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子 (ペ-パ-バック)
梅 佳代 / リトル·モア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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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만든 남자한테 말을 걸다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25] 카요 우메(梅 佳代), 《男子》(Little More,2007)


 우리 집 첫째 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 어린 나날은 어떠했을까를 가만히 곱씹습니다. 이른아침부터 늦은밤까지 지치지 않으면서 엉겨붙거나 노는 품을 바라보면서 아이들은 이렇게 싱싱하거나 기운차게 살아간다고, 무럭무럭 자라는구나 하고 헤아려 봅니다.

 수백 가지 웃음과 눈물을 보여주는 아이입니다. 수천 가지 몸짓과 노래를 선보이는 아이입니다. 수만 가지 이야기와 꿈을 밝히는 아이입니다.

 모든 사람은 어머니가 있고 아버지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어른이 되기 앞서 어머니나 아버지가 흙으로 일찍 돌아가곤 합니다. 누군가는 새어머니나 새아버지를 맞아들일 테지만,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없이는 내 목숨이 이 땅에 설 수 없습니다. 내가 낳아 돌보는 아이 또한 나와 옆지기가 있기에 예쁘게 태어나서 고맙게 살아갑니다.

 누구나 선물덩어리이면서 보배덩어리입니다. 누구나 선물을 듬뿍 물려주면서 보배를 가득 남깁니다. 일찍 혼인해서 일찍 아이를 낳든, 조용히 혼자 살아가며 아이 없이 지내든, 어떠한 사람이더라도 나부터 내 가슴에 펄떡펄떡 뛰는 목숨이 있습니다. 이 목숨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사람과 삶과 사랑이 달라집니다. 일찍 혼인해서 아이를 열씩 낳았다지만 사람과 삶과 사랑하고는 동떨어질 수 있습니다. 짝꿍을 사귀지 않고 홀로 지내다가 앓아누워 조용히 숨을 거두더라도 사람과 삶과 사랑하고는 살가울 수 있습니다.

 내가 내 온몸을 사랑으로 돌본다면 나와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은 고스란히 사랑입니다. 내가 내 온마음을 믿음으로 보듬는다면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믿음입니다.

 사진이란 ‘하루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담습니다. 하루 동안에도 ‘때마다 다르게 살아내는’ 사람들 사랑을 담습니다.

 사진은 수백 가지 웃음과 눈물뿐 아니라 수만 가지 이야기와 꿈을 밝힙니다. 수천 가지 몸짓과 노래 또한 알알이 즐기면서 보여줍니다.

 값진 사진기로 값진 사진을 이루지 않습니다. 높은 이름값으로 거룩한 글을 이루지 못해요. 어마어마하다는 권력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빚지 못합니다. 사람 목숨 하나이든 사랑스러운 손길 한 번이든 살가운 삶 한 자락이든, 돈이나 이름이나 힘으로 건드리지 못합니다. 살가운 사랑으로 사람을 사귀는 예쁜 삶이란, 살가운 사랑으로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어여쁜 삶으로 마주하면서 느낄 수 있습니다. 값진 사진기가 아니라 ‘내 온 사랑을 담아 손에 쥔 사진기’로 담는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사랑 아름다운 삶입니다.

 카요 우메(梅 佳代) 님 사진책 《男子》(Little More,2007)를 들여다봅니다. 사진책 이름이 더도 덜도 아닌 ‘남자’입니다. 첫 쪽부터 마지막 쪽까지 ‘남자 어린이’ 사진이 펼쳐집니다. 장난꾸러기인지 개구쟁이인지 까불이인지 철부지인지 알 길이 없는 남자 아이들 사진이 가득합니다.

 이 아이들, 이 사내 녀석들은 장난꾸러기라 할 만할까요, 개구쟁이라 할 만할까요. 사진기 앞에서 스스로 바보스러운 몸짓과 얼굴짓을 하는 요 녀석들은 까불이라 할 만한가요, 철부지라 할 만한가요.

