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가는 날 크레용 그림책 30
스즈키 마모루 그림, 야마모토 쇼조 글 / 크레용하우스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살림집 옮기는 고단함과 보람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8] 야마모토 쇼조(글)+스즈키 마모루(그림), 《이사 가는 날》



 하루하루 더 살아갈수록 살림집을 옮길 때마다 살림살이가 늘어납니다. 예나 이제나 살림돈을 넉넉히 쓰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가장 마땅하다 싶은 집에서 살아 보지 못합니다. 요모조모 따지어 새 살림집으로 옮기며 살았습니다만, 없는 돈에서 요모조모 따지어 얻는 살림집이란 있는 돈에서 그리 안 따지고도 마련하는 살림집하고 사뭇 다릅니다.

 처음 몇 차례 살림집을 옮기던 때에는 짐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안쪽 골목에서 살았습니다. 이때에는 집에서 큰길로 손수 짐을 옮겨야 했습니다. 나중에는 사다리차를 뻗어도 3층 창문에 잘 닿지 않아 무척 애먹는 집에서 살았고, 돈 한 푼 없이 이 집에서 나오던 때에는 3층부터 길가까지 계단을 타고 모든 짐을 혼자서 낑낑대며 내렸습니다.

 도시에 있던 살림살이를 산골마을로 옮긴 때는 2006년입니다. 그런데 이듬해에 산골마을 살림살이를 모조리 도시로 되옮겨야 했습니다. ‘이제 더는 집 옮기기는 안 해도 되겠지’ 하고 생각하던 이무렵, 보름 남짓 밤을 새우며 책짐을 끙끙거리며 묶었습니다. 때도 한겨울이라 손이 꽁꽁 얼어붙으며 책짐을 꾸렸습니다.

 도시로 옮긴 살림살이는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다른 살림집으로 옮겨야 하면서 또다시 옮깁니다. 그리고 도시에 있던 책짐 또한 네 해가 못 되어 다시 도시를 떠나며 산골마을로 옮깁니다. 도시에서 지내며 떨어져 있던 살림살이와 책이 한 해 만에 만나는데, 5톤 짐차로 넉 대치 책을 혼자 싸고 꾸려야 하다 보니 이만저만 몸이 늘어지지 않습니다. 책을 싸서 ‘사다리차가 받을’ 창문 쪽으로 나르는 동안에도 무릎은 몹시 시큰거렸습니다. 도시에서 책을 싸다가 시골 살림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걷기 힘들 만큼 무릎이 아픕니다. 시골집에서 살붙이하고 며칠 함께 지내다가 다시금 도시로 혼자 나와 책짐을 꾸리고, 마침내 짐차와 일꾼을 불러 산골마을로 들어서던 날에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할 일이 많으니까요. 새 살림집으로 옮기는 느낌이란 설렘과 두근거림이라 하지만, 막상 온갖 일을 다 치르는 사람한테는 설렘과 두근거림보다 고단함과 바쁨과 어지러움투성이입니다.

 살림짐이나 책짐 나르기를 거드는 일꾼들은 사다리차가 없으면 이만 한 짐을 나를 수 없다고 혀를 내두릅니다. 요즈음은 어찌할 수 없을 테지요. 책 몇 만 권을 계단으로 헉헉거리며 나르다가는 일꾼들 모두 무릎이 나갈 테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살림살이를 옮길 때에 사다리차를 쓴 지는 고작 열 해 남짓입니다. 어쩌면 열 해가 채 안 되었다 할 만합니다. 돈이 없는 살림살이로는 사다리차 부르기마저 만만하지 않으니까요. 저는 막다른 골목 안쪽 살림집을 자주 얻다 보니 사다리차를 쓰고파도 쓸 수 없어 몇 시간에 걸쳐 책짐이며 살림짐이며 두 다리가 덜덜 떨리도록 들고 날랐습니다.

 일본사람이 엮은 그림책 《이사 가는 날》을 펼칩니다. 일본에서는 1988년에 처음 나왔고 한국에서는 2001년에 옮겨진 《이사 가는 날》은 ‘사다리차 없는’ 지난날 살림집 옮기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도심지 작은 집에서 오글오글 살던 식구들이 ‘도심지에서 살짝 벗어난’ 자리에 있는 ‘조금 더 넓은 살림집’을 얻어 옮기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책겉에는 엄마랑 아빠랑 함께 짐을 나르는 그림으로 나오지만, 정작 속을 들여다보면 ‘살림집 옮기기’를 알아보며 하나하나 살피는 사람은 오로지 어머니입니다. 아버지는 회사로 일을 나갈 뿐, 집살림을 어찌 건사하거나 갈무리하여 옮겨야 할는지를 모릅니다. 그저 당신 자가용에 식구들을 태우고 새 집으로 먼저 날아갈 뿐입니다. 함께 하는 집안일이 아닌 여자만 하는 집안일이요, 살림집을 옮기는 일 또한 온통 여자한테 맡기고 맙니다(그렇다고 이 그림책에서 아빠가 아무 일을 안 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사란 ‘짐 나르기’만이 아닌데, 짐 나르기는 함께 하지만, 다른 대목에서 ‘이사 준비’에 제대로 마음쓰지 못한다는 소리입니다).


