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를 미리 읽은 서른여섯 분(공무원)한테 여섯 가지를 물어보는 종이(문제지)를 내야 한단다. 그래서 여섯 가지를 뽑았다. 책을 미리 읽고서 이야기를 들은 서른여섯 분이 낸 종이를 받아서 금(점수)까지 매겨서 보냈다. 이야기하는 사람 못잖게 듣는 사람도 금(평가)을 받아야 하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왜 여섯 가지를 물어보았는가 하는 풀이글을 붙여서 함께 보냈다.
꽃내음 바다읽기 책집자리 좋은책 국어
― ‘사고력 향상’으로 걸어가는 책씨와 책꽃 (2025.11.13. 창원대학교)
ㄱ. 글쓴이는 2018년 4월 1일에 들꽃내음을 따라 걷다가 어떤 책집에서 어떤 책을 만났을까요?
: 일본 도쿄 진보초 책거리에서 좀 떨어진 골목집에 깃든 ‘바둑책 전문책집’에서 ‘일본책’이 아닌 ‘한글책’을 새삼스레 만났습니다. 바둑책만 다루는 이곳은 “바둑책이 아닌 다른 책”은 모두 “100엔에 두 권”씩 골라가도 된다고 내놓습니다. 한일 두 나라 사이에서 인형극을 하는 사람이 주고받은 책이 나왔는데, 한국에서 인형극을 하던 분이 일본에서 인형극을 하던 분한테 띄운 책이었고, 아무래도 일본에서 인형극을 하던 분이 이슬로 떠나면서 조용히 흘러나온 책입니다. 이분 책꾸러미에 바둑책이 많아서 아마 바둑책집에서 통째로 거둔 듯하고, 그래서 바둑책이 아니던 ‘한글판 인형극 책’은 값싸게 길가에 나온 셈입니다. 책집마실만 하느라 지친 몸이었는데, 새봄을 맞이한 들꽃냄새가 안골목에서 풍겨서 이 꽃내음을 따라서 터덜터덜 걷다가 만난 작은책집은 “쉬엄쉬엄 책을 헤아리라”는 뜻을, 사월에서 오월로 건너갈 즈음 꽃빛이 얼마나 고운지 느긋이 맡으면 저절로 모든 책이 따라오는 줄 알려주었구나 싶습니다. 들꽃 한 송이가 바로 책이라고 속삭였어요.
ㄴ. 바다를 알려면 어떤 책을 읽으면 될까요?
: 바다를 알려면 ‘바다’를 만나고 품고 안으면 됩니다. 하늘을 알려면 ‘하늘’을 만나고 품고 안으면 됩니다. 아이를 알려면 ‘아이’를 만나고 품고 안아야 할 테지요. 인천을 알려면 인천으로 찾아가고, 인천에서 지내고, 인천에서 살아가고 일하고 쉬고 놀면 됩니다. 창원을 알려면 창원으로 찾아가고, 창원에서 살림하고, 창원에서 이웃을 만나서 두런두런 마을사람으로 살면 됩니다. “바다를 다룬 책”이란, 바다를 알려고 다가가서 오래오래 품고 사랑한 마음을 풀어낸 이야기입니다. “바다를 다룬 책”은 글쓴이마다 다 다르게 살아내며 품은 이야기가 흐르니, 다 다르게 바라보는 눈길, 곧 ‘바다를 보는 눈길’을 헤아릴 수 있는 책입니다. ‘바다를 보는 눈길’이 아닌 ‘바다를 알아갈 책’이란 언제나 ‘바다’ 그대로입니다. 바다를 이루는 물이 어떻게 이 별을 돌고도는지 지켜보고, 아지랑이가 어떻게 구름으로 모이고, 구름은 어떻게 비로 내리고, 비는 어떻게 샘물을 이루고, 샘물은 어떻게 솟아서 냇물로 흐르고, 냇물은 어떻게 흐르며 갯벌을 거쳐서 바다로 돌아가는지 온마음과 온몸으로 느껴야 바다를 알아가는 길입니다. 또한 ‘물’은 그대로 ‘바다’인 터라, 모든 물이 우리 몸을 어떻게 이루고 이 별에서 돌고돌고 어울리는지 헤아릴 때에 비로소 바다를 알 테지요. 이처럼 스스로 바다와 하나되어 살아가고 사랑하는 나날을 글로도 옮긴 책이 있다면, 선뜻 찾아나서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오늘 날씨는 물》 같은 그림책이 바다를 잘 보여주고, 《아모스와 보리스》 같은 그림책은 ‘바다와 삶과 동무를 보는 눈’을 포근하게 들려줍니다.