 여자 아이라 하면 사진기 앞에서 어떤 모습 어떤 몸짓 어떤 낯빛이 될까 궁금합니다. 여자 아이라 하든 남자 아이라 하든 다 마찬가지가 될는지, 남자 아이는 남자 아이답게 남달라 보이는 모습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지 않더라도, 남자 아이나 어른은 참 바보스럽습니다. 스스로 얼마나 바보스러운 줄 모르며 바보스레 살아가는 남자 아이나 어른입니다. 무엇 하나 대단하지 않은데, 어리석게도 대단하다 생각하며 얽매이는 남자 아이나 어른입니다. 그러니까, 정치라든지 권력이라든지 스포츠라든지 이름값이라든지 얽매이는 남자 아이나 어른입니다. 남자가 얼마나 잘나서 ‘공차기는 남자만 하는 놀이’라고 여깁니까. 여자가 권투를 할 때에 우악스럽다거나 징그럽다고 여긴다면, 남자가 권투를 할 때에도 매한가지입니다. 서로서로 신나게 두들겨패서 넋을 잃고 쓰러지면 손뼉을 치며 웃고 떠드는 남자들이란 더없이 바보요 멍텅구리입니다. 참삶을 모르고 참사랑을 모르며 참사람을 모르는 철부지요 꺼벙이입니다.

 축구선수도 밥을 먹고 권투선수도 밥을 먹습니다. 밥을 안 먹어도 될 사람은 없습니다. 축구를 못 하든 안 하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밥을 못 먹거나 밥을 할 줄 모른다면 큰일입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든 말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밥을 못 먹거나 밥을 할 줄 모른다면 살지 못합니다.

 카요 우메 님 사진책 《男子》는 어린아이 모습을 담아 ‘남자’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어린아이 모습으로만 읽을 남자 이야기만은 아니로구나 싶습니다. 남 앞에서 제 모습을 돋보이려는 이 바보스러운 남자들은 ‘사진에 찍힌 몇몇 아이만 바보스럽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이 아이들이 바보스러운 노릇이 아니라, ‘남자’라고 하는 목숨붙이들이 얼마나 바보스러운 짓을 하면서 바보스러운 줄 모르고 바보스러운 꼴을 되풀이하면서 제 삶을 슬프게 잊는가를 들려주는 셈입니다.

 한 마디로든 두 마디로든 세 마디로든 남자는 바보스럽습니다. 이 바보스러운 남자들이 정치 권력이나 사회 권력이나 사진 권력을 움켜쥡니다. 철없고 까부는 남자들이 평론이니 학문이니 무어니를 온통 거머쥡니다. 참말 남자들은 뭔 짓을 하는지 스스로 알기나 하겠습니까. 뭔 짓을 하는지조차 스스로 모르면서 바보짓을 하는 사람들이 곧 남자라는 목숨입니다. 슬프며 가녀린 목숨입니다. 쓸쓸하며 허전한 목숨입니다. 따순 손길과 포근한 눈길을 바라는 애처로운 목숨입니다. (4344.5.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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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탈논 도룡뇽 알


 멧길을 따라 오르며 비탈논 옆을 지난다. 비탈논 한복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들여다보지는 못한다. 그러나 발이 폭폭 빠지더라도 한복판으로 들어서 보면 개구리들이 요기조기 숨거나 올챙이가 꼬리를 흔들며 쪼르르 내빼는 모습을 볼 수 있겠지.

 비탈논 한쪽 귀퉁이를 지나면서 동그랗게 말린 가느라단 무언가를 본다. 가만히 다가선다. 동그랗게 말린 가느다란 무언가 둘레로 갓 깨어난 올챙이가 꼬물꼬물 헤엄친다. 동그랗게 말린 가느다란 무언가를 곰곰이 들여다본다. 길다랗게 말린 무언가에는 길다란 작은 목숨이 옴찔옴찔한다. 언제쯤 깨어날 수 있을까를 기다리면서 천천히 자라난다.

 멧골자락 비탈논은 판판한 들판 논보다 퍽 늦게 모내기를 한다. 모판에 볍씨를 심고 나서 논삶이를 할 테니까, 이 도룡뇽 알은 그때까지 힘을 내어 깨어난 다음 올챙이에서 어른 도룡뇽으로 자란다면 얼마든지 살아난다.

