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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맞아요? ㅣ 웅진 세계그림책 122
고토 류지 지음, 고향옥 옮김, 다케다 미호 그림 / 웅진주니어 / 2008년 4월
평점 :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이와 있을 자리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 다케다 미호·고토 류지, 《우리 엄마 맞아요?》(웅진주니어,2008)
아이는 제 어버이하고 신나게 놀 때에 활짝 웃습니다. 아이가 차츰차츰 자라 천천히 동무를 하나둘 사귀거나 언니 오빠 누나를 만날 뿐더러 동생을 알 때에는, 동무들하고 마음껏 놀며 활짝 웃습니다. 아이한테 어버이는 맨 처음 사귀는 놀이동무입니다.
어버이는 아이하고 신나게 놀지만, 언제나 신나게 놀 수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는 아이 스스로 밥을 차리거나 옷을 입거나 집을 장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밥을 차리거나 옷을 마련하거나 집을 장만하며 손질한다면, 이제 다 커서 제금나도 될 만하다 하겠지요. 아직 아이가 퍽 어리다면, 어버이 되는 사람은 아이한테 밥을 차리거나 옷을 마련하거나 집을 건사하려고 마음을 쏟고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밥벌이를 해야 하고 집일을 하며 집살림을 꾸려야 합니다.
아이키우기에 앞서, 밥벌이와 집일과 집살림이 있습니다. 짝꿍을 만나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여기에 사랑나눔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아이를 낳고 집안을 이루는 어버이는, 적어도 다섯 가지를 알뜰살뜰 해야 하는 셈입니다. ‘집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온대’서 다른 네 가지를 안 해도 되지 않습니다. 아이키우기 한 가지만 잘할 수 없고, 집일과 집살림만 따로 잘할 수 없어요. 사랑나눔만 잘하면 집안살림과 아이는 엉망이 되겠지요.
아이는 다섯 가지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짐스럽지 않습니다. 아이한테는 다섯 가지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맡지 않는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다섯 가지이든 쉰 가지이든 오백 가지이든, 따로 제몫을 안 맡아도 괜찮습니다. 아이는 어버이 곁에서 어버이가 하는 일을 말끄러미 바라보기만 해도 좋습니다. 어버이가 맡는 집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눈으로 익힌다든지, 가벼운 심부름을 한다든지, 어버이 일을 제 놀이 삼아 흉내내면서 일놀이를 한다든지 하면 됩니다.
.. 엄마, 안녕하세요? 나도 잘 있어요. 어버이날이라서 편지를 씁니다. ‘여러분, 부모님께 감사 편지를 쓰세요!’라고 담임 선생님이 엄하게 말씀하셔서 쓰는 거예요. ‘날마다 맛있는 밥을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내 짝꿍 승현이는 잘도 쓰는데, 나는 부끄러워서 그런 말은 못 쓰겠어요. 대신 눈 딱 감고,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을 쓰겠습니다 .. (4쪽)
배고픈 아이는 손으로 집어먹고 싶지만, 어버이가 곁에서 젓가락과 숟가락을 쓰면서 저한테 젓가락과 숟가락을 쓰라 이르면, 먹고픈 밥을 코앞에 두고는 용을 쓰며 젓가락질이나 숟가락질을 합니다. 떠먹여 주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스스로 떠먹으려고 떠먹이는 손을 손사래치거나 물리치곤 합니다. 걸레질을 할 때에 작은 걸레 하나를 내주면, 아이는 작은 걸레로 제가 닦고픈 것을 찾아 여기저기 슥슥삭삭 문지릅니다. 슥슥삭삭 문지르면서 방긋 웃습니다.
손빨래하는 어버이 곁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몸씻이를 하면서 크다 보니, 아이는 퍽 갓난쟁이였을 적부터 빨래하는 시늉을 하며 빨래놀이를 했습니다. 밥상을 차릴 때에 반찬통 나르기를 즐기고, 수저를 맞추어 놓을 줄 압니다. 밥상을 행주로 닦을 때면 “제가요, 제가 할게요.” 하고 말하면서 어버이 손을 붙잡습니다. 텃밭에서 풀을 뽑으려고 호미를 들면, 저도 어버이 곁에서 풀을 뽑는 시늉을 하듯이 땅을 호미로 콕콕 쫍니다.
