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투의 유혹 - 일본어가 우리말을 잡아먹었다고?
오경순 지음 / 이학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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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앞뒤로 살을 조금 붙인다. 예전 글대로만 놓아 두면, 제대로 헤아리지 못할 분이 있겠다고 새삼 느낀다. 마음을 쏟아 댓글을 달아 주며 이야기를 걸어 오는 분들이 고맙다. (2010.10.31.) 


 스스로 번역투에 사로잡힌 슬픈 책
 [책읽기 삶읽기 1] 오경순, 《번역투의 유혹》(이학사,2010)



 일본 문학을 우리 말로 꾸준히 옮기는 오경순 님이 내놓은 책 《번역투의 유혹》을 읽다. 드디어 이런 말을 하는 번역쟁이 한 사람 태어났구나 생각하며 몹시 기쁘게 받아들어 읽다. 그러나 이 책은 여느 사람들이 읽도록 마음을 쏟아 쓴 글이 아니라 오경순 님이 ‘박사학위 논문’으로 쓴 글을 조금 손질해서 묶었다. 처음 책을 쥐었다가 덮을 때까지 오직 한 군데에서만 밑줄을 그을 만한 대목을 보았다. 바로 머리말에 적은 “십여 년간 늘 번역을 가까이 하며 온몸으로 깨달은 사실 하나-역시 질 좋은 번역은 뛰어난 외국어 실력보다는 한국어 실력으로 판가름 난다-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5∼6쪽).”는 대목.

 슬프다. 그렇지만 어쩌랴. 밑줄을 그은 이 한 줄조차 “십여 년 간”으로 띌 대목을 붙였고, “가까이하며”로 붙일 대목을 띄어 놓았는데. 자잘한 띄어쓰기조차 곰곰이 살피지 못하는 이야기로 어찌 ‘일본 번역투가 우리 말투에 얼마나 끔찍하게 스며들었는가’를 밝힐 수 있겠는가.

 어찌 보면 오경순 님이나 출판사 일꾼으로서는 “십여 년간”이라 적바림할 수밖에 없는지 모른다. ‘간’이라는 낱말이 1989년부터 뚱딴지처럼 ‘명사’에서 ‘접사’로 바뀐 까닭이나 흐름을 읽지 못한다면 이와 같이 적을밖에 없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제는 잘 살피지 않지만, 한글학회 국어사전에서는 ‘간’을 이름씨로 다룬다. 1989년까지 사람들이 쓰던 맞춤법은 바로 한글학회에서 마련한 맞춤법이다. ‘間’이라는 낱말은 ‘동안’을 한자로 옮겨서 쓰는 낱말일 뿐이다. 국립국어원 국어사전을 들여다보면 두 가지 ‘間’이 실리면서 “서울과 부산 간”이나 “부모와 자식 간”이나 “운동을 하든지 간에”는 띄어서 적도록 하고, “이틀간”과 “한 달간”은 붙여서 적도록 한다. 이때에 국립국어원 국어사전이 적바림한 풀이말을 읽으면, “‘동안’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라 되어 있다. 그러면 ‘동안’은 어떠한 낱말인가. 국립국어원은 ‘동안’을 ‘명사’로만 다루지, ‘접사’로 다루지 않는다. 이리하여 “3시간 동안”과 “사흘 동안”처럼 적도록 한다. 두 낱말은 뜻이 같은데 쓰임새는 다르고야 만다. 우리 말을 한결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흘 동안”이라 적는다면 띄어야 하고, 한자말을 조금 더 쓰고 싶다며 “사흘간”이라 적는다면 붙여야 한다면, 이런 맞춤법이 무슨 맞춤법이 될 수 있는가. 국어학자와 정부 국어기관 스스로 모순이 사로잡힌 모양새이다.

