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새로 나와서 이주에 책방에 들어간 내 여덟째 책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에 적은 머리말. 머리말이라지만 좀 깁니다. 이 글을 쓸 때에는 머리말로 썼다기보다는 청소년책을 놓고 청소년을 보내는 고운 넋한테 편지를 쓰는 마음이었습니다.
여는 글 : 푸른책 푸른삶 푸른날
1.
우리 말에는 ‘아이’와 ‘어른’이 있고, ‘젊은이’와 ‘늙은이’가 있습니다. 짝을 짓는 우리 말이기 때문에 이밖에 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방정환 님은 따로 ‘어린이’라는 말을 지었습니다. 우리한테는 ‘아이’라는 말이 있으나, 어린 나날을 보내는 목숨들을 좀더 아끼고 사랑하고픈 마음을 담아 새말 하나를 지었습니다.
저는 ‘푸름이’라는 말을 곧잘 쓰고 있습니다. 이 낱말은 저뿐 아니라 둘레에서도 익히 쓰고 있으나 국어사전에는 안 올라 있습니다. 저로서는 딱히 누군가 이 낱말을 썼기 때문에 따라서 쓰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분들 또한 누군가 이 낱말을 쓰고 있어서 따라서 쓰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청소년’이라는 한자말 풀이가 아니더라도, 아이였던 나날을 거쳐 어른으로 자라나는 넋들이 보내는 나날이란 바로 ‘푸른’ 나날이라고 느끼니 저절로 쓰는 ‘푸름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린이들이 즐겨읽도록 마음을 기울이는 책을 일컬어 ‘어린이책’이라 합니다. 지난날에는 ‘아동도서’라 했습니다. 푸른 넋들, 곧 푸름이들이 즐겨읽도록 마음을 바치는 책을 놓고 ‘청소년책’이라 합니다. 그러나 저는 ‘푸름이책’이라 말하고, 한 글자 줄여 ‘푸른책’이라고 곧잘 이야기합니다.
푸름이란 이름 그대로 ‘푸른 사람’을 가리킵니다. ‘푸른’ 사람이란 ‘풀과 같은’ 사람입니다. 풀은 아직 꽃이 되지 못한 목숨이요 나무로 자라는 목숨 또한 아닙니다. 우람한 나무 한 그루로 자라자면 어떠한 나무이든 아주 작은 씨앗 하나가 땅에 뿌리내려야 하고, 이 씨앗이 움을 트고 새 잎을 틔워야 합니다. 어떠한 나무라 할지라도 맨 처음에는 씨앗 하나요, 잎사귀 하나이며, 풀포기 하나인 나날을 거칩니다.
이리하여, 푸름이란 ‘풋내기’하고 닮았습니다. ‘풋능금’이나 ‘풋사랑’처럼 아직 여물지 못한 모습을 담습니다. 그런데, 우리들 푸름이들만 ‘아직 여물지 못한’ 모습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숱한 ‘안 푸름이’인 어른들 가운데 제대로 여물지 못한 사람이 더없이 많습니다.
저는 딸아이 하나를 옆지기와 함께 돌보며 살아가는 아저씨 삶을 보내고 있습니다. 푸름이하고는 한참 먼, 머잖아 우리 딸아이 또한 푸름이가 될 아저씨 나날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어린이책을 좋아하고 푸름이책을 즐깁니다. 어른이라 해서 어른책만 보지 않습니다. 저는 사진책 그림책 만화책 글책 노래책 모두 기쁘게 맞아들입니다. 제 삶을 일깨우고 제 넋을 북돋우며 제 길을 열어젖히는 책이라면 다 고맙다고 느낍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 책도 좋고 나라밖 사람들 책도 좋습니다. 옛사람 책도 좋으며 오늘날 사람 책도 좋습니다. 헌책방마실을 하며 찾아드는 책 하나가 좋고, 새책방마실을 하며 골라드는 책 하나가 좋습니다. 책다운 책이면 언제나 기쁘고 들뜹니다.
