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첫꽃 두꽃 석꽃 흙꽃



  어린날을 늘 되새긴다. 어제하고 오늘하고 모레는 언제나 같기에, 오늘을 돌아보면 바로 어제가 떠오르고, 어제를 떠올리면 어느새 모레가 보인다. 일곱 살에도 아홉 살에도 열한 살에도 열세 살에도 열다섯 살에도, 으레 모레를 보았다. 나중에 이 ‘모레보기’를 어려운 말로 ‘미래투시’라 일컫는 줄 알았고, 누구나 앞보기(미래투시)를 하되 못 받아들이거나 안 받아들이는구나 싶었다.


  어린배움터를 다니던 어느 날, 동무들이 와하하 깔깔 까르르 웃으면서 서로서로 “난 ○○꽃이야!” 하며 놀았다. 여러 동무 사이에서 나 혼자 웃지 못 했다. 나로서는 나를 가리킬 꽃이 하나도 안 떠올랐다. 여러 동무는 그냥그냥 곱거나 예쁜 꽃이름을 드는 듯싶었지만, 곰곰이 보면 동무가 스스로 읊는 꽃이름은 언제나 이 아이한테 걸맞아 보였다. 다들 고운꽃이네. 동무들은 하나같이 이쁜꽃이네.


  웃음꽃이 피는 자리에서 혼자 못 웃으면서 멍하니 생각에 잠기다가 벌떡 깨어난다. “그렇구나, 나는 꽃이 피어나는 자리에 있는 티끌만 한 흙알갱이로구나. 나는 꽃이 아니었어. 나는 흙이었어.”


  내가 나를 알아보고 나서야 빙그레 웃는다. 환하게 웃으면서 “응, 나는 ‘꽃을 피우는 들숲에 있는 흙’이야.” 하는 말이 터져나왔다. 내 말을 들은 동무들은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쟤는 암말도 않다가 갑자기 뭔 소리래?” 하는 티를 느꼈지만 그저 신나서 “너희들은 고운꽃 이쁜꽃이고, 나는 너희가 고운꽃 이쁜꽃으로 빛나도록 땅바닥을 이루는 흙이지.” 하고 덧붙였다.


  사람들이 모조리 꽃보기만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다. 사람들이 마냥 꽃만 쳐다보든 말든 대수로울 까닭이 없다. 아니, ‘꽃을 피우는 들숲에 있는 흙’이란, 누가 저를 쳐다보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눈을 감고서 온빛을 꽃한테 내어줄 뿐이다. 사람들이 꽃을 잘 보려면 흙이 단단해야겠지. 꽃이 피어나는 자리는 흙이 보드라워야 할 테고. 흙은 빗물을 품을 노릇이다. 흙은 해바람을 담을 노릇이다. 흙은 뭇벌레에 뭇나비를 반길 노릇이다. 흙은 풀과 나무한테 자리를 내주면서 나란히 들숲메를 이룰 노릇이다.


  꽃을 피우는 들숲에 있는 흙이기에 모든 다 다른 꽃을 바라본다. 다 다른 꽃이 어느 철과 달과 날에 스스로 가장 눈부시게 깨어나고 돋아나고 피어나면서 웃음노래를 펴는지 지켜본다. 흙이라는 자리에 있기에 온꽃을 바라볼 만하구나 싶다. 흙이라는 몸을 입기에 온빛을 펼 만하구나 싶다. 흙이라는 마음을 알아차리기에 온사랑이란 언제나 온씨앗인 줄 알아보며 배우는구나 싶다. 2025.6.16.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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