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위한 내 일 - 일 잘하는 여성들은 어떻게 내 직업을 발견했을까?
이다혜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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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9.12.

까칠읽기 95


《내일을 위한 내 일》

 이다혜

 창비

 2021.1.15.



누구나 즐겁게 새하루를 여는 첫가을 아침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시골에서도 서울에서도 아이어른이 나란히 철갈이나 철맞이를 헤아릴 수 있기를 빈다. 여름이 저물 적에는 여름을 맛보고, 겨울이 다가올 적에는 겨울을 겪으며, 새봄이 찾아올 적에는 새봄을 느끼면서 조금씩 철들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구나 철이 들기에 어른으로 선다. 철들지 않으면 어른이 아니라 철바보이다. 나이는 많다지만, 나무처럼 든든히 나이테가 늘어나며 너른 품을 베풀지 않는다면, 어른이 아닌 그저 늙은 몸뚱이일 뿐이다.


일이란 무엇인가. ‘일’은 ‘일다’와 한동아리이다. 바람이 일고 물결이 일듯, 스스로 일어서 일으키고 일어서는 길이 ‘일’이다. 남이 시키면 ‘심부름’이다. 돈을 벌면 ‘돈벌이’이다. 돈을 벌려고 사고팔 적에는 ‘장사’이다. 장사하는 곳을 차리면 ‘가게’이다. 이 얼거리를 읽어야 ‘일’을 알고 ‘돈벌이(직업)’가 무엇인지 제대로 바라본다.


《내일을 위한 내 일》은 한자말 ‘내일(來日)’과 우리말 “내 일”을 말장난처럼 맞추었다. 다만, 말장난처럼 맞추되, 두 낱말에 흐르는 말밑과 말빛은 못 맞추고 못 보았구나 싶다. 이 책을 여민 분은 “우리 터전에서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제법 쥐었다고 여길 만한 순이” 여러 사람을 만나서 나눈 말을 묶는다. 어찌 보면 이 책에서 만난 분과 같은 길을 갈 수도 있지만, 누구나 갈 수 있지는 않다. 더구나 그런 자리에 ‘올라서’려면, 아이들이 불굿(입시지옥)에서 겪었듯, 또래나 이웃을 다시금 밟아야 한다. 이른바 ‘꼭두’라는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불태워서 싸워야 했는가.


그런데, 싸워서 자리를 거머쥔 분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를테면 ‘배구’라는 길을 가는 사람으로는 양효진 씨가 아니라 김해란 씨를 만나야 어울리지 않을까? 양효진처럼 “타고난 키와 몸”은 드물다. 이미 타고난 키와 몸으로 배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앞세운다면, 키도 작고 몸도 여린 아이들은 뭘 봐야 하지? 김해란 씨는 키도 몸도 작지만, 스스로 바닥을 구르고 다시 일어서고 또 땀흘리면서 “우리나라 배구판에서 누구도 이루기 어려운 일”을 일구었다. 더구나 김해란 씨는 아기를 낳으려고 한동안 쉬고서 다시 뛰기까지 했으며, 이동안 곁님이 아기를 돌보면서 “순이로서 뜻을 펴고 길을 내는 삶”을 북돋았다.


모레(내일·미래)를 그리는 아이들한테는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길을 찾고 뜻을 이루며 살림을 짓는 하루”를 더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돈벌이’를 하는 자리라 할 적에도, “시내버스나 시외버스를 모는 아줌마”라든지 “아이를 여럿 낳고서 집안일을 하면서 살다가, 어느 날 스스로 꿈과 길을 찾아나서면서 글을 쓰고 책을 낸 수수한 아줌마나 할머니”가 꽤 많다. 잘난책(베스트셀러)이 아니라, 고만고만하게 사랑받는 작은책을 내놓고서 즐겁게 삶·살림·사랑을 바라보면서 새길을 꾸리는 분이 꽤 있다. 어린이와 푸름이한테는 바로 이렇게 “으레 우리 옆에 있을 만한 작은이웃”을 만나서 이야기를 펴고는, 이 이야기를 담는 길이 어울린다.


《내일을 위한 내 일》을 보면, 돈(수익)을 말하는 소설가 한 분이 나오는데, 좀 너무하지 않나? 글이건 보임꽃(영화)이건 돈(수익)을 좇아서 해야 하나? ‘앞꿈(내일·미래)’을 들려주려는 책하고는 그야말로 동떨어지고 너무 안 맞지 않은가?


