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개념 槪念


 개념을 이해하다 → 뜻을 알다 / 얼개를 헤아리다

 사회에 대한 개념이 생긴다 → 삶터를 알 수 있다 / 터전을 읽는다

 돈에 대한 개념이 없다 → 돈을 잘 모른다

 개념을 규정하다 → 뜻을 밝히다

 미(美)의 개념을 정의하다 → 아름다움을 밝히다 / 아름다움을 풀이하다


  ‘개념(槪念)’은 “1.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 2. [사회] 사회 과학 분야에서, 구체적인 사회적 사실들에서 귀납하여 일반화한 추상적인 사람들의 생각. 예를 들어 사람들이 많이 시청하는 프로그램을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때,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라는 개념이 생기게 된다 3. [철학] 여러 관념 속에서 공통된 요소를 뽑아내어 종합하여서 얻은 하나의 보편적인 관념. 언어로 표현되며, 일반적으로 판단에 의하여 얻어지는 것이나 판단을 성립시키기도 한다”를 가리킨다고 해요. ‘뜻·결·생각’으로 풀어낼 만한데, ‘얼개·얼거리·짜임·짜임새·짜임결’로 풀어내어도 어울립니다. ‘길·길눈·길꽃’이나 ‘글읽기·글읽눈·글읽꽃’으로 풀고, ‘꾸밈새·꾸밈결’이나 ‘넋·얼·느끼다’로 풀어 봅니다. ‘마음·마음길·마음밭·마음빛’이나 ‘말·말뜻·글뜻·얘기·이야기’로 풀 수 있어요. ‘밑·밑동·밑감·밑거리·밑길·밑뜻’이나 ‘밑바탕·밑절미·밑꽃·밑틀·밑판’이나 ‘바탕·보다·빛·뼈대·줄거리·줄기’로 풀지요. ‘틀·틀거리·판’이나 ‘알다·앎꽃·앎빛’으로 풀어냅니다. ‘읽다·헤아리다·밝히다·풀이하다’나 ‘삶읽기·삶눈·살림눈’으로 풀고요. ‘소·소리·숨·숨결·숨빛’이나 ‘씨·씨말·씨앗말·씨알·씨앗’으로 풀어도 됩니다. ㅍㄹㄴ



단세포적 부분 개념이 아니라

→ 낱낱이 아니라

→ 낱을 보기보다는

→ 그냥 생각하지 않고

《박정희의 유산》(김재홍, 푸른숲, 1998) 355쪽


불법주차라는 개념은 이 나라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 마구댄다는 생각은 이 나라에는 없다

→ 막선다는 말은 이 나라에는 있지 않다

《그대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가》(사기사와 메구무/김석희 옮김, 자유포럼, 1999) 117쪽


‘특례’라는 단어에 포함되는 특혜가 사라지고 평준화만 고려된 개념

→ ‘따로’라는 낱말에 깃든 덤이 사라지고 고르게만 살핀 길

→ ‘꽃덤’이라는 말에 담긴 덤이 사라지고 똑같이 헤아린 길

《나는 공돌이》(전창훈, 참솔, 2004) 145쪽


비록 자연조건이 ‘우리’와 반대되는 개념의 존재는 아니라 할지라도

→ 비록 해바람비가 ‘우리’와 다르지 않다 할지라도

→ 비록 들내숲이 ‘우리’와 거꾸로가 아니라 할지라도

《나를 찾아서》(하일지, 민음사, 2006) 223쪽


인도 정부는 비폭력이란 개념을 지향해 왔습니다

→ 인도는 맨손이란 길을 걸어 왔습니다

→ 인도는 맨몸이란 삶을 바라보며 왔습니다

→ 인도는 참고요란 빛을 보며 걸었습니다

《시대의 양심 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데이비드 바사미언/강주헌 옮김, 시대의창, 2006) 145쪽


