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2109 : 생수 트레이 테이블 위


생수를 올린 트레이를 테이블 위에 놓았을 때

→ 샘물을 그릇에 올려 자리에 놓을 때

→ 물을 받침에 올려 자리에 놓을 때

《내일을 위한 내 일》(이다혜, 창비, 2021) 79쪽


모든 말은 모든 다른 삶을 맞아들이면서 겪거나 헤아리거나 받아들인 마음을 나타냅니다. 말과 마음과 삶은 나란히 흐릅니다. 삶을 마주할 적에 그냥그냥 보낸다면 우리 입을 거쳐서 나오는 말도 그냥그냥 어지럽거나 갈피가 없습니다. 어떤 삶을 마주하든 찬찬히 짚고 생각해 볼 적에는 차분히 가다듬고 추스르게 마련입니다. “생수를 올린 트레이”란 무엇일까요. “물을 올린 그릇”이겠지요. “테이블 위에 놓았을”은 말이 안 됩니다. “자리 위”는 하늘이니까요. “물을 받침에 올려”서 “자리에 놓을”이라고 해야 올바릅니다. “자리 위”가 아니라 “자리‘에’” 놓습니다. ㅍㄹㄴ


생수(生水) : 1. 샘구멍에서 솟아 나오는 맑은 물 ≒ 산물 2. [기독교] 영원한 영적 생명에 필요한 물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생명수

트레이 : x

tray : 1. 쟁반 2.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납작한 플라스틱) 상자

테이블(table) : → 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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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O 마오 23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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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9.12.

책으로 삶읽기 1051


《마오 23》

 타카하시 루미코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25.8.25.



《마오 23》(타카하시 루미코/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25)을 돌아본다. 스물석걸음째에 이르자, 드디어 수수께끼 하나를 걷는다. 왜 이렇게 ‘죽음 없는 쳇바퀴’를 오래 걸어야 했는지 알아차린다. ‘쳇바퀴를 끝내는 길’이란 ‘하나만 남기고 모두 쓰러져야 하는 싸움판’이라지. 그런데 “일꾼 아닌 속임꾼”이나 ‘싸움꾼·돈꾼·힘꾼’일 적에는 스스로 쳇바퀴에 휩쓸린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속지 않을 뿐더러, 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어떤 돈이나 힘이나 이름에 휩쓸리지 않는다. 일을 안 하기에 휘둘린다. ‘일거리’가 아닌 ‘돈거리(돈이 될 거리)’에 눈이 벌겋기에 휘청거린다. 언제 어디에서나 매한가지이다. 스스로 어느 곳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어떻게 맺고 푸는 삶을 걸어가려는지 생각할 노릇이다. 생각하기에 길을 낸다. 이 길을 내기까지 즈믄해가 걸릴 수 있고, 온이나 열 해가 걸릴 수 있다. 어느 만큼 걸리든 차분하고 고요하게 마음을 다스릴 적에 모두 일깨우는 빛줄기로 피어난다.


ㅍㄹㄴ


“잊지 마라, 나노카. 대지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다.” (55쪽)


“사람은 제 목숨이 아까워 남을 속이고 배신하지.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저주하고 죽인다. 그 삿된 마음이 제자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겠지.” (103쪽)


‘그건 환상이 아니었어. 나츠노 씨는 이제 없는 거야.’ (131쪽)


‘난감하군. 아무도 구원받을 길이 없어.’ (168쪽)


“사람을 죽여버리면 어둡고 꺼림칙한 것이 마음에 남으니까.” (185쪽)


#たかはしるみこ #高橋留美子 #MAO


+


대지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다

→ 땅은 언제나 너와 함께 있다

→ 들판은 언제나 너와 함께 있다

55쪽


그 삿된 마음이 제자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겠지

→ 아이들은 다라운 마음으로 더욱 단단하겠지

→ 아이들은 못된 마음으로 더욱 딴딴하겠지

→ 아이들은 몹쓸 마음으로 더욱 바위같겠지

103쪽


그건 환상이 아니었어. 나츠노 씨는 이제 없는 거야

→ 꿈이 아니었어. 나츠노 씨는 이제 없어

→ 거품이 아니었어. 나츠노 씨는 이제 없어

131쪽


난감하군. 아무도 구원받을 길이 없어

→ 고약하군. 아무도 건져낼 길이 없어

→ 까다롭군. 아무도 돌볼 길이 없어

168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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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내 일 - 일 잘하는 여성들은 어떻게 내 직업을 발견했을까?
이다혜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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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9.12.

