 한자로 옮겨서 쓰는 낱말일 뿐이다. 국립국어원 국어사전을 들여다보면 두 가지 ‘間’이 실리면서 “서울과 부산 간”이나 “부모와 자식 간”이나 “운동을 하든지 간에”는 띄어서 적도록 하고, “이틀간”과 “한 달간”은 붙여서 적도록 한다. 이때에 국립국어원 국어사전이 적바림한 풀이말을 읽으면, “‘동안’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라 되어 있다. 그러면 ‘동안’은 어떠한 낱말인가. 국립국어원은 ‘동안’을 ‘명사’로만 다루지, ‘접사’로 다루지 않는다. 이리하여 “3시간 동안”과 “사흘 동안”처럼 적도록 한다. 두 낱말은 뜻이 같은데 쓰임새는 다르고야 만다. 우리 말을 한결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흘 동안”이라 적는다면 띄어야 하고, 한자말을 조금 더 쓰고 싶다며 “사흘간”이라 적는다면 붙여야 한다면, 이런 맞춤법이 무슨 맞춤법이 될 수 있는가. 국어학자와 정부 국어기관 스스로 모순이 사로잡힌 모양새이다.

 생각해 보면, 정부에서는 이제 지난 1989년부터 스무 해에 걸쳐 모순에 사로잡혀 왔으나 ‘관례’처럼 쓰는 ‘間’ 같은 숱한 말마디를 바로잡을 마음이 없는지 모른다. 정부에서는 ‘間’을 접사로 나누어 다루면서 ‘그간’과 함께 ‘그동안’까지 한 낱말로 삼았다. 그러나 ‘-동안’을 따로 접사로 다루지는 않는다. 이런 모순은 ‘한국 말’은 띄도록 하고 ‘한국어’는 붙이도록 하는 데에서도 드러나고, ‘불란서어’는 붙이되 ‘프랑스 어’는 띄도록 하는 데에서도 드러난다. 게다가 ‘불란서인’은 붙여야 하고 ‘프랑스 인’은 띄어야 한다.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 또한 띄어야 한다. 우리는 같은 말을 하면서도 얼토당토않다 싶도록 모순되는 말을 골치가 아프게 배워서 손이 아프도록 써야 한다. 이리하여, 오늘날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는 맞춤법이 다르다. 또 대학교하고도 맞춤법이 서로 다르며, 여느 회사와 언론기관 또한 맞춤법을 다르게 맞출 뿐 아니라, 출판사끼리도 맞춤법이 다른데, 어린이책을 만드는 출판사와 어른책을 만드는 출판사 사이에서도 다른 맞춤법을 쓰는 한편, 어린이책을 만드는 출판사 사이에서도, 또 어른책을 만드는 출판사 사이에서도 맞춤법이 갖가지이다. 바로 1989년부터 이렇게 어지럽고 어수선하게 뒤죽박죽이 되는 맞춤법을 쓰고 있다.

 《번역투의 유혹》을 들여다본다. 73쪽을 보면 김광해 교수 논문을 바탕으로 ‘우리 말 가운데 한자말이 50%가 넘는다’고 적바림하다가는, 223쪽에서는 아무런 바탕을 대지 않으며 “약 70%가 한자어이며 일본식 한자어는 15∼25%나 된다고 한다”고 적바림한다. 어떻게 50%에서 70%로 껑충 뛸 수 있지? 더구나, 우리 말 가운데 한자말이 50%입네 70%입네 하고 읊는 분들이 내놓는 통계와 자료는 무엇에 기대고 있지? 박사학위 논문쯤 된다면 이 나라 국어사전에 ‘안 실어야 하는데 억지로 실은 얄딱구리할 뿐 아니라 조선왕조실록에나 담긴 국사학 한문’이 얼마나 되는가를 살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런 통계나 자료가 얼마나 알맞거나 올바른가를 깊이 따진 다음 숫자를 들이대야 하지 않는가.

 155쪽 번역 보기를 살피면, “불쥐의 가죽옷”으로 옮긴 대목이 나온다. 그러나 “불쥐의 가죽옷”이란 무엇인가. 이런 말이 말이 되는가. “불쥐 가죽으로 만든 옷”이라고 적어야 올바르다. “불쥐 가죽으로 만든 옷” 이야기는 만화책 《이누야샤》에도 나온다. 일본에서는 오랜 옛이야기로 퍼져 있다. 그런데 이런 옛이야기를 알거나 모르거나를 떠나, 토씨 ‘-의’를 잘못 썼구나 하고 깨달아야 한다. 《번역투의 유혹》이라는 책을 내며 오경순 님 스스로 번역투에 빠져 있으면 어떡하나.

 멀리 들여다볼 구석조차 없이 머리말부터 들여다보면, 6쪽에 “번역문의 정확한 뜻을 이해하는 데 방해받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그 요인을 제거하고” 같은 글월이 있다. 이 자리에 쓴 토씨 ‘-의’는 얼마나 알맞을까. “번역글을 올바로 헤아리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걸림돌이 무엇인지를 살펴 이를 솎아내고”쯤으로 고쳐서 적어야 알맞을 텐데.

 68쪽을 보면 ‘가급적’과 ‘되도록’을 나란히 쓰고 있다. 보기글을 옮기자면, “일본어투 ‘-적’이 붙은 말은 가급적 줄여 써야 하며 일한 번역에서도 꼭 필요한 경우 외에는 되도록 이해하기 쉬운”으로 나온다. ‘-적’을 줄여야 한다면서 냉큼 ‘가급적’을 쓰는 모습은 무엇인가. 게다가, 이 글월을 읽으면 ‘되도록’이라는 우리 말을 알맞게 쓰기도 한다. 스스로 앞뒤가 어긋난 채 글을 쓰는 오경순 님이라니. 그지없이 슬프고 가슴시리다. 이런 말잘못은 148쪽에도 나온다. “적절히 담아내지 못하고 그대로 직역하면”이라는 글월인데, ‘직역(直譯)’이란 “그대로 옮김”을 뜻한다. “그대로 직역”이란 엉터리 겹말이다.

 191쪽을 보면 “원문의 ‘정신spirit’과 ‘의미sense’를 살리려고 노력했으며, ‘자연스럽고 편안한 표현easy form of expression’으로”라 적는다. 난데없이 붙이는 영어는 얼마나 도움이 되는 꾸밈말일까 궁금하다. ‘정신’과 ‘의미’라 적으면 그만이지 않을까. 조금 더 생각한다면, ‘넋’과 ‘뜻’이라 할 수 있고, ‘마음’과 ‘뜻’이라 해도 좋다.