 생각해 보면, 정부에서는 이제 지난 1989년부터 스무 해에 걸쳐 모순에 사로잡혀 왔으나 ‘관례’처럼 쓰는 ‘間’ 같은 숱한 말마디를 바로잡을 마음이 없는지 모른다. 정부에서는 ‘間’을 접사로 나누어 다루면서 ‘그간’과 함께 ‘그동안’까지 한 낱말로 삼았다. 그러나 ‘-동안’을 따로 접사로 다루지는 않는다. 이런 모순은 ‘한국 말’은 띄도록 하고 ‘한국어’는 붙이도록 하는 데에서도 드러나고, ‘불란서어’는 붙이되 ‘프랑스 어’는 띄도록 하는 데에서도 드러난다. 게다가 ‘불란서인’은 붙여야 하고 ‘프랑스 인’은 띄어야 한다.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 또한 띄어야 한다. 우리는 같은 말을 하면서도 얼토당토않다 싶도록 모순되는 말을 골치가 아프게 배워서 손이 아프도록 써야 한다. 이리하여, 오늘날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는 맞춤법이 다르다. 또 대학교하고도 맞춤법이 서로 다르며, 여느 회사와 언론기관 또한 맞춤법을 다르게 맞출 뿐 아니라, 출판사끼리도 맞춤법이 다른데, 어린이책을 만드는 출판사와 어른책을 만드는 출판사 사이에서도 다른 맞춤법을 쓰는 한편, 어린이책을 만드는 출판사 사이에서도, 또 어른책을 만드는 출판사 사이에서도 맞춤법이 갖가지이다. 바로 1989년부터 이렇게 어지럽고 어수선하게 뒤죽박죽이 되는 맞춤법을 쓰고 있다.

 《번역투의 유혹》을 들여다본다. 73쪽을 보면 김광해 교수 논문을 바탕으로 ‘우리 말 가운데 한자말이 50%가 넘는다’고 적바림하다가는, 223쪽에서는 아무런 바탕을 대지 않으며 “약 70%가 한자어이며 일본식 한자어는 15∼25%나 된다고 한다”고 적바림한다. 어떻게 50%에서 70%로 껑충 뛸 수 있지? 더구나, 우리 말 가운데 한자말이 50%입네 70%입네 하고 읊는 분들이 내놓는 통계와 자료는 무엇에 기대고 있지? 박사학위 논문쯤 된다면 이 나라 국어사전에 ‘안 실어야 하는데 억지로 실은 얄딱구리할 뿐 아니라 조선왕조실록에나 담긴 국사학 한문’이 얼마나 되는가를 살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런 통계나 자료가 얼마나 알맞거나 올바른가를 깊이 따진 다음 숫자를 들이대야 하지 않는가.

 155쪽 번역 보기를 살피면, “불쥐의 가죽옷”으로 옮긴 대목이 나온다. 그러나 “불쥐의 가죽옷”이란 무엇인가. 이런 말이 말이 되는가. “불쥐 가죽으로 만든 옷”이라고 적어야 올바르다. “불쥐 가죽으로 만든 옷” 이야기는 만화책 《이누야샤》에도 나온다. 일본에서는 오랜 옛이야기로 퍼져 있다. 그런데 이런 옛이야기를 알거나 모르거나를 떠나, 토씨 ‘-의’를 잘못 썼구나 하고 깨달아야 한다. 《번역투의 유혹》이라는 책을 내며 오경순 님 스스로 번역투에 빠져 있으면 어떡하나.

 멀리 들여다볼 구석조차 없이 머리말부터 들여다보면, 6쪽에 “번역문의 정확한 뜻을 이해하는 데 방해받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그 요인을 제거하고” 같은 글월이 있다. 이 자리에 쓴 토씨 ‘-의’는 얼마나 알맞을까. “번역글을 올바로 헤아리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걸림돌이 무엇인지를 살펴 이를 솎아내고”쯤으로 고쳐서 적어야 알맞을 텐데.

