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木村伊兵衛 昭和を寫す〈4〉秋田の民俗 (ちくま文庫) (文庫)
木村 伊兵衛 / 筑摩書房 / 1995년 7월
평점 :
품절
모두 그리운 모습, 오늘은 오늘을 찍는다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24] 기무라 이헤이(木村伊兵衛), 《木村伊兵衛 昭和を寫す 4 秋田の民俗》(筑摩書房,1995)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사진을 찍습니다. 책으로 묶는다든지 사진잔치를 열어야 비로소 사진쟁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식구끼리 웃고 떠들며 넘기는 사진첩에 담을 사진을 찍더라도 사진쟁이가 됩니다.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누구나 그림을 그립니다. 멋들어진 곳에서 멋들어진 틀에 끼워 그림을 내다 걸어야 그림쟁이가 되지 않습니다. 나와 벗과 살붙이가 웃고 떠들며 돌아보는 살가운 그림이 된다면 그림쟁이가 됩니다.
이름난 문학평론가가 손뼉을 쳐 주는 문학을 써야 글쟁이가 아닙니다. 이름난 출판사에서 책으로 나와 수십 수백만 권이 팔려야 비로소 쓸 만한 글이 아닙니다. 나라 안팎에 널리 알려지거나 불리는 노래를 짓거나 불러야 좋은 노래가 아닙니다.
나 스스로 좋아서 쓰는 글입니다. 내가 좋아하니까 그리는 그림입니다. 내 마음을 담아 부르는 노래입니다. 내 삶을 사랑하면서 찍는 사진입니다.
모두 그리운 모습이기에 오늘은 오늘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모두 애틋한 이야기이기에 오늘은 오늘을 글로 씁니다. 모두 살가운 이웃이기에 오늘은 오늘을 그림으로 담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어제나 그제 이야기를 쓴다든지, 모레나 글피 이야기를 쓴다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어제 이야기를 돌이키든 모레 이야기를 톺아보든, 언제나 오늘을 살아가는 나로서 쓰는 오늘 글에서 비롯합니다. 꽃이나 나무나 사람을 그림으로 그릴 때면, 처음 붓을 들 때와 마지막 붓질을 할 때는 다르다 할 만합니다. 여러 날을 두고 그림을 그리면, 처음 바라보던 모습을 처음 모습 그대로 그린다 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1초 만에 휘리릭 그려내든 1분 만에 재빨리 담아내든, 그림을 그린다 할 때에는 1초와 1분 사이에 살아낸 모습을 고스란히 옮깁니다. 한 달에 걸쳐 그림 한 장을 그린다면 한 달이라는 나날과 삶과 모습과 이야기가 그림 한 장에 스미는 셈입니다.
사진은 오늘을 찍습니다. 사진은 어제도 모레도 찍지 못하고, 오로지 오늘만을 찍습니다. 1초에 여러 장을 찍을 수 있는 사진기인 만큼, 사진은 오늘 가운데에서도 몇 시 몇 분 몇 초로 끊으면서 찍을 수 있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모습을 어마어마하게 많은 이야기를 담아 보여줄 만합니다.
같은 글이라 하더라도 쓰는 사람에 따라 맛과 멋이 다릅니다. 같은 그림이라 하더라도 그리는 사람에 따라 깊이와 너비가 다릅니다. 돌멩이를 찍든 문짝을 찍든,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이 돌멩이와 문짝을 어떻게 바라보며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느끼는가에 따라 사진맛과 사진멋이 달라져요. 사진깊이와 사진너비가 새롭습니다. 왜냐하면, 누군가는 몇 년 몇 월 몇 일 몇 시 몇 분 몇 초라는 틀에 사로잡힌 채 ‘오늘 사진’을 찍지만, 누군가는 ‘나와 네가 처음 태어나던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르게 일군 삶을 나란히 마주하면서 느끼는 오늘 사진’을 찍기 때문입니다.
