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멈출 수 있는 (2025.9.13.)

― 부산 〈무사이〉



  ‘이야기(대화·토론)’는 뜻맞거나 마음맞는 사람하고만 할 수 없습니다. 뜻맞거나 마음맞는 사람하고는 오히려 아무 말이 없이도 어울리게 마련입니다. 뜻이 안 맞고 마음조차 안 맞는 사람하고는 자주 만나서 말을 섞어야 비로소 조금씩 서로 알아갑니다. 뜻과 마음이 안 맞는데 말조차 안 섞으면서 고개를 휙휙 돌리기만 한다면, 우리는 내내 다투고 싸우고 겨루다가 나란히 죽습니다.


  요즈음 ‘다툼(갈등)’이라는 낱말로 서로 갈라서고 갈라치고 갈라놓는 담벼락이 부쩍 느는 듯합니다. 마을다툼(지역갈등)은 나들이(여행)를 누구나 흔히 하면서 꽤 허물었다고 느낍니다만, 둘다툼(남녀갈등·젠더전쟁)은 끔찍할 만큼 사납습니다. 미워하다 못해 ‘죽여 없어야 할 놈년’으로 바라본다면, 더 다투고 싸우다가 함께 죽을밖에 없어요. 갈래다툼(정치갈등·정쟁)도 끝없는데, 서로서로 무리짓기(팬덤·팬클럽·열성지지층)로 확 돌아선 채 삿대질만 합니다. 이쪽은 ‘극좌’가 아니고 저쪽은 ‘극우’가 아닙니다. 걸핏하면 서로 ‘극-’을 앞에 붙여서 손가락질하기 바쁘더군요.


  ‘극좌’란 말을 함부로 쓰는 무리도 이웃(상대방 존중)을 안 봅니다만, ‘극우’란 말을 마구 쓰는 무리도 이웃을 안 들여다봅니다. 예전에는 ‘진보·보수’라고만 하더니, 어느새 ‘극좌·극우’라는 말로 바뀐 채 노려보고 쏘아보는 싸움터로 번집니다.


  저놈더러 먼저 멈추라고 할 일이 아닙니다. 저놈부터 멈춰야 한다고 외칠 일이 아닙니다. 나부터 멈추면 됩니다. 나부터 너를 ‘극-’이 아닌, 그저 ‘왼’과 ‘오른’으로 보면 되는데, 왼오른이나 ‘순돌(순이돌이·여남)’ 같은 겉모습을 넘어서 오롯이 ‘사람’으로만 볼 일이에요. 그래서 둘을 놓고서 ‘비장애인·장애인’으로 긋지 않아야지요. 둘 모두 ‘사람’입니다.


  부산 〈무사이〉로 찾아가는 새벽에는 비가 시원히 쏟아졌습니다. 시외버스에서 내려서 슬슬 책을 읽으며 전철을 갈아타고 거니는 동안에는 조용하다가, 〈무사이〉에서 나와서 다시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연산동으로 건너갈 적에도 비가 세차게 내립니다. 빗소리 참 대단하지요. 빗줄기 참 놀랍지요. 빗발 참 아름답지요.


  다 다른 책집에는 다 다른 손끝으로 다 다르게 여민 책이 다 다르게 깃들 적에 사랑스럽고 오붓하고 즐겁습니다. 책집마실을 할 적에는 ‘이미 아는 글님과 펴냄터’가 아닌 ‘책집 시렁에 놓인 아직 모르는책’에 손을 뻗기에 반갑고 느긋하고 새롭습니다. 여기를 보고 저기를 봐요. 다 다른 책은 다 다른 들꽃입니다.


ㅍㄹㄴ


《미래 세대를 위한 민주시민 이야기》(정주진, 철수와영희, 2025.9.18.)

《군대를 버린 나라》(아다치 리키야/설배환 옮김, 검둥소, 2011.7.8./2013.2.14.3벌)

《그리운 날엔 사랑을 지어 먹어야겠다》(류예지, 책과이음, 2024.8.30.)

《아무도 불러주지 않은 내 이름을 찾기로 했다》(김혜원, 느린서재, 2022.6.28.)

《일기장은 비웃질 않아》(심신, 피스카인드홈, 2024.11.30.첫/2025.2.20.2벌)

《부디 당신이 무사히 타락하기를》(무경, 나비클럽, 2025.6.18.)

