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 - 분단된 나라의 슬픔, 비무장지대 이야기 평화그림책 2
이억배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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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훈련 군대 나라에 평화란 없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9] 이억배,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


 우리 나라는 식량자급율과 쌀자급율이 무척 낮습니다. 한 해에 한 번쯤 통계가 나오기는 하지만 언론에는 거의 실리지 않는 자급율입니다. 언론에는 언제나 쌀이 남아돌아 걱정이라는 이야기만 나옵니다. 쌀값이 한 푼이라도 오르면 물건값이 치솟는다며 근심이라는 이야기가 덧붙습니다.

 도시사람은 벼논이 어떻게 생기거나 이루어져 있는지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아니, 날마다 밥을 먹으면서도 논이든 밭이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시사람들한테는 생각할 일이 많고 마음쓸 곳이 수두룩합니다. 농사짓는 사람들 삶이라든지 땅과 농약과 자연과 유전자 비틀기 이야기에는 눈길조차 둘 겨를이 없습니다.

 때때로 ‘벼농사나 밭농사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이 나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날마다 먹는 밥이 얼마나 고마운가’를 느끼도록 도우려고 펴내는 책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네 어른들이 읽을 ‘벼농사나 밭농사 이야기’ 책은 거의 없습니다. 아니, 아예 없다 하여도 틀리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는 쌀 이야기 그림책을 사 주어 읽히면서, 정작 어른이 먼저 쌀 이야기를 살피는 일은 없습니다.

 큰 비바람이 지나갔습니다. 도시에서도 건물이 흔들린다든지 간판이 날아갔다든지 유리창이 깨졌다든지 전봇대가 넘어졌다든지 하면서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시골에서는 논이 물에 흠뻑 잠긴다거나 벼가 모조리 넘어진다거나 논둑이 무너진다거나 하면서 슬픈 일이 생겼습니다.

 쓰러진 건물은 다시 세우면 되고, 깨진 유리창은 새로 갈면 됩니다. 그러나 무너진 논둑을 다시 세우거나 넘치는 논물을 흘려보내거나 쓰러진 벼를 일으켜세운다 하여도 벼농사는 제대로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집 텃밭에 심은 배추는 거의 녹아 버렸고, 무 또한 몇 뿌리 건사하기 힘듭니다. 크게 농사짓는 분들은 한숨이 아주 클 테지요. 때를 놓친다거나 날씨가 흔들릴 때마다 두 손을 들밖에 없는 농사짓기입니다.


..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 들판에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납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갈 수가 없습니다.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으니까요 ..


 사람들 누구나 몸소 겪어야 비로소 알아차립니다. 몸소 겪었으면서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도 많으나, 몸소 겪지 않고서는 제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다거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거나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많이 보았다 할지라도 알아차릴 수 없을 뿐더러, 안다 할 수조차 없습니다. 전쟁이든 평화이든 우리가 몸소 겪지 않고서야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거나 무시무시한 줄을 깨닫기 힘듭니다. 평화 또한 우리가 몸소 누리지 못하고서야 얼마나 사랑스러우며 아름다운 줄 느끼기 어렵습니다.

 남녘과 북녘 사이에 비무장지대가 있습니다. 말이야 비무장지대이지, 이곳 비무장지대처럼 ‘무장이 잘 된 곳’은 없습니다. 이름이야 비무장지대이지, 정작 이 땅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무기가 넘치디넘치는 곳입니다. 허울이야 비무장지대이지, 바로 이 터에는 남북녘 모두 젊디젊은 사내들한테 군인옷을 입히고 총칼을 들리워 수십만을 몰아넣습니다.

 비무장지대에서 군대살이를 해 본 사람이라 해서 비무장지대를 잘 알지는 않습니다. 이곳에서 군대살이를 했달지라도 간부로 있던 이들, 더욱이 맨 밑바닥 중대나 독립소초가 아닌 대대나 연대 같은 곳, 또는 사단이나 군단 즈음에서 군대살이를 한 사람으로서는 비무장지대 속살을 알 노릇이 없습니다. 주특기 100(소총수, 1111)부터 106(무반동총, 1114)까지 받은 땅개(육군 보병)들이 비무장지대라는 곳에서 하루를 어찌 보내는지를 몸소 겪지 않고서야 비무장지대가 남북녘에서 어떠한 터전인가를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 비무장지대에 여름이 오면 군인들은 줄지어 행군을 하고 고단한 훈련을 받습니다. 할아버지는 오늘도 전망대에 올라가 북녘 땅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


 가끔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비무장지대 모습이 나옵니다. 아는 이는 알겠으나,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비치는 비무장지대는 ‘속모습을 감춘 껍데기’입니다. 취재를 하러 비무장지대에 가 본다든지, 학술조사나 연구 때문에 비무장지대에 들어간다든지 할 때에도 겉을 살짝 훑을 뿐입니다. 특전사나 수색대라는 군인은 비무장지대 곳곳을 누비지 않습니다. 늘 다니는 길로만 순찰을 돕니다. 그야말로 땅개인 맨 밑바닥 군바리들만 비무장지대 곳곳을 누빕니다. 왜냐하면 길을 닦든 짐을 나르든 훈련을 하든 지뢰를 묻거나 캐든, 지뢰밭 둘레에 쇠가시그물을 치든, 방공호를 새로 파거나 시멘트로 집을 짓든 …… 모든 ‘사람이 움직여서 해야 하는 일’은 땅개들이 두 다리로 비무장지대를 밟으면서 합니다.