 68쪽을 보면 ‘가급적’과 ‘되도록’을 나란히 쓰고 있다. 보기글을 옮기자면, “일본어투 ‘-적’이 붙은 말은 가급적 줄여 써야 하며 일한 번역에서도 꼭 필요한 경우 외에는 되도록 이해하기 쉬운”으로 나온다. ‘-적’을 줄여야 한다면서 냉큼 ‘가급적’을 쓰는 모습은 무엇인가. 게다가, 이 글월을 읽으면 ‘되도록’이라는 우리 말을 알맞게 쓰기도 한다. 스스로 앞뒤가 어긋난 채 글을 쓰는 오경순 님이라니. 그지없이 슬프고 가슴시리다. 이런 말잘못은 148쪽에도 나온다. “적절히 담아내지 못하고 그대로 직역하면”이라는 글월인데, ‘직역(直譯)’이란 “그대로 옮김”을 뜻한다. “그대로 직역”이란 엉터리 겹말이다.

 191쪽을 보면 “원문의 ‘정신spirit’과 ‘의미sense’를 살리려고 노력했으며, ‘자연스럽고 편안한 표현easy form of expression’으로”라 적는다. 난데없이 붙이는 영어는 얼마나 도움이 되는 꾸밈말일까 궁금하다. ‘정신’과 ‘의미’라 적으면 그만이지 않을까. 조금 더 생각한다면, ‘넋’과 ‘뜻’이라 할 수 있고, ‘마음’과 ‘뜻’이라 해도 좋다.

 책 하나로 모든 이야기를 다 쏟아낼 수는 없다. 책 하나로 우리네 말삶과 글삶을 어지럽히는 실타래를 슬기롭게 풀어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스스로 번역투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살갑고 아름다운 번역밭을 일구고자 한다면, 글쓴이 오경순 님은 조금 더 많이 땀을 흘려야 하지 않으랴 싶다. 말다운 말을 한 번 더 살피고, 글다운 글을 다시금 곱씹으면서, 숱한 번역쟁이와 글쟁이가 빠져 있는 글감옥이나 글수렁을 깨달아 주며 살포시 건져내도록 도와야지 싶다.

 지식이 많다고 말을 더 잘하지 않는다. 재주가 좋다고 글을 더 잘 쓰지 않는다. 참답고 착하며 고운 마음을 갖추어야 말을 알뜰살뜰 풀어낸다. 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를 사랑하며 믿는 매무새일 때에 비로소 말을 알차게 일군다. 지식인이라는 굴레를 스스로 털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라도 번역투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4343.9.20.달.처음 씀/4343.10.31.해.고쳐씀.ㅎㄲㅅㄱ)



― 번역투의 유혹 (오경순 글,이학사 펴냄,2010.7.31./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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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ai 2010-09-23 19:55   좋아요 0 | URL
이 책에 관해 이미 쓴 글이 있으니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단, '십여 년간'에서 '간'은 의존명사(표준국어대사전 10번)가 아니라 접미사(표준국어대사전 16번)입니다. 따라서 붙여 쓰는 게 맞습니다. 맞는 말을 틀리다고 하면 곤란하죠. 참고로 '가슴시리다'는 국립국어원에서 한 단어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뭐, 자잘한 띄어쓰기 문제이지만요. 말머리에 '받아들어 읽다'는 오타라고 치고 넘어가겠습니다.

숲노래 2010-09-24 03:38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그런데 '간(間)'을 국립국어원에서 뚱딴지처럼 '접사'로 삼고 있었군요. 1989년에 정부가 맞춤법을 갑자기 바꾸기 앞서까지 '간(間)'은 틀림없이 이름씨(명사)였습니다. 정부에서 맞춤법을 님 말씀과 같이 바꾸었어도 한글학회에서는 '간'을 '접사' 아닌 '이름씨'로 여깁니다. 이를 놓고 학회와 연구원 사이에서 아직 실마리를 마련하지 않은 줄 압니다. (그러고 보면, 아직 실마리가 마련되지 않았기에 출판사마다 '간'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조금씩 다르겠군요. 1989년까지 쓰던 맞춤법이 옳다고 여기는 출판사는 이름씨로 여기며 띌 테고, 1989년부터 바뀐 맞춤법대로 배운 편집자라면 으레 붙이겠네요.)

