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10.21.


《네? 사내 시스템을 전부 혼자 관리하는 저를 해고한다구요? 1》

 카시로메 유키 글·이오 그림·icchi 캐릭터/박용국 옮김, 씨엘비코믹스, 2025.4.30.



작은아이가 지난해에 옮겨심은 나팔꽃줄기가 있다. 빈터에서 오르는 나팔꽃줄기였는데, 마을에서 틀림없이 풀죽임물이나 삽질로 죽을 터라, 작은아이가 얼른 호미로 캐서 옮겼다. 나팔꽃을 비롯한 숱한 들풀을 ‘한해살이’로만 여기는 분이 많은데, 시골에서 살며 지켜보는 바로는 그리 맞갖지 않다. 뿌리가 살면 이듬해에 줄기를 새로 올리곤 한다. 씨앗으로도 남기고, 뿌리로도 얼마든지 잇는다. 사람이 함부로 안 건드리면 모든 푸나무는 ‘온해살이’이지 않을까? 낮에 저잣마실을 다녀온다. 이제 풀벌레노래는 꽤 사라진다. 알을 낳으려는 암사마귀 한 마리가 바깥마루에서 헤매기에 나무로 옮긴다. “얘야, 나무에 알을 낳으면 한결 나아.” 《네? 사내 시스템을 전부 혼자 관리하는 저를 해고한다구요? 1》를 읽었다. 어수선하고 헤매는 그림결에 얼거리이되, 차근차근 꾸리면 나쁘지는 않을 듯한데, 두걸음을 언제쯤 옮기려나? 이미 일본에서는 넉걸음까지 나온 듯싶다. 퍽 늦다. 곰곰이 보면 ‘일꾼(일하는 사람)’을 아끼거나 섬기지 못 하는 나라이다. ‘자리 지키기’나 ‘옷 갖춰입기’가 아니라 ‘일을 하기’로 사람을 바라보아 어디이든 제대로 구르겠지. 일을 ‘노동’도 ‘근로’도 아닌 ‘일’로 바라보기를 빈다.


#え社內システム全てワンオペしている私を解雇ですか #伊於 #下城米雪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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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를 미리 읽은 서른여섯 분(공무원)한테 여섯 가지를 물어보는 종이(문제지)를 내야 한단다. 그래서 여섯 가지를 뽑았다. 책을 미리 읽고서 이야기를 들은 서른여섯 분이 낸 종이를 받아서 금(점수)까지 매겨서 보냈다. 이야기하는 사람 못잖게 듣는 사람도 금(평가)을 받아야 하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왜 여섯 가지를 물어보았는가 하는 풀이글을 붙여서 함께 보냈다.



꽃내음 바다읽기 책집자리 좋은책 국어

― ‘사고력 향상’으로 걸어가는 책씨와 책꽃 (2025.11.13. 창원대학교)


ㄱ. 글쓴이는 2018년 4월 1일에 들꽃내음을 따라 걷다가 어떤 책집에서 어떤 책을 만났을까요?

 : 일본 도쿄 진보초 책거리에서 좀 떨어진 골목집에 깃든 ‘바둑책 전문책집’에서 ‘일본책’이 아닌 ‘한글책’을 새삼스레 만났습니다. 바둑책만 다루는 이곳은 “바둑책이 아닌 다른 책”은 모두 “100엔에 두 권”씩 골라가도 된다고 내놓습니다. 한일 두 나라 사이에서 인형극을 하는 사람이 주고받은 책이 나왔는데, 한국에서 인형극을 하던 분이 일본에서 인형극을 하던 분한테 띄운 책이었고, 아무래도 일본에서 인형극을 하던 분이 이슬로 떠나면서 조용히 흘러나온 책입니다. 이분 책꾸러미에 바둑책이 많아서 아마 바둑책집에서 통째로 거둔 듯하고, 그래서 바둑책이 아니던 ‘한글판 인형극 책’은 값싸게 길가에 나온 셈입니다. 책집마실만 하느라 지친 몸이었는데, 새봄을 맞이한 들꽃냄새가 안골목에서 풍겨서 이 꽃내음을 따라서 터덜터덜 걷다가 만난 작은책집은 “쉬엄쉬엄 책을 헤아리라”는 뜻을, 사월에서 오월로 건너갈 즈음 꽃빛이 얼마나 고운지 느긋이 맡으면 저절로 모든 책이 따라오는 줄 알려주었구나 싶습니다. 들꽃 한 송이가 바로 책이라고 속삭였어요.