평생직장의 개념 속에서 큰 어려움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

→ 온삶일터란 생각으로 그리 어렵잖게 살아갈 수 있었다

→ 온일터로 여기며 퍽 어렵잖게 살아갈 수 있었다

《중년의 사회학》(정성호, 살림, 2006) 84쪽


창작이라는 개념은 아직도 고상한 아우라를 듬뿍 뒤집어쓰고 있다

→ 지음이라고 하면 아직도 곱상한 빛을 듬뿍 뒤집어쓴다

《크로스 : 정재승 + 진중권》(정재승·진중권, 웅진지식하우스, 2009) 48쪽


하지만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은 일의 형태라기보다는 착취의 개념이지요

→ 그렇지만 우리나라 틈새자리는 일자리라기보다는 우려내기이지요

→ 그러나 우리나라 틈일자리는 일자리라기보다는 빼앗는 얼개이지요

→ 그런데 우리나라 사잇자리는 일자리라기보다는 벗겨먹는 굴레이지요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심상정, 웅진지식하우스, 2013) 118쪽


이야기 없이 어떻게 에너지, 분자, 지질층, 상관관계 같은 새로운 개념들을 소개할 수가 있겠는가

→ 이야기 없이 어떻게 기운, 톨, 땅빛, 서로얽힘 같은 새로운 길을 들려줄 수가 있겠는가

《양자우연성》(니콜라스 지생/이해웅·이순칠 옮김, 승산, 2015) 50쪽


인류 역사상 최초의 시인이 탄생한 것은 인간이 최초로 개념을 발견한 그 순간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 사람이 살며 처음으로 노래님이 태어난 때는 사람이 처음으로 생각을 찾아낸 그때라고

《낙타는 십 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허만하, 최측의농간, 2016) 232쪽


젊은 나이에 이러한 개념을 설명하는 기념비적인 논문을 썼다

→ 젊은 나이에 이러한 뜻을 밝히는 엄청난 글을 썼다

→ 젊은 나이에 이러한 길을 다루는 놀라운 글자락을 썼다

→ 젊은 나이에 이러한 밑동을 따지는 훌륭한 글월을 썼다

→ 젊은 나이에 이러한 바탕을 얘기하는 대단한 글을 썼다

《양자역학 7일 만에 끝내기》(후쿠에 준/목선희 옮김, 살림Friends, 2016) 74쪽


식물이 처음 만들어내는 진정한 의미의 새 이파리는 새로운 개념이다

→ 푸나무가 내놓는 잎은 그야말로 새롭다

→ 풀과 나무에 돋는 잎은 참으로 새롭다

《랩걸》(호프 자런/김희정 옮김, 알마, 2017) 96쪽


이야기라는 속성 자체가 시제의 개념이 있고

→ 이야기에는 이미 때가 깃들고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이동진, 예담, 2017) 125쪽


저작권 개념이 없는 출판사가

→ 그림몫 생각이 없는 펴냄터가

→ 그림삯을 생각 않던 펴낸곳이

→ 지음몫을 아예 모른 펴는곳이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조영주, 파사주, 2018) 46쪽


동물복지에 대한 개념을 가진 사람이

→ 짐승살림을 아는 사람이

→ 짐승길을 헤아리는 사람이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하재영, 창비, 2018) 98쪽


다시 본래의 독립영화 개념으로 돌아가서

→ 다시 작은그림 얘기를 하자면

→ 혼그림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창작수업》(변영주, 창비, 2018) 17쪽


말하자면 홈스테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 말하자면 집밤하고 비슷한 얼개로

→ 말하자면 집에서 묵는다 할 수 있어

《북한 여행 회화》(김준연·채유담, 온다프레스, 2019) 63쪽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는 종합적 환경을 아우르는 적극적인 개념으로 그 뜻이 넓어지고 있어요

→ 조용히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아우르는 말로 뜻을 넓혀요

→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터를 두루 헤아리는 말로 뜻을 넓혀요

→ 조용히 살아갈 수 있는 자리를 모두 살피는 말로 뜻을 넓혀요

《선생님, 평화가 뭐예요?》(배성호·김규정, 철수와영희, 2019) 18쪽


감정이입은 소설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개념이다

→ 마음읽기는 지음글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다

→ 마음담기는 꾸밈글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다

→ 마음쓰기는 글을 지을 때 빠지지 않는 말이다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김탁환, 해냄, 2020) 169쪽


최근에는 중국과 일본에서 산림욕이라고 부르는 개념이 서구에서도 대중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 요즘에는 중국과 일본에서 숲씻이라고 하는 길이 하늬녘에서도 눈길을 끈다