 제가 비무장지대 깊숙한 곳에서 군대살이를 하던 1995∼1997년에도 고엽제를 철책 둘레에 뿌리며 ‘사계청소(또는 시계청소)’를 했습니다. 해마다 고엽제를 뿌리고 거듭 뿌려도 풀이 어찌나 잘 나는지, 경계근무를 서는 초소에서 철책 너머가 가리기 때문에 고엽제를 뿌리고 풀과 나무를 베고 하느라 한 세월을 보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계청소를 한다며 고엽제를 뿌리고 풀과 나무를 베어낸 탓에 봄부터 가을까지 큰비가 거센 바람과 함께 몰아치면 철책 둘레 흙이 무너집니다. 여느 때에 워낙 나무이고 풀이고 베어 없애니 비만 오면 흙벼락이 치지요. 그러면 땅개 군바리들은 다른 흙땅에서 흙 마대에 퍼 담고 날라서 무너진 자리를 메꾸는 일(사역)을 합니다. 비만 왔다 하면 물골작업을 한다며 삽을 들고 나섭니다. 계급장 별을 단 사람들이 전방 순시를 온다 하면 한두 달에 걸쳐 ‘도로 평탄 작업(높은 간부가 탄 짚차가 흙길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반반하게 길닦기)’을 합니다. ‘도로 평탄 작업’을 할 때에는 사단에서 ‘덤프 지원’이 나오는데, 사단 운전수가 덤프를 몰며 울퉁불퉁 길바닥에 찔끔찔끔 흙을 뿌리면, 우리들 땅개 군바리는 삽 한 자루씩 들고 있다가 신나게 바닥을 다집니다. 이러기를 한두 달 하고 나서야 별을 하나나 둘쯤 단 사단 간부나 군단 간부가 짚차를 타고 비무장지대 순시를 나옵니다. 뭐, 더 높은 분들은 아예 헬기를 타고 오니까 차라리 낫지요. 비무장지대 맨 안쪽 우리 중대 옆 가칠봉 꼭대기에는 헤엄터까지 있어(이 헤엄터는 바로 우리들 땅개가 연대 주둔지부터 모래와 자갈과 물과 시멘트를 등짐으로 이고 지고 날라서 만들었습니다), 별 단 높은 간부들은 여름마다 이곳으로 헬기 타고 나들이를 왔으며, 별 안 단 높은 간부들은 짚차를 타고 마실을 왔습니다.

 사단이나 군단 간부가 들이닥치기 앞서 마지막 주에는 밤을 새우며 길닦기를 합니다. 깊은 밤에 별을 보며 삽질을 하고 있자니 고참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농담 한 마디를 합니다. “야, 북한 애들은 (삽을) 천 번 뜨고 허리 한 번 편다는데, 우리는 만 번 뜨고 허리 한 번 펴자.”


.. 비무장지대에 가을이 오면 군인들은 탱크로 출동을 하고 전투기로 폭격하는 훈련을 합니다. 할아버지는 또 다시 전망대에 올라가 텅 빈 북녘 하늘을 바라봅니다 ..


 군대 얘기만큼 재미없는 얘기가 없고, 군대에서 공차기를 한 얘기만큼 더 재미없는 얘기가 없다 했습니다. 군대라는 곳이 몹시 끔찍하며 지겨운 한편 두렵고 슬프기 때문입니다. 군대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재주를 배울 뿐 아니라 가르치고 물려주는 곳입니다. 게다가 우리 나라 군대는 두서너 해씩 의무복무를 하도록 하면서 가장 젊고 푸르며 싱그러운 나이에 ‘죽이는 재주’와 ‘밟는 솜씨’와 ‘때리고 맞는 버릇’을 길들여 놓습니다. 군대를 마친 다음에는 언제라도 예비군이나 민방위로 불러들여 ‘사람 죽이고 밟다가는 주먹다짐을 하는 삶’을 잊었는가 잊지 않았는가 살핍니다.

 군대라는 곳에 끌려가던 날부터 군대라는 곳에서 풀려난 오늘까지 곰곰이 돌아보노라면, 이 나라 한국땅에서 따스한 봄볕 같은 평화가 자리한 적은 한 번도 없구나 싶습니다. 진보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예전 미국 부시 대통령 같은 사람을 놓고 ‘전쟁 미치광이’라 손가락질했습니다만, 미국 부시 대통령 같은 사람은 전쟁 미치광이가 아닙니다. 전쟁 미치광이는 부시 대통령 뒤에 숨어, 우리한테 안 보이는 자리에서 웃음짓고, 부시 대통령은 한낱 허수아비입니다. 더군다나 한국땅에서 ‘서울 불바다’를 외치는 북녘 정치꾼을 비롯해 ‘때려잡자 빨갱이’를 외치는 남녘 정치꾼과 어르신들이야말로 전쟁 미치광이입니다.