 책 하나로 모든 이야기를 다 쏟아낼 수는 없다. 책 하나로 우리네 말삶과 글삶을 어지럽히는 실타래를 슬기롭게 풀어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스스로 번역투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살갑고 아름다운 번역밭을 일구고자 한다면, 글쓴이 오경순 님은 조금 더 많이 땀을 흘려야 하지 않으랴 싶다. 말다운 말을 한 번 더 살피고, 글다운 글을 다시금 곱씹으면서, 숱한 번역쟁이와 글쟁이가 빠져 있는 글감옥이나 글수렁을 깨달아 주며 살포시 건져내도록 도와야지 싶다.

 지식이 많다고 말을 더 잘하지 않는다. 재주가 좋다고 글을 더 잘 쓰지 않는다. 참답고 착하며 고운 마음을 갖추어야 말을 알뜰살뜰 풀어낸다. 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를 사랑하며 믿는 매무새일 때에 비로소 말을 알차게 일군다. 지식인이라는 굴레를 스스로 털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라도 번역투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4343.9.20.달.처음 씀/4343.10.31.해.고쳐씀.ㅎㄲㅅㄱ)



― 번역투의 유혹 (오경순 글,이학사 펴냄,2010.7.31./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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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ai 2010-09-23 19:55   좋아요 0 | URL
이 책에 관해 이미 쓴 글이 있으니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단, '십여 년간'에서 '간'은 의존명사(표준국어대사전 10번)가 아니라 접미사(표준국어대사전 16번)입니다. 따라서 붙여 쓰는 게 맞습니다. 맞는 말을 틀리다고 하면 곤란하죠. 참고로 '가슴시리다'는 국립국어원에서 한 단어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뭐, 자잘한 띄어쓰기 문제이지만요. 말머리에 '받아들어 읽다'는 오타라고 치고 넘어가겠습니다.

파란놀 2010-09-24 03:38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그런데 '간(間)'을 국립국어원에서 뚱딴지처럼 '접사'로 삼고 있었군요. 1989년에 정부가 맞춤법을 갑자기 바꾸기 앞서까지 '간(間)'은 틀림없이 이름씨(명사)였습니다. 정부에서 맞춤법을 님 말씀과 같이 바꾸었어도 한글학회에서는 '간'을 '접사' 아닌 '이름씨'로 여깁니다. 이를 놓고 학회와 연구원 사이에서 아직 실마리를 마련하지 않은 줄 압니다. (그러고 보면, 아직 실마리가 마련되지 않았기에 출판사마다 '간'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조금씩 다르겠군요. 1989년까지 쓰던 맞춤법이 옳다고 여기는 출판사는 이름씨로 여기며 띌 테고, 1989년부터 바뀐 맞춤법대로 배운 편집자라면 으레 붙이겠네요.)

'가슴시리다' 같은 낱말뿐 아니라 '신나다' 같은 낱말 또한 국어연구원에서는 한 낱말로 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낱말을 국어사전에 안 실렸다는 까닭으로 한 낱말로 삼지 않을 까닭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국어사전에 안 실린 '책쉼터'라든지 '책잔치'라든지 '책읽기'라든지 얼마든지 붙여서 씁니다.

'나들목'이라는 낱말은 제가 처음 공식 자리에서 쓴 뒤로 교통방송에서 받아들여 주어서 이제는 한 낱말이 되어 국어사전에도 실렸습니다. 우리 여느 삶에서 두루 쓰는 말 가운데 국어사전 올림말로 삼아야 하거나, 또는 올림말이 되지 않더라도 넉넉히 즐겨쓰는 낱말은 하나하나 우리 스스로 붙여서 쓰면서 쓰임새를 넓혀야 한다고 느낍니다.

'즐겨쓰다' 같은 낱말도 국어사전에는 안 실려 있는데, 님께서 쓰는 인터넷창을 보시면 '즐겨찾기'라는 항목이 있겠지요? 사람들이 이처럼 쓸모와 찾을모를 마련하여 쓰는 낱말이 우리 말과 글을 북돋웁니다.

덧붙여, 저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문제는 다루고 싶지 않습니다. '말을 다루는 삶'과 '글을 살피는 넋'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런 테두리에서 이번 오경순 님 책은 더없이 슬프고 딱합니다. 그동안 오경순 님 번역책을 꽤 많이 읽어 온 사람으로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몹시 가슴아팠습니다.

faai 2010-09-24 17:12   좋아요 0 | URL
저자야 저는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다른 부분은 맞는 말씀이고 제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오늘날 출판사 중에 국립국어원이 아니라 한글학회를 따르는 곳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 식견이 짧은 탓일지도 모르나, 솔직히 그런 출판사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대다수 출판사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거기에 가독성 문제 등으로 출판사 고유 원칙을 덧붙이죠. 말씀하신 대로 '신나다' 같은 단어는 붙여 쓰는 곳도 많습니다. 논란이 있는 단어죠. '좀더' '싶어하다' 등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책쉼터' 같은 단어야 명사+명사로 볼 수 있기에 논외로 합니다).

그러니 접사 '간'이 '뚱딴지'라는 주장은 과하다 싶습니다. 저 또한 말은 언중과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고 봅니다. 근 20여 년 동안 훨씬 많은 사람이 '간'을 구분해서 썼다면, 그것을 따라야 하지 않겠는지요. 그렇게 바뀌게 된 배경 또한 많은 사람이 그렇게 썼기 때문이 아니겠는지요. 유독 한글학회만 '간'을 의존명사로 고집해야 할 까닭이 있는지요.

만약 한글학회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치죠. 그래도 논란이 되는 단어를 어느 한 쪽 주장만을 근거로 틀렸다고 단정한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자잘한 띄어쓰기'라든가 '뚱딴지'라고 표현할 사안은 아니죠.

글이 좀 길어졌습니다. 맞춤법 문제를 다루고 싶지 않다고 하셨는데 죄송합니다.

파란놀 2010-09-24 18:07   좋아요 0 | URL
'간'이 뚱딴지같이 바뀐 맞춤법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쓴 댓글에서는 그와 같이 느끼도록 되어 있군요(다시 읽어 보니). 왜 뚱딴지라는 낱말을 썼느냐 하면, 정부에서 1989년에 맞춤법을 바꿀 때에 1930년대부터 지켜 오던 한글학회 맞춤법을 한글학회 일꾼이나 다른 학자하고는 깊이 생각과 문제와 현실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갑작스레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한글학회 국어사전에서 '간'은 '의존명사'가 아닌 '명사'입니다. 요즈음 퍽 많은 책에서는 '간'을 붙이지만, 띄는 곳 또한 제법 많습니다. 다만, 앞으로는 숫자나 푼수는 줄어들겠지요. 책 만든 경력이 오랜 곳에서는 '국립국어원 맞춤법'을 많이 '존중'하지만 '안 따르기'도 합니다.