어린 나날부터 제가 품은 꿈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어른이 되겠다”입니다. 국민학교 4학년 적 실과 시간에 ‘내 꿈 발표하기’를 하는 자리에서 저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하고 제 꿈을 밝혔습니다. 동무와 교사는 킬킬 깔깔 끅끅 푸하하 하며 웃었습니다. 그렇지만 제 꿈은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이 한 가지뿐입니다. 나이만 어른인 사람이 아닌, 밥그릇 비운 숫자만 어른이 아닌, 몸뚱이와 살갗만 어른이 아닌, 참다이 어른인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읽는 책들은 저 스스로 어른이 되어 가도록 길동무가 되고 어깨동무가 되는 책들이라고 여깁니다. 어린이책이라 해서 어린이만 읽는 책이 아니라, 어린이부터 어른 누구나 읽는 책입니다. 푸름이책이라면 마땅히 푸름이부터 어른 모두 읽는 책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푸름이들은 ‘푸름이책’만 읽을 노릇이 아니라 ‘어린이책’을 함께 읽으면서 푸름이 스스로 맑고 고우며 튼튼한 어른이 되도록 이끌고 돕는 좋은 책을 찾아서 만나면 됩니다. 추천도서나 권장도서가 아닌 푸름이로 살아가는 나 스스로한테 가장 착하고 참되며 고운 책을 찾아서 만나야 합니다. 베스트셀러도 아니지만 스테디설레 또한 아닌 나한테 가장 기쁘며 고맙고 반가울 책을 살펴서 쥐어들어야 합니다.
누가 읽으라고 건네는 책을 읽는다고 나쁠 일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나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면서 찾아내어 읽을 책입니다. 도서관마실을 하든 새책방마실을 하든 헌책방마실을 하든, 나 스스로 내가 읽을 책은 내 눈길대로 살피며 내 손으로 골라서 내 가방에 담아 내 고향동네 내 살림집에서 나 스스로 내 바쁜 겨를을 쪼개어 읽을 책입니다.
푸른삶을 일구는 우리 푸름이들이 스스로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푸름이들 스스로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으면 푸름이들 스스로 찾아들 좋은 책을 곧바로 그때그때 알아채거나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푸름이들 스스로 살아가는 매무새 그대로 푸름이들이 맞이할 책을 골라듭니다. 푸름이들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바라며 애쓴다면 아름다움을 담고 아름다움이 녹아든 참된 책을 스스로 느끼며 찾아듭니다. 푸름이들 스스로 더 많은 돈과 이름과 힘을 꿈꾼다면 푸름이들 스스로 돈벌이와 이름높이기와 권력좇기에 가까운 책만 자꾸자꾸 집어들기 마련입니다. 살아가는 대로 읽는 책이지, 살아가지 않는 대로 머리에 지식으로 채울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부디 푸름이들 푸른날을 기쁘게 삭이면서 즐기면 좋겠습니다. 푸른날은 한 번뿐입니다. 어른으로 보내는 오늘 하루도 한 번뿐입니다. 나이들어 허리 구부정한 몸으로 보내는 삶 또한 한 번뿐입니다. 좋은 삶도 궂은 삶도 오로지 한 번만 나한테 찾아듭니다. 이렇게 한 번 받아들여 즐길 푸른삶이기에 우리 푸름이들한테는 가없이 아름다운 하루하루입니다.
2.
저는 대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졸자입니다. 대학교를 그만두고 고졸자로 살아가니 이 땅에서는 더없이 고달프고 힘겹습니다. 그러나 저는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바라지 않았기에 언제나 홀가분하며 뿌듯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우리 딸아이를 함께 낳은 옆지기를 지난 2007년 여름에 만나서 살아가고부터는 ‘나는 왜 고등학교 때부터 학교를 떠날 생각을 못했나?’ 하고 뉘우쳤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대학교가 엉망진창인 줄을 깨닫기 앞서, 고등학교에서도 고등학교가 엉망진창이었고, 중학교에서도 중학교가 엉망진창이었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이때에는 학교를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무시무시한 몽둥이를 휘두르고 갖은 욕설과 체벌과 비아냥과 따돌림이 판치는 학교란 껍데기만 학교이지 참다운 학교가 아닙니다. 이런 데에서 내 알뜰하고 애틋한 푸른삶을 버려야 할 까닭이란 없어요. 왜냐하면 저한테는 졸업장이 쓸모있지 않으니까요. 저한테는 제 아름다울 하루하루가 쓸모있으니까요.