ㄷ. 책집을 열거나 하기에 좋거나 어울리는 자리는 어디일까요?
: 책집을 차리고 싶다면 어디에서나 차리면 됩니다. 가장 나은 곳이 없고, 가장 나쁜 곳이 없습니다. 서울 한복판이든 멧골 기스락이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책집지기로 일할 사람이 스스로 사랑하는 터전에서 스스로 살림을 짓는 자리이면 모두 아름답고 알맞춤합니다. 그러니까, 책집지기로서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림을 짓는 사랑을 푸르게 일구려 하는지 먼저 헤아린다면, 스스로 가장 어울리는 즐거운 자리를 스스로 찾아볼 만합니다. 책집지기부터 스스로 느긋하고 즐거운 책집이면, 책손으로 찾아가는 누구나 아늑하면서 새롭게 책바다와 책숲과 책마을을 나눌 수 있습니다.
ㄹ. 우리는 ‘좋은책’을 가려읽어야 할까요, 아니면 ‘살림책’을 읽으면 될까요?
: 우리가 책을 읽을 적에는 ‘좋은책’도 ‘좋지 않은 책’도 아닌 그저 ‘책’을 읽으면 됩니다. 그렇지만 ‘좋은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드높은 터라, ‘책’을 읽기보다는 ‘좋은책’에 쉽게 휩쓸리게 마련입니다. 더구나 ‘소개글’을 잔뜩 받거나 신문방송에 알려진 책으로 쉽게 손을 뻗기도 하며, 노벨상처럼 큰상을 받은 책을 읽어 볼 만하지 않겠느냐고 여기곤 합니다. 그렇지만 상을 받은 책은 ‘좋은책’이 아니라 ‘상받은 책’입니다. ‘상받은 책’은 ‘좋지 않은 책’도 아니되, 그냥 ‘책’이 아니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나거나 사귈 적에는 ‘사람’을 만나고 사귈 노릇입니다. 아이를 낳든 안 낳든 ‘아이’를 돌아봐야겠지요. ‘타고난 재주’가 있는 아이여야 할까요? 예쁘거나 잘생긴 아이여야 할까요? 우리는 ‘사람’이 아닌 ‘지위나 계급이나 돈이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할까요? ‘좋은 군수나 시장이나 대통령’도 아닌, ‘좋은 민원인이나 주민’도 아닌, 그저 ‘군수나 시장이나 대통령’과 ‘민원인과 주민’을 마주하면 될 뿐입니다. 언제나 책을 ‘책’으로 바라보고 마주할 적에 비로소 우리 스스로 눈뜨고 즐거운 오늘을 누리는 ‘한 사람’으로 든든히 섭니다.
ㅁ. ‘국어’와 ‘우리말’과 ‘한글’과 ‘훈민정음’은 서로 어떻게 다를까요?
: ‘국어’는 우리로 치자면 일제강점기에 일본 우두머리가 세운 이름입니다. 일본 우두머리는 “일본 우두머리를 섬기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국민’이라는 한자말을 외쳤습니다. “국민이 쓰는 말”이라는 뜻인 ‘국어’입니다. 그러니까 ‘국어 : 일본 우두머리를 섬기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일본 우두머리를 섬기는 뜻으로 쓰는 제국주의 군사용어’인 셈입니다. 일본은 ‘국민’과 ‘국어’라는 군사용어로 일본부터 억눌렀고, 우리나라와 중국과 대만을 식민지로 억누르면서 세 나라도 똑같이 ‘국어’라는 낱말을 쓰라고 윽박질렀습니다. 중국은 1945년 뒤로 ‘국어’를 버렸고, 대만은 1970년대에 ‘국어’를 버렸습니다만, 우리나라는 여태 그대로 쓸 뿐 아니라, ‘국립국어원’처럼 오히려 앞세워서 쓰기까지 합니다. ‘국어국문학’이라는 대학교 학과도 워낙 ‘일어일문학’을 가리키던 일본 제국주의 군사용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 ‘우리말’이라는 낱말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총칼로 억누르면서 ‘국어’라는 제국주의 군사용어를 쓰라고 괴롭히던 무렵에 처음으로 생긴 말, ‘새말’입니다. 홀로서기(독립운동)를 이루자면, 우리 누구나 스스로 눈뜨고 깨어난 사람이어야 하고, 눈뜨고 깨어나려면 제대로 배워야 하고, 제대로 배우려고 하면 ‘국어(일본말)’가 아니라 ‘한겨레 살림말’을 배울 노릇이기에, 이때에 ‘우리말’이라는 이름을 비로소 씁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면서 떨쳐일어난 물결을 고스란히 담은 이름이 ‘우리말’과 ‘우리글’입니다.