 생각해 보면, 개구리이든 도룡뇽이든 사람들이 논삶이를 하며 모를 옮겨 심을 무렵까지 알깨기하고 어른되기를 끝마치면서 살아왔다. 개구리이든 도룡뇽이든 해마다 하루나 이틀씩 더 일찍 깨거나 더 빨리 어른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해마다 하루나 이틀씩 모내기를 앞당기지만, 개구리나 도룡뇽은 저희 삶을 앞당기지 않는다. 아니, 개구리나 도룡뇽도 앞으로는 저희 삶을 앞당겨야 할 테지. 지구별은 차츰 따뜻해지고, 이 나라 날씨 또한 금세 더운 여름이 찾아오니까, 사람들은 더운 날씨에 맞추어 모내기를 앞당기지 않겠는가. 더욱이, 더 빨리 심고 더 빨리 거두어 더 빨리 팔려고 하다 보니, 다들 모내기를 앞당긴다. 철과 날씨와 시골살이를 헤아리며 천천히 알맞게 모내기를 하는 사람은 늘어나기 힘들다.

 어느 농사꾼이든 모내기를 앞당기면서 개구리하고 도룡뇽한테 ‘자, 올해에는 앞당겨 일할 테니까 얼른 깨어나서 이곳을 떠나렴!’ 하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렇게 이야기한들 알아듣겠나. 이런 이야기를 알아듣는들 갑자기 더 빨리 자라서 논을 떠날 수 있겠는가. 논을 떠났다가 모내기를 마친 다음 다시 논으로 돌아올 수 있겠는가.

 아파트를 짓건 갯벌을 메우건 공항을 만들건, 또 네 군데 큰 물줄기를 손질한다는 일을 하건, 이 나라 사람 가운데 어느 누구라도 한겨레와 오래도록 함께 살아온 이웃 목숨붙이한테 소곤소곤 말을 거는 일이란 없다. 환경영향평가를 한다지만, 사람이 살도록 바꾸려는 환경영향평가일 뿐, 예부터 조용히 잘 살아오던 작은 목숨붙이가 오래오래 조용히 잘 살도록 마음을 쏟는 환경영향평가란 없다.

 도룡뇽 한 마리 때문에 고속철도를 늦추거나 에돌거나 멈출 수 없다던 대통령이고 정치꾼이고 기자이고 지식인이고 공무원이고 개발업자이고, 바로 우리들 아니던가. 도룡뇽 한 마리한테 마음을 쓸 수 없다면, 가난한 이웃한테도 마음을 쓸 수 없다. 가난한 사람한테야 보상금 찔끔 던진 다음 쫓아내면 되고, 강제수용 퇴거명령서 한 장이면 끽소리 못하고 떠나야 한다. (4344.5.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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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5-07 23:47   좋아요 0 | URL
허 저게 도룡뇽 알인가요.된장님 덕분에 자세히 보게되네요^^

파란놀 2011-05-08 06:23   좋아요 0 | URL
요즈음은 도룡뇽 알도 많이 줄어요. 게다가 무슨무슨 체험이랍시고 도룡뇽 알을 마구 건드리니까...
 

 

- 2011.5.4. 

바람에 휘날리는 봄철 단풍꽃. 

가까이에서 보면 새로 핀 꽃송이가 보이는데, 

멀찍이 떨어지니 새로 돋은 단풍잎 빛깔이 아주 곱습니다. 

.. 

드디어 알라딘서재 사진넣기가 되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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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맞아요? 웅진 세계그림책 122
고토 류지 지음, 고향옥 옮김, 다케다 미호 그림 / 웅진주니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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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이와 있을 자리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 다케다 미호·고토 류지, 《우리 엄마 맞아요?》(웅진주니어,2008)



 아이는 제 어버이하고 신나게 놀 때에 활짝 웃습니다. 아이가 차츰차츰 자라 천천히 동무를 하나둘 사귀거나 언니 오빠 누나를 만날 뿐더러 동생을 알 때에는, 동무들하고 마음껏 놀며 활짝 웃습니다. 아이한테 어버이는 맨 처음 사귀는 놀이동무입니다.

 어버이는 아이하고 신나게 놀지만, 언제나 신나게 놀 수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는 아이 스스로 밥을 차리거나 옷을 입거나 집을 장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밥을 차리거나 옷을 마련하거나 집을 장만하며 손질한다면, 이제 다 커서 제금나도 될 만하다 하겠지요. 아직 아이가 퍽 어리다면, 어버이 되는 사람은 아이한테 밥을 차리거나 옷을 마련하거나 집을 건사하려고 마음을 쏟고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밥벌이를 해야 하고 집일을 하며 집살림을 꾸려야 합니다.