대학 졸업장을 내밀어 공무원 7급이 되든 5급이 되든, 또는 대학 강사나 교수가 되든 무엇 합니까. 교사가 되는 길은 교대를 나와 초중고등학교에서 교사가 되는 길만 있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농사를 짓든 신문딸배를 하든 일하면서 대안학교 교사가 될 수 있어요. 아닌 게 아니라, 저는 ‘고졸 주제’에 대안학교 특강 교사로 때때로 불려 가서 일을 거들곤 합니다. 저한테는 졸업장이란 없지만, 저한테는 제 삶이 있기 때문에 대안학교에서 대안학교 멋진 동무들하고 멋진 삶과 생각을 나눌 수 있습니다.
저는 1992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헌책방을 다녔습니다. 이때까지는 ‘헌책’이 있는 줄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제 둘레에서 ‘책을 읽으려면 헌책방에 가 보렴’ 하고 알려준 어른이나 교사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저 어쩌다가, 참 우연하게 헌책방에 발을 디뎠고, 처음 디딘 발걸음이 제 삶을 아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어떤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 목록뿐 아니라 권장도서와 추천도서와 교양도서와 명작도서 목록에 어느 한 번조차 들지 않았는데, 그토록 아름다우며 훌륭한 책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파묻히거나 잠든 채 헌책방 책시렁에 꽂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름난 분 책이라고 다 훌륭하겠습니까. 이름 안 난 사람들 책이라고 다 허접하겠습니까. 우리가 책을 읽을 때에는 ‘글쓴이 이름’이나 ‘출판사 이름’이나 ‘펴낸 날짜’를 읽지 않습니다. 종이에 찍힌 글월에 서린 ‘글쓴이 삶’과 ‘책을 엮은 사람 땀방울’을 읽습니다.
저는 제가 이 길을 걸었기 때문에 푸름이들한테 ‘중학교를 집어치우라’라든지 ‘고등학교를 때려치우라’라든지 ‘초등학교를 걷어차라’라든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습니다. 다만, 학교는 굳이 안 다녀도 나 스스로 내 삶을 얼마든지 아름답고 알차며 사랑스레 돌볼 수 있음을 제 삶 그대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저한테는 푸름이들한테 들려주거나 쑤셔넣을 지식조각은 아무것도 없지만, 제 모습 그대로 푸름이들 앞에 씩씩하고 즐겁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책을 읽을 때에는 속을 읽으면 돼요. 책을 읽으면서 내 삶을 어루만지며 다독여 주면 돼요. 책을 읽고 난 다음에 내 몸과 마음을 어여쁘고 튼튼하게 일굴 수 있으면 돼요.
3.
우리 딸아이를 바라보면서 우리 푸름이들을 생각합니다. 우리 딸아이가 착하고 참되며 고운 사람으로 자라는 가운데 사랑스럽고 따스하며 넉넉한 믿음을 두루 나눌 수 있기를 바라듯, 우리 푸름이들한테 착함과 참됨과 고움이 깃들면서 사랑과 따스함과 넉넉함과 믿음이 무럭무럭 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만화책 《노다메 칸타빌레》가 드디어 23권으로 마무리되었어요. 《GREEN》이라는 재미난 만화를 그리기도 한 니노미야 토모코 님은 이제 한동안 푹 쉰 다음, 그동안 그린 만화와는 사뭇 다른 살가우며 아름다운 새 만화를 우리한테 선물해 줄 테지요. 사람은 누구나 무럭무럭 자라니까요. 열여섯에도 자라고 스물여섯에도 자라며 서른여섯이나 마흔여섯이나 쉰여섯에도 자라니까요. 자라지 않는 사람이라면 죽은 사람이고, 자라려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죽으려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푸름이들한테 이 책 《푸른책과 함께 살기》가 다문 거름 한 줌이 되어 푸름이들 스스로한테 좋은 길동무가 되어 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습니다. 모든 분들이 말할 수 없도록 고맙습니다.
2010년 6월 9일.
ㅎㄲㅅㄱ
-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 '우리글방'에 찾아온 고운 책손.
- 사진 하나 찍어 달라 해서 찍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