 그런데 이들만 전쟁 미치광이이지 않습니다. 평화와 함께 이 땅에 뿌리내릴 평등을 멀리하는 모두가 전쟁 미치광이입니다. 어머니 성과 아버지 성을 함께 쓴다고 남녀평등이지 않습니다. 남녀평등이란 삶에서 이루어야 합니다. 집안살림과 집밖살림을 남녀가 알맞고 아름답게 나누어 즐기는 데에 남녀평등이 있습니다. 입시지옥에 푸름이를 내모는 어른들 모두 전쟁 미치광이이지만, 입시지옥에 푸줏간 돼지처럼 끌려가면서 스스로 뛰쳐나오지 않는 푸름이 또한 전쟁 미치광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전쟁 미치광이 굴레에서 놀아나는 셈입니다. 우리는 전쟁 미치광이 놀음놀이에서 허덕일 바보가 아니라, 평화와 평등을 누리며 나눌 벗입니다. 사랑과 믿음을 얼싸안으며 웃음과 울음으로 우리 삶을 곱게 여밀 동무입니다.

 그림책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을 몇 번 들여다보다가 덮습니다. 한국전쟁을 기리면서 나온 이 그림책은 이 땅에 참다운 평화와 사랑이 깃들기를 꿈꾸는 넋을 고이 스며 놓습니다. 이 땅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평화와 사랑을 아끼기를 바라는 얼을 살포시 담아 놓습니다.

 뜻은 좋습니다. 값은 훌륭합니다. 다만, 비무장지대가 어떤 곳인지 옳게 돌아보지 못한 그림이 곳곳에 보입니다. 비무장지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올바로 다루지 못합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비무장지대 모습이 아닙니다. ‘민간인’으로서는 볼 수 없는 곳이 많으며 ‘민간인 어린이’로서는 알 턱조차 없으니 제대로 비무장지대를 그린다면 외려 비무장지대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그림책을 못 알아볼 수 있어요.

 그러다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비무장지대에도 봄이 찾아들지만 비무장지대에서 수달과 고라니가 홀가분하게 뛰어놀 수 없습니다. 비무장지대에 들어간 군인은 ‘훈련을 받지 않’습니다. 비무장지대 군인은 ‘행군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후방 주둔지에서 비무장지대로 근무지를 바꿀 때(여섯 달에 한 번씩 근무지를 바꿉니다)에 비로소 군장을 짊어지고 비무장지대로 들어가고 나오고 합니다. 비무장지대에 들어간 군인은 여섯 달 내내 3교대 경계근무만 서고, 사계청소와 지뢰작업과 물골작업과 도로 평탄 작업과 곰취 작업(연대와 사단과 군단 간부들한테 산나물과 곰취 따위를 뜯어다 바쳐야 하는 작업)과 갖가지 끝없는 작업과 또 작업을 합니다. 비무장지대에서 내려온 군인이 ‘지오피 휴가’를 받은 다음 비로소 갖은 훈련과 행군에 시달립니다.

 연어가 비무장지대까지 들어오기는 합니다. 저 또한 길이 1미터 넘는 연어를 두타연에서 맨눈으로 보았으니까요. 그런데 이 연어들이 제대로 알을 낳을 만한 터전이 못 되는 비무장지대입니다. 산양이 뛰어다닐 만한 넉넉한 바위나 땅이 없는 비무장지대입니다. 탱크가 출동하고 전투기로 폭격하는 훈련을 받는 곳은 비무장지대가 아닌 ‘비무장지대 뒤쪽 군부대 많은 여느 마을’입니다. 비무장지대에서 탱크가 움직인다면, 북녘에서 곧바로 미사일을 쏘며 전쟁이 터집니다. 비무장지대 북쪽 땅에서 북녘 군인이 탱크를 몰고 움직일 때에도 남녘 군대에서는 미사일을 쏘며 전쟁이 터지도록 작계(작전훈련계획)가 짜여졌어요.

 비무장지대에서는 군인조차 ‘늘 다니는 길’ 아닌 데로는 못 다니도록 합니다. 왜냐하면 어디에 지뢰가 묻혔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비가 오면 경계근무를 서려고 오갈 때에도 발바닥 디디는 땅을 천천히 살피며 나무막대기로 쑤시며 다녀야 합니다. ‘사라졌거나 사라질까 걱정스러운’ 짐승들이 비무장지대에서 살기도 하겠지만, 아름답거나 홀가분하게 노닐 수 없습니다. 멧돼지와 독수리와 까마귀는 군인들이 밥쓰레기를 버리는 짬통을 뒤지고, 때로는 멧돼지가 짬통에 빠져서 죽으며, 큰비가 퍼부은 뒤에 노루나 고라니가 지뢰를 밟고 죽기도 합니다(군인도 많이 죽습니다).

 생각해 보면, ‘현실과 다른 아름다운 꿈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곳 비무장지대에 ‘아직 없는 봄이 오기를 바라’면서 그림책을 엮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요, 이렇게 생각하며 이 그림책을 읽어야 할 테지요. 참말 아무런 평화도 사랑도 꿈도 즐거움도 없는 군대에, 비무장지대에, 이 나라에 거짓스러운 이야기들뿐이지만 이러한 봄이 오기를 비손하는 마음을 담은 그림책으로 삼아야 할 테지요. 다만, ‘사실 관계’는 옳고 바르게 적어야 하고, 제아무리 꿈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더라도 ‘없는 이야기를 있는 이야기인 듯’ 그리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비무장지대라 하는 현실세계가 어떤 현실인가’를 보여주면서 평화를 이야기하려는 그림책이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이기 때문입니다.