작은따옴표를 붙여서 말씀드리는 까닭을 잘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스무 해 동안 써 온 '관례'를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큰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1989년에 바꾼 맞춤법은 그동안 예순 해 가까이 써 오던 '맞춤법을 관례와 버릇과 문화를 어기고 쓰라고 강요한' 노태우 독재정권 맞춤법이거든요. 게다가 1989년에 정부가 단독으로 바꾸어 억지로 쓰도록 한 맞춤법이 2010년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자주 바뀌었는지 곰곰이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요즈음에도 해마다 몇 가지씩 갑작스레(그러니까 뚱딴지처럼) 바뀌는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꽤 많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기가 되는 표준국어대사전 풀이말과 보기글도 해마다 조금씩 바뀌고 있어요. 종이로 찍은 국어사전은 돈이 많이 들어 못 바꾸지만, 인터넷 국어사전은 틈틈이 바꿉니다. 왜 정부 관계자 스스로 '20년 동안 바꾸어 쓰는 맞춤법을 20년 앞서인 1989년에 바꾼 그대로 이어가지 않고 자꾸자꾸 바꾸고' 있을까요?

'간'을 붙여서 쓰기로 한 1989년부터 2010년까지 사람들 말버릇이 아닌 글버릇에서는 붙여서 쓰고 있다지만, 이러한 붙여쓰기는 2011년에 갑자기 띄어서 쓰도록 바뀔 수 있어요. 이런 맞춤법이 바로 오늘날 우리 나라 맞춤법이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어쩔 수 없이 우리 나라 현실에서는 '뚱딴지'라는 낱말을 쓸밖에 없습니다.

다른 많은 분들은 우리 말글 이야기를 놓고 댓글을 달 때에 참 '생각없고' '살피지 않는 엉터리 마음'으로 아무렇게나 헛말을 늘어놓습니다. faai 님께서는 곰곰이 살피고 마음을 기울여서 이야기를 해 주셔서, 저로서도 댓글 하나를 달면서 더 살피고 헤아리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모로 고맙습니다. 이렇게 댓글을 달아 주셨기 때문에, '간'이라는 낱말 하나를 둘러싸고 정부와 학회와 학자와 편집자들이 애먹어야 하는 안타까움과 '현실에서 벌어지는 슬픔'을 한결 깊이 돌아볼 수 있네요.

요사이 너무 바빠서 다른 국어사전을 제대로 들여다보며 말씀드리지 못하는데, 다음주 월요일이나 화요일쯤 틈을 내어 1940년대 국어사전부터 하나하나 살피며 '간'을 어떻게 다루는가를 찾아서 갈무리를 해야겠네요.

faai 2010-09-25 00:25   좋아요 0 | URL
시간 들여 이렇게 거듭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된장 님 말씀은 대부분 수긍합니다. 당장 실무에서는 국립국어원을 따를밖에 없지만, 실제 쓰임새와 동떨어진 표현들을 비롯해 답답한 부분이 많거든요. 어쩌다 보니 책 내용과는 계속 대화가 멀어졌습니다. 된장 님 덕분에 한글학회라든가 노태우 정권 같은 몰랐던 사실도 배우는 계기가 됐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앞으로 종종 들르겠습니다.

파란놀 2010-09-25 03:54   좋아요 0 | URL
엊저녁 곰곰이 생각해 보니, 1989년에 갑작스레 바뀌며 틈틈이 다시 고치는 정부 맞춤법에서, 지난날까지 띄어서 쓰던 '그동안-이동안-저동안'이 붙여서 쓰는 한 낱말이 되었습니다.

'간'이란 '동안'을 한자로 적은 낱말입니다. 그러니까 '동안'이 우리 말이요 '間'은 한자말입니다. 이때에 우리 말 '동안'은 토박이말이고, 한자말 '間'은 외국말이 됩니다. 우리 말과 한자말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찬찬히 헤아려 주시면 고맙겠어요. 제가 왜 '間'이라는 한자말을 외국말이라 가리키는지를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1989년까지 '간'이 '명사'였던 까닭은 우리 말 '동안'을 한자로 옮겨서 적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989년부터 '그동안'을 붙여서 쓰면서 '그간'이라는 낱말에서 '-間'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느냐는 문제가 생깁니다. 정부에서는 '-동안'이라는 접사를 새로 만들지 않았으며, '동안'을 명사 아닌 접사로 바꾸지 않았습니다. '間' 하나만 명사에서 접사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간'을 붙여서 쓰니 '몇 년간'이라는 글월에서도 붙여쓰기를 하며 접사로 다루어야 정부가 바꾼 맞춤법이 앞뒤가 맞게 되어 버렸구나 싶어요.

잘 아시겠지만, 초등학교 교과서 맞춤법에서는 '그 동안-이 동안-저 동안'처럼 띄어서 씁니다. 이는 1989년에 정부가 바꾼 맞춤법이 아닌 1930년대부터 한글학회에서 마련한 맞춤법 틀대로입니다. 그러니까 어린이책에서는 '동안'하고 똑같은 뜻인 한자말 '間'은 명사인 셈입니다. 어린이책에서도 '그간'은 붙일 수 없어요. '그 간'이라고 띄어서 적어야 올바릅니다. 왜냐하면 '그 동안'을 띄거든요. '몇 해 동안'이나 '몇 년 동안'이지 '몇 해동안'이나 '몇 년동안'이 아니니까요.

정부 맞춤법을 1989년에 바꾸며 '몇 년간'처럼 적도록 했다면, 아주 마땅하게도 '몇 년동안'처럼 써야 앞뒤가 맞으며 올바릅니다. '동안'을 명사 아닌 접사로 바꾸어야 해요. 그러나 정부에서는 '동안'을 섣불리 함부로 접사로 바꾸지 못합니다. 아니, 바꿀 수 없을 테지요. 그런데 '동안'은 명사로 그대로 둘 뿐 아니라 건드리지 못하면서 '그동안-이동안-저동안'을 "사람들이 쓰기 좋도록 붙인다"는 편의성을 내세우는데, 편의성을 내세우면서 '-동안'이라는 접사 문제는 슬쩍 넘어갑니다.

이렇기 때문에 초등학교 교과서 맞춤법이 1989년부터 '뚱딴지처럼' 새삼스레 불거지고 맙니다. 정부 스스로 교과서(초등과 중등 교과서 맞춤법이 또 다릅니다)와 어른책 맞춤법이 다르고 마는 모순이 되어요.