'가슴시리다' 같은 낱말뿐 아니라 '신나다' 같은 낱말 또한 국어연구원에서는 한 낱말로 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낱말을 국어사전에 안 실렸다는 까닭으로 한 낱말로 삼지 않을 까닭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국어사전에 안 실린 '책쉼터'라든지 '책잔치'라든지 '책읽기'라든지 얼마든지 붙여서 씁니다.

'나들목'이라는 낱말은 제가 처음 공식 자리에서 쓴 뒤로 교통방송에서 받아들여 주어서 이제는 한 낱말이 되어 국어사전에도 실렸습니다. 우리 여느 삶에서 두루 쓰는 말 가운데 국어사전 올림말로 삼아야 하거나, 또는 올림말이 되지 않더라도 넉넉히 즐겨쓰는 낱말은 하나하나 우리 스스로 붙여서 쓰면서 쓰임새를 넓혀야 한다고 느낍니다.

'즐겨쓰다' 같은 낱말도 국어사전에는 안 실려 있는데, 님께서 쓰는 인터넷창을 보시면 '즐겨찾기'라는 항목이 있겠지요? 사람들이 이처럼 쓸모와 찾을모를 마련하여 쓰는 낱말이 우리 말과 글을 북돋웁니다.

덧붙여, 저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문제는 다루고 싶지 않습니다. '말을 다루는 삶'과 '글을 살피는 넋'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런 테두리에서 이번 오경순 님 책은 더없이 슬프고 딱합니다. 그동안 오경순 님 번역책을 꽤 많이 읽어 온 사람으로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몹시 가슴아팠습니다.

faai 2010-09-24 17:12   좋아요 0 | URL
저자야 저는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다른 부분은 맞는 말씀이고 제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오늘날 출판사 중에 국립국어원이 아니라 한글학회를 따르는 곳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 식견이 짧은 탓일지도 모르나, 솔직히 그런 출판사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대다수 출판사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거기에 가독성 문제 등으로 출판사 고유 원칙을 덧붙이죠. 말씀하신 대로 '신나다' 같은 단어는 붙여 쓰는 곳도 많습니다. 논란이 있는 단어죠. '좀더' '싶어하다' 등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책쉼터' 같은 단어야 명사+명사로 볼 수 있기에 논외로 합니다).

그러니 접사 '간'이 '뚱딴지'라는 주장은 과하다 싶습니다. 저 또한 말은 언중과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고 봅니다. 근 20여 년 동안 훨씬 많은 사람이 '간'을 구분해서 썼다면, 그것을 따라야 하지 않겠는지요. 그렇게 바뀌게 된 배경 또한 많은 사람이 그렇게 썼기 때문이 아니겠는지요. 유독 한글학회만 '간'을 의존명사로 고집해야 할 까닭이 있는지요.

만약 한글학회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치죠. 그래도 논란이 되는 단어를 어느 한 쪽 주장만을 근거로 틀렸다고 단정한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자잘한 띄어쓰기'라든가 '뚱딴지'라고 표현할 사안은 아니죠.

글이 좀 길어졌습니다. 맞춤법 문제를 다루고 싶지 않다고 하셨는데 죄송합니다.

숲노래 2010-09-24 18:07   좋아요 0 | URL
'간'이 뚱딴지같이 바뀐 맞춤법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쓴 댓글에서는 그와 같이 느끼도록 되어 있군요(다시 읽어 보니). 왜 뚱딴지라는 낱말을 썼느냐 하면, 정부에서 1989년에 맞춤법을 바꿀 때에 1930년대부터 지켜 오던 한글학회 맞춤법을 한글학회 일꾼이나 다른 학자하고는 깊이 생각과 문제와 현실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갑작스레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한글학회 국어사전에서 '간'은 '의존명사'가 아닌 '명사'입니다. 요즈음 퍽 많은 책에서는 '간'을 붙이지만, 띄는 곳 또한 제법 많습니다. 다만, 앞으로는 숫자나 푼수는 줄어들겠지요. 책 만든 경력이 오랜 곳에서는 '국립국어원 맞춤법'을 많이 '존중'하지만 '안 따르기'도 합니다.

