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흙묻은 2025.6.20.쇠.



흙묻은 손에서는 흙내음이 나. 물묻은 손에서는 물내음이 나고. 밥을 짓는 손에서는 밥내음이 날 테고, 비를 맞이하는 손에서는 비내음이 나겠지. 모든 곳에 냄새가 있고, 이 냄새에는 빛·빛깔·소리·몸짓에 마음·숨결·이야기가 감돌아. 너는 다 다른 냄새를 맡으면서 숱한 이웃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아볼 수 있어. 너는 다 다른 냄새 가운데 ‘좋은냄새’만 좋아하고 ‘싫은냄새’를 싫어하면서, 이웃뿐 아니라 네 삶을 등지는 굴레를 스스로 살아갈 수 있어. “어떤 손”이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리는 손”이야. “어떤 손”이란 “어떻게 살아왔든 이제부터 새롭게 살아가려는 손”이야. “어떤 손”이란 “어떻게 살았는지 짚으면서 하나하나 다시 배워서 바꾸어갈 손”이야. 구름내음이 묻은 바람을 느끼겠니? 별내음이 묻은 밤빛을 느끼겠니? 꽃내음이 묻은 씨앗을 느끼겠니? 네가 느끼려는 마음에 따라서 늘 다르게 흐르는 바람이고 밤이고 씨앗이야. 한 발짝씩 걸을 적마다 땅바닥을 느낄까? 한 포기씩 쥘 적마다 풀빛을 느낄까? 제비는 논에서 한 덩이씩 조금조금 물어서 둥지를 천천히 짓는구나. 숱한 날갯짓과 부리질이 닿으면 흙내음이 물씬 번지는 작은집이야. 어미제비가 낳은 알은 흙빛에 안겨서 아늑하게 자라다가 깨어나. 새끼제비를 돌보는 어미제비는 온몸을 흙빛으로 물들이면서 스스로 기운차게 살아가. 예부터 사람들은 땅바닥과 흙바닥을 느끼고 누리며 집을 지었고, 하루를 누렸고, 아이를 돌보았고, 이야기를 지었고, 즐겁게 철맞이와 해맞이를 했어. 흙묻은 손은 냇물로 씻고, 흙묻은 몸은 빗물로 달래고, 흙묻은 얼굴은 빙그레 웃으면서 하루를 노래해 왔어. 흙묻은 티가 없이, 높다랗고 빼곡하고 번쩍거리는 서울은 무엇을 하는 곳일까? 너는 너희 나라가 어떻게 나아가기를 바라니? 네 손에는 흙내음이 흐르니? 너희 집에는 흙빛이 감싸니?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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