그렇게까지 머나먼 옛날이 아닌 지난날, 이 나라 이 겨레 이 땅 사람들이 하던 일은 거의 모두 ‘흙 일구기’였습니다. 바닷마을에서 살아가더라도 흙을 일굽니다. 물고기만 먹고는 살 수 없으니까요. 논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밭이라도 일구기 마련입니다. 지난날 사람들은 너나없이 ‘흙을 일구면서’ 살았어요.
지난날 사람들 가운데 양반과 사대부와 임금과 권력자들만 흙을 일구지 않습니다. 마을과 마을을 넘나들며 장사하던 사람도 흙을 일굴 수 없겠지만, 이들은 어느 한 곳에 뿌리내리지 않으면서 장사를 했으니 흙을 일굴 수 없을 뿐입니다.
‘신동’이나 ‘천재’라 할 만한 아이는 없습니다. 모든 아이가 신동이요 천재입니다. 어느 아이라 하든, 제 어버이가 하는 일을 곁에서 가만히 바라보면서 고스란히 받아들이거나 배우지 않고서는 목숨을 이을 수 없는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삶을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쏙쏙 받아먹고 남김없이 받아들입니다.
어버이가 학문을 하는 양반집 사람이라면, 아이도 어린 날부터 책이나 글을 가까이하겠지요. 어린 날부터 책이나 글을 가까이했으니 퍽 어린 나이부터 책을 곧잘 읽거나 글을 곧잘 쓰겠지요. 퍽 어린 나이부터 ‘흙을 일구는 어버이’ 곁에서 호미놀이를 했으면, 이 아이는 서너 살부터 호미질을 합니다.
멧골집 우리 아이가 ‘호미질 천재’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주 마땅한 삶입니다. 집이 온통 책이요 글을 쓰며 살아가는 어버이 곁에서 자라나는 아이가 돌쟁이 무렵부터 연필을 아주 다부지게 잘 쥐며 ‘글쓰기 놀이’를 했대서 ‘글쓰기 천재’일 수 없습니다. 자리에 누워 제 어버이를 마냥 바라보던 때부터 늘 보던 모습이 ‘글을 쓰는 모습’이니, 저도 손가락에 힘이 붙어 연필을 쥘 수 있던 때에 아주 놀랍도록 야물딱지게 연필을 쥐어 종이에 꼬물꼬물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뿐입니다.
.. ‘세상에, 돼지우리가 따로 없네!’라고 하면서, 제발 마음대로 내 방 청소하지 마세요! 난 돼지가 아니에요, 사람이라고요! 엄마는 깔끔하게 정리된 방이 좋을지 모르지만, 나는 뒤죽박죽인 방이 더 좋단 말이에요. 너무 깨끗해서 반짝반짝 빛나면 괜히 마음이 불편해요. 나는 마음껏 어질러 놓고, 손때 묻은 정든 물건들에 둘러싸여 있어야 마음이 편해요 .. (12쪽)
그림책 《우리 엄마 맞아요?》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 아버지는 안 나옵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아버지는 일찍 죽었거나 아버지하고 헤어진 채 어머니랑 아이가 둘이서 살아간달 수 있습니다. 《우리 엄마 맞아요?》에 나오는 집안이 어떠한지는 굳이 몰라도 됩니다. 어머니만 있는 집이든 아버지만 있는 집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가 둘이건 셋이건 남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도시에서 어머니랑 아이 둘이 살아가자면 어떠한 살림이어야 할까를 헤아려 봅니다. 어머니는 몹시 바쁘게 바깥일을 하며 돈벌이를 해야 하고, 집일과 집살림을 함께 꾸리는 한편, 아이를 잘 돌봐야 합니다. 제아무리 남녀평등이니 성평등이니 외치는 나라나 사회라 하더라도, 여자가 남자처럼 예순이니 예순다섯이니 하는 정년 때까지 일하기란 몹시 버겁습니다. 여느 남자들처럼 바깥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 ‘저녁 밥상 알뜰히 차려 놓을 집일꾼(으레 어머니가 맡는 몫)’이라든지 ‘집안일 다 해 놓고 몸 씻을 물 덥혀 놓을 집일꾼(이 또한 거의 어머니가 맡는 몫)’이 있는 어머니란 없다고 해야 맞습니다. 하루일을 마치느라 고단했으니까, 보리술이라도 한잔 하라며 몇 가지 가벼운 안주를 내미는 집일꾼(언제나 어머니가 맡는 몫) 또한 없겠지요.