기무라 이헤이(木村伊兵衛) 님이 빚은 사진을 그러모은 자그마한 사진책 《木村伊兵衛 昭和を寫す 4 秋田の民俗》(筑摩書房,1995)을 들여다봅니다. 이웃나라 일본은 사진책을 이처럼 손바닥책으로 아기자기하게 묶어서 내놓곤 합니다. 책값은 고작 840엔. 쪽수는 208쪽. 한국에서는 한 사람 사진삶과 사진넋을 조그마하면서 예쁘장한 책 하나에 살뜰히 그러모으기 힘들다고 새삼 느낍니다. 이 사진을 더 큼지막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느낌이 한결 깊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자그마한 크기로 바라본대서 느낌이 옅거나 어수룩할 수 없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며 오늘을 아름다이 사진으로 옮긴 아름다운 손길을 얼마든지 느낍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지난날 김기찬 님이 내놓은 《골목 안 풍경》이라는 사진책을 이렇게 조그마하면서 예쁘장한 판꾸밈으로 아기자기하게 새로 엮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고. ‘기무라 이헤이 사진문고’처럼 ‘김기찬 손바닥 사진책’이라든지 ‘임응식 손바닥 사진책’을 어여삐 묶어서 오래오래 사진꿈과 사진얼을 맛볼 수 있게끔 하면 참으로 기쁘겠다고 느낍니다.
일본 사진쟁이 기무라 이헤이 님은 사람들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사람들 얼굴을 사진으로 찍고, 사람들 차림새를 사진으로 찍으며, 사람들 살림살이라든지 살림집이라든지 마을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어느 한 가지를 더 돋보이도록 하지 않습니다. 몇몇 사람을 도드라지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저마다 작은 사람입니다. 저마다 고마운 목숨을 어버이한테서 선물받아 저마다 새로운 목숨을 제 아이한테 선물하며 살아가는 고운 사람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아니고 힘겨운 사람이 아닙니다. 외로운 사람이거나 슬픈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내 이웃인 한 사람’입니다. ‘내 동무인 두 사람’입니다. ‘나와 살붙이라 할 만한 세 사람’이고, ‘나랑 한 마을에서 지내는 네 사람’이에요.
돈이 없기에 슬픈 삶일 수 없습니다. 돈이 있기에 기쁜 삶일 수 없습니다. 어버이 두 분이 몸이 튼튼하든 어버이 두 분이 일찍 돌아가셨든, 어느 한쪽이 더 슬프거나 더 기쁘지 않습니다. 내 아이큐가 150이 되든 100이 되든 50이 되든 다를 일이란 없습니다. 내 걸음이 빠르든 느리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내 키가 크든 작든 어떠하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내 삶은 그예 내 삶입니다. 내 길은 고스란히 내 길입니다. 내 넋은 사랑스러운 내 넋입니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더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더 똥구멍 찢어지게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야 ‘다큐멘터리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아니, 굳이 다큐사진을 찍어야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연예인이나 예쁜 아가씨를 알몸으로 벗기고 사진을 찍는다든지, 또는 예쁘다 하는 옷을 입히고 사진을 찍는다든지, 아름답다는 나라로 가서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라는 아가씨를 사진으로 찍는다고 하든지 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패션사진’이 나올 수 있습니다. 옷 만드는 회사 이름이나 상품을 널리 알리거나 파는 데에 도움이 되는 길을 걸어가기에 ‘여느 사람 눈길을 확 끄는’ 사진을 찍을 수 있을 테지만, 사람들 눈길을 확 끌기에 아름다운 사진이 되지는 않아요.
얼굴에 주름이 졌으니까 주름진 얼굴을 고스란히 보여주되, 주름진 얼굴만큼 주름진 옷과 주름진 집과 주름진 땅과 하늘을 보여줍니다. 방아를 찧거나 물레를 잣거나 벼를 훑으며 고단하기에 고단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지만, 방아를 찧으며 밥을 얻는다는 즐거움이 있고 물레를 자으며 옷을 얻는다는 기쁨이 있습니다. 고단함과 즐거움과 기쁨을 한 자리에 그러모읍니다.
사진과 함께 걷는 따사로운 길 하나는 ‘모두 그리운 모습’이라고 느끼며, ‘오늘은 오늘을 찍는’ 사진길입니다. 내 오늘을 예쁘게 사랑하는 사람이라 한다면, 애써 《木村伊兵衛 昭和を寫す 4 秋田の民俗》 같은 사진책을 들추지 않더라도 ‘내 예쁜 오늘과 내 예쁜 오늘 사진’을 살갗으로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내 오늘을 예쁘게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한다면, 기무라 이헤이를 들추든 토몬 켄을 넘기든 살가운 속살을 헤아리지 못하겠지요. (4344.5.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