ㄴ. 바다를 알려면 어떤 책을 읽으면 될까요?

 : 바다를 알려면 ‘바다’를 만나고 품고 안으면 됩니다. 하늘을 알려면 ‘하늘’을 만나고 품고 안으면 됩니다. 아이를 알려면 ‘아이’를 만나고 품고 안아야 할 테지요. 인천을 알려면 인천으로 찾아가고, 인천에서 지내고, 인천에서 살아가고 일하고 쉬고 놀면 됩니다. 창원을 알려면 창원으로 찾아가고, 창원에서 살림하고, 창원에서 이웃을 만나서 두런두런 마을사람으로 살면 됩니다. “바다를 다룬 책”이란, 바다를 알려고 다가가서 오래오래 품고 사랑한 마음을 풀어낸 이야기입니다. “바다를 다룬 책”은 글쓴이마다 다 다르게 살아내며 품은 이야기가 흐르니, 다 다르게 바라보는 눈길, 곧 ‘바다를 보는 눈길’을 헤아릴 수 있는 책입니다. ‘바다를 보는 눈길’이 아닌 ‘바다를 알아갈 책’이란 언제나 ‘바다’ 그대로입니다. 바다를 이루는 물이 어떻게 이 별을 돌고도는지 지켜보고, 아지랑이가 어떻게 구름으로 모이고, 구름은 어떻게 비로 내리고, 비는 어떻게 샘물을 이루고, 샘물은 어떻게 솟아서 냇물로 흐르고, 냇물은 어떻게 흐르며 갯벌을 거쳐서 바다로 돌아가는지 온마음과 온몸으로 느껴야 바다를 알아가는 길입니다. 또한 ‘물’은 그대로 ‘바다’인 터라, 모든 물이 우리 몸을 어떻게 이루고 이 별에서 돌고돌고 어울리는지 헤아릴 때에 비로소 바다를 알 테지요. 이처럼 스스로 바다와 하나되어 살아가고 사랑하는 나날을 글로도 옮긴 책이 있다면, 선뜻 찾아나서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오늘 날씨는 물》 같은 그림책이 바다를 잘 보여주고, 《아모스와 보리스》 같은 그림책은 ‘바다와 삶과 동무를 보는 눈’을 포근하게 들려줍니다.


ㄷ. 책집을 열거나 하기에 좋거나 어울리는 자리는 어디일까요?

 : 책집을 차리고 싶다면 어디에서나 차리면 됩니다. 가장 나은 곳이 없고, 가장 나쁜 곳이 없습니다. 서울 한복판이든 멧골 기스락이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책집지기로 일할 사람이 스스로 사랑하는 터전에서 스스로 살림을 짓는 자리이면 모두 아름답고 알맞춤합니다. 그러니까, 책집지기로서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림을 짓는 사랑을 푸르게 일구려 하는지 먼저 헤아린다면, 스스로 가장 어울리는 즐거운 자리를 스스로 찾아볼 만합니다. 책집지기부터 스스로 느긋하고 즐거운 책집이면, 책손으로 찾아가는 누구나 아늑하면서 새롭게 책바다와 책숲과 책마을을 나눌 수 있습니다.


ㄹ. 우리는 ‘좋은책’을 가려읽어야 할까요, 아니면 ‘살림책’을 읽으면 될까요?