.. 엄마는 이사 준비를 하느라 너무 바빠요 ..  (6쪽)


 거짓말이나 농담이 아닌 참말로, 이 나라 남자(또는 아버지)들은 웬만해서는 ‘살림집 옮기기를 할 때에 무엇을 어떡해야 하는가’를 잘 모르기 일쑤입니다. 그렇다고 오늘날 여자(또는 어머니)들은 더 잘 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이제는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집살림에는 젬병으로 바뀌는 우리 터전이거든요.


..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씽씽∼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 ..  (28쪽)


 1988년 일본 여느 살림집을 옮길 때에 일꾼들이 밧줄을 써서 큰짐을 내리는 모습을 그림책에 아주 잘 담았습니다. 제 어릴 적 일을 떠올려 보아도, 지난날 일꾼들은 5층짜리 아파트에서건 10층짜리 아파트에서건 밧줄을 써서 피아노며 옷장이며 내리고 올렸습니다. 집을 옮긴다 할 때에는 일꾼이며 식구이며 가리지 않고 함께 짐을 나르고, 둘레에 아는 이들이 작은 짐 하나라도 거들어 주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이웃 일본이기 때문에 일본사람이 집을 옮길 때에는 ‘이웃집이나 동무나 아는 사람이 일을 거들러 오지 않’고 이삿짐 나르는 일꾼들만 일을 한다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1988년이건 2008년이건 2028년이건 그리 달라지지 않으리라 봅니다. 또한 우리 나라에서도 어느새 ‘살림집 옮길 때에 서로서로 도와주던 삶과 버릇’이 차츰 사라지며 온통 이삿짐 나르는 일꾼한테만 맡기는 쪽으로 바뀐다고 느낍니다. 언제부터더라, ‘포장이사’라고 해서 전화 한 통과 계좌이체로 집 옮기기가 금세 끝나잖아요. 아침에 전화 걸어 열쇠 맡긴 다음 일터에 가서 하루를 보낸 뒤 새 집으로 돌아와 보면 뚝딱 하고 다 옮겨 놓을 뿐 아니라 자리까지 잡혀 있다고 하는데요. 더구나 서울 안쪽이나 바깥쪽 어디어디에서는 집값이 껑충껑충 뛰니까, 집값 따라 살림집 옮기기를 해도 ‘포장이사 값이야 푼돈일 뿐’이기 일쑤라 하는걸요.

 그림책 《이사 가는 날》은 글쓴이나 그린이나 몇날 며칠 낑낑대며 살림짐 꾸리고, 이삿날 맞추어 헉헉거리며 살림짐 옮기다가는, 새 집으로 옮기어 기쁘게 땀흘리며 짐을 끌러 본 삶이 바탕이 되어 태어납니다. 그림책 《이사 가는 날》을 즐기자면, 낑낑대며 살림짐 꾸리고 헉헉거리며 살림집 옮기다가는 땀흘리며 짐을 끌러 본 어른과 아이 삶을 보내야 합니다. 돈있는 집 아이들로서는 재미나게 넘기기 어려운 그림책이요, 돈없는 집 아이들로서는 굳이 장만하여 읽지 않고도 훤히 알 만한 그림책입니다. 돈있는 집 어른과 아이한테는 《이사 가는 날》 같은 그림책을 펼친다 한들 살갗으로 파고들어 뭉클해 하기 힘듭니다. 돈없는 집 어른과 아이라면 《이사 가는 날》 같은 그림책이 없이도 얼마든지 ‘살림집 옮기던 이야기’를 밤새 나눌 수 있어요.


.. 나는 우리 집이 정말 좋아요! ..  (32쪽)


 따지고 보면 살림돈이 얼마 없어 이것저것 새로 갖추거나 장만할 수 없습니다. 없는 살림이 많고 모자란 살림이 가득합니다. 그렇지만 없거나 모자라기 때문에 몸을 훨씬 많이 쓰거나 자주 써야 합니다. 몸으로 움직이며 살아가는 하루하루입니다.

 늘 내 몸을 나 스스로 쓰는 하루를 보내노라면 저녁 무렵에 어느덧 기운이 다 빠져 지칩니다. 잠자리에 들면 곯아떨어집니다. 지난밤에는 ‘잠들 무렵에는 기저귀를 안 차겠다고 하는’ 아이를 다독이며 재워 ‘아이가 깊이 잠든 다음 기저귀를 채워야’ 하는데 미처 기저귀를 못 채우고 깜빡 잠들었습니다. 어쩌면 아이보다 먼저 잠들었다 할 테고, 아이와 똑같이 잠들었다 할 만합니다. 이제 오늘은 아침부터 오줌 이불 빨래로 열어야 합니다. 참으로 쉴 겨를이 없고 다리 뻗을 틈이 없습니다. 마음을 놓을 수 없고 느긋하게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오늘 어제 그제 차근차근 돌아보면서 노상 새로운 이야기를 누리고 느끼며 가슴으로 받아안습니다. (4343.9.16.나무.ㅎㄲㅅㄱ)


― 이사 가는 날 (야마모토 쇼조 글,스즈키 마모루 그림,크레용하우스,2001.9.17./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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