《복닥맨션》(고유진과 열세 사람, 삼림지, 2025.3.17.)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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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흙묻은 2025.6.20.쇠.



흙묻은 손에서는 흙내음이 나. 물묻은 손에서는 물내음이 나고. 밥을 짓는 손에서는 밥내음이 날 테고, 비를 맞이하는 손에서는 비내음이 나겠지. 모든 곳에 냄새가 있고, 이 냄새에는 빛·빛깔·소리·몸짓에 마음·숨결·이야기가 감돌아. 너는 다 다른 냄새를 맡으면서 숱한 이웃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아볼 수 있어. 너는 다 다른 냄새 가운데 ‘좋은냄새’만 좋아하고 ‘싫은냄새’를 싫어하면서, 이웃뿐 아니라 네 삶을 등지는 굴레를 스스로 살아갈 수 있어. “어떤 손”이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리는 손”이야. “어떤 손”이란 “어떻게 살아왔든 이제부터 새롭게 살아가려는 손”이야. “어떤 손”이란 “어떻게 살았는지 짚으면서 하나하나 다시 배워서 바꾸어갈 손”이야. 구름내음이 묻은 바람을 느끼겠니? 별내음이 묻은 밤빛을 느끼겠니? 꽃내음이 묻은 씨앗을 느끼겠니? 네가 느끼려는 마음에 따라서 늘 다르게 흐르는 바람이고 밤이고 씨앗이야. 한 발짝씩 걸을 적마다 땅바닥을 느낄까? 한 포기씩 쥘 적마다 풀빛을 느낄까? 제비는 논에서 한 덩이씩 조금조금 물어서 둥지를 천천히 짓는구나. 숱한 날갯짓과 부리질이 닿으면 흙내음이 물씬 번지는 작은집이야. 어미제비가 낳은 알은 흙빛에 안겨서 아늑하게 자라다가 깨어나. 새끼제비를 돌보는 어미제비는 온몸을 흙빛으로 물들이면서 스스로 기운차게 살아가. 예부터 사람들은 땅바닥과 흙바닥을 느끼고 누리며 집을 지었고, 하루를 누렸고, 아이를 돌보았고, 이야기를 지었고, 즐겁게 철맞이와 해맞이를 했어. 흙묻은 손은 냇물로 씻고, 흙묻은 몸은 빗물로 달래고, 흙묻은 얼굴은 빙그레 웃으면서 하루를 노래해 왔어. 흙묻은 티가 없이, 높다랗고 빼곡하고 번쩍거리는 서울은 무엇을 하는 곳일까? 너는 너희 나라가 어떻게 나아가기를 바라니? 네 손에는 흙내음이 흐르니? 너희 집에는 흙빛이 감싸니?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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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꽃 . 손이 뜨겁다 2025.6.19.나무.



몸 곳곳에서 아프거나 앓는 데가 있으면, 손이 차츰 따뜻하게 바뀌지. 제 손바닥으로 제 몸을 쓰다듬고 쓸면서 돌보라는 뜻이야. 몹시 지치거나 힘들 적에는 손이 뜨거울 수 있어. 몸 곳곳을 토닥이거나 매만지지 못 하더라도 그저 손으로 이마를 짚거나 배를 짚으면서, 또 가슴이며 눈이며 얼굴을 짚으면서, 차분히 온몸을 틔우는 기운을 담을 만해. 누구나 스스로 가다듬고 다독이면서 풀어. ‘손’이란 짓는 노릇을 하는 곳이면서, 손보고 손질하는 곳이야. “손으로 보는(돌보는·돌아보는·보살피는)” 동안 온몸이 새로 깨어나. 다치거나 어긋난 곳이 있기에, 스스로 ‘손대’면서 바로잡고, 스스로 ‘손질’을 하는 사이에 제대로 살아나서 움직여. 예부터 모든 사람은 일·놀이·살림을 ‘손수’ 했단다. 남한테 안 맡기고 나(몸소·손수)로서 했어. 남한테 안 맡기고서 나로서 하기에 다 풀고 모두 이뤄. 나로서 내가 하기에, 내 곁에 있는 누구나 저마다 스스로 일구는 길을 나아가. ‘손수하기’하고 ‘손수짓기’를 잊다 보면, 어느새 ‘내 삶’을 잃어. 손으로 안 하다 보면, 스스로 몸을 못 살리느라, 스스로 마음을 못 일으켜. 손이 차가운 사람은 없어. 이미 죽었거나 이제 죽어간다면 손이 차가워. 몹시 아프거나 앓더라도, ‘산 사람’은 제 따뜻하거나 뜨거운 손으로 가슴과 배와 머리부터 천천히 살리게 마련이야. 손이 차갑다고 여긴다면 손부터 살려야겠지. 왼손으로 오른손을 포개고, 오른손으로 왼손을 덮으면서 손부터 살릴 노릇이야. 손등과 손바닥과 손끝과 손가락이 모두 따뜻하거나 뜨겁게 살아나면, 이제 이 ‘살림손’으로 다른 몸을 하나씩 어루만질 만해. 손에서 흘러나오는 ‘포근빛’을 늘 느끼고 펴 봐.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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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야경 夜景