 : 우리가 책을 읽을 적에는 ‘좋은책’도 ‘좋지 않은 책’도 아닌 그저 ‘책’을 읽으면 됩니다. 그렇지만 ‘좋은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드높은 터라, ‘책’을 읽기보다는 ‘좋은책’에 쉽게 휩쓸리게 마련입니다. 더구나 ‘소개글’을 잔뜩 받거나 신문방송에 알려진 책으로 쉽게 손을 뻗기도 하며, 노벨상처럼 큰상을 받은 책을 읽어 볼 만하지 않겠느냐고 여기곤 합니다. 그렇지만 상을 받은 책은 ‘좋은책’이 아니라 ‘상받은 책’입니다. ‘상받은 책’은 ‘좋지 않은 책’도 아니되, 그냥 ‘책’이 아니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나거나 사귈 적에는 ‘사람’을 만나고 사귈 노릇입니다. 아이를 낳든 안 낳든 ‘아이’를 돌아봐야겠지요. ‘타고난 재주’가 있는 아이여야 할까요? 예쁘거나 잘생긴 아이여야 할까요? 우리는 ‘사람’이 아닌 ‘지위나 계급이나 돈이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할까요? ‘좋은 군수나 시장이나 대통령’도 아닌, ‘좋은 민원인이나 주민’도 아닌, 그저 ‘군수나 시장이나 대통령’과 ‘민원인과 주민’을 마주하면 될 뿐입니다. 언제나 책을 ‘책’으로 바라보고 마주할 적에 비로소 우리 스스로 눈뜨고 즐거운 오늘을 누리는 ‘한 사람’으로 든든히 섭니다.


ㅁ. ‘국어’와 ‘우리말’과 ‘한글’과 ‘훈민정음’은 서로 어떻게 다를까요?

 : ‘국어’는 우리로 치자면 일제강점기에 일본 우두머리가 세운 이름입니다. 일본 우두머리는 “일본 우두머리를 섬기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국민’이라는 한자말을 외쳤습니다. “국민이 쓰는 말”이라는 뜻인 ‘국어’입니다. 그러니까 ‘국어 : 일본 우두머리를 섬기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일본 우두머리를 섬기는 뜻으로 쓰는 제국주의 군사용어’인 셈입니다. 일본은 ‘국민’과 ‘국어’라는 군사용어로 일본부터 억눌렀고, 우리나라와 중국과 대만을 식민지로 억누르면서 세 나라도 똑같이 ‘국어’라는 낱말을 쓰라고 윽박질렀습니다. 중국은 1945년 뒤로 ‘국어’를 버렸고, 대만은 1970년대에 ‘국어’를 버렸습니다만, 우리나라는 여태 그대로 쓸 뿐 아니라, ‘국립국어원’처럼 오히려 앞세워서 쓰기까지 합니다. ‘국어국문학’이라는 대학교 학과도 워낙 ‘일어일문학’을 가리키던 일본 제국주의 군사용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 ‘우리말’이라는 낱말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총칼로 억누르면서 ‘국어’라는 제국주의 군사용어를 쓰라고 괴롭히던 무렵에 처음으로 생긴 말, ‘새말’입니다. 홀로서기(독립운동)를 이루자면, 우리 누구나 스스로 눈뜨고 깨어난 사람이어야 하고, 눈뜨고 깨어나려면 제대로 배워야 하고, 제대로 배우려고 하면 ‘국어(일본말)’가 아니라 ‘한겨레 살림말’을 배울 노릇이기에, 이때에 ‘우리말’이라는 이름을 비로소 씁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면서 떨쳐일어난 물결을 고스란히 담은 이름이 ‘우리말’과 ‘우리글’입니다.


 :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편 글씨인데, 처음에는 ‘글씨’가 아닌 ‘바른소리(정음)’였습니다. 그래서 ‘훈 + 민 + 정음’이라는 얼개입니다. 오늘 우리는 ‘훈민정음’을 ‘우리글’로 삼지만, 처음에는 ‘정언(正言)’이 아닌 ‘정음’이었다는 대목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중국과 우리나라는 서로 말이 다르기 때문에 ‘말(마음소리)’을 담는 그릇(글)도 달라야 하는데, ‘말소리’를 담을 만한 틀로 ‘훈민정음’을 엮었습니다. 그래서 ‘정언’이 아닌 ‘정음’이고, ‘소리무늬’인 셈입니다.