까칠읽기 95


《내일을 위한 내 일》

 이다혜

 창비

 2021.1.15.



누구나 즐겁게 새하루를 여는 첫가을 아침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시골에서도 서울에서도 아이어른이 나란히 철갈이나 철맞이를 헤아릴 수 있기를 빈다. 여름이 저물 적에는 여름을 맛보고, 겨울이 다가올 적에는 겨울을 겪으며, 새봄이 찾아올 적에는 새봄을 느끼면서 조금씩 철들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구나 철이 들기에 어른으로 선다. 철들지 않으면 어른이 아니라 철바보이다. 나이는 많다지만, 나무처럼 든든히 나이테가 늘어나며 너른 품을 베풀지 않는다면, 어른이 아닌 그저 늙은 몸뚱이일 뿐이다.


일이란 무엇인가. ‘일’은 ‘일다’와 한동아리이다. 바람이 일고 물결이 일듯, 스스로 일어서 일으키고 일어서는 길이 ‘일’이다. 남이 시키면 ‘심부름’이다. 돈을 벌면 ‘돈벌이’이다. 돈을 벌려고 사고팔 적에는 ‘장사’이다. 장사하는 곳을 차리면 ‘가게’이다. 이 얼거리를 읽어야 ‘일’을 알고 ‘돈벌이(직업)’가 무엇인지 제대로 바라본다.


《내일을 위한 내 일》은 한자말 ‘내일(來日)’과 우리말 “내 일”을 말장난처럼 맞추었다. 다만, 말장난처럼 맞추되, 두 낱말에 흐르는 말밑과 말빛은 못 맞추고 못 보았구나 싶다. 이 책을 여민 분은 “우리 터전에서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제법 쥐었다고 여길 만한 순이” 여러 사람을 만나서 나눈 말을 묶는다. 어찌 보면 이 책에서 만난 분과 같은 길을 갈 수도 있지만, 누구나 갈 수 있지는 않다. 더구나 그런 자리에 ‘올라서’려면, 아이들이 불굿(입시지옥)에서 겪었듯, 또래나 이웃을 다시금 밟아야 한다. 이른바 ‘꼭두’라는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불태워서 싸워야 했는가.


그런데, 싸워서 자리를 거머쥔 분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를테면 ‘배구’라는 길을 가는 사람으로는 양효진 씨가 아니라 김해란 씨를 만나야 어울리지 않을까? 양효진처럼 “타고난 키와 몸”은 드물다. 이미 타고난 키와 몸으로 배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앞세운다면, 키도 작고 몸도 여린 아이들은 뭘 봐야 하지? 김해란 씨는 키도 몸도 작지만, 스스로 바닥을 구르고 다시 일어서고 또 땀흘리면서 “우리나라 배구판에서 누구도 이루기 어려운 일”을 일구었다. 더구나 김해란 씨는 아기를 낳으려고 한동안 쉬고서 다시 뛰기까지 했으며, 이동안 곁님이 아기를 돌보면서 “순이로서 뜻을 펴고 길을 내는 삶”을 북돋았다.


모레(내일·미래)를 그리는 아이들한테는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길을 찾고 뜻을 이루며 살림을 짓는 하루”를 더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돈벌이’를 하는 자리라 할 적에도, “시내버스나 시외버스를 모는 아줌마”라든지 “아이를 여럿 낳고서 집안일을 하면서 살다가, 어느 날 스스로 꿈과 길을 찾아나서면서 글을 쓰고 책을 낸 수수한 아줌마나 할머니”가 꽤 많다. 잘난책(베스트셀러)이 아니라, 고만고만하게 사랑받는 작은책을 내놓고서 즐겁게 삶·살림·사랑을 바라보면서 새길을 꾸리는 분이 꽤 있다. 어린이와 푸름이한테는 바로 이렇게 “으레 우리 옆에 있을 만한 작은이웃”을 만나서 이야기를 펴고는, 이 이야기를 담는 길이 어울린다.


《내일을 위한 내 일》을 보면, 돈(수익)을 말하는 소설가 한 분이 나오는데, 좀 너무하지 않나? 글이건 보임꽃(영화)이건 돈(수익)을 좇아서 해야 하나? ‘앞꿈(내일·미래)’을 들려주려는 책하고는 그야말로 동떨어지고 너무 안 맞지 않은가?