《야생의 위로》(에마 미첼/신소희 옮김, 푸른숲, 2020) 17쪽


평소 흔하게 보던 것의 개념을 바꿔 보고 싶었다고 할까

→ 흔하게 보던 틀을 바꿔 보고 싶다고 할까

→ 늘 보던 모습을 바꿔 보고 싶다고 할까

《매일 휴일 3》(신조 케이고/장혜영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2) 69쪽


어떤 개념이 줄어든다는 건 사람들이 그걸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잖아요

→ 어떤 뜻이 줄어든다면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잖아요

→ 어떤 밑감이 줄어든다면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잖아요

《왜 우리는 차별과 혐오에 지배당하는가?》(이라영과 여섯 사람, 철수와영희, 2024)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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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부산물 副産物


 경제 발전의 부산물 → 돈살림 뒷밥 / 돈벌이에 덩달아

 환경 오염은 공업화의 부산물이다 → 뚝딱터가 늘면서 들숲이 망가진다


  ‘부산물(副産物)’은 “1. 주산물의 생산 과정에서 더불어 생기는 물건 2. 어떤 일을 할 때에 부수적으로 생기는 일이나 현상”이라고 합니다. ‘검불·검부러기’나 ‘고물·떡고물·보숭이’로 손질합니다. ‘보풀·부풀·보푸라기·부푸러기·부스러기’나 ‘대팻밥·뒷밥·톱밥’으로 손질하고, ‘남기다·남다·나머지’나 ‘더·더더·더하다’로 손질하지요. ‘덤·덤덤·덩달아’나 ‘덧·덧거리·덧감·덧달다·덧붙다’로 손질해도 어울립니다. ‘때문·말미암다·머금다’나 ‘몫·모가치·밥’으로 손질하고요. ‘지스러기·지저깨비·지푸라기·짚풀’로 손질하며, ‘찌꺼기·찌끄러기·찌끄레기·찌끼’나 ‘티·티끌’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ㅍㄹㄴ



덕분에 나는 녀석이 먹고 남긴 부산물을 살펴볼 수 있었다

→ 그래서 나는 녀석이 먹고 남긴 것을 살펴볼 수 있었다

→ 그래서 나는 녀석이 먹고 무엇을 남겼나 살필 수 있었다

→ 그래서 나는 녀석이 먹은 찌꺼기를 살펴볼 수 있었다

→ 그래서 나는 녀석이 먹은 찌끄러기를 살펴볼 수 있었다

《귀소 본능》(베른트 하인리히/이경아 옮김, 더숲, 2017) 262쪽


저는 이 모든 게 부산물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 저는 이 모두가 고물이라고 여겨요

→ 저는 이 모두가 부스러기라고 봐요

→ 저는 임 모두가 뒷밥이라고 느껴요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이동진, 예담, 2017) 91쪽


냉소란 대체로 일종의 부산물이며

→ 비웃음이란 으레 덤이며

→ 비웃음이란 흔히 찌꺼기이며

→ 찬웃음이란 거의 나머지이며

→ 찬웃음이란 이른바 열매이며

《동무론》(김영민, 최측의농간, 2018) 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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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단의 오르간 내 친구는 그림책
요코타 미노루 / 한림출판사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5.8.31.

그림책시렁 1466


《서커스단의 오르간》

 요코타 미노루

 이영준 옮김

 한림출판사

 1994.5.1.



  태어난 집이 시골이라서 시골에서 자라는 사람이 있고, 태어난 집이 임금집이라서 임금씨를 물려받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나든 좋거나 나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배울 삶을 스스로 골라서 그곳에 있을 뿐입니다. 도무지 시골일이 안 맞는다고 여겨서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죽어도 임금은 못 된다고 여겨서 괴로운 사람이 있어요. 우리는 얼마든지 ‘다른 삶’을 맛볼 수 있습니다. 굳이 ‘첫집’에서 늙어죽어야 하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새집’을 찾아나서면서 스스로 가꾸고 북돋울 만합니다. 《서커스단의 오르간》은 벌써 사라진 그림책입니다만, ‘임금’으로 태어나서 일하며 살아갈 뜻이 터럭만큼도 없던 아이가 어쩌다가 ‘임금님’까지 되어야 한 곳에서 스스로 새길을 찾아내면서 가볍게 임금집을 내려놓고서 떠나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임금(나라지기)이란 놈이 자리를 박차고 떠나면 어떡하느냐고 따질 수 있습니다만, 임금(나라지기)이 없기에 나라가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습니다. 나라는 ‘임금’ 한 놈이 이끌지 않거든요. 바로 다 다른 수수한 사람이 저마다 보금자리를 돌보는 숨결이 있기에 ‘나라’도 ‘나’도 나란히 있어요. 나를 버리는 짓은 ‘나라사랑(애국)’이 아닙니다. 나를 찾는 ‘나찾기’가 시나브로 ‘나사랑’이면서 ‘나라사랑’입니다.