 아이키우기에 앞서, 밥벌이와 집일과 집살림이 있습니다. 짝꿍을 만나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여기에 사랑나눔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아이를 낳고 집안을 이루는 어버이는, 적어도 다섯 가지를 알뜰살뜰 해야 하는 셈입니다. ‘집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온대’서 다른 네 가지를 안 해도 되지 않습니다. 아이키우기 한 가지만 잘할 수 없고, 집일과 집살림만 따로 잘할 수 없어요. 사랑나눔만 잘하면 집안살림과 아이는 엉망이 되겠지요.

 아이는 다섯 가지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짐스럽지 않습니다. 아이한테는 다섯 가지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맡지 않는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다섯 가지이든 쉰 가지이든 오백 가지이든, 따로 제몫을 안 맡아도 괜찮습니다. 아이는 어버이 곁에서 어버이가 하는 일을 말끄러미 바라보기만 해도 좋습니다. 어버이가 맡는 집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눈으로 익힌다든지, 가벼운 심부름을 한다든지, 어버이 일을 제 놀이 삼아 흉내내면서 일놀이를 한다든지 하면 됩니다.


.. 엄마, 안녕하세요? 나도 잘 있어요. 어버이날이라서 편지를 씁니다. ‘여러분, 부모님께 감사 편지를 쓰세요!’라고 담임 선생님이 엄하게 말씀하셔서 쓰는 거예요. ‘날마다 맛있는 밥을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내 짝꿍 승현이는 잘도 쓰는데, 나는 부끄러워서 그런 말은 못 쓰겠어요. 대신 눈 딱 감고,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을 쓰겠습니다 ..  (4쪽)


 배고픈 아이는 손으로 집어먹고 싶지만, 어버이가 곁에서 젓가락과 숟가락을 쓰면서 저한테 젓가락과 숟가락을 쓰라 이르면, 먹고픈 밥을 코앞에 두고는 용을 쓰며 젓가락질이나 숟가락질을 합니다. 떠먹여 주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스스로 떠먹으려고 떠먹이는 손을 손사래치거나 물리치곤 합니다. 걸레질을 할 때에 작은 걸레 하나를 내주면, 아이는 작은 걸레로 제가 닦고픈 것을 찾아 여기저기 슥슥삭삭 문지릅니다. 슥슥삭삭 문지르면서 방긋 웃습니다.

 손빨래하는 어버이 곁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몸씻이를 하면서 크다 보니, 아이는 퍽 갓난쟁이였을 적부터 빨래하는 시늉을 하며 빨래놀이를 했습니다. 밥상을 차릴 때에 반찬통 나르기를 즐기고, 수저를 맞추어 놓을 줄 압니다. 밥상을 행주로 닦을 때면 “제가요, 제가 할게요.” 하고 말하면서 어버이 손을 붙잡습니다. 텃밭에서 풀을 뽑으려고 호미를 들면, 저도 어버이 곁에서 풀을 뽑는 시늉을 하듯이 땅을 호미로 콕콕 쫍니다.

 그렇게까지 머나먼 옛날이 아닌 지난날, 이 나라 이 겨레 이 땅 사람들이 하던 일은 거의 모두 ‘흙 일구기’였습니다. 바닷마을에서 살아가더라도 흙을 일굽니다. 물고기만 먹고는 살 수 없으니까요. 논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밭이라도 일구기 마련입니다. 지난날 사람들은 너나없이 ‘흙을 일구면서’ 살았어요.

 지난날 사람들 가운데 양반과 사대부와 임금과 권력자들만 흙을 일구지 않습니다. 마을과 마을을 넘나들며 장사하던 사람도 흙을 일굴 수 없겠지만, 이들은 어느 한 곳에 뿌리내리지 않으면서 장사를 했으니 흙을 일굴 수 없을 뿐입니다.

 ‘신동’이나 ‘천재’라 할 만한 아이는 없습니다. 모든 아이가 신동이요 천재입니다. 어느 아이라 하든, 제 어버이가 하는 일을 곁에서 가만히 바라보면서 고스란히 받아들이거나 배우지 않고서는 목숨을 이을 수 없는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삶을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쏙쏙 받아먹고 남김없이 받아들입니다.