아이들은 순이라는 몸으로 태어나건 돌이라는 몸으로 태어나건, 다르지만 나란하게 앞날을 맞이하며 걸어간다. 때로는 꽃길일 테지만, 무척 오래 가시밭길을 걸을 수 있다. 아이들 앞날이 저마다 “반갑건 반갑잖건, 여태 모르거나 놓치던 내 모습과 마음과 하루를 문득 느끼고 돌아보는 길이란 여러모로 고마운 배움살림”인 줄 짚어주고 알려주고 들려주는 ‘어른’을 만난 이야기를 씨앗으로 물려줄 수 있어야겠다고 본다. 번드레하거나 높아 보이거나, 잘나거나,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거머쥔 자리가 아니라, “살림하는 손길에 흐르는 땀빛”을 나눌 만한 이야기를 물려주어야겠지.


왜 이야기를 담는 흉내로 그치는 글·그림이 넘치는가. 부디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지 싶다. 겉으로 보이는 몸집이나 벼슬이 아닌, 속으로 눈부신 사랑을 바라보려고 해야 비로소 온누리를 새롭게 갈아엎고서 아름답게 가꿀 수 있다.


ㅍㄹㄴ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잖아요. 전문가도 그렇고 일을 본격적으로 하려면 다들 서울로 가죠. 그런데 커피만큼은 부산을 한번 최고로 만들어 보자 싶었어요.” (88쪽/전주연)


“결혼을 하면 얽매이는 게 더 많고 저처럼 밤을 새우기 어려워요.” (95쪽/전주연)


“글을 쓰는 사람이 모두 인격적으로 완성된 사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다른 사람의 업무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고, 나 자신도 안 해치고 타인도 안 해치면서 예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17쪽/정세랑)


“수익 면에서는 소설보다 10배, 적어도 10배거든요. 소설에만 집중하고 싶은 작가라면 그래도 좋지만, 마음이 열려 있는 편이라면 다른 매체도 고려해 보시면 좋겠어요.” (120쪽/정세랑)


“게다가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한국에 자리가 없었던 거죠.” (183쪽/이상희)


“예전에는 사대문 안에도 고아원이 많았어요. 88올림픽 때문에 서울 외곽으로 다 쫓겨났지만, 우리가 가르쳤던 신림동에 있던 고아원도 이제는 없어요. 아파트촌이 됐지.” (208쪽/이수정)


+


《내일을 위한 내 일》(이다혜, 창비, 2021)


진로 고민을 평생 하게 될지는 몰랐다

→ 앞길 걱정을 내내 할지는 몰랐다

→ 일감 근심을 노상 할지는 몰랐다

→ 새길을 늘 돌아볼지는 몰랐다

4쪽


커리어의 시작은 채용되는 것에서부터지만 지금은 채용하는 일을 하면서 얻게 된 통찰을 나누어 준 사람도 있다

→ 뽑혀야 발걸음도 있지만, 요즘은 뽑는 일을 하면서 깨달은 바를 나누는 사람도 있다

→ 일자리를 얻어야 살림길을 여는데, 이제 누구를 뽑으면서 느낀 바를 나누는 사람도 있다

7쪽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가 훤히 보인다

→ 두드러진 사람이 훤히 보인다

→ 뛰어난 님이 훤히 보인다

53쪽


생수를 올린 트레이를 테이블 위에 놓았을 때

→ 샘물을 그릇에 올려 자리에 놓을 때

→ 물을 받침에 올려 자리에 놓을 때

79쪽


전주연 바리스타에 대한 나의 가장 큰 오해는

→ 나는 잎물지기 전주연 씨를 잘못 여겼는데

→ 나는 내림지기 전주연 님을 잘못 보았는데

81쪽


매 이야기마다

→ 이야기마다

112쪽


새로운 이름을 호명할 때마다

→ 새롭게 이름을 부를 때마다

→ 새 이름을 부를 때마다

→ 새로 부를 때마다

112쪽


가장 먼 시대까지 점프할 수 있지만

→ 가장 먼 나날까지 뛸 수 있지만

→ 가장 멀리 가로지를 수 있지만

→ 가장 멀리 날아갈 수 있지만

126쪽


백인 남자가 많기 마련이거든요

→ 흰사내가 많게 마련이거든요

19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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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8.29.