#?田稔 #よこたみのる

#てまわしオルガン #はなののびるおうさま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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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첫꽃 두꽃 석꽃 흙꽃



  어린날을 늘 되새긴다. 어제하고 오늘하고 모레는 언제나 같기에, 오늘을 돌아보면 바로 어제가 떠오르고, 어제를 떠올리면 어느새 모레가 보인다. 일곱 살에도 아홉 살에도 열한 살에도 열세 살에도 열다섯 살에도, 으레 모레를 보았다. 나중에 이 ‘모레보기’를 어려운 말로 ‘미래투시’라 일컫는 줄 알았고, 누구나 앞보기(미래투시)를 하되 못 받아들이거나 안 받아들이는구나 싶었다.


  어린배움터를 다니던 어느 날, 동무들이 와하하 깔깔 까르르 웃으면서 서로서로 “난 ○○꽃이야!” 하며 놀았다. 여러 동무 사이에서 나 혼자 웃지 못 했다. 나로서는 나를 가리킬 꽃이 하나도 안 떠올랐다. 여러 동무는 그냥그냥 곱거나 예쁜 꽃이름을 드는 듯싶었지만, 곰곰이 보면 동무가 스스로 읊는 꽃이름은 언제나 이 아이한테 걸맞아 보였다. 다들 고운꽃이네. 동무들은 하나같이 이쁜꽃이네.


  웃음꽃이 피는 자리에서 혼자 못 웃으면서 멍하니 생각에 잠기다가 벌떡 깨어난다. “그렇구나, 나는 꽃이 피어나는 자리에 있는 티끌만 한 흙알갱이로구나. 나는 꽃이 아니었어. 나는 흙이었어.”


  내가 나를 알아보고 나서야 빙그레 웃는다. 환하게 웃으면서 “응, 나는 ‘꽃을 피우는 들숲에 있는 흙’이야.” 하는 말이 터져나왔다. 내 말을 들은 동무들은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쟤는 암말도 않다가 갑자기 뭔 소리래?” 하는 티를 느꼈지만 그저 신나서 “너희들은 고운꽃 이쁜꽃이고, 나는 너희가 고운꽃 이쁜꽃으로 빛나도록 땅바닥을 이루는 흙이지.” 하고 덧붙였다.


  사람들이 모조리 꽃보기만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다. 사람들이 마냥 꽃만 쳐다보든 말든 대수로울 까닭이 없다. 아니, ‘꽃을 피우는 들숲에 있는 흙’이란, 누가 저를 쳐다보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눈을 감고서 온빛을 꽃한테 내어줄 뿐이다. 사람들이 꽃을 잘 보려면 흙이 단단해야겠지. 꽃이 피어나는 자리는 흙이 보드라워야 할 테고. 흙은 빗물을 품을 노릇이다. 흙은 해바람을 담을 노릇이다. 흙은 뭇벌레에 뭇나비를 반길 노릇이다. 흙은 풀과 나무한테 자리를 내주면서 나란히 들숲메를 이룰 노릇이다.