 틀림없이 좋은 뜻으로 엮은 그림책이요, 어김없이 고운 넋을 살리자는 그림책인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입니다. 그러나 비무장지대는 사람들이 잘못 알듯 ‘그리 아름다운 자연 누리’가 아닙니다. 늘 다니는 길에도 비만 왔다 하면 지뢰가 흘러내려왔을까 걱정되는 곳이요, 끔찍한 살인훈련과 폭력이 판치는 ‘죽음 누리’가 비무장지대입니다. 달콤하며 빛깔 예쁜 그림결로 비무장지대를 그려 놓는다고 해서 평화를 앞당길 수 없다고 느낍니다. 이 땅 이 누리가 얼마나 무섭고 슬픈 전쟁 누리요 죽음 누리인가를 똑똑히 바라보며 꾸밈없이 드러내어 밝히고 나누면서, 비로소 평화와 평등과 사랑과 믿음을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가를 깨닫는 길을 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비무장지대에는 봄이 온 적이 없고, 봄이 올 수조차 없는 대한민국입니다. (4343.9.17.쇠.ㅎㄲㅅㄱ)


―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 (이억배 글·그림,사계절,2010.6.25./10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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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 결혼 시키기


 몇 해 앞서인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나도 그 책을 훑기는 했으나 사지는 않았다. 《서재 결혼 시키기》라는 책이 나온 적 있고, 이 책에 붙은 이름 때문인지 이 책에 담긴 줄거리 때문인지 “서재 결혼 시키기”가 바람처럼 분 적이 있다.

 열 며칠 앞서 드디어 인천 책짐을 모두 충주 산골마을로 옮겼다. 9월 4일에 옮긴 책짐은 모두 5톤 짐차로 석 대이고, 앞서 옮겨 놓은 책짐까지 더하면 5톤 짐차로만 넉 대치를 옮긴 셈이다.

 서재 짝짓기를 한다는 이들은 으레 ‘책 짝짓기’를 생각하리라 본다. 아마 ‘책꽂이 짝짓기’는 생각하지 못할 테며, ‘책 나르기’나 ‘책꽂이 나르기’라든지, 책과 책꽂이 새롭게 자리잡기는 꿈도 꾸지 않을 테지.

 밤 한 시에 일어나 세 시간 남짓 책과 책꽂이를 나르며 먼지를 닦고 하다 보니 무릎이 시큰거리기로 그치지 않는다. 다리가 아프지만 방바닥에 풀썩 하고 주저앉을 수 없다. 서울 용산에 자리한 헌책방 〈뿌리서점〉 아저씨는 아침에 책방 일을 한다며 나와서 늦은 밤에 댁으로 돌아갈 때까지 자리에 앉는 법이 없는 채 마흔 해 가까이 살아오셨다. 한 번 자리에 앉으면 다시 일어나기 어렵다면서 내내 선 채로 일을 하시는데, 아저씨 말이 즈믄 번 맞다. (4343.9.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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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9-18 10:52   좋아요 0 | URL
5톤차로 4대분의 서적이라니 장말 ㅎㄷㄷㄷ하네요.아마 장서가 수천권을 되실듯 하네요^^

파란놀 2010-09-25 10:19   좋아요 0 | URL
5톤 짐차 한 대에는 책을 1만~1만2천 권쯤 싣는답니다...

카스피 2010-09-28 22:33   좋아요 0 | URL
허걱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사 가는 날 크레용 그림책 30
스즈키 마모루 그림, 야마모토 쇼조 글 / 크레용하우스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살림집 옮기는 고단함과 보람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8] 야마모토 쇼조(글)+스즈키 마모루(그림), 《이사 가는 날》



 하루하루 더 살아갈수록 살림집을 옮길 때마다 살림살이가 늘어납니다. 예나 이제나 살림돈을 넉넉히 쓰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가장 마땅하다 싶은 집에서 살아 보지 못합니다. 요모조모 따지어 새 살림집으로 옮기며 살았습니다만, 없는 돈에서 요모조모 따지어 얻는 살림집이란 있는 돈에서 그리 안 따지고도 마련하는 살림집하고 사뭇 다릅니다.

 처음 몇 차례 살림집을 옮기던 때에는 짐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안쪽 골목에서 살았습니다. 이때에는 집에서 큰길로 손수 짐을 옮겨야 했습니다. 나중에는 사다리차를 뻗어도 3층 창문에 잘 닿지 않아 무척 애먹는 집에서 살았고, 돈 한 푼 없이 이 집에서 나오던 때에는 3층부터 길가까지 계단을 타고 모든 짐을 혼자서 낑낑대며 내렸습니다.

 도시에 있던 살림살이를 산골마을로 옮긴 때는 2006년입니다. 그런데 이듬해에 산골마을 살림살이를 모조리 도시로 되옮겨야 했습니다. ‘이제 더는 집 옮기기는 안 해도 되겠지’ 하고 생각하던 이무렵, 보름 남짓 밤을 새우며 책짐을 끙끙거리며 묶었습니다. 때도 한겨울이라 손이 꽁꽁 얼어붙으며 책짐을 꾸렸습니다.