 서울의 야경이 불타고 있었고 → 서울은 밤이 불타올랐고

 검은 강물 위에 야경의 불빛이 → 검은 강물에 밤 불빛이

 야경 좋은 곳 → 밤모습 좋은 곳 / 밤빛 좋은 곳 / 밤이 좋은 곳

 야경 사진 → 밤모습 사진 / 밤빛 사진 / 밤 사진


  ‘야경(夜景)’은 “밤의 경치 ≒ 야색(夜色)”을 가리킨다고 하는데, ‘밤·달밤’이나 ‘밤빛·밤모습’으로 고쳐씁니다. ‘밤하늘·별하늘’이나 ‘불빛·불빛줄기·불살·불줄기’로 고쳐쓸 만해요. ‘빛·빛살·빛발·빛줄기’로 고쳐쓰고, ‘저녁놀·저녁노을·저녁빛·저녁해’로 고쳐쓰면 됩니다. 이밖에 낱말책에 한자말 ‘야경’을 다섯 더 싣습니다만 모두 털어냅니다. ㅍㄹㄴ



야경(夜更) : 하룻밤을 오경(五更)으로 나눈 셋째 부분. 밤 열한 시에서 새벽 한 시 사이이다 = 삼경

야경(夜警) : 1. 밤사이에 화재나 범죄 따위가 없도록 살피고 지킴 2. 밤사이에 화재나 범죄가 없도록 살피고 지키는 사람 = 야경꾼

야경(野坰) : [북한어] 성문 밖의 들

야경(野徑) : = 들길

야경(野景) : 들의 경치 ≒ 야색(野色)



야경이 눈부셨지만

→ 밤빛이 눈부셨지만

→ 밤이 눈부셨지만

《그 골목이 말을 걸다》(김대홍·조정래, 넥서스BOOKS, 2008) 223쪽


전 하늘의 별을 찾고, 당신은 도시의 야경에 감동하니까요

→ 전 하늘에서 별을 찾고, 그대는 도시 밤빛에 즐거우니까요

→ 전 밤하늘 별을 찾고, 그대는 도시 밤모습에 즐거우니까요

《유리가면 48》(미우치 스즈에/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2) 154쪽


우리의 만남은 마치 야경을 보는 듯 낮에는 사라지고 밤이 되어야 밝게 빛나는

→ 우리 만남은 마치 밤빛을 보는 듯 낮에는 사라지고 밤이 되어야 밝게 빛나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석》(김경원, 푸른길, 2016) 121쪽


저녁에는 시청 옥상에서 야경을 보았다

→ 고을터 꼭두에서 저녁빛을 보았다

→ 고을터 꼭대기에서 밤빛을 보았다

《안으며 업힌》(이정임·박솔뫼·김비·박서련·한정현, 곳간, 2022) 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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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야경 夜警


 조를 짜서 야경을 돈다 → 두레로 밤길을 돈다 / 모둠으로 달밤길을 돈다


  ‘야경(夜警)’은 “1. 밤사이에 화재나 범죄 따위가 없도록 살피고 지킴 2. 밤사이에 화재나 범죄가 없도록 살피고 지키는 사람 = 야경꾼”을 가리킨다지요. ‘달밤길·달밤마실’이나 ‘밤길·밤마실’이나 ‘별밤마실·별밤길’로 고쳐씁니다. ㅍㄹㄴ



나도 야경 다녀 보고 싶어요

→ 나도 밤길 다녀 보고 싶어요

→ 나도 밤마실 다니고 싶어요

《밤을 걷는 고양이 2》(후카야 카호루/김완 옮김, 미우, 2017)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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