 어버이가 학문을 하는 양반집 사람이라면, 아이도 어린 날부터 책이나 글을 가까이하겠지요. 어린 날부터 책이나 글을 가까이했으니 퍽 어린 나이부터 책을 곧잘 읽거나 글을 곧잘 쓰겠지요. 퍽 어린 나이부터 ‘흙을 일구는 어버이’ 곁에서 호미놀이를 했으면, 이 아이는 서너 살부터 호미질을 합니다.

 멧골집 우리 아이가 ‘호미질 천재’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주 마땅한 삶입니다. 집이 온통 책이요 글을 쓰며 살아가는 어버이 곁에서 자라나는 아이가 돌쟁이 무렵부터 연필을 아주 다부지게 잘 쥐며 ‘글쓰기 놀이’를 했대서 ‘글쓰기 천재’일 수 없습니다. 자리에 누워 제 어버이를 마냥 바라보던 때부터 늘 보던 모습이 ‘글을 쓰는 모습’이니, 저도 손가락에 힘이 붙어 연필을 쥘 수 있던 때에 아주 놀랍도록 야물딱지게 연필을 쥐어 종이에 꼬물꼬물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뿐입니다.


.. ‘세상에, 돼지우리가 따로 없네!’라고 하면서, 제발 마음대로 내 방 청소하지 마세요! 난 돼지가 아니에요, 사람이라고요! 엄마는 깔끔하게 정리된 방이 좋을지 모르지만, 나는 뒤죽박죽인 방이 더 좋단 말이에요. 너무 깨끗해서 반짝반짝 빛나면 괜히 마음이 불편해요. 나는 마음껏 어질러 놓고, 손때 묻은 정든 물건들에 둘러싸여 있어야 마음이 편해요 ..  (12쪽)


 그림책 《우리 엄마 맞아요?》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 아버지는 안 나옵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아버지는 일찍 죽었거나 아버지하고 헤어진 채 어머니랑 아이가 둘이서 살아간달 수 있습니다. 《우리 엄마 맞아요?》에 나오는 집안이 어떠한지는 굳이 몰라도 됩니다. 어머니만 있는 집이든 아버지만 있는 집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가 둘이건 셋이건 남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도시에서 어머니랑 아이 둘이 살아가자면 어떠한 살림이어야 할까를 헤아려 봅니다. 어머니는 몹시 바쁘게 바깥일을 하며 돈벌이를 해야 하고, 집일과 집살림을 함께 꾸리는 한편, 아이를 잘 돌봐야 합니다. 제아무리 남녀평등이니 성평등이니 외치는 나라나 사회라 하더라도, 여자가 남자처럼 예순이니 예순다섯이니 하는 정년 때까지 일하기란 몹시 버겁습니다. 여느 남자들처럼 바깥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 ‘저녁 밥상 알뜰히 차려 놓을 집일꾼(으레 어머니가 맡는 몫)’이라든지 ‘집안일 다 해 놓고 몸 씻을 물 덥혀 놓을 집일꾼(이 또한 거의 어머니가 맡는 몫)’이 있는 어머니란 없다고 해야 맞습니다. 하루일을 마치느라 고단했으니까, 보리술이라도 한잔 하라며 몇 가지 가벼운 안주를 내미는 집일꾼(언제나 어머니가 맡는 몫) 또한 없겠지요.

 홀로 아이를 맡아 살림을 돌봐야 할 어머니는 아이를 일찍부터 어린이집에 넣어야 합니다. 여러 학원에 넣어야 합니다. 아이랑 놀고픈 마음이 굴뚝같아도 아이랑 놀 수 없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는 예쁜 모습을 곁에서 즐거이 지켜보기 힘듭니다. ‘어라, 어느새 이렇게 다 컸나?’ 하고 느낄 뿐입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넣을 때에는, ‘어머니가 집에서 아이하고 부대끼며 스스로 가르치고 서로서로 배우며 보내는 고마운 나날’을 돈을 주면서 남한테 맡기는 셈입니다.