 도시로 옮긴 살림살이는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다른 살림집으로 옮겨야 하면서 또다시 옮깁니다. 그리고 도시에 있던 책짐 또한 네 해가 못 되어 다시 도시를 떠나며 산골마을로 옮깁니다. 도시에서 지내며 떨어져 있던 살림살이와 책이 한 해 만에 만나는데, 5톤 짐차로 넉 대치 책을 혼자 싸고 꾸려야 하다 보니 이만저만 몸이 늘어지지 않습니다. 책을 싸서 ‘사다리차가 받을’ 창문 쪽으로 나르는 동안에도 무릎은 몹시 시큰거렸습니다. 도시에서 책을 싸다가 시골 살림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걷기 힘들 만큼 무릎이 아픕니다. 시골집에서 살붙이하고 며칠 함께 지내다가 다시금 도시로 혼자 나와 책짐을 꾸리고, 마침내 짐차와 일꾼을 불러 산골마을로 들어서던 날에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할 일이 많으니까요. 새 살림집으로 옮기는 느낌이란 설렘과 두근거림이라 하지만, 막상 온갖 일을 다 치르는 사람한테는 설렘과 두근거림보다 고단함과 바쁨과 어지러움투성이입니다.

 살림짐이나 책짐 나르기를 거드는 일꾼들은 사다리차가 없으면 이만 한 짐을 나를 수 없다고 혀를 내두릅니다. 요즈음은 어찌할 수 없을 테지요. 책 몇 만 권을 계단으로 헉헉거리며 나르다가는 일꾼들 모두 무릎이 나갈 테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살림살이를 옮길 때에 사다리차를 쓴 지는 고작 열 해 남짓입니다. 어쩌면 열 해가 채 안 되었다 할 만합니다. 돈이 없는 살림살이로는 사다리차 부르기마저 만만하지 않으니까요. 저는 막다른 골목 안쪽 살림집을 자주 얻다 보니 사다리차를 쓰고파도 쓸 수 없어 몇 시간에 걸쳐 책짐이며 살림짐이며 두 다리가 덜덜 떨리도록 들고 날랐습니다.

 일본사람이 엮은 그림책 《이사 가는 날》을 펼칩니다. 일본에서는 1988년에 처음 나왔고 한국에서는 2001년에 옮겨진 《이사 가는 날》은 ‘사다리차 없는’ 지난날 살림집 옮기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도심지 작은 집에서 오글오글 살던 식구들이 ‘도심지에서 살짝 벗어난’ 자리에 있는 ‘조금 더 넓은 살림집’을 얻어 옮기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책겉에는 엄마랑 아빠랑 함께 짐을 나르는 그림으로 나오지만, 정작 속을 들여다보면 ‘살림집 옮기기’를 알아보며 하나하나 살피는 사람은 오로지 어머니입니다. 아버지는 회사로 일을 나갈 뿐, 집살림을 어찌 건사하거나 갈무리하여 옮겨야 할는지를 모릅니다. 그저 당신 자가용에 식구들을 태우고 새 집으로 먼저 날아갈 뿐입니다. 함께 하는 집안일이 아닌 여자만 하는 집안일이요, 살림집을 옮기는 일 또한 온통 여자한테 맡기고 맙니다(그렇다고 이 그림책에서 아빠가 아무 일을 안 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사란 ‘짐 나르기’만이 아닌데, 짐 나르기는 함께 하지만, 다른 대목에서 ‘이사 준비’에 제대로 마음쓰지 못한다는 소리입니다).


.. 엄마는 이사 준비를 하느라 너무 바빠요 ..  (6쪽)


 거짓말이나 농담이 아닌 참말로, 이 나라 남자(또는 아버지)들은 웬만해서는 ‘살림집 옮기기를 할 때에 무엇을 어떡해야 하는가’를 잘 모르기 일쑤입니다. 그렇다고 오늘날 여자(또는 어머니)들은 더 잘 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이제는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집살림에는 젬병으로 바뀌는 우리 터전이거든요.


..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씽씽∼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 ..  (28쪽)


 1988년 일본 여느 살림집을 옮길 때에 일꾼들이 밧줄을 써서 큰짐을 내리는 모습을 그림책에 아주 잘 담았습니다. 제 어릴 적 일을 떠올려 보아도, 지난날 일꾼들은 5층짜리 아파트에서건 10층짜리 아파트에서건 밧줄을 써서 피아노며 옷장이며 내리고 올렸습니다. 집을 옮긴다 할 때에는 일꾼이며 식구이며 가리지 않고 함께 짐을 나르고, 둘레에 아는 이들이 작은 짐 하나라도 거들어 주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이웃 일본이기 때문에 일본사람이 집을 옮길 때에는 ‘이웃집이나 동무나 아는 사람이 일을 거들러 오지 않’고 이삿짐 나르는 일꾼들만 일을 한다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1988년이건 2008년이건 2028년이건 그리 달라지지 않으리라 봅니다. 또한 우리 나라에서도 어느새 ‘살림집 옮길 때에 서로서로 도와주던 삶과 버릇’이 차츰 사라지며 온통 이삿짐 나르는 일꾼한테만 맡기는 쪽으로 바뀐다고 느낍니다. 언제부터더라, ‘포장이사’라고 해서 전화 한 통과 계좌이체로 집 옮기기가 금세 끝나잖아요. 아침에 전화 걸어 열쇠 맡긴 다음 일터에 가서 하루를 보낸 뒤 새 집으로 돌아와 보면 뚝딱 하고 다 옮겨 놓을 뿐 아니라 자리까지 잡혀 있다고 하는데요. 더구나 서울 안쪽이나 바깥쪽 어디어디에서는 집값이 껑충껑충 뛰니까, 집값 따라 살림집 옮기기를 해도 ‘포장이사 값이야 푼돈일 뿐’이기 일쑤라 하는걸요.