작은따옴표를 붙여서 말씀드리는 까닭을 잘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스무 해 동안 써 온 '관례'를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큰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1989년에 바꾼 맞춤법은 그동안 예순 해 가까이 써 오던 '맞춤법을 관례와 버릇과 문화를 어기고 쓰라고 강요한' 노태우 독재정권 맞춤법이거든요. 게다가 1989년에 정부가 단독으로 바꾸어 억지로 쓰도록 한 맞춤법이 2010년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자주 바뀌었는지 곰곰이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요즈음에도 해마다 몇 가지씩 갑작스레(그러니까 뚱딴지처럼) 바뀌는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꽤 많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기가 되는 표준국어대사전 풀이말과 보기글도 해마다 조금씩 바뀌고 있어요. 종이로 찍은 국어사전은 돈이 많이 들어 못 바꾸지만, 인터넷 국어사전은 틈틈이 바꿉니다. 왜 정부 관계자 스스로 '20년 동안 바꾸어 쓰는 맞춤법을 20년 앞서인 1989년에 바꾼 그대로 이어가지 않고 자꾸자꾸 바꾸고' 있을까요?

'간'을 붙여서 쓰기로 한 1989년부터 2010년까지 사람들 말버릇이 아닌 글버릇에서는 붙여서 쓰고 있다지만, 이러한 붙여쓰기는 2011년에 갑자기 띄어서 쓰도록 바뀔 수 있어요. 이런 맞춤법이 바로 오늘날 우리 나라 맞춤법이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어쩔 수 없이 우리 나라 현실에서는 '뚱딴지'라는 낱말을 쓸밖에 없습니다.

다른 많은 분들은 우리 말글 이야기를 놓고 댓글을 달 때에 참 '생각없고' '살피지 않는 엉터리 마음'으로 아무렇게나 헛말을 늘어놓습니다. faai 님께서는 곰곰이 살피고 마음을 기울여서 이야기를 해 주셔서, 저로서도 댓글 하나를 달면서 더 살피고 헤아리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모로 고맙습니다. 이렇게 댓글을 달아 주셨기 때문에, '간'이라는 낱말 하나를 둘러싸고 정부와 학회와 학자와 편집자들이 애먹어야 하는 안타까움과 '현실에서 벌어지는 슬픔'을 한결 깊이 돌아볼 수 있네요.

요사이 너무 바빠서 다른 국어사전을 제대로 들여다보며 말씀드리지 못하는데, 다음주 월요일이나 화요일쯤 틈을 내어 1940년대 국어사전부터 하나하나 살피며 '간'을 어떻게 다루는가를 찾아서 갈무리를 해야겠네요.

faai 2010-09-25 00:25   좋아요 0 | URL
시간 들여 이렇게 거듭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된장 님 말씀은 대부분 수긍합니다. 당장 실무에서는 국립국어원을 따를밖에 없지만, 실제 쓰임새와 동떨어진 표현들을 비롯해 답답한 부분이 많거든요. 어쩌다 보니 책 내용과는 계속 대화가 멀어졌습니다. 된장 님 덕분에 한글학회라든가 노태우 정권 같은 몰랐던 사실도 배우는 계기가 됐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앞으로 종종 들르겠습니다.

숲노래 2010-09-25 03:54   좋아요 0 | URL
엊저녁 곰곰이 생각해 보니, 1989년에 갑작스레 바뀌며 틈틈이 다시 고치는 정부 맞춤법에서, 지난날까지 띄어서 쓰던 '그동안-이동안-저동안'이 붙여서 쓰는 한 낱말이 되었습니다.