고작 '間'이라는 낱말 하나라 할 테지만, 이런 속살을 하나하나 헤아리며 살피지 못한다면, 이번에 오경순 님이 내놓은 책은 한낱 겉훑기에 겉치레에다가 참말과 참글을 건드리지 못한 슬픈 책이 될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생각을 깊이 한다면, 제가 이렇게 구태여 길게 글을 늘여뜨리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으리라 보았습니다. 그러나 짧게 쓰면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으니 faai 님조차 제 글이 무슨 마음으로 쓴 글인가를 읽을 수 없지 않았겠느냐 싶기도 합니다.

다음주에 1940년대 국어사전부터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생각을 다시 갈무리한다면 '間'이라는 외국말인 한자말 하나를 둘러싸고 우리 삶을 담아내는 말과 글이 얼마나 일그러져 있는가를 한결 또렷하게 돌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새삼 고맙습니다.
 
엠마
바바라 쿠니 그림, 웬디 케셀만 글, 강연숙 옮김 / 느림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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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운 할머니 멋진 할머니 예쁜 할머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1] 웬디 케셀만(글)+바바라 쿠니(그림), 《엠마》


 할머니는 할머니 그대로 곱습니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그대로 멋있습니다. 할머니가 대학교수이거나 글을 쓴다고 해서 한결 곱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즐기거나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더욱 멋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한 해 두 해 더 살아가는 동안 내 삶을 내가 어떻게 사랑하며 껴안아야 할는지를 차근차근 깨닫고 배웁니다. 처음부터 모두 깨달을 수 없는 내 삶이며, 한꺼번에 통째로 배울 수 없는 내 나날입니다.

 어쩌면 나 스스로 내 삶을 꾸밈없이 받아들이는 가운데 할머니들 삶은 할머니들 삶대로 받아들일 수 있구나 싶습니다. 나 스스로 나라는 사람 삶이 대단하지 않음을 알아채면서 내가 쓰는 글과 내가 찍는 사진을 나부터 스스럼없이 좋아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할머니들이 저마다 다 달리 꾸리는 삶이 얼마나 고운가를 헤아릴 수 있구나 싶어요.

 도시 아파트를 마다 하고 시골집에서 지내며 허리가 구부정한 채 농사일을 잇는 할매와 할배를 떠올립니다. 이분들은 땅을 밟으며 땅을 만지는 일을 합니다. 굳이 이름날 일이 없고, 따로 이름날 일을 살피지 않습니다. 그러나 땅을 밟으며 땅을 만지는 일은 당신 삶을 어여삐 가꾸어 줍니다. 도시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양로원에 나가 보거나 하는 일은 당신 삶을 어여삐 가꾸어 주지 않습니다.

 도시에는 아파트와 골목집이 있습니다. 아파트와 골목집 사이에는 빌라와 다세대주택이 있습니다.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할매와 할배는 꽃을 기르거나 키우기 만만하지 않습니다. 아파트가 당신들만 살아가는 터전일 때에는 신나게 꽃을 기르거나 키우겠지요. 아파트가 당신 딸이나 아들 집일 때에는 눈치를 살피거나 보겠지요. 골목집에서 살아가는 할매는, 또 빌라에서 살아가는 할배는, 당신 집이며 골목이며 온통 꽃밭과 텃밭으로 바꾸어 냅니다. 관청 공무원부터 개발업자와 사진작가에다가 당신 딸아들마저 당신들 꽃밭과 텃밭을 어여삐 바라보며 아리땁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만, 그러거나 말거나 당신들은 당신들 살림터를 꽃밭터로 일굽니다.

 도시에서 골목마실을 하며 사진을 찍을 때마다 늘 고맙다고 느낍니다. 할매와 할배가 골목동네를 말끔하며 정갈한데다가 맑고 밝도록 사랑해 주고 있기에 늘 좋은 사진을 얻어요. 아니, 좋은 사진이라기보다는 할매 웃음과 할배 눈물이 그득 담은 삶자락 사진을 얻어요. 굳이 할매와 할배 얼굴과 손등을 사진으로 담지 않더라도 할매와 할배가 어떻게 지내는가를 꽃그릇 하나와 빨래 한 점에서 읽습니다.


.. 가족이 찾아오면 할머니는 행복했어요. 푸딩과 초콜릿 크림 파이를 굽고 집안 곳곳에 꽃도 꽂아 놓았지요. 할머니의 가족은 선물을 많이 가져왔지만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어요. 할머니는 혼자 지낼 때가 많았지요 … 엠마 할머니의 하나뿐인 친구는 주황색 고양이, 호박씨였어요. 할머니와 호박씨는 밖에 앉아서 함께 햇볕을 쬐었어요. 딱따구리가 나이 든 사과나무를 쪼는 소리도 들었고요 ..  (3, 5쪽)


 제 나이 스물여섯에 할매 삶을 오롯이 읽을 수 있었으리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내 나이 열여섯일 적에 할배 삶을 소롯이 들여다볼 수 있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철이 없던 때에는 철이 없는 대로 바라보고, 철이 좀 들었다 싶은 때에는 철이 좀 들었다 싶은 대로 할매와 할배 삶을 사랑하자고 다짐합니다. 곰곰이 따지면, 내가 할매 삶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아낄 수 있자면 내 삶을 나부터 있는 그대로 보면서 아낄 수 있어야 하거든요.

 어제 저녁 무렵, 올해로 여든일곱 해를 살아가는 그림 할머님을 만납니다. 인천 화평동 한켠에 자리한 ‘평안 수채화의 집’에서 그림을 가르치며 하루하루 지내는 할머님은 어제 하루도 그림그리기를 조용히 즐기면서 마음속으로 꾸준하게 비손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림을 그릴 수 있어 고맙고, 이 좋은 사람들을 당신과 함께 그림그리기를 나누며 마음을 주고받도록 이끌어 주어 고마우며, 이 고요하고 정갈한 그림그리기에 당신 삶을 바칠 수 있어 고맙다고 비손을 올린다고 합니다.

 그림 할머님은 당신 그림을 내다 팔아서 ‘앞 못 보는’ 사람들 살림살이를 살짝 거드는 일을 한결같이 잇습니다. 그림을 가르치며 받는 돈으로 당신 살림살이를 요조모조 꾸립니다. 여든여섯일 때에도 그랬고 여든일곱일 때에도 그러한데, 여든여덟을 맞이하고 여든아홉이나 아흔을 맞이하여도 할머님 그림그리기는 이어지리라 봅니다. 어쩌면,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날까지 붓 한 자루를 당신 바른손에 살며시 쥐실 테지요.