 : 비록 ‘정언’이 아닌 ‘정음’으로 태어난 훈민정음이되, 권력자인 남자는 중국글인 한문을 ‘수글’로 높이면서 널리 쓴 500년입니다. 아무리 ‘우리 말소리를 담는 그릇’인 훈민정음이되 ‘암글’로 낮추면서 억누른 500년입니다. 더욱이 훈민정음은 양반층과 사대부 아니면 아무나 함부로 써서는 안 되었습니다. 조선이 무너질 무렵에 이르러 양반문서를 돈으로 사고팔던 즈음부터 ‘훈민정음’을 양반층 아닌 사람도 조금은 배워서 쓸 수 있을 만큼 나라가 조금 바뀝니다. 조선이 무너질 즈음 새길(신학문)을 배우려던 주시경이라는 젊은이가 “우리한테 우리글씨가 틀림없이 있는데 왜 안 쓰지?” 하고 궁금하게 여기면서 스스로 하나하나 배우는 동안, 또한 이웃말(외국말)을 배우는 사이에, 우리가 쓰는 말에도 틀(문법)이 있어야 하는 줄 깨닫고서, 처음으로 우리말틀(국어문법)을 세웁니다. 우리말틀을 처음으로 세운 주시경은 ‘소리무늬’인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는 우리나라에서 널리 쓰고 배우고 가르치기 어렵다고 느꼈고, ‘한글’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새로 짓습니다. 누구나 배우고, 누구나 쓰고, 누구나 나누면서, 홀로서기(독립운동)를 펴는 밑거름이 될, 하늘같은 글이요, 함께하는 글이자, 하나되는 글이고, 해처럼 환하게 비추면서 해맑고 하얗게 피어나는 마음을 담는 글이라는 뜻인 ‘한글’입니다. 이러면서 주시경은 이녁 이름을 ‘한힌샘’으로 새롭게 지었습니다.


ㅂ. ‘국어사전’을 쓰는 작은사람은 왜 여태 책집마실을 할까요?

 : ‘국어사전’이라는 이름도 일본 제국주의 군사용어입니다. 그러나 ‘낱말책’이나 ‘우리말꽃’이라 하면 아직 못 알아듣는 분이 많기에 그냥 ‘국어사전’이라는 이름도 나란히 쓰는데, 낱말을 아우르는 꾸러미인 낱말책이라면, 모든 갈래 모든 말을 담을 수 있도록 살펴야 하기에, 온나라 책집을 꾸준히 찾아다니고 온나라 이웃을 널리 만나서 모든 갈래에서 다 다르게 쓰는 말결을 살핍니다. 높은말이나 낮은말은 따로 없지만, 고을말(사투리)과 삶말과 살림말과 숲말은 언제나 새롭게 곳곳에 있습니다. 새로 태어날 어린이도, 앞으로 이어갈 이 땅에서 살아갈 모든 어른도, 슬기롭고 즐겁게 마음을 북돋아서 생각을 일으킬 낱말을 씨앗 한 톨로 담아내려고 하기에 즐겁게 책집마실을 합니다. 책집에서 책씨를 얻고, 시골집에서 숲씨를 얻으면서, 보금자리에서 살림을 짓는 동안 사랑씨를 얻으니, 이 여러 씨앗을 아울러 말씨(말씨앗)로 풀어내어 담습니다. 


2025.11.18.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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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 시-LIM 시인선 1
고선경 지음 / 열림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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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11.18.

노래책시렁 518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

 고선경

 열림원

 2025.1.10.



  2022년에 〈조선일보〉에 글을 내어 뽑히고서 선보인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이라고 합니다. ‘시-LIM 시인선’이라고 하면서 ‘젊은작가’라는 이름을 내세우는데, ‘젊다’란 “나이가 적다 + 부딪히고 넘어지며 절다”라는 두 가지 밑뜻이 흐르는 낱말인 줄 알까요? ‘젊은글’이란 온몸으로 ‘늙은담’에 달려들어 깨부수며 이 삶을 새롭게 가꾸면서 배우는 하루를 적는 글이라는 뜻이어야 어울립니다만, ‘부딪히는 삶’을 적는다기보다는 ‘낱말짜기’에 얽매인다고 느낍니다. 나이만 늘려서 낡기에 ‘늙다’라 합니다. 나이만 앞세우느라 어진빛이 안 보이기에 ‘늙은글(원로작가)’이라 합니다. 나이테가 굵어가는 나무는 둘레에 푸른바람을 일으키고 꽃내음이 더없이 향긋하듯, ‘어른글’이란 살림빛을 낳을 줄 아는 나이를 품을 노릇인데, 막상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어른글부터 드뭅니다. 숱한 늙은글부터 ‘낱말짜기’에 갇히니, 젊은글도 어느새 ‘부딪히는 삶’을 팽개친 채 이래저래 낱말만 신나게 짜는 늪에 스스로 잠겨든다고 느낍니다. 깎는말(욕)을 안 써야 하지는 않습니다만, ‘씨발’이라는 막말이 무슨 뜻인지 알면서 이런 말씨를 버젓이 쓰려나요? 얼뜬 늙은글을 갈아엎는 길은 언제나 하나이니, 바로 ‘일’입니다. 스스로 바람과 바다를 일으키듯, 땀방울로 이 삶을 일구는 ‘일’을 할 적에는 더없이 젊어서 빛나는 이야기를 담아 노래할 수 있습니다.