홀로 아이를 맡아 살림을 돌봐야 할 어머니는 아이를 일찍부터 어린이집에 넣어야 합니다. 여러 학원에 넣어야 합니다. 아이랑 놀고픈 마음이 굴뚝같아도 아이랑 놀 수 없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는 예쁜 모습을 곁에서 즐거이 지켜보기 힘듭니다. ‘어라, 어느새 이렇게 다 컸나?’ 하고 느낄 뿐입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넣을 때에는, ‘어머니가 집에서 아이하고 부대끼며 스스로 가르치고 서로서로 배우며 보내는 고마운 나날’을 돈을 주면서 남한테 맡기는 셈입니다.
옳게 따진다면, 어린이집 사람들은 어머니한테 돈을 주어야 맞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귀엽고 해맑게 자라나는 아이들을 곁에서 바라보며 싱그러운 기운을 듬뿍 얻을 뿐 아니라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흐뭇할 테니까요. 이 싱그럽고 사랑스러우며 흐뭇한 기운을 ‘아이 어머니’한테서 얻어서 누리니까, 어린이집을 꾸리는 이들이 어머니한테서 돈을 받는 일이란 거꾸로 된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초등학교 교사이건 중·고등학교 교사이건 매한가지예요. 교사가 아니어도 아이들은 지식을 얼마든지 쌓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얻지 못하는 한 가지라면 졸업장입니다. 아이들은 중학교 세 해를 학교에 얽매여야 ‘중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과 슬기’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중학교 세 해 지식이래 보았자, 집에서 한 달만 책을 파헤쳐도 다 익힙니다. 지식은 참 보잘것없어요. 중학교를 세 해 다녀야 한다면, 열너덧 살 되는 아이들이 제 나이에 걸맞게 삶과 사람과 사랑을 맞아들이는 살가운 누리를 느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식이나 졸업장 때문에 중학교를 다닐 까닭이 없습니다.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매한가지입니다. 지식이나 졸업장 때문에 학교를 다녀야 한다면, 학교를 다니는 아이가 얼마나 슬플까요. 아이를 학교에 넣는 어버이는 또 얼마나 가엾을까요.
.. 날마다 엄마는 휘리릭 아침 준비를 하고 북북 빨래를 하고 ‘준비물, 챙겼지?’ 하고 나한테 물어 보잖아요. 그리고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바람처럼 회사에 가죠. ‘너희 엄마, 멋있다!’ 은지는 엄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대요. 하지만 너무 열심히 하지 마세요. 높은 구두 신고 넘어지지 마세요 .. (28쪽)
그림책 《우리 엄마 맞아요?》를 읽으면, 온통 아이 목소리입니다. 아이 어머니 목소리는 한 군데에도 안 나옵니다. 아이 어머니는 말없이 아이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냥 듣는 소리도 아니고, 찬찬히 귀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이스크림 사서 엄마랑 나랑 번갈아 가며 먹었잖아요. 그 아이스크림 막대기도 가져왔는데……. 이제 다 없어졌어요. 그렇게 여러 가지 물건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어요. 어쩔 수 없죠, 뭐.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니까 앞으로 내 방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 .. (26쪽)
아이는 제 어머니를 ‘멋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아이는 제 어머니가 ‘멋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는 제 어머니한테 꼭 한 가지만을 바랍니다. 아이는 제 어머니가 그저 ‘내 어머니’이기만을 바랍니다.
무시무시한 잔소리꾼이 아닌 사랑스러운 어머니이기를 바랍니다. 멋있어 보이는 회사원이 아니라 살가운 집식구이기를 바랍니다. 아줌마라는 나이에도 예뻐 보이는 아가씨(여자)가 아니라 좋은 놀이동무·삶동무·마음동무이기를 바랍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쓴 편지를 읽으며, 잔소리꾼에서 사랑스러운 어머니로 돌아옵니다. 멋있어 보이는 회사원 허울을 벗고 살가운 집식구로 바뀝니다. 예뻐 보이는 아가씨(여자)라는 옷을 내려놓고 좋은 동무 자리로 들어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이와 있을 자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어머니이면서 어머니 자리에 있지 않거나 아버지이면서 아버지 자리에 있지 않다면, 참으로 어떤 자리에 뭐 하러 있는지 돌이켜보거나 되새겨야 합니다. (4344.5.6.쇠.ㅎㄲㅅㄱ)
― 우리 엄마 맞아요? (다케다 미호 그림,고토 류지 글,고향옥 옮김,웅진주니어 펴냄,2008.4.30./8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