 그림책 《이사 가는 날》은 글쓴이나 그린이나 몇날 며칠 낑낑대며 살림짐 꾸리고, 이삿날 맞추어 헉헉거리며 살림짐 옮기다가는, 새 집으로 옮기어 기쁘게 땀흘리며 짐을 끌러 본 삶이 바탕이 되어 태어납니다. 그림책 《이사 가는 날》을 즐기자면, 낑낑대며 살림짐 꾸리고 헉헉거리며 살림집 옮기다가는 땀흘리며 짐을 끌러 본 어른과 아이 삶을 보내야 합니다. 돈있는 집 아이들로서는 재미나게 넘기기 어려운 그림책이요, 돈없는 집 아이들로서는 굳이 장만하여 읽지 않고도 훤히 알 만한 그림책입니다. 돈있는 집 어른과 아이한테는 《이사 가는 날》 같은 그림책을 펼친다 한들 살갗으로 파고들어 뭉클해 하기 힘듭니다. 돈없는 집 어른과 아이라면 《이사 가는 날》 같은 그림책이 없이도 얼마든지 ‘살림집 옮기던 이야기’를 밤새 나눌 수 있어요.


.. 나는 우리 집이 정말 좋아요! ..  (32쪽)


 따지고 보면 살림돈이 얼마 없어 이것저것 새로 갖추거나 장만할 수 없습니다. 없는 살림이 많고 모자란 살림이 가득합니다. 그렇지만 없거나 모자라기 때문에 몸을 훨씬 많이 쓰거나 자주 써야 합니다. 몸으로 움직이며 살아가는 하루하루입니다.

 늘 내 몸을 나 스스로 쓰는 하루를 보내노라면 저녁 무렵에 어느덧 기운이 다 빠져 지칩니다. 잠자리에 들면 곯아떨어집니다. 지난밤에는 ‘잠들 무렵에는 기저귀를 안 차겠다고 하는’ 아이를 다독이며 재워 ‘아이가 깊이 잠든 다음 기저귀를 채워야’ 하는데 미처 기저귀를 못 채우고 깜빡 잠들었습니다. 어쩌면 아이보다 먼저 잠들었다 할 테고, 아이와 똑같이 잠들었다 할 만합니다. 이제 오늘은 아침부터 오줌 이불 빨래로 열어야 합니다. 참으로 쉴 겨를이 없고 다리 뻗을 틈이 없습니다. 마음을 놓을 수 없고 느긋하게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오늘 어제 그제 차근차근 돌아보면서 노상 새로운 이야기를 누리고 느끼며 가슴으로 받아안습니다. (4343.9.16.나무.ㅎㄲㅅㄱ)


― 이사 가는 날 (야마모토 쇼조 글,스즈키 마모루 그림,크레용하우스,2001.9.17./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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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새로 나와서 이주에 책방에 들어간 내 여덟째 책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에 적은 머리말. 머리말이라지만 좀 깁니다. 이 글을 쓸 때에는 머리말로 썼다기보다는 청소년책을 놓고 청소년을 보내는 고운 넋한테 편지를 쓰는 마음이었습니다. 

 


 여는 글 : 푸른책 푸른삶 푸른날


 1.

 우리 말에는 ‘아이’와 ‘어른’이 있고, ‘젊은이’와 ‘늙은이’가 있습니다. 짝을 짓는 우리 말이기 때문에 이밖에 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방정환 님은 따로 ‘어린이’라는 말을 지었습니다. 우리한테는 ‘아이’라는 말이 있으나, 어린 나날을 보내는 목숨들을 좀더 아끼고 사랑하고픈 마음을 담아 새말 하나를 지었습니다.

 저는 ‘푸름이’라는 말을 곧잘 쓰고 있습니다. 이 낱말은 저뿐 아니라 둘레에서도 익히 쓰고 있으나 국어사전에는 안 올라 있습니다. 저로서는 딱히 누군가 이 낱말을 썼기 때문에 따라서 쓰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분들 또한 누군가 이 낱말을 쓰고 있어서 따라서 쓰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청소년’이라는 한자말 풀이가 아니더라도, 아이였던 나날을 거쳐 어른으로 자라나는 넋들이 보내는 나날이란 바로 ‘푸른’ 나날이라고 느끼니 저절로 쓰는 ‘푸름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린이들이 즐겨읽도록 마음을 기울이는 책을 일컬어 ‘어린이책’이라 합니다. 지난날에는 ‘아동도서’라 했습니다. 푸른 넋들, 곧 푸름이들이 즐겨읽도록 마음을 바치는 책을 놓고 ‘청소년책’이라 합니다. 그러나 저는 ‘푸름이책’이라 말하고, 한 글자 줄여 ‘푸른책’이라고 곧잘 이야기합니다.

 푸름이란 이름 그대로 ‘푸른 사람’을 가리킵니다. ‘푸른’ 사람이란 ‘풀과 같은’ 사람입니다. 풀은 아직 꽃이 되지 못한 목숨이요 나무로 자라는 목숨 또한 아닙니다. 우람한 나무 한 그루로 자라자면 어떠한 나무이든 아주 작은 씨앗 하나가 땅에 뿌리내려야 하고, 이 씨앗이 움을 트고 새 잎을 틔워야 합니다. 어떠한 나무라 할지라도 맨 처음에는 씨앗 하나요, 잎사귀 하나이며, 풀포기 하나인 나날을 거칩니다.