ㅍㄹㄴ


점심은 가볍게 먹자 / 그렇게 말하는 네가 좋다 (늪이라는 말보다는 높이라는 말이 좋아/19쪽)


내일도 놀이터에 하트가 남아 있을까? / 아이를 일으켜 세운 사람들은 제자리로 돌아가고 / 나는 제자리보다 테두리를 생각하네 (한양아파트/48쪽)


교수한테 내가 쓰다 만 시를 이어서 쓰라고 한다든지 / 집주인한테 이 집 내 거지? 문자를 보낸다든지 / 엄마한테는 친구랑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 이만 원 쥐여 주고 싶네 (디올 전속 디자이너가 내 옷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71쪽)


침대에 모로 누워 울다가 씨발! 하고 외쳤다 / 씨발…… 나직하게 읊조릴 수도 있었지만 / 누구라도 들어 주었으면 해서 소리를 질렀어 (검은 고양이와 자객/73쪽)


+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고선경, 열림원, 2025)


나를 슬프게 만들면 반드시 불행해질 거야

→ 내가 슬프면 넌 반드시 괴로워

→ 나를 울리면 넌 반드시 아파

12쪽


슬플수록 사나운 표정을 짓게 되는 내가 있고

→ 슬플수록 사납게 구는 내가 있고

→ 나는 슬플수록 사납고

12쪽


원래 낙과가 맛있습니다

→ 떨어져야 맛있습니다

→ 워낙 곤두가 맛있습니다

16쪽


이게 다 씨앗에서 시작된 거란 말이죠

→ 이 모두가 씨앗에서 비롯했단 말이죠

→ 다 씨앗이 처음이란 말이죠

→ 다 씨앗부터 있단 말이죠

→ 다 씨앗에서 퍼졌단 말이죠

17쪽


이렇게까지 미워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니

→ 이렇게까지 미워할 수 있다니

27쪽


나에게도 애도할 시간이 필요했다

→ 나도 눈물 흘릴 짬을 바란다

→ 슬퍼할 틈이 있어야 한다

30쪽


실은 나에게 마음이 없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 정작 나한테 마음이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 마치 내가 마음이 없다고 말하는 듯싶다

44쪽


내일도 놀이터에 하트가 남아 있을까

→ 이튿날 놀이터에 사랑이 있을까

→ 다음날 놀이터에 사랑이 남을까

48쪽


약속이나 마법처럼 석양이 폭신폭신 녹아내리고 있었다

→ 다짐이나 꽃힘처럼 놀이 폭신폭신 녹아내린다

→ 말씀이나 별빛처럼 노을이 폭신폭신 녹아내린다

49쪽


정중히 사과하면 아이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 가만히 빌면 아이는 울려는 얼굴짓이다