 옳게 따진다면, 어린이집 사람들은 어머니한테 돈을 주어야 맞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귀엽고 해맑게 자라나는 아이들을 곁에서 바라보며 싱그러운 기운을 듬뿍 얻을 뿐 아니라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흐뭇할 테니까요. 이 싱그럽고 사랑스러우며 흐뭇한 기운을 ‘아이 어머니’한테서 얻어서 누리니까, 어린이집을 꾸리는 이들이 어머니한테서 돈을 받는 일이란 거꾸로 된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초등학교 교사이건 중·고등학교 교사이건 매한가지예요. 교사가 아니어도 아이들은 지식을 얼마든지 쌓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얻지 못하는 한 가지라면 졸업장입니다. 아이들은 중학교 세 해를 학교에 얽매여야 ‘중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과 슬기’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중학교 세 해 지식이래 보았자, 집에서 한 달만 책을 파헤쳐도 다 익힙니다. 지식은 참 보잘것없어요. 중학교를 세 해 다녀야 한다면, 열너덧 살 되는 아이들이 제 나이에 걸맞게 삶과 사람과 사랑을 맞아들이는 살가운 누리를 느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식이나 졸업장 때문에 중학교를 다닐 까닭이 없습니다.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매한가지입니다. 지식이나 졸업장 때문에 학교를 다녀야 한다면, 학교를 다니는 아이가 얼마나 슬플까요. 아이를 학교에 넣는 어버이는 또 얼마나 가엾을까요.


.. 날마다 엄마는 휘리릭 아침 준비를 하고 북북 빨래를 하고 ‘준비물, 챙겼지?’ 하고 나한테 물어 보잖아요. 그리고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바람처럼 회사에 가죠. ‘너희 엄마, 멋있다!’ 은지는 엄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대요. 하지만 너무 열심히 하지 마세요. 높은 구두 신고 넘어지지 마세요 ..  (28쪽)


 그림책 《우리 엄마 맞아요?》를 읽으면, 온통 아이 목소리입니다. 아이 어머니 목소리는 한 군데에도 안 나옵니다. 아이 어머니는 말없이 아이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냥 듣는 소리도 아니고, 찬찬히 귀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이스크림 사서 엄마랑 나랑 번갈아 가며 먹었잖아요. 그 아이스크림 막대기도 가져왔는데……. 이제 다 없어졌어요. 그렇게 여러 가지 물건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어요. 어쩔 수 없죠, 뭐.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니까 앞으로 내 방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 ..  (26쪽)


 아이는 제 어머니를 ‘멋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아이는 제 어머니가 ‘멋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는 제 어머니한테 꼭 한 가지만을 바랍니다. 아이는 제 어머니가 그저 ‘내 어머니’이기만을 바랍니다.

 무시무시한 잔소리꾼이 아닌 사랑스러운 어머니이기를 바랍니다. 멋있어 보이는 회사원이 아니라 살가운 집식구이기를 바랍니다. 아줌마라는 나이에도 예뻐 보이는 아가씨(여자)가 아니라 좋은 놀이동무·삶동무·마음동무이기를 바랍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쓴 편지를 읽으며, 잔소리꾼에서 사랑스러운 어머니로 돌아옵니다. 멋있어 보이는 회사원 허울을 벗고 살가운 집식구로 바뀝니다. 예뻐 보이는 아가씨(여자)라는 옷을 내려놓고 좋은 동무 자리로 들어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이와 있을 자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어머니이면서 어머니 자리에 있지 않거나 아버지이면서 아버지 자리에 있지 않다면, 참으로 어떤 자리에 뭐 하러 있는지 돌이켜보거나 되새겨야 합니다. (4344.5.6.쇠.ㅎㄲㅅㄱ)


― 우리 엄마 맞아요? (다케다 미호 그림,고토 류지 글,고향옥 옮김,웅진주니어 펴냄,2008.4.30./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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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5-06 13:52   좋아요 0 | URL
밥벌이, 집일, 집살림, 아이키우기, 사랑나눔이~~~ 우와~~
간신히 밥벌이 좀 하고요, 집일이나 집살림은 아주초콤합니다~ 참, 민망해지네요^^;
그래도 사랑나눔은 많이 합니다~

파란놀 2011-05-06 17:31   좋아요 0 | URL
저도 그닥 잘 하지 못해요.
이렇게 글을 써 보면서 제 삶부터 곰곰이 돌아보곤 해요.
힘들 때마다 이런 글이 나오면서
다시금 기운을 내자고 다짐을 하곤 합니다.
에구궁....
 