 그림 할머님은 늘 갖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또 그림 할머님은 사람들이 들려주는 갖가지 이야기를 가만가만 듣습니다. 당신은 당신대로 살아온 나날을 조곤조곤 들려주고, 당신과 마주한 사람은 저절로 이야기샘이 솟아 내 이야기를 한 올 두 올 풀어냅니다.


.. 엠마 할머니는 소박한 것들을 좋아했어요. 눈이 현관 문턱까지 쌓이는 것을 바라보기 좋아했고요. 앉아서, 고향인 산 너머 작은 마을을 생각하기 좋아했어요. 그런데 할머니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가족 모두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불쌍한 할머니, 이젠 정말 늙으셨어.” ..  (7쪽)


 그림 할머님하고 만나서 나눈 이야기를 가만히 떠올리며, 오늘 있던 일을 편지로 적어 충주 산골집에서 아이랑 지내는 집식구한테 띄웁니다. 언제나 세 식구가 함께 움직였는데 어제오늘만큼은 아빠 혼자 서울에 볼일 보러 나오고 인천으로 골목마실 하러 움직입니다. 혼자 움직이니 한결 가뜬하다 할 만하지만, 이래저래 사람 만나고 술 한잔 마신다거나 자전거를 타기에 좋을는지 몰라도, 골목마실을 하며 마주하는 좋은 이웃 좋은 삶을 혼자만 눈과 가슴과 사진으로 담는 일은 적이 아쉽습니다. 한식구라면 좋은 일도 궂은 일도 함께할 노릇이잖아요. 이 얘기 저 얘기 스스럼없이 나누고, 이 놀이 저 놀이 나란히 즐길 노릇이에요.

 아이랑 함께 다니면 아이를 보느라 고단하다고들 말합니다. 그래요, 참 고단합니다. 마음을 쓰거나 몸을 쓸 일이 많으니 고단할밖에요. 그러나 아이랑 살아가며 마음과 몸을 쓸 곳이 많으니 마땅히 고단합니다. 고단함을 꺼릴 까닭이 없어요. 그예 받아들이며 즐길 고단함입니다. 마음이든 몸이든 고단할 하루하루인데, 이렇게 고단할 하루하루인 까닭에 하루하루에 뜻이 있습니다. 언제나 다른 새 하루로 찾아오고, 늘 새삼스러운 하루를 즐깁니다.

 아빠가 보는 곳을 아이가 보고, 엄마가 보는 자리를 아이가 봅니다. 이 땅 아이들이 씩씩하고 슬기로우며 튼튼한데다가 곱게 자라자면, 아이 아빠와 엄마 된 사람들이 노상 아이랑 함께 복닥이며 모든 일놀이를 나란히 즐겨야지 싶어요. 텔레비전을 보든 밥을 하든 걸레질을 하든 셈틀 앞에 앉든, 어버이 된 이는 ‘나만 누려야지’ 하는 생각이 아니라, ‘내 살붙이랑 같이 즐겨야지’ 하는 마음밭이어야지 싶어요.

 모든 삶을 아이하고 나누어야지 싶습니다. 어떤 이야기라도 아이랑 주고받아야지 싶습니다. 사랑을 담고 믿음을 보태야지 싶습니다. 아름답다 일컫는 삶이든 거룩하다 우러르는 삶이든 빛난다 여기는 삶이든, 바로 우리들 하루하루 수수하게 보내는 나날에 좋은 뜻과 고운 값이 있다고 느껴요.


.. 창가에 앉아서 기억나는 대로 고향 마을을 그렸어요. 엠마 할머니는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 벽에 걸려 있던 그림을 내려놓고 자기가 그린 그림을 걸었어요. 그리고 날마다 자기 그림을 바라보며 빙긋이 웃었지요 ..  (13쪽)


 그림책 《엠마》를 들여다보면서 이런 느낌 저런 생각이 한결 짙으며 한껏 푸르게 자리잡습니다. 그림책 《엠마》에 나오는 그림 할매 엠마는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당신 삶을 한껏 빛내며 마무리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엠마 할매는 그림 할매 아닌 수수한 할매일 때에도 그지없이 어여뻤어요. 여느 할매인 엠마 할매는 고양이 호박씨하고 오랜 능금나무랑 벗삼으면서 날마다 웃음으로 보냈어요.

 다만, 엠마 할머니네 딸아들과 손자들은 이러한 웃음을 읽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너무 바빠요.

 참 바쁜 사람들인데요, 무엇 때문에 이리도 바빠야 하나요.

 돈을 버느라 바쁜가요. 어른들은 돈을 버느라 바쁘고, 아이들은 학교나 학원을 다니느라 바쁜가요. 그렇다면 궁금해요. 어른들은 왜 돈을 벌어야 하지요. 돈은 얼마나 벌어야 하지요. 번 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쓰지요.

 아이들은 학교나 학원을 왜 다니지요. 학교나 학원을 다녀서 나중에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내 어머니 삶을 고스란히 바라보면서 받아들일 줄 모른다면, 제아무리 돈을 많이 벌거나 크고 잘빠진 자가용을 몬다 한들 무슨 뜻이 있나 궁금해요. 내 할머니 삶을 꾸밈없이 마주하면서 맞아들일 줄 모른다면, 제아무리 학교 성적이 빼어나 손꼽히는 대학교에 들어가 멋진 학문을 이루었다 한들 무슨 값이 있나 궁금해요.


.. 할머니는 고향인 산 너머 마을을 그리고 또 그리고 자꾸자꾸 그렸어요 ..  (25쪽)


 엠마 할매는 그림 할매가 되었기에 아름답지 않습니다. 우리 세 식구가 틈틈이 찾아뵈며 인사드리는 인천 화평동 그림 할매는 여든일곱 나이에까지 붓을 붙잡고 있어서 멋있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그예 어여쁜 할매입니다. 모두모두 매우 고운 사람입니다.

 엠마 할매는 고운 할매이기에 당신 고향마을을 떠올리며 자꾸자꾸 그립니다. 그림을 그리지 않던 때에는 당신 살림집을 당신 손으로 예쁘게 꾸몄고, 그림을 그리는 때에는 당신한테 기쁘고 벅찬 지난날을 되새기며 그림 한 점 그립니다. 인천 화평동 그림 할매는 멋진 할매이기에 당신이 사랑하는 꽃을 그리고 또 그리며 자꾸 그립니다. 그토록 살림이 팍팍했어도 스물두 식구를 먹여살린 화평동 그림 할매는 그 작고 가녀린 몸뚱이로 온누리를 다부지게 붙안았습니다.

