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2025.8.30. 헌옷 (헌옷수거함)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하며 살림돈을 벌던 1995, 1998∼99년에는 ‘갈아입을 옷’이 없다시피 했다. 갓 푸른배움터를 마치고서 서울에서 배움이(대학생)로 지내던 1995년에도, 싸움터(군대)를 다녀오고서 다시 새뜸나름이를 하며 배움이로 지내던 1998∼99년에도 새옷을 한 벌조차 산 적이 없다. 혼살림을 꾸리다 보니, 그무렵 라면 한 자루 값인 150원조차 없기 일쑤라서, ‘신문사지국 옆 구멍가게’에 ‘라면 한 자루 150원 외상’을 달고서 얻어먹곤 했다. 그때 150원으로 라면 한 자루를 외상으로 사면, 두 토막을 내어 하루에 한 토막씩 먹고, 사흘째와 나흘째에는 양념(스프)을 심심하게 푼 멀건 국물을 마시면서 버텼다.
가난하게 버틴 지난날인데, 책을 사읽을 값을 대느라, 또 일삯(신문배달 월급) 가운데 토막(1/2)은 곧장 돈터(은행)에 넣고서 잠그느라, 밥과 옷에는 아예 돈을 안 쓰다시피 했다. 하루이틀이나 사나흘쯤은 굶어도 견딜 만하다. 물을 마셔서 배를 채우면 되니까. 아름다운 책을 읽으면 배고픈 줄 모르게 마련인데, 안 아름다운 책을 잘못 골라서 읽다 보면 훨씬 배고프다.
굶으면서 책을 사읽은 터라, ‘배고픈 하루를 잊는 이야기’를 펴는 책이랑 ‘배고픈 하루가 더 배고픈 줄 느끼는 겉치레 줄거리’에 갇힌 책을 확 알아볼 수 있었다. 그때나 이때나 느끼는 한 가지가 있으니, 사람들이 널리 읽거나 추켜세우는 책일수록 ‘배고픈 몸으로 읽을수록 더 배고팠’다. 사람들이 등돌리거나 안 읽거나 안 추켜세우는 책일수록 ‘배고픈 하루를 감쪽같이 잊으면서 눈망울을 빛낼 이야기’가 흐르기 일쑤이기도 했다.
새벽 02∼05시 사이에 두바퀴(자전거)를 달려서 새뜸나름이로 일하노라면, 윗옷과 아랫옷이 온통 땀으로 젖는다. 두바퀴조차 땀범벅이다. 내가 돌리는 새뜸(신문)이 내 땀으로 젖지 않도록 따로 수건을 챙겨서 먼저 수건으로 손땀을 훔치고서 새뜸을 쥐어 집집마다 돌렸다. ‘비도 안 오는 날’인데 새벽에 집에 갓 들어온 새뜸에 빗방울 같은 물방울이 떨어진 자국이 있다면, 모두 ‘새뜸나름이 땀방울’이다.
그나저나 한겨울에도 5분만 일하면 어느새 온몸이 땀범벅이었기에, 한겨울에도 깡똥소매에 깡똥바지 차림으로 일했다. 이렇게 일하면서 보니, 옷은 땀에 쉽게 삭더라. 그렇지만 새옷을 살 돈이 없다. 1995, 1998∼99년에 새뜸나름이로 일한 곳은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이다. 이문동·휘경동·석관동·회기동을 골목골목 누볐는데, 하루일을 마치고서 ‘헌옷’을 뒤지곤 했다. 이무렵은 헌옷모음칸을 안 막았다. 누구나 넣을 수 있고, 누구나 뒤적여서 헌옷을 골라 갈 수 있었다. 안 입는 옷을 내놓은 이웃님이 얼마나 고맙고 반가웠는지 모른다. 이따금 이불이 나오면, 신문사지국에서 함께 쓰려고 기쁘게 날랐다. 단단하고 야무진 책칸이 나오면 혼자 등짐으로 신문사지국까지 날라서 함께 쓰곤 했다.
가난한 사람은 먼나라에도 있고, 우리나라에도 있다. 가난한 사람은 헌책이건 헌옷이건 ‘손길책’에 ‘손길옷’이라고 느낀다. 손길이 닿은 살림을 새롭게 가다듬고 돌보면서 오래오래 건사하는 가난살림은 가볍게 가만가만 수수하게 걸어간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