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논 도룡뇽 알


 멧길을 따라 오르며 비탈논 옆을 지난다. 비탈논 한복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들여다보지는 못한다. 그러나 발이 폭폭 빠지더라도 한복판으로 들어서 보면 개구리들이 요기조기 숨거나 올챙이가 꼬리를 흔들며 쪼르르 내빼는 모습을 볼 수 있겠지.

 비탈논 한쪽 귀퉁이를 지나면서 동그랗게 말린 가느라단 무언가를 본다. 가만히 다가선다. 동그랗게 말린 가느다란 무언가 둘레로 갓 깨어난 올챙이가 꼬물꼬물 헤엄친다. 동그랗게 말린 가느다란 무언가를 곰곰이 들여다본다. 길다랗게 말린 무언가에는 길다란 작은 목숨이 옴찔옴찔한다. 언제쯤 깨어날 수 있을까를 기다리면서 천천히 자라난다.

 멧골자락 비탈논은 판판한 들판 논보다 퍽 늦게 모내기를 한다. 모판에 볍씨를 심고 나서 논삶이를 할 테니까, 이 도룡뇽 알은 그때까지 힘을 내어 깨어난 다음 올챙이에서 어른 도룡뇽으로 자란다면 얼마든지 살아난다.

 생각해 보면, 개구리이든 도룡뇽이든 사람들이 논삶이를 하며 모를 옮겨 심을 무렵까지 알깨기하고 어른되기를 끝마치면서 살아왔다. 개구리이든 도룡뇽이든 해마다 하루나 이틀씩 더 일찍 깨거나 더 빨리 어른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해마다 하루나 이틀씩 모내기를 앞당기지만, 개구리나 도룡뇽은 저희 삶을 앞당기지 않는다. 아니, 개구리나 도룡뇽도 앞으로는 저희 삶을 앞당겨야 할 테지. 지구별은 차츰 따뜻해지고, 이 나라 날씨 또한 금세 더운 여름이 찾아오니까, 사람들은 더운 날씨에 맞추어 모내기를 앞당기지 않겠는가. 더욱이, 더 빨리 심고 더 빨리 거두어 더 빨리 팔려고 하다 보니, 다들 모내기를 앞당긴다. 철과 날씨와 시골살이를 헤아리며 천천히 알맞게 모내기를 하는 사람은 늘어나기 힘들다.

 어느 농사꾼이든 모내기를 앞당기면서 개구리하고 도룡뇽한테 ‘자, 올해에는 앞당겨 일할 테니까 얼른 깨어나서 이곳을 떠나렴!’ 하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렇게 이야기한들 알아듣겠나. 이런 이야기를 알아듣는들 갑자기 더 빨리 자라서 논을 떠날 수 있겠는가. 논을 떠났다가 모내기를 마친 다음 다시 논으로 돌아올 수 있겠는가.

 아파트를 짓건 갯벌을 메우건 공항을 만들건, 또 네 군데 큰 물줄기를 손질한다는 일을 하건, 이 나라 사람 가운데 어느 누구라도 한겨레와 오래도록 함께 살아온 이웃 목숨붙이한테 소곤소곤 말을 거는 일이란 없다. 환경영향평가를 한다지만, 사람이 살도록 바꾸려는 환경영향평가일 뿐, 예부터 조용히 잘 살아오던 작은 목숨붙이가 오래오래 조용히 잘 살도록 마음을 쏟는 환경영향평가란 없다.

 도룡뇽 한 마리 때문에 고속철도를 늦추거나 에돌거나 멈출 수 없다던 대통령이고 정치꾼이고 기자이고 지식인이고 공무원이고 개발업자이고, 바로 우리들 아니던가. 도룡뇽 한 마리한테 마음을 쓸 수 없다면, 가난한 이웃한테도 마음을 쓸 수 없다. 가난한 사람한테야 보상금 찔끔 던진 다음 쫓아내면 되고, 강제수용 퇴거명령서 한 장이면 끽소리 못하고 떠나야 한다. (4344.5.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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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5-07 23:47   좋아요 0 | URL
허 저게 도룡뇽 알인가요.된장님 덕분에 자세히 보게되네요^^

숲노래 2011-05-08 06:23   좋아요 0 | URL
요즈음은 도룡뇽 알도 많이 줄어요. 게다가 무슨무슨 체험이랍시고 도룡뇽 알을 마구 건드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