 저는 고작 세 식구 먹여살리는 살림을 꾸립니다. 스물두 식구를 먹여살리던 할머니와 견주면 참 손쉬워 보인다 할 만한 살림일는지 모르지만, 스물두 식구는 스물두 식구이고 세 식구는 세 식구예요. 저한테는 스물두 식구 살림이든 세 식구 살림이든 매한가지랍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고마우며 반갑습니다. 저마다 좋으며 즐겁습니다.

 그림책 《엠마》를 덮으며 생각합니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어도 어여쁜 할매였기에 그림을 그리면서 한결같이 어여쁜 할매인 엠마와 같은 분들은 우리 둘레 어디에서나 당신 삶을 아리땁게 일구며 살아가신다고. (4343.9.18.흙.ㅎㄲㅅㄱ)


― 엠마 (웬디 케셀만 글,바바라 쿠니 그림,강연숙 옮김,느림보 펴냄,2004.2.17./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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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 - 분단된 나라의 슬픔, 비무장지대 이야기 평화그림책 2
이억배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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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훈련 군대 나라에 평화란 없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9] 이억배,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


 우리 나라는 식량자급율과 쌀자급율이 무척 낮습니다. 한 해에 한 번쯤 통계가 나오기는 하지만 언론에는 거의 실리지 않는 자급율입니다. 언론에는 언제나 쌀이 남아돌아 걱정이라는 이야기만 나옵니다. 쌀값이 한 푼이라도 오르면 물건값이 치솟는다며 근심이라는 이야기가 덧붙습니다.

 도시사람은 벼논이 어떻게 생기거나 이루어져 있는지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아니, 날마다 밥을 먹으면서도 논이든 밭이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시사람들한테는 생각할 일이 많고 마음쓸 곳이 수두룩합니다. 농사짓는 사람들 삶이라든지 땅과 농약과 자연과 유전자 비틀기 이야기에는 눈길조차 둘 겨를이 없습니다.

 때때로 ‘벼농사나 밭농사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이 나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날마다 먹는 밥이 얼마나 고마운가’를 느끼도록 도우려고 펴내는 책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네 어른들이 읽을 ‘벼농사나 밭농사 이야기’ 책은 거의 없습니다. 아니, 아예 없다 하여도 틀리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는 쌀 이야기 그림책을 사 주어 읽히면서, 정작 어른이 먼저 쌀 이야기를 살피는 일은 없습니다.

 큰 비바람이 지나갔습니다. 도시에서도 건물이 흔들린다든지 간판이 날아갔다든지 유리창이 깨졌다든지 전봇대가 넘어졌다든지 하면서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시골에서는 논이 물에 흠뻑 잠긴다거나 벼가 모조리 넘어진다거나 논둑이 무너진다거나 하면서 슬픈 일이 생겼습니다.

 쓰러진 건물은 다시 세우면 되고, 깨진 유리창은 새로 갈면 됩니다. 그러나 무너진 논둑을 다시 세우거나 넘치는 논물을 흘려보내거나 쓰러진 벼를 일으켜세운다 하여도 벼농사는 제대로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집 텃밭에 심은 배추는 거의 녹아 버렸고, 무 또한 몇 뿌리 건사하기 힘듭니다. 크게 농사짓는 분들은 한숨이 아주 클 테지요. 때를 놓친다거나 날씨가 흔들릴 때마다 두 손을 들밖에 없는 농사짓기입니다.


..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 들판에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납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갈 수가 없습니다.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으니까요 ..


 사람들 누구나 몸소 겪어야 비로소 알아차립니다. 몸소 겪었으면서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도 많으나, 몸소 겪지 않고서는 제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다거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거나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많이 보았다 할지라도 알아차릴 수 없을 뿐더러, 안다 할 수조차 없습니다. 전쟁이든 평화이든 우리가 몸소 겪지 않고서야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거나 무시무시한 줄을 깨닫기 힘듭니다. 평화 또한 우리가 몸소 누리지 못하고서야 얼마나 사랑스러우며 아름다운 줄 느끼기 어렵습니다.

 남녘과 북녘 사이에 비무장지대가 있습니다. 말이야 비무장지대이지, 이곳 비무장지대처럼 ‘무장이 잘 된 곳’은 없습니다. 이름이야 비무장지대이지, 정작 이 땅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무기가 넘치디넘치는 곳입니다. 허울이야 비무장지대이지, 바로 이 터에는 남북녘 모두 젊디젊은 사내들한테 군인옷을 입히고 총칼을 들리워 수십만을 몰아넣습니다.

 비무장지대에서 군대살이를 해 본 사람이라 해서 비무장지대를 잘 알지는 않습니다. 이곳에서 군대살이를 했달지라도 간부로 있던 이들, 더욱이 맨 밑바닥 중대나 독립소초가 아닌 대대나 연대 같은 곳, 또는 사단이나 군단 즈음에서 군대살이를 한 사람으로서는 비무장지대 속살을 알 노릇이 없습니다. 주특기 100(소총수, 1111)부터 106(무반동총, 1114)까지 받은 땅개(육군 보병)들이 비무장지대라는 곳에서 하루를 어찌 보내는지를 몸소 겪지 않고서야 비무장지대가 남북녘에서 어떠한 터전인가를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 비무장지대에 여름이 오면 군인들은 줄지어 행군을 하고 고단한 훈련을 받습니다. 할아버지는 오늘도 전망대에 올라가 북녘 땅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


 가끔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비무장지대 모습이 나옵니다. 아는 이는 알겠으나,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비치는 비무장지대는 ‘속모습을 감춘 껍데기’입니다. 취재를 하러 비무장지대에 가 본다든지, 학술조사나 연구 때문에 비무장지대에 들어간다든지 할 때에도 겉을 살짝 훑을 뿐입니다. 특전사나 수색대라는 군인은 비무장지대 곳곳을 누비지 않습니다. 늘 다니는 길로만 순찰을 돕니다. 그야말로 땅개인 맨 밑바닥 군바리들만 비무장지대 곳곳을 누빕니다. 왜냐하면 길을 닦든 짐을 나르든 훈련을 하든 지뢰를 묻거나 캐든, 지뢰밭 둘레에 쇠가시그물을 치든, 방공호를 새로 파거나 시멘트로 집을 짓든 …… 모든 ‘사람이 움직여서 해야 하는 일’은 땅개들이 두 다리로 비무장지대를 밟으면서 합니다.