木村伊兵衛 昭和を寫す〈4〉秋田の民俗 (ちくま文庫) (文庫)
木村 伊兵衛 / 筑摩書房 / 199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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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그리운 모습, 오늘은 오늘을 찍는다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24] 기무라 이헤이(木村伊兵衛), 《木村伊兵衛 昭和を寫す 4 秋田の民俗》(筑摩書房,1995)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사진을 찍습니다. 책으로 묶는다든지 사진잔치를 열어야 비로소 사진쟁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식구끼리 웃고 떠들며 넘기는 사진첩에 담을 사진을 찍더라도 사진쟁이가 됩니다.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누구나 그림을 그립니다. 멋들어진 곳에서 멋들어진 틀에 끼워 그림을 내다 걸어야 그림쟁이가 되지 않습니다. 나와 벗과 살붙이가 웃고 떠들며 돌아보는 살가운 그림이 된다면 그림쟁이가 됩니다.

 이름난 문학평론가가 손뼉을 쳐 주는 문학을 써야 글쟁이가 아닙니다. 이름난 출판사에서 책으로 나와 수십 수백만 권이 팔려야 비로소 쓸 만한 글이 아닙니다. 나라 안팎에 널리 알려지거나 불리는 노래를 짓거나 불러야 좋은 노래가 아닙니다.

 나 스스로 좋아서 쓰는 글입니다. 내가 좋아하니까 그리는 그림입니다. 내 마음을 담아 부르는 노래입니다. 내 삶을 사랑하면서 찍는 사진입니다.

 모두 그리운 모습이기에 오늘은 오늘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모두 애틋한 이야기이기에 오늘은 오늘을 글로 씁니다. 모두 살가운 이웃이기에 오늘은 오늘을 그림으로 담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어제나 그제 이야기를 쓴다든지, 모레나 글피 이야기를 쓴다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어제 이야기를 돌이키든 모레 이야기를 톺아보든, 언제나 오늘을 살아가는 나로서 쓰는 오늘 글에서 비롯합니다. 꽃이나 나무나 사람을 그림으로 그릴 때면, 처음 붓을 들 때와 마지막 붓질을 할 때는 다르다 할 만합니다. 여러 날을 두고 그림을 그리면, 처음 바라보던 모습을 처음 모습 그대로 그린다 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1초 만에 휘리릭 그려내든 1분 만에 재빨리 담아내든, 그림을 그린다 할 때에는 1초와 1분 사이에 살아낸 모습을 고스란히 옮깁니다. 한 달에 걸쳐 그림 한 장을 그린다면 한 달이라는 나날과 삶과 모습과 이야기가 그림 한 장에 스미는 셈입니다.

 사진은 오늘을 찍습니다. 사진은 어제도 모레도 찍지 못하고, 오로지 오늘만을 찍습니다. 1초에 여러 장을 찍을 수 있는 사진기인 만큼, 사진은 오늘 가운데에서도 몇 시 몇 분 몇 초로 끊으면서 찍을 수 있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모습을 어마어마하게 많은 이야기를 담아 보여줄 만합니다.

 같은 글이라 하더라도 쓰는 사람에 따라 맛과 멋이 다릅니다. 같은 그림이라 하더라도 그리는 사람에 따라 깊이와 너비가 다릅니다. 돌멩이를 찍든 문짝을 찍든,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이 돌멩이와 문짝을 어떻게 바라보며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느끼는가에 따라 사진맛과 사진멋이 달라져요. 사진깊이와 사진너비가 새롭습니다. 왜냐하면, 누군가는 몇 년 몇 월 몇 일 몇 시 몇 분 몇 초라는 틀에 사로잡힌 채 ‘오늘 사진’을 찍지만, 누군가는 ‘나와 네가 처음 태어나던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르게 일군 삶을 나란히 마주하면서 느끼는 오늘 사진’을 찍기 때문입니다.