'간'이란 '동안'을 한자로 적은 낱말입니다. 그러니까 '동안'이 우리 말이요 '間'은 한자말입니다. 이때에 우리 말 '동안'은 토박이말이고, 한자말 '間'은 외국말이 됩니다. 우리 말과 한자말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찬찬히 헤아려 주시면 고맙겠어요. 제가 왜 '間'이라는 한자말을 외국말이라 가리키는지를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1989년까지 '간'이 '명사'였던 까닭은 우리 말 '동안'을 한자로 옮겨서 적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989년부터 '그동안'을 붙여서 쓰면서 '그간'이라는 낱말에서 '-間'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느냐는 문제가 생깁니다. 정부에서는 '-동안'이라는 접사를 새로 만들지 않았으며, '동안'을 명사 아닌 접사로 바꾸지 않았습니다. '間' 하나만 명사에서 접사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간'을 붙여서 쓰니 '몇 년간'이라는 글월에서도 붙여쓰기를 하며 접사로 다루어야 정부가 바꾼 맞춤법이 앞뒤가 맞게 되어 버렸구나 싶어요.

잘 아시겠지만, 초등학교 교과서 맞춤법에서는 '그 동안-이 동안-저 동안'처럼 띄어서 씁니다. 이는 1989년에 정부가 바꾼 맞춤법이 아닌 1930년대부터 한글학회에서 마련한 맞춤법 틀대로입니다. 그러니까 어린이책에서는 '동안'하고 똑같은 뜻인 한자말 '間'은 명사인 셈입니다. 어린이책에서도 '그간'은 붙일 수 없어요. '그 간'이라고 띄어서 적어야 올바릅니다. 왜냐하면 '그 동안'을 띄거든요. '몇 해 동안'이나 '몇 년 동안'이지 '몇 해동안'이나 '몇 년동안'이 아니니까요.

정부 맞춤법을 1989년에 바꾸며 '몇 년간'처럼 적도록 했다면, 아주 마땅하게도 '몇 년동안'처럼 써야 앞뒤가 맞으며 올바릅니다. '동안'을 명사 아닌 접사로 바꾸어야 해요. 그러나 정부에서는 '동안'을 섣불리 함부로 접사로 바꾸지 못합니다. 아니, 바꿀 수 없을 테지요. 그런데 '동안'은 명사로 그대로 둘 뿐 아니라 건드리지 못하면서 '그동안-이동안-저동안'을 "사람들이 쓰기 좋도록 붙인다"는 편의성을 내세우는데, 편의성을 내세우면서 '-동안'이라는 접사 문제는 슬쩍 넘어갑니다.

이렇기 때문에 초등학교 교과서 맞춤법이 1989년부터 '뚱딴지처럼' 새삼스레 불거지고 맙니다. 정부 스스로 교과서(초등과 중등 교과서 맞춤법이 또 다릅니다)와 어른책 맞춤법이 다르고 마는 모순이 되어요.

고작 '間'이라는 낱말 하나라 할 테지만, 이런 속살을 하나하나 헤아리며 살피지 못한다면, 이번에 오경순 님이 내놓은 책은 한낱 겉훑기에 겉치레에다가 참말과 참글을 건드리지 못한 슬픈 책이 될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생각을 깊이 한다면, 제가 이렇게 구태여 길게 글을 늘여뜨리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으리라 보았습니다. 그러나 짧게 쓰면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으니 faai 님조차 제 글이 무슨 마음으로 쓴 글인가를 읽을 수 없지 않았겠느냐 싶기도 합니다.

다음주에 1940년대 국어사전부터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생각을 다시 갈무리한다면 '間'이라는 외국말인 한자말 하나를 둘러싸고 우리 삶을 담아내는 말과 글이 얼마나 일그러져 있는가를 한결 또렷하게 돌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새삼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