 제가 비무장지대 깊숙한 곳에서 군대살이를 하던 1995∼1997년에도 고엽제를 철책 둘레에 뿌리며 ‘사계청소(또는 시계청소)’를 했습니다. 해마다 고엽제를 뿌리고 거듭 뿌려도 풀이 어찌나 잘 나는지, 경계근무를 서는 초소에서 철책 너머가 가리기 때문에 고엽제를 뿌리고 풀과 나무를 베고 하느라 한 세월을 보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계청소를 한다며 고엽제를 뿌리고 풀과 나무를 베어낸 탓에 봄부터 가을까지 큰비가 거센 바람과 함께 몰아치면 철책 둘레 흙이 무너집니다. 여느 때에 워낙 나무이고 풀이고 베어 없애니 비만 오면 흙벼락이 치지요. 그러면 땅개 군바리들은 다른 흙땅에서 흙 마대에 퍼 담고 날라서 무너진 자리를 메꾸는 일(사역)을 합니다. 비만 왔다 하면 물골작업을 한다며 삽을 들고 나섭니다. 계급장 별을 단 사람들이 전방 순시를 온다 하면 한두 달에 걸쳐 ‘도로 평탄 작업(높은 간부가 탄 짚차가 흙길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반반하게 길닦기)’을 합니다. ‘도로 평탄 작업’을 할 때에는 사단에서 ‘덤프 지원’이 나오는데, 사단 운전수가 덤프를 몰며 울퉁불퉁 길바닥에 찔끔찔끔 흙을 뿌리면, 우리들 땅개 군바리는 삽 한 자루씩 들고 있다가 신나게 바닥을 다집니다. 이러기를 한두 달 하고 나서야 별을 하나나 둘쯤 단 사단 간부나 군단 간부가 짚차를 타고 비무장지대 순시를 나옵니다. 뭐, 더 높은 분들은 아예 헬기를 타고 오니까 차라리 낫지요. 비무장지대 맨 안쪽 우리 중대 옆 가칠봉 꼭대기에는 헤엄터까지 있어(이 헤엄터는 바로 우리들 땅개가 연대 주둔지부터 모래와 자갈과 물과 시멘트를 등짐으로 이고 지고 날라서 만들었습니다), 별 단 높은 간부들은 여름마다 이곳으로 헬기 타고 나들이를 왔으며, 별 안 단 높은 간부들은 짚차를 타고 마실을 왔습니다.

 사단이나 군단 간부가 들이닥치기 앞서 마지막 주에는 밤을 새우며 길닦기를 합니다. 깊은 밤에 별을 보며 삽질을 하고 있자니 고참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농담 한 마디를 합니다. “야, 북한 애들은 (삽을) 천 번 뜨고 허리 한 번 편다는데, 우리는 만 번 뜨고 허리 한 번 펴자.”


.. 비무장지대에 가을이 오면 군인들은 탱크로 출동을 하고 전투기로 폭격하는 훈련을 합니다. 할아버지는 또 다시 전망대에 올라가 텅 빈 북녘 하늘을 바라봅니다 ..


 군대 얘기만큼 재미없는 얘기가 없고, 군대에서 공차기를 한 얘기만큼 더 재미없는 얘기가 없다 했습니다. 군대라는 곳이 몹시 끔찍하며 지겨운 한편 두렵고 슬프기 때문입니다. 군대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재주를 배울 뿐 아니라 가르치고 물려주는 곳입니다. 게다가 우리 나라 군대는 두서너 해씩 의무복무를 하도록 하면서 가장 젊고 푸르며 싱그러운 나이에 ‘죽이는 재주’와 ‘밟는 솜씨’와 ‘때리고 맞는 버릇’을 길들여 놓습니다. 군대를 마친 다음에는 언제라도 예비군이나 민방위로 불러들여 ‘사람 죽이고 밟다가는 주먹다짐을 하는 삶’을 잊었는가 잊지 않았는가 살핍니다.

 군대라는 곳에 끌려가던 날부터 군대라는 곳에서 풀려난 오늘까지 곰곰이 돌아보노라면, 이 나라 한국땅에서 따스한 봄볕 같은 평화가 자리한 적은 한 번도 없구나 싶습니다. 진보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예전 미국 부시 대통령 같은 사람을 놓고 ‘전쟁 미치광이’라 손가락질했습니다만, 미국 부시 대통령 같은 사람은 전쟁 미치광이가 아닙니다. 전쟁 미치광이는 부시 대통령 뒤에 숨어, 우리한테 안 보이는 자리에서 웃음짓고, 부시 대통령은 한낱 허수아비입니다. 더군다나 한국땅에서 ‘서울 불바다’를 외치는 북녘 정치꾼을 비롯해 ‘때려잡자 빨갱이’를 외치는 남녘 정치꾼과 어르신들이야말로 전쟁 미치광이입니다.

 그런데 이들만 전쟁 미치광이이지 않습니다. 평화와 함께 이 땅에 뿌리내릴 평등을 멀리하는 모두가 전쟁 미치광이입니다. 어머니 성과 아버지 성을 함께 쓴다고 남녀평등이지 않습니다. 남녀평등이란 삶에서 이루어야 합니다. 집안살림과 집밖살림을 남녀가 알맞고 아름답게 나누어 즐기는 데에 남녀평등이 있습니다. 입시지옥에 푸름이를 내모는 어른들 모두 전쟁 미치광이이지만, 입시지옥에 푸줏간 돼지처럼 끌려가면서 스스로 뛰쳐나오지 않는 푸름이 또한 전쟁 미치광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전쟁 미치광이 굴레에서 놀아나는 셈입니다. 우리는 전쟁 미치광이 놀음놀이에서 허덕일 바보가 아니라, 평화와 평등을 누리며 나눌 벗입니다. 사랑과 믿음을 얼싸안으며 웃음과 울음으로 우리 삶을 곱게 여밀 동무입니다.

 그림책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을 몇 번 들여다보다가 덮습니다. 한국전쟁을 기리면서 나온 이 그림책은 이 땅에 참다운 평화와 사랑이 깃들기를 꿈꾸는 넋을 고이 스며 놓습니다. 이 땅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평화와 사랑을 아끼기를 바라는 얼을 살포시 담아 놓습니다.

 뜻은 좋습니다. 값은 훌륭합니다. 다만, 비무장지대가 어떤 곳인지 옳게 돌아보지 못한 그림이 곳곳에 보입니다. 비무장지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올바로 다루지 못합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비무장지대 모습이 아닙니다. ‘민간인’으로서는 볼 수 없는 곳이 많으며 ‘민간인 어린이’로서는 알 턱조차 없으니 제대로 비무장지대를 그린다면 외려 비무장지대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그림책을 못 알아볼 수 있어요.