 이리하여, 푸름이란 ‘풋내기’하고 닮았습니다. ‘풋능금’이나 ‘풋사랑’처럼 아직 여물지 못한 모습을 담습니다. 그런데, 우리들 푸름이들만 ‘아직 여물지 못한’ 모습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숱한 ‘안 푸름이’인 어른들 가운데 제대로 여물지 못한 사람이 더없이 많습니다.

 저는 딸아이 하나를 옆지기와 함께 돌보며 살아가는 아저씨 삶을 보내고 있습니다. 푸름이하고는 한참 먼, 머잖아 우리 딸아이 또한 푸름이가 될 아저씨 나날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어린이책을 좋아하고 푸름이책을 즐깁니다. 어른이라 해서 어른책만 보지 않습니다. 저는 사진책 그림책 만화책 글책 노래책 모두 기쁘게 맞아들입니다. 제 삶을 일깨우고 제 넋을 북돋우며 제 길을 열어젖히는 책이라면 다 고맙다고 느낍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 책도 좋고 나라밖 사람들 책도 좋습니다. 옛사람 책도 좋으며 오늘날 사람 책도 좋습니다. 헌책방마실을 하며 찾아드는 책 하나가 좋고, 새책방마실을 하며 골라드는 책 하나가 좋습니다. 책다운 책이면 언제나 기쁘고 들뜹니다.

 어린 나날부터 제가 품은 꿈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어른이 되겠다”입니다. 국민학교 4학년 적 실과 시간에 ‘내 꿈 발표하기’를 하는 자리에서 저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하고 제 꿈을 밝혔습니다. 동무와 교사는 킬킬 깔깔 끅끅 푸하하 하며 웃었습니다. 그렇지만 제 꿈은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이 한 가지뿐입니다. 나이만 어른인 사람이 아닌, 밥그릇 비운 숫자만 어른이 아닌, 몸뚱이와 살갗만 어른이 아닌, 참다이 어른인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읽는 책들은 저 스스로 어른이 되어 가도록 길동무가 되고 어깨동무가 되는 책들이라고 여깁니다. 어린이책이라 해서 어린이만 읽는 책이 아니라, 어린이부터 어른 누구나 읽는 책입니다. 푸름이책이라면 마땅히 푸름이부터 어른 모두 읽는 책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푸름이들은 ‘푸름이책’만 읽을 노릇이 아니라 ‘어린이책’을 함께 읽으면서 푸름이 스스로 맑고 고우며 튼튼한 어른이 되도록 이끌고 돕는 좋은 책을 찾아서 만나면 됩니다. 추천도서나 권장도서가 아닌 푸름이로 살아가는 나 스스로한테 가장 착하고 참되며 고운 책을 찾아서 만나야 합니다. 베스트셀러도 아니지만 스테디설레 또한 아닌 나한테 가장 기쁘며 고맙고 반가울 책을 살펴서 쥐어들어야 합니다.

 누가 읽으라고 건네는 책을 읽는다고 나쁠 일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나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면서 찾아내어 읽을 책입니다. 도서관마실을 하든 새책방마실을 하든 헌책방마실을 하든, 나 스스로 내가 읽을 책은 내 눈길대로 살피며 내 손으로 골라서 내 가방에 담아 내 고향동네 내 살림집에서 나 스스로 내 바쁜 겨를을 쪼개어 읽을 책입니다.

 푸른삶을 일구는 우리 푸름이들이 스스로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푸름이들 스스로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으면 푸름이들 스스로 찾아들 좋은 책을 곧바로 그때그때 알아채거나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푸름이들 스스로 살아가는 매무새 그대로 푸름이들이 맞이할 책을 골라듭니다. 푸름이들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바라며 애쓴다면 아름다움을 담고 아름다움이 녹아든 참된 책을 스스로 느끼며 찾아듭니다. 푸름이들 스스로 더 많은 돈과 이름과 힘을 꿈꾼다면 푸름이들 스스로 돈벌이와 이름높이기와 권력좇기에 가까운 책만 자꾸자꾸 집어들기 마련입니다. 살아가는 대로 읽는 책이지, 살아가지 않는 대로 머리에 지식으로 채울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부디 푸름이들 푸른날을 기쁘게 삭이면서 즐기면 좋겠습니다. 푸른날은 한 번뿐입니다. 어른으로 보내는 오늘 하루도 한 번뿐입니다. 나이들어 허리 구부정한 몸으로 보내는 삶 또한 한 번뿐입니다. 좋은 삶도 궂은 삶도 오로지 한 번만 나한테 찾아듭니다. 이렇게 한 번 받아들여 즐길 푸른삶이기에 우리 푸름이들한테는 가없이 아름다운 하루하루입니다.


 2.