《작으면 뭐가 어때서!》

 마야 마이어스 글·그림/염혜원 옮김, 비룡소, 2023.1.5.



시골은 지난이레 사이에 참깨를 말리고 터는 철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유난히 ‘깨내음’이 안 나더라. 갈수록 깨내음이 줄어드는데, 처음 시골에 깃들어 열 해 즈음 보내는 동안에는 참깨꽃이 피든, 참깨씨가 굵어가든, 참깨대를 길바닥에 말리든, 참깨내음이 온마을에 번졌다. 올해는 들길을 걷거나 두바퀴로 달려도 나락내음이 옅다. 왜 그럴까 하고 돌아보면, 이 시골에 거미·풀벌레·나비·제비(철새)·참새(텃새)가 아주 눈에 띄도록 줄었다. 온갖 숨결이 어우러지던 무렵에는 깨내음도 나락내음도 유채내음도 마늘내음도 곤드레내음도 쑥내음도 도라지내음도 흐드러졌지만, 풀죽임물과 죽음거름(화학비료)이 자꾸자꾸 늘면서 흙내음도 시골내음도 사라진다. 《작으면 뭐가 어때서!》를 되새긴다. 작으면 작고, 크면 크다. 덩치이든 키이든 대수롭지 않다. 주머니에 깃든 돈이건, 드날리는 이름값이건 그저 아무것이 아니다. 우리가 볼 대목은 마음이요, 이 마음을 돌보는 넋이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넋인데 서로 다른 몸(순이돌이)을 입더라도 숨빛에는 ‘둘을 하나’로 품고서 함께 있는 길을 바라보아야지 싶다. 작은순이는 작은돌이를 알아보고서 다가선다. 작은돌이도 작은순이를 알아채고서 마주본다. 둘은 겉몸이 작아 보일 수 있되, 마음과 넋과 숨빛은 하늘과 바다만 하다.


#NotLittle #MayaMyers #HyewonYum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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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8.30.


《허송세월》

 김훈 글, 나남출판, 2024.6.20.



볕날을 후끈후끈 잇는다. 씻고 빨래하고 밥하고 쉰다. 이러고서 씻고 일하고 책읽고 글쓴다. 이런 다음에 아직 낮에 노래하는 매미를 지켜본다. 이제 하룻내 노래물결을 베푸는 풀벌레를 헤아린다. 기지개를 켤 틈조차 없이 읍내로 저잣마실을 다녀온다. 저물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숨돌리면서 집안일에서 손을 떼는 듯싶지만, 저녁을 차리고 설거지까지 하고서야, 또 아이들하고 하루글을 쓰고 이야기를 하고서야, 등허리를 반듯하게 편다. 《허송세월》을 돌아본다. 예전에 낸 《밥벌이의 지겨움》이나 《라면을 끓이며》에 못지않게 덧없는 푸념과 하소연을 그득그득 담았구나 싶다. 푸념과 꿈글은 한끗처럼 다르되, 오늘과 앞길을 보는 눈이 다르다. 하소연과 살림글은 한끗이 어긋나되, 사랑을 보느냐 안 보느냐로 다르다. 이미 늙을 만큼 늙은 김훈 씨인 만큼 스스로 바뀌기는 어려울 만하지 싶다. 그렇지만, ‘늙몸’이 아닌 ‘나이(낳는 임)’라는 말빛을 곱씹으면서 거듭나는 하루를 살려고 한다면, 아무리 늙몸이라 하더라도 시나브로 ‘나이를 읽는 어진 눈’으로 바뀔 만하다고 본다. 숱한 꼰대는 집안일을 도맡지 않으니 꼰대로 머문다. 여태 꼰대였더라도 일흔 살부터라도 집안일을 도맡고 아이(손자)를 도맡아서 돌볼 줄 안다면, 아기 똥오줌 천기저귀를 갈고서 손빨래를 할 수 있다면, 이때부터는 ‘꼰대 먹물’이 말끔히 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란, ‘살림하는 사람으로서 사랑을 숲빛으로 펴며 배우고 익히는 길’이다. 다시 말하자면, 집안일과 집살림 이야기가 없이 쓰는 글(문학)이라면, 모두 ‘글흉내’나 ‘글인 척’에서 쳇바퀴라고 느낀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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