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꽃 지다


 퍽 일찍부터 피어난 딸기꽃이 하나둘 진다. 딸기꽃은 이제 한창 지니까, 딸기열매는 이제부터 무르익으려 하며, 딸기씨가 송송 박힌 딸기열매를 맛보려면 유월이 지나야 한다. 햇볕을 쬐며 비바람을 맞고 흙에 뿌리를 내리는 딸기는 첫여름 맛난 먹을거리요, 하얀 딸기꽃은 봄을 부르는 숱한 예쁜 길동무 가운데 하나이다.

 봄을 부르던 숱한 꽃은 일찌감치 피었다가 일찌감치 진다. 그러나 딸기는 무척 일찍부터 꽃을 피우면서 꽤 늦게까지 꽃잎을 닫지 않는다. 어쩌면 무리지어 흐드러지게 피니까 몹시 오래도록 꽃을 피운다 여길 만하다. 딸기넝쿨을 보면 일찍 꽃을 피우는 데가 있으면서 느즈막하게 꽃을 피우는 데가 있으니까. 한꺼번에 몰아치듯이 피어나지 않는 딸기꽃이요, 그러니까 한꺼번에 몰아붙이듯이 맺히지 않는 딸기열매가 된다.

 딸기꽃은 작고 하얗다. 딸기씨는 더 작으며 까맣다. 딸기열매는 푸른빛에서 빨간빛으로 바뀐다. 꽃이 지고 열매가 맺은 뒤에는 딸기넝쿨만 덩그러니 남아 흙을 단단히 붙잡는다. 열매를 얻은 다음에는 넝쿨을 걷어낼 수 있을 테지만, 굳이 넝쿨을 걷어내지 않으면 겨우내 들자락 흙이 고스란히 살아남아 추운 겨울을 난 이듬해에는 말라죽은 넝쿨이 거름이 되어 새 딸기풀이 돋고 딸기꽃이 피며 딸기열매가 맺을 수 있다. (4344.5.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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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저귀 빨래와 책읽기


 종이기저귀를 안 쓰고 천기저귀를 쓰는 사람은 아이가 오줌이나 똥을 눌 적마다 벗겨서 갈아야 합니다. 갓난아기한테 천기저귀를 쓰자면 밤새 잠을 잘 수 없습니다. 갓난아기는 밤에는 삼십 분이나 한 시간마다 오줌이나 똥이나 똥오줌을 누기 때문입니다.

 삼십 분쯤 눈을 붙였다가는 벌떡 일어납니다. 젖은 기저귀를 벗깁니다. 새 기저귀를 채웁니다. 젖은 기저귀를 들고 씻는방으로 갑니다. 바닥에 잘 펼쳐서 물을 솔솔 부으며 한손으로 살살 비벼 똥 기운을 슥슥 뺍니다. 애벌빨래를 해서 목초물에 담그는데, 새벽이나 아침에 빨래를 한 차례 하며 하루를 엽니다. 아니, 밤새 기저귀갈이를 하니까 따로 하루를 마감하거나 연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할 만합니다.

 오늘날 나오는 종이기저귀에는 오줌을 여러 차례 누어도 된다 합니다. 똥을 누었어도 아기 엉덩이가 짓무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참 대단한 종이기저귀요 놀라운 물질문명누리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여느 때에도 늘 손빨래를 하는 어버이로서 궁금합니다. 아이는 오줌을 여러 차례 눈 종이기저귀를 댄 채 잠들어도 밑이 개운하거나 흐뭇할는지요. 내가 아이라 한다면 종이기저귀를 대는 일을 좋아할 수 있을는지요. 사랑하는 아기한테 종이기저귀를 대고 물티슈라는 녀석으로 밑을 닦아야 아기를 사랑하는 셈이라 하거나 아기 몸에 좋다 할 수 있는지요.

 나는 지식을 다루는 책을 예부터 퍽 안 좋아합니다. 나는 삶을 다루거나 살림을 다루는 책을 예부터 무척 좋아합니다. 바깥일을 하든 집안일을 하든, 일을 어떻게 하는가 살피는 책을 좋아합니다. 일을 하는 보람과 힘겨움과 기쁨과 슬픔을 다루는 책을 몹시 좋아합니다. 일터살림을 꾸리거나 집살림을 꾸리거나, 내 사랑하는 사람들하고 어우러지는 곳(일터와 삶터)에서 사람들을 사랑하는 매무새로 일구는 살림을 보여주는 책을 아주 좋아합니다.