: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편 글씨인데, 처음에는 ‘글씨’가 아닌 ‘바른소리(정음)’였습니다. 그래서 ‘훈 + 민 + 정음’이라는 얼개입니다. 오늘 우리는 ‘훈민정음’을 ‘우리글’로 삼지만, 처음에는 ‘정언(正言)’이 아닌 ‘정음’이었다는 대목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중국과 우리나라는 서로 말이 다르기 때문에 ‘말(마음소리)’을 담는 그릇(글)도 달라야 하는데, ‘말소리’를 담을 만한 틀로 ‘훈민정음’을 엮었습니다. 그래서 ‘정언’이 아닌 ‘정음’이고, ‘소리무늬’인 셈입니다.
: 비록 ‘정언’이 아닌 ‘정음’으로 태어난 훈민정음이되, 권력자인 남자는 중국글인 한문을 ‘수글’로 높이면서 널리 쓴 500년입니다. 아무리 ‘우리 말소리를 담는 그릇’인 훈민정음이되 ‘암글’로 낮추면서 억누른 500년입니다. 더욱이 훈민정음은 양반층과 사대부 아니면 아무나 함부로 써서는 안 되었습니다. 조선이 무너질 무렵에 이르러 양반문서를 돈으로 사고팔던 즈음부터 ‘훈민정음’을 양반층 아닌 사람도 조금은 배워서 쓸 수 있을 만큼 나라가 조금 바뀝니다. 조선이 무너질 즈음 새길(신학문)을 배우려던 주시경이라는 젊은이가 “우리한테 우리글씨가 틀림없이 있는데 왜 안 쓰지?” 하고 궁금하게 여기면서 스스로 하나하나 배우는 동안, 또한 이웃말(외국말)을 배우는 사이에, 우리가 쓰는 말에도 틀(문법)이 있어야 하는 줄 깨닫고서, 처음으로 우리말틀(국어문법)을 세웁니다. 우리말틀을 처음으로 세운 주시경은 ‘소리무늬’인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는 우리나라에서 널리 쓰고 배우고 가르치기 어렵다고 느꼈고, ‘한글’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새로 짓습니다. 누구나 배우고, 누구나 쓰고, 누구나 나누면서, 홀로서기(독립운동)를 펴는 밑거름이 될, 하늘같은 글이요, 함께하는 글이자, 하나되는 글이고, 해처럼 환하게 비추면서 해맑고 하얗게 피어나는 마음을 담는 글이라는 뜻인 ‘한글’입니다. 이러면서 주시경은 이녁 이름을 ‘한힌샘’으로 새롭게 지었습니다.
ㅂ. ‘국어사전’을 쓰는 작은사람은 왜 여태 책집마실을 할까요?
: ‘국어사전’이라는 이름도 일본 제국주의 군사용어입니다. 그러나 ‘낱말책’이나 ‘우리말꽃’이라 하면 아직 못 알아듣는 분이 많기에 그냥 ‘국어사전’이라는 이름도 나란히 쓰는데, 낱말을 아우르는 꾸러미인 낱말책이라면, 모든 갈래 모든 말을 담을 수 있도록 살펴야 하기에, 온나라 책집을 꾸준히 찾아다니고 온나라 이웃을 널리 만나서 모든 갈래에서 다 다르게 쓰는 말결을 살핍니다. 높은말이나 낮은말은 따로 없지만, 고을말(사투리)과 삶말과 살림말과 숲말은 언제나 새롭게 곳곳에 있습니다. 새로 태어날 어린이도, 앞으로 이어갈 이 땅에서 살아갈 모든 어른도, 슬기롭고 즐겁게 마음을 북돋아서 생각을 일으킬 낱말을 씨앗 한 톨로 담아내려고 하기에 즐겁게 책집마실을 합니다. 책집에서 책씨를 얻고, 시골집에서 숲씨를 얻으면서, 보금자리에서 살림을 짓는 동안 사랑씨를 얻으니, 이 여러 씨앗을 아울러 말씨(말씨앗)로 풀어내어 담습니다.
2025.11.18.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