  꽃을 피우는 들숲에 있는 흙이기에 모든 다 다른 꽃을 바라본다. 다 다른 꽃이 어느 철과 달과 날에 스스로 가장 눈부시게 깨어나고 돋아나고 피어나면서 웃음노래를 펴는지 지켜본다. 흙이라는 자리에 있기에 온꽃을 바라볼 만하구나 싶다. 흙이라는 몸을 입기에 온빛을 펼 만하구나 싶다. 흙이라는 마음을 알아차리기에 온사랑이란 언제나 온씨앗인 줄 알아보며 배우는구나 싶다. 2025.6.16.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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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2025.8.30. 헌옷 (헌옷수거함)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하며 살림돈을 벌던 1995, 1998∼99년에는 ‘갈아입을 옷’이 없다시피 했다. 갓 푸른배움터를 마치고서 서울에서 배움이(대학생)로 지내던 1995년에도, 싸움터(군대)를 다녀오고서 다시 새뜸나름이를 하며 배움이로 지내던 1998∼99년에도 새옷을 한 벌조차 산 적이 없다. 혼살림을 꾸리다 보니, 그무렵 라면 한 자루 값인 150원조차 없기 일쑤라서, ‘신문사지국 옆 구멍가게’에 ‘라면 한 자루 150원 외상’을 달고서 얻어먹곤 했다. 그때 150원으로 라면 한 자루를 외상으로 사면, 두 토막을 내어 하루에 한 토막씩 먹고, 사흘째와 나흘째에는 양념(스프)을 심심하게 푼 멀건 국물을 마시면서 버텼다.


  가난하게 버틴 지난날인데, 책을 사읽을 값을 대느라, 또 일삯(신문배달 월급) 가운데 토막(1/2)은 곧장 돈터(은행)에 넣고서 잠그느라, 밥과 옷에는 아예 돈을 안 쓰다시피 했다. 하루이틀이나 사나흘쯤은 굶어도 견딜 만하다. 물을 마셔서 배를 채우면 되니까. 아름다운 책을 읽으면 배고픈 줄 모르게 마련인데, 안 아름다운 책을 잘못 골라서 읽다 보면 훨씬 배고프다.


  굶으면서 책을 사읽은 터라, ‘배고픈 하루를 잊는 이야기’를 펴는 책이랑 ‘배고픈 하루가 더 배고픈 줄 느끼는 겉치레 줄거리’에 갇힌 책을 확 알아볼 수 있었다. 그때나 이때나 느끼는 한 가지가 있으니, 사람들이 널리 읽거나 추켜세우는 책일수록 ‘배고픈 몸으로 읽을수록 더 배고팠’다. 사람들이 등돌리거나 안 읽거나 안 추켜세우는 책일수록 ‘배고픈 하루를 감쪽같이 잊으면서 눈망울을 빛낼 이야기’가 흐르기 일쑤이기도 했다.


  새벽 02∼05시 사이에 두바퀴(자전거)를 달려서 새뜸나름이로 일하노라면, 윗옷과 아랫옷이 온통 땀으로 젖는다. 두바퀴조차 땀범벅이다. 내가 돌리는 새뜸(신문)이 내 땀으로 젖지 않도록 따로 수건을 챙겨서 먼저 수건으로 손땀을 훔치고서 새뜸을 쥐어 집집마다 돌렸다. ‘비도 안 오는 날’인데 새벽에 집에 갓 들어온 새뜸에 빗방울 같은 물방울이 떨어진 자국이 있다면, 모두 ‘새뜸나름이 땀방울’이다.


  그나저나 한겨울에도 5분만 일하면 어느새 온몸이 땀범벅이었기에, 한겨울에도 깡똥소매에 깡똥바지 차림으로 일했다. 이렇게 일하면서 보니, 옷은 땀에 쉽게 삭더라. 그렇지만 새옷을 살 돈이 없다. 1995, 1998∼99년에 새뜸나름이로 일한 곳은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이다. 이문동·휘경동·석관동·회기동을 골목골목 누볐는데, 하루일을 마치고서 ‘헌옷’을 뒤지곤 했다. 이무렵은 헌옷모음칸을 안 막았다. 누구나 넣을 수 있고, 누구나 뒤적여서 헌옷을 골라 갈 수 있었다. 안 입는 옷을 내놓은 이웃님이 얼마나 고맙고 반가웠는지 모른다. 이따금 이불이 나오면, 신문사지국에서 함께 쓰려고 기쁘게 날랐다. 단단하고 야무진 책칸이 나오면 혼자 등짐으로 신문사지국까지 날라서 함께 쓰곤 했다.


  가난한 사람은 먼나라에도 있고, 우리나라에도 있다. 가난한 사람은 헌책이건 헌옷이건 ‘손길책’에 ‘손길옷’이라고 느낀다. 손길이 닿은 살림을 새롭게 가다듬고 돌보면서 오래오래 건사하는 가난살림은 가볍게 가만가만 수수하게 걸어간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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