 기무라 이헤이(木村伊兵衛) 님이 빚은 사진을 그러모은 자그마한 사진책 《木村伊兵衛 昭和を寫す 4 秋田の民俗》(筑摩書房,1995)을 들여다봅니다. 이웃나라 일본은 사진책을 이처럼 손바닥책으로 아기자기하게 묶어서 내놓곤 합니다. 책값은 고작 840엔. 쪽수는 208쪽. 한국에서는 한 사람 사진삶과 사진넋을 조그마하면서 예쁘장한 책 하나에 살뜰히 그러모으기 힘들다고 새삼 느낍니다. 이 사진을 더 큼지막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느낌이 한결 깊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자그마한 크기로 바라본대서 느낌이 옅거나 어수룩할 수 없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며 오늘을 아름다이 사진으로 옮긴 아름다운 손길을 얼마든지 느낍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지난날 김기찬 님이 내놓은 《골목 안 풍경》이라는 사진책을 이렇게 조그마하면서 예쁘장한 판꾸밈으로 아기자기하게 새로 엮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고. ‘기무라 이헤이 사진문고’처럼 ‘김기찬 손바닥 사진책’이라든지 ‘임응식 손바닥 사진책’을 어여삐 묶어서 오래오래 사진꿈과 사진얼을 맛볼 수 있게끔 하면 참으로 기쁘겠다고 느낍니다.

 일본 사진쟁이 기무라 이헤이 님은 사람들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사람들 얼굴을 사진으로 찍고, 사람들 차림새를 사진으로 찍으며, 사람들 살림살이라든지 살림집이라든지 마을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어느 한 가지를 더 돋보이도록 하지 않습니다. 몇몇 사람을 도드라지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저마다 작은 사람입니다. 저마다 고마운 목숨을 어버이한테서 선물받아 저마다 새로운 목숨을 제 아이한테 선물하며 살아가는 고운 사람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아니고 힘겨운 사람이 아닙니다. 외로운 사람이거나 슬픈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내 이웃인 한 사람’입니다. ‘내 동무인 두 사람’입니다. ‘나와 살붙이라 할 만한 세 사람’이고, ‘나랑 한 마을에서 지내는 네 사람’이에요.

 돈이 없기에 슬픈 삶일 수 없습니다. 돈이 있기에 기쁜 삶일 수 없습니다. 어버이 두 분이 몸이 튼튼하든 어버이 두 분이 일찍 돌아가셨든, 어느 한쪽이 더 슬프거나 더 기쁘지 않습니다. 내 아이큐가 150이 되든 100이 되든 50이 되든 다를 일이란 없습니다. 내 걸음이 빠르든 느리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내 키가 크든 작든 어떠하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내 삶은 그예 내 삶입니다. 내 길은 고스란히 내 길입니다. 내 넋은 사랑스러운 내 넋입니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더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더 똥구멍 찢어지게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야 ‘다큐멘터리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아니, 굳이 다큐사진을 찍어야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연예인이나 예쁜 아가씨를 알몸으로 벗기고 사진을 찍는다든지, 또는 예쁘다 하는 옷을 입히고 사진을 찍는다든지, 아름답다는 나라로 가서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라는 아가씨를 사진으로 찍는다고 하든지 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패션사진’이 나올 수 있습니다. 옷 만드는 회사 이름이나 상품을 널리 알리거나 파는 데에 도움이 되는 길을 걸어가기에 ‘여느 사람 눈길을 확 끄는’ 사진을 찍을 수 있을 테지만, 사람들 눈길을 확 끌기에 아름다운 사진이 되지는 않아요.

 얼굴에 주름이 졌으니까 주름진 얼굴을 고스란히 보여주되, 주름진 얼굴만큼 주름진 옷과 주름진 집과 주름진 땅과 하늘을 보여줍니다. 방아를 찧거나 물레를 잣거나 벼를 훑으며 고단하기에 고단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지만, 방아를 찧으며 밥을 얻는다는 즐거움이 있고 물레를 자으며 옷을 얻는다는 기쁨이 있습니다. 고단함과 즐거움과 기쁨을 한 자리에 그러모읍니다.

 사진과 함께 걷는 따사로운 길 하나는 ‘모두 그리운 모습’이라고 느끼며, ‘오늘은 오늘을 찍는’ 사진길입니다. 내 오늘을 예쁘게 사랑하는 사람이라 한다면, 애써 《木村伊兵衛 昭和を寫す 4 秋田の民俗》 같은 사진책을 들추지 않더라도 ‘내 예쁜 오늘과 내 예쁜 오늘 사진’을 살갗으로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내 오늘을 예쁘게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한다면, 기무라 이헤이를 들추든 토몬 켄을 넘기든 살가운 속살을 헤아리지 못하겠지요. (4344.5.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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