 저는 대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졸자입니다. 대학교를 그만두고 고졸자로 살아가니 이 땅에서는 더없이 고달프고 힘겹습니다. 그러나 저는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바라지 않았기에 언제나 홀가분하며 뿌듯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우리 딸아이를 함께 낳은 옆지기를 지난 2007년 여름에 만나서 살아가고부터는 ‘나는 왜 고등학교 때부터 학교를 떠날 생각을 못했나?’ 하고 뉘우쳤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대학교가 엉망진창인 줄을 깨닫기 앞서, 고등학교에서도 고등학교가 엉망진창이었고, 중학교에서도 중학교가 엉망진창이었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이때에는 학교를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무시무시한 몽둥이를 휘두르고 갖은 욕설과 체벌과 비아냥과 따돌림이 판치는 학교란 껍데기만 학교이지 참다운 학교가 아닙니다. 이런 데에서 내 알뜰하고 애틋한 푸른삶을 버려야 할 까닭이란 없어요. 왜냐하면 저한테는 졸업장이 쓸모있지 않으니까요. 저한테는 제 아름다울 하루하루가 쓸모있으니까요.

 대학 졸업장을 내밀어 공무원 7급이 되든 5급이 되든, 또는 대학 강사나 교수가 되든 무엇 합니까. 교사가 되는 길은 교대를 나와 초중고등학교에서 교사가 되는 길만 있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농사를 짓든 신문딸배를 하든 일하면서 대안학교 교사가 될 수 있어요. 아닌 게 아니라, 저는 ‘고졸 주제’에 대안학교 특강 교사로 때때로 불려 가서 일을 거들곤 합니다. 저한테는 졸업장이란 없지만, 저한테는 제 삶이 있기 때문에 대안학교에서 대안학교 멋진 동무들하고 멋진 삶과 생각을 나눌 수 있습니다.

 저는 1992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헌책방을 다녔습니다. 이때까지는 ‘헌책’이 있는 줄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제 둘레에서 ‘책을 읽으려면 헌책방에 가 보렴’ 하고 알려준 어른이나 교사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저 어쩌다가, 참 우연하게 헌책방에 발을 디뎠고, 처음 디딘 발걸음이 제 삶을 아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어떤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 목록뿐 아니라 권장도서와 추천도서와 교양도서와 명작도서 목록에 어느 한 번조차 들지 않았는데, 그토록 아름다우며 훌륭한 책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파묻히거나 잠든 채 헌책방 책시렁에 꽂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름난 분 책이라고 다 훌륭하겠습니까. 이름 안 난 사람들 책이라고 다 허접하겠습니까. 우리가 책을 읽을 때에는 ‘글쓴이 이름’이나 ‘출판사 이름’이나 ‘펴낸 날짜’를 읽지 않습니다. 종이에 찍힌 글월에 서린 ‘글쓴이 삶’과 ‘책을 엮은 사람 땀방울’을 읽습니다.

 저는 제가 이 길을 걸었기 때문에 푸름이들한테 ‘중학교를 집어치우라’라든지 ‘고등학교를 때려치우라’라든지 ‘초등학교를 걷어차라’라든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습니다. 다만, 학교는 굳이 안 다녀도 나 스스로 내 삶을 얼마든지 아름답고 알차며 사랑스레 돌볼 수 있음을 제 삶 그대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저한테는 푸름이들한테 들려주거나 쑤셔넣을 지식조각은 아무것도 없지만, 제 모습 그대로 푸름이들 앞에 씩씩하고 즐겁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책을 읽을 때에는 속을 읽으면 돼요. 책을 읽으면서 내 삶을 어루만지며 다독여 주면 돼요. 책을 읽고 난 다음에 내 몸과 마음을 어여쁘고 튼튼하게 일굴 수 있으면 돼요.


 3.

 우리 딸아이를 바라보면서 우리 푸름이들을 생각합니다. 우리 딸아이가 착하고 참되며 고운 사람으로 자라는 가운데 사랑스럽고 따스하며 넉넉한 믿음을 두루 나눌 수 있기를 바라듯, 우리 푸름이들한테 착함과 참됨과 고움이 깃들면서 사랑과 따스함과 넉넉함과 믿음이 무럭무럭 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만화책 《노다메 칸타빌레》가 드디어 23권으로 마무리되었어요. 《GREEN》이라는 재미난 만화를 그리기도 한 니노미야 토모코 님은 이제 한동안 푹 쉰 다음, 그동안 그린 만화와는 사뭇 다른 살가우며 아름다운 새 만화를 우리한테 선물해 줄 테지요. 사람은 누구나 무럭무럭 자라니까요. 열여섯에도 자라고 스물여섯에도 자라며 서른여섯이나 마흔여섯이나 쉰여섯에도 자라니까요. 자라지 않는 사람이라면 죽은 사람이고, 자라려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죽으려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푸름이들한테 이 책 《푸른책과 함께 살기》가 다문 거름 한 줌이 되어 푸름이들 스스로한테 좋은 길동무가 되어 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습니다. 모든 분들이 말할 수 없도록 고맙습니다.


2010년 6월 9일.
ㅎㄲㅅㄱ
 

 

-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 '우리글방'에 찾아온 고운 책손.

- 사진 하나 찍어 달라 해서 찍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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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덟째 낱권책이 나왔다. 금요일에 부산마실을 가서 보수동책방골목잔치에서 지내다가 이제야 밤에 충주 산골마을로 돌아와서 책을 들여다본다. 힘들다. 어서 자야지.

 

   
 

- 책이름 :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 글 : 최종규 

- 펴낸곳 : 양철북 (2010.9.10.) 

- 책값 : 13000원

 
   

 

8 :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7 :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 

6 : 사진책과 함께 살기 

5 : 생각하는 글쓰기 

4 : 책 홀림길에서 

3 : 자전거와 함께 살기 

2 : 헌책방에서 보낸 1년 

1 : 모든 책과 헌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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