아이들은 순이라는 몸으로 태어나건 돌이라는 몸으로 태어나건, 다르지만 나란하게 앞날을 맞이하며 걸어간다. 때로는 꽃길일 테지만, 무척 오래 가시밭길을 걸을 수 있다. 아이들 앞날이 저마다 “반갑건 반갑잖건, 여태 모르거나 놓치던 내 모습과 마음과 하루를 문득 느끼고 돌아보는 길이란 여러모로 고마운 배움살림”인 줄 짚어주고 알려주고 들려주는 ‘어른’을 만난 이야기를 씨앗으로 물려줄 수 있어야겠다고 본다. 번드레하거나 높아 보이거나, 잘나거나,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거머쥔 자리가 아니라, “살림하는 손길에 흐르는 땀빛”을 나눌 만한 이야기를 물려주어야겠지.


왜 이야기를 담는 흉내로 그치는 글·그림이 넘치는가. 부디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지 싶다. 겉으로 보이는 몸집이나 벼슬이 아닌, 속으로 눈부신 사랑을 바라보려고 해야 비로소 온누리를 새롭게 갈아엎고서 아름답게 가꿀 수 있다.


ㅍㄹㄴ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잖아요. 전문가도 그렇고 일을 본격적으로 하려면 다들 서울로 가죠. 그런데 커피만큼은 부산을 한번 최고로 만들어 보자 싶었어요.” (88쪽/전주연)


“결혼을 하면 얽매이는 게 더 많고 저처럼 밤을 새우기 어려워요.” (95쪽/전주연)


“글을 쓰는 사람이 모두 인격적으로 완성된 사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다른 사람의 업무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고, 나 자신도 안 해치고 타인도 안 해치면서 예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17쪽/정세랑)


“수익 면에서는 소설보다 10배, 적어도 10배거든요. 소설에만 집중하고 싶은 작가라면 그래도 좋지만, 마음이 열려 있는 편이라면 다른 매체도 고려해 보시면 좋겠어요.” (120쪽/정세랑)


“게다가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한국에 자리가 없었던 거죠.” (183쪽/이상희)


“예전에는 사대문 안에도 고아원이 많았어요. 88올림픽 때문에 서울 외곽으로 다 쫓겨났지만, 우리가 가르쳤던 신림동에 있던 고아원도 이제는 없어요. 아파트촌이 됐지.” (208쪽/이수정)


+


《내일을 위한 내 일》(이다혜, 창비, 2021)


진로 고민을 평생 하게 될지는 몰랐다

→ 앞길 걱정을 내내 할지는 몰랐다

→ 일감 근심을 노상 할지는 몰랐다

→ 새길을 늘 돌아볼지는 몰랐다

4쪽


커리어의 시작은 채용되는 것에서부터지만 지금은 채용하는 일을 하면서 얻게 된 통찰을 나누어 준 사람도 있다

→ 뽑혀야 발걸음도 있지만, 요즘은 뽑는 일을 하면서 깨달은 바를 나누는 사람도 있다

→ 일자리를 얻어야 살림길을 여는데, 이제 누구를 뽑으면서 느낀 바를 나누는 사람도 있다

7쪽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가 훤히 보인다

→ 두드러진 사람이 훤히 보인다

→ 뛰어난 님이 훤히 보인다

53쪽


생수를 올린 트레이를 테이블 위에 놓았을 때

→ 샘물을 그릇에 올려 자리에 놓을 때

→ 물을 받침에 올려 자리에 놓을 때

79쪽


전주연 바리스타에 대한 나의 가장 큰 오해는

→ 나는 잎물지기 전주연 씨를 잘못 여겼는데

→ 나는 내림지기 전주연 님을 잘못 보았는데

81쪽


매 이야기마다

→ 이야기마다

112쪽


새로운 이름을 호명할 때마다

→ 새롭게 이름을 부를 때마다

→ 새 이름을 부를 때마다

→ 새로 부를 때마다

112쪽


가장 먼 시대까지 점프할 수 있지만

→ 가장 먼 나날까지 뛸 수 있지만

→ 가장 멀리 가로지를 수 있지만

→ 가장 멀리 날아갈 수 있지만

126쪽


백인 남자가 많기 마련이거든요

→ 흰사내가 많게 마련이거든요

19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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