 돈이 있고 겨를이 없으니까 종이기저귀를 쓰겠지요. 돈이 없고 겨를이 있대서 천기저귀를 쓴다 하겠지요. 그렇지만, 돈이 있고 겨를이 없으면서도 종이기저귀를 쓸 때라야 어버이라 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없고 겨를이 있지 않을 때에도 아이를 사랑하는 넋을 고이 보듬을 때에야 비로소 어버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참으로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종이기저귀를 써야 하지 않다면, 아기를 어떻게 왜 어느 만큼 사랑하는 어버이 노릇인가를 돌아보아야 한다고 여겨요. 나는 내 아기를 아끼고 좋아하니까요. 나는 내 책을 아끼고 좋아하니까요. 나는 내 삶을 아끼고 좋아하니까요. (4344.5.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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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지기 어머니


 첫째를 갓 낳은 뒤 여러모로 집살림과 아이돌보기를 함께 해 주신 옆지기 어머니가 둘째를 갓 낳은 뒤에도 여러모로 큰힘이 되어 주신다. 시골집으로 찾아와 주셔서 엿새째 함께 지낸다. 옆지기는 당신 어머니한테 딸이다. 우리 집 첫째는 옆지기한테 딸이다. 나중에 첫째가 커서 아이를 낳으면 옆지기가 제 딸아이를 도울 수 있을까. 아무래도 옆지기는 몸이 너무 힘들며 아프기 때문에 도울 수 없으리라 생각하는데, 첫째가 어머니가 되어 아이를 낳는다면 ‘할머니(옆지기)가 몸풀이를 도와주러 가지는 못하’고 ‘할아버지가 몸풀이를 도와주러 가야 하’리라 느낀다. 몸이 되는 사람이 집일을 하면서 집살림을 꾸리고, 몸을 더 쓸 수 있는 사람이 몸을 더 건사하면서 힘들거나 아픈 이를 알뜰히 사랑할 노릇이라고 느낀다. (4344.5.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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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 시간 어린이


 둘째가 우리 식구한테 온 날, 첫째는 새벽 두 시 조금 지날 무렵부터 깨어나 함께 기다렸다. 아주 일찍 일어나 고단했을 첫째는 구급차를 불러 어머니가 병원으로 실려 가는 동안 잘 견디고, 메마르면서 차가운 병원에서 멀뚱멀뚱 퍽 오래 기다려야 하는 동안 잘 참으며, 갑갑하면서 숨막히는 병실에서 잘 버텨 주었다. 그러나 열 시간을 이렇게 견디고 참으며 버틴 끝에 스르르 곯아떨어진다. 아이가 곯아떨어진 곁에서 아버지도 쓰러지고 싶지만, 아이 어머니 몸을 다스려야 하기 때문에 첫째가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졸음을 쫓으며 어머니 몸을 주무른다. 바야흐로 첫째가 고단한 잠에서 깨어날 무렵, 아이 손을 잡고는 병원 밖으로 나와 문방구로 찾아간다. 문방구에서 그림연필하고 그림종이를 산다. 병실에서 심심해 할 아이하고 함께 놀려고 장만한다. 왼손으로는 어머니 배를 쓰다듬고, 오른손으로는 그림연필을 쥐고는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린다. (4344.5.2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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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을 대고 하는 말


 사람으로 살아가며 사람한테 삶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는데 내가 하는 말이 한귀로 고스란히 흘러 나간다든지 아예 처음부터 튕겨진다고 할 때에는 벽을 대고 하는 말입니다. 맞은편은 맞은편대로 맞은편 하고픈 말을 쉬지 않고 쏟아부으면서 나한테 아무런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을 때에, 이 또한 벽을 대고 하는 말입니다. 쏟아붓기는 말도 이야기도 사랑도 아닙니다. 한쪽만 오래도록 말을 한대서 쏟아붓기이지는 않습니다. 깊이 사랑하면서 조곤조곤 속삭일 때에는 한 사람만 속삭여도 괜찮습니다. 따사로운 사랑으로 살가이 껴안을 때에는 한 사람만 말꽃을 피울 수 있어요. 그러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 풀어야 할 일일 때에는, 두 쪽은 두 쪽대로 제 이야기를 꺼낸 다음, 맞은편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차분히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제 할 말을 마치고 나서 다른 볼일을 보러 간다며 홱 돌아선다면, 그예 벽을 대고 하는 말입니다. 아무리 웃음 띤 얼굴이라 하더라도 벽을 대고 하는 말이라면 조금도 따스하지 않고 하나도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4344.5.2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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