→ 곱게 고개숙이면 아이는 울 듯한 얼굴이다

57쪽


약간의 거리를 둔 채 계속해서 걸었다

→ 살짝 떨어져서 그대로 걷는다

→ 조금 틈을 두고서 걷는다

61쪽


내가 내 인생 잠깐 빌려주는 거니까 다들 부담은 안 가졌으면 좋겠네

→ 내가 내 삶 살짝 빌려주니까 다들 어려워하지 마

→ 내가 내 삶 슬쩍 빌려주니까 다들 꺼리지 마

72쪽


살아 있는 꽃의 냄새가 났다

→ 산꽃냄새가 난다

→ 꽃냄새가 싱그럽다

79쪽


뜨개질의 귀재여서

→ 뜨개질을 잘해서

→ 솜씨있게 떠서

→ 뜨개쟁이여서

→ 뜨개순이여서

95쪽


누군가가 나에게 제정신이냐고 물었고

→ 누가 나한테 멀쩡하냐고 묻고

→ 누가 나더러 제넋이냐고 묻고

97쪽


마음속에 생겨난 높은 행거가 내가 바라던 것은 아니었을 텐데

→ 마음속에 생겨난 높은 옷걸이는 내가 바라지 않았을 텐데

→ 마음속에 생겨난 높은 말코지는 내가 안 바랐을 텐데

→ 마음속에 생겨난 높은 횃대는 내가 바란 바 없을 텐데

130쪽


소파에 하트 모양 쿠션이 놓여 있기 마련이지

→ 폭신이에 사랑무늬 깔개를 놓게 마련이지

→ 걸상에 사랑그림 깔개를 놓게 마련이지

134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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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적자재정



 적자재정을 해소시킬 방안은 → 돈고비를 풀 길은

 3년 연속 적자재정이다 → 세 해 내리 빚이다

 적자재정이 가속화된다 → 더욱 가난살림이다


적자재정(赤字財政) : [행정] 조세 같은 경영 수입이 지출보다 부족하여 그 예산이 적자 상태인 국가 재정. 전시(戰時) 재정이나 전후(戰後)의 부흥 재정 따위가 원인이 되는 수가 많다 ≒ 결손재정



  벌이보다 씀씀이가 크면 빚이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빚이 늘면서 가난하거나 돈이 없어요. 이때에는 ‘잃다·없다·울다’나 ‘밑값·밑돌다·밑빠지다·밑지다’로 나타낼 만합니다. ‘가난·수렁’이나 ‘가난살림·가난살이·가난벌이·가난팔이·가난장사·가난나라·가난누리’로 나타낼 만해요. ‘돈고비·돈고개·돈벼랑·돈수렁·돈앓이’나 ‘비다·빚·빚지다·늘빚’으로 나타내고, ‘발가벗다·벌거벗다·빨가벗다·뻘거벗다’로 나타냅니다. ‘덜다·곱다·모자라다·못 미치다’나 ‘나가떨어지다·나뒹굴다·나쁘다’나 ‘떨려나가다·떨어지다’로 나타내도 됩니다. ‘빠지다·빠져나가다·빼다·빼앗기다·앗기다’나 ‘피나다·피흘리다’로 나타내도 되어요. 살림고비·살림늪·살림벼락·살림벼랑·살림수렁’이나 “살림이 힘들다·살림이 고되다·살림이 벅차다·살림이 빠듯하다”로 나타내도 어울려요. ‘깎아지르다·강파르다·허덕이다’나 ‘주리다·쪼들리다·찌들다’나 ‘탈탈·털털·털리다’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ㅍㄹㄴ



구애는 곧 적자재정이었고, 연애와 생계, 가슴과 배의 갈등에서 나는 늘 후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 사랑찾기는 이내 빚이고, 짝짓기와 살림, 가슴과 배 사이에서 나는 늘 뒤쪽 손을 들었다

→ 사랑바라기는 곧 가난이고, 짝맺기와 삶, 가슴과 배 사이에서 나는 늘 뒤쪽이었다

《연애 결핍 시대의 증언》(나호선, 여문책, 2022)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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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부양의무



 부양의무를 계속 무시하면 → 돌봄길을 자꾸 팽개치면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시에 → 돌봄몫을 따르지 않을 때에


부양의무(扶養義務) : [법률] 일정한 친족 간에 인정되는 생활 보장의 의무



  살림을 맡거나 돌보아야 하는 몫이 있습니다. 이때에는 ‘돌봄길·돌봄몫’이라 할 만합니다. ‘살림길·살림몫’이라 할 수 있어요. ‘삶몫·삶길·삶꽃’이라 해도 되어요. ㅍㄹㄴ



부양의무제로 인한 부작용이 많은데도 이 제도가 폐지되지 않는 이유는

→ 살림몫 탓에 골칫거리인데 이 틀을 걷어내지 않는 까닭은

→ 삶몫 때문에 말썽거리인데 이 얼개를 치우지 않는 뜻은

《이상한 정상가족》(김희경, 동아시아, 2017) 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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