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 시-LIM 시인선 1
고선경 지음 / 열림원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11.18.

노래책시렁 518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

 고선경

 열림원

 2025.1.10.



  2022년에 〈조선일보〉에 글을 내어 뽑히고서 선보인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이라고 합니다. ‘시-LIM 시인선’이라고 하면서 ‘젊은작가’라는 이름을 내세우는데, ‘젊다’란 “나이가 적다 + 부딪히고 넘어지며 절다”라는 두 가지 밑뜻이 흐르는 낱말인 줄 알까요? ‘젊은글’이란 온몸으로 ‘늙은담’에 달려들어 깨부수며 이 삶을 새롭게 가꾸면서 배우는 하루를 적는 글이라는 뜻이어야 어울립니다만, ‘부딪히는 삶’을 적는다기보다는 ‘낱말짜기’에 얽매인다고 느낍니다. 나이만 늘려서 낡기에 ‘늙다’라 합니다. 나이만 앞세우느라 어진빛이 안 보이기에 ‘늙은글(원로작가)’이라 합니다. 나이테가 굵어가는 나무는 둘레에 푸른바람을 일으키고 꽃내음이 더없이 향긋하듯, ‘어른글’이란 살림빛을 낳을 줄 아는 나이를 품을 노릇인데, 막상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어른글부터 드뭅니다. 숱한 늙은글부터 ‘낱말짜기’에 갇히니, 젊은글도 어느새 ‘부딪히는 삶’을 팽개친 채 이래저래 낱말만 신나게 짜는 늪에 스스로 잠겨든다고 느낍니다. 깎는말(욕)을 안 써야 하지는 않습니다만, ‘씨발’이라는 막말이 무슨 뜻인지 알면서 이런 말씨를 버젓이 쓰려나요? 얼뜬 늙은글을 갈아엎는 길은 언제나 하나이니, 바로 ‘일’입니다. 스스로 바람과 바다를 일으키듯, 땀방울로 이 삶을 일구는 ‘일’을 할 적에는 더없이 젊어서 빛나는 이야기를 담아 노래할 수 있습니다.


ㅍㄹㄴ


점심은 가볍게 먹자 / 그렇게 말하는 네가 좋다 (늪이라는 말보다는 높이라는 말이 좋아/19쪽)


내일도 놀이터에 하트가 남아 있을까? / 아이를 일으켜 세운 사람들은 제자리로 돌아가고 / 나는 제자리보다 테두리를 생각하네 (한양아파트/48쪽)


교수한테 내가 쓰다 만 시를 이어서 쓰라고 한다든지 / 집주인한테 이 집 내 거지? 문자를 보낸다든지 / 엄마한테는 친구랑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 이만 원 쥐여 주고 싶네 (디올 전속 디자이너가 내 옷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71쪽)


침대에 모로 누워 울다가 씨발! 하고 외쳤다 / 씨발…… 나직하게 읊조릴 수도 있었지만 / 누구라도 들어 주었으면 해서 소리를 질렀어 (검은 고양이와 자객/73쪽)


+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고선경, 열림원, 2025)


나를 슬프게 만들면 반드시 불행해질 거야

→ 내가 슬프면 넌 반드시 괴로워

→ 나를 울리면 넌 반드시 아파

12쪽


슬플수록 사나운 표정을 짓게 되는 내가 있고

→ 슬플수록 사납게 구는 내가 있고

→ 나는 슬플수록 사납고

12쪽


원래 낙과가 맛있습니다

→ 떨어져야 맛있습니다

→ 워낙 곤두가 맛있습니다

16쪽


이게 다 씨앗에서 시작된 거란 말이죠

→ 이 모두가 씨앗에서 비롯했단 말이죠

→ 다 씨앗이 처음이란 말이죠

→ 다 씨앗부터 있단 말이죠

→ 다 씨앗에서 퍼졌단 말이죠

17쪽


이렇게까지 미워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니

→ 이렇게까지 미워할 수 있다니

27쪽


나에게도 애도할 시간이 필요했다

→ 나도 눈물 흘릴 짬을 바란다

→ 슬퍼할 틈이 있어야 한다

30쪽


실은 나에게 마음이 없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 정작 나한테 마음이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 마치 내가 마음이 없다고 말하는 듯싶다

44쪽


내일도 놀이터에 하트가 남아 있을까

→ 이튿날 놀이터에 사랑이 있을까

→ 다음날 놀이터에 사랑이 남을까

48쪽


약속이나 마법처럼 석양이 폭신폭신 녹아내리고 있었다

→ 다짐이나 꽃힘처럼 놀이 폭신폭신 녹아내린다

→ 말씀이나 별빛처럼 노을이 폭신폭신 녹아내린다

49쪽


정중히 사과하면 아이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 가만히 빌면 아이는 울려는 얼굴짓이다

→ 곱게 고개숙이면 아이는 울 듯한 얼굴이다

57쪽


약간의 거리를 둔 채 계속해서 걸었다

→ 살짝 떨어져서 그대로 걷는다

→ 조금 틈을 두고서 걷는다

61쪽


내가 내 인생 잠깐 빌려주는 거니까 다들 부담은 안 가졌으면 좋겠네

→ 내가 내 삶 살짝 빌려주니까 다들 어려워하지 마

→ 내가 내 삶 슬쩍 빌려주니까 다들 꺼리지 마

72쪽


살아 있는 꽃의 냄새가 났다

→ 산꽃냄새가 난다

→ 꽃냄새가 싱그럽다

79쪽


뜨개질의 귀재여서

→ 뜨개질을 잘해서

→ 솜씨있게 떠서

→ 뜨개쟁이여서

→ 뜨개순이여서

95쪽


누군가가 나에게 제정신이냐고 물었고

→ 누가 나한테 멀쩡하냐고 묻고

→ 누가 나더러 제넋이냐고 묻고

97쪽


마음속에 생겨난 높은 행거가 내가 바라던 것은 아니었을 텐데

→ 마음속에 생겨난 높은 옷걸이는 내가 바라지 않았을 텐데

→ 마음속에 생겨난 높은 말코지는 내가 안 바랐을 텐데

→ 마음속에 생겨난 높은 횃대는 내가 바란 바 없을 텐데

130쪽


소파에 하트 모양 쿠션이 놓여 있기 마련이지

→ 폭신이에 사랑무늬 깔개를 놓게 마련이지

→ 걸상에 사랑그림 깔개를 놓게 마련이지

134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