 그러다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비무장지대에도 봄이 찾아들지만 비무장지대에서 수달과 고라니가 홀가분하게 뛰어놀 수 없습니다. 비무장지대에 들어간 군인은 ‘훈련을 받지 않’습니다. 비무장지대 군인은 ‘행군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후방 주둔지에서 비무장지대로 근무지를 바꿀 때(여섯 달에 한 번씩 근무지를 바꿉니다)에 비로소 군장을 짊어지고 비무장지대로 들어가고 나오고 합니다. 비무장지대에 들어간 군인은 여섯 달 내내 3교대 경계근무만 서고, 사계청소와 지뢰작업과 물골작업과 도로 평탄 작업과 곰취 작업(연대와 사단과 군단 간부들한테 산나물과 곰취 따위를 뜯어다 바쳐야 하는 작업)과 갖가지 끝없는 작업과 또 작업을 합니다. 비무장지대에서 내려온 군인이 ‘지오피 휴가’를 받은 다음 비로소 갖은 훈련과 행군에 시달립니다.

 연어가 비무장지대까지 들어오기는 합니다. 저 또한 길이 1미터 넘는 연어를 두타연에서 맨눈으로 보았으니까요. 그런데 이 연어들이 제대로 알을 낳을 만한 터전이 못 되는 비무장지대입니다. 산양이 뛰어다닐 만한 넉넉한 바위나 땅이 없는 비무장지대입니다. 탱크가 출동하고 전투기로 폭격하는 훈련을 받는 곳은 비무장지대가 아닌 ‘비무장지대 뒤쪽 군부대 많은 여느 마을’입니다. 비무장지대에서 탱크가 움직인다면, 북녘에서 곧바로 미사일을 쏘며 전쟁이 터집니다. 비무장지대 북쪽 땅에서 북녘 군인이 탱크를 몰고 움직일 때에도 남녘 군대에서는 미사일을 쏘며 전쟁이 터지도록 작계(작전훈련계획)가 짜여졌어요.

 비무장지대에서는 군인조차 ‘늘 다니는 길’ 아닌 데로는 못 다니도록 합니다. 왜냐하면 어디에 지뢰가 묻혔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비가 오면 경계근무를 서려고 오갈 때에도 발바닥 디디는 땅을 천천히 살피며 나무막대기로 쑤시며 다녀야 합니다. ‘사라졌거나 사라질까 걱정스러운’ 짐승들이 비무장지대에서 살기도 하겠지만, 아름답거나 홀가분하게 노닐 수 없습니다. 멧돼지와 독수리와 까마귀는 군인들이 밥쓰레기를 버리는 짬통을 뒤지고, 때로는 멧돼지가 짬통에 빠져서 죽으며, 큰비가 퍼부은 뒤에 노루나 고라니가 지뢰를 밟고 죽기도 합니다(군인도 많이 죽습니다).

 생각해 보면, ‘현실과 다른 아름다운 꿈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곳 비무장지대에 ‘아직 없는 봄이 오기를 바라’면서 그림책을 엮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요, 이렇게 생각하며 이 그림책을 읽어야 할 테지요. 참말 아무런 평화도 사랑도 꿈도 즐거움도 없는 군대에, 비무장지대에, 이 나라에 거짓스러운 이야기들뿐이지만 이러한 봄이 오기를 비손하는 마음을 담은 그림책으로 삼아야 할 테지요. 다만, ‘사실 관계’는 옳고 바르게 적어야 하고, 제아무리 꿈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더라도 ‘없는 이야기를 있는 이야기인 듯’ 그리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비무장지대라 하는 현실세계가 어떤 현실인가’를 보여주면서 평화를 이야기하려는 그림책이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이기 때문입니다.

 틀림없이 좋은 뜻으로 엮은 그림책이요, 어김없이 고운 넋을 살리자는 그림책인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입니다. 그러나 비무장지대는 사람들이 잘못 알듯 ‘그리 아름다운 자연 누리’가 아닙니다. 늘 다니는 길에도 비만 왔다 하면 지뢰가 흘러내려왔을까 걱정되는 곳이요, 끔찍한 살인훈련과 폭력이 판치는 ‘죽음 누리’가 비무장지대입니다. 달콤하며 빛깔 예쁜 그림결로 비무장지대를 그려 놓는다고 해서 평화를 앞당길 수 없다고 느낍니다. 이 땅 이 누리가 얼마나 무섭고 슬픈 전쟁 누리요 죽음 누리인가를 똑똑히 바라보며 꾸밈없이 드러내어 밝히고 나누면서, 비로소 평화와 평등과 사랑과 믿음을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가를 깨닫는 길을 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비무장지대에는 봄이 온 적이 없고, 봄이 올 수조차 없는 대한민국입니다. (4343.9.17.쇠.ㅎㄲㅅㄱ)


―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 (이억배 글·그림,사계절,2010.6.25./10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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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 결혼 시키기


 몇 해 앞서인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나도 그 책을 훑기는 했으나 사지는 않았다. 《서재 결혼 시키기》라는 책이 나온 적 있고, 이 책에 붙은 이름 때문인지 이 책에 담긴 줄거리 때문인지 “서재 결혼 시키기”가 바람처럼 분 적이 있다.

 열 며칠 앞서 드디어 인천 책짐을 모두 충주 산골마을로 옮겼다. 9월 4일에 옮긴 책짐은 모두 5톤 짐차로 석 대이고, 앞서 옮겨 놓은 책짐까지 더하면 5톤 짐차로만 넉 대치를 옮긴 셈이다.

 서재 짝짓기를 한다는 이들은 으레 ‘책 짝짓기’를 생각하리라 본다. 아마 ‘책꽂이 짝짓기’는 생각하지 못할 테며, ‘책 나르기’나 ‘책꽂이 나르기’라든지, 책과 책꽂이 새롭게 자리잡기는 꿈도 꾸지 않을 테지.

 밤 한 시에 일어나 세 시간 남짓 책과 책꽂이를 나르며 먼지를 닦고 하다 보니 무릎이 시큰거리기로 그치지 않는다. 다리가 아프지만 방바닥에 풀썩 하고 주저앉을 수 없다. 서울 용산에 자리한 헌책방 〈뿌리서점〉 아저씨는 아침에 책방 일을 한다며 나와서 늦은 밤에 댁으로 돌아갈 때까지 자리에 앉는 법이 없는 채 마흔 해 가까이 살아오셨다. 한 번 자리에 앉으면 다시 일어나기 어렵다면서 내내 선 채로 일을 하시는데, 아저씨 말이 즈믄 번 맞다. (4343.9.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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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9-18 10:52   좋아요 0 | URL
5톤차로 4대분의 서적이라니 장말 ㅎㄷㄷㄷ하네요.아마 장서가 수천권을 되실듯 하네요^^

파란놀 2010-09-25 10:19   좋아요 0 | URL
5톤 짐차 한 대에는 책을 1만~1만2천 권쯤 싣는답니다...

카스피 2010-09-28 22:33   좋아요 0 | URL
허걱 정말 대단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