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예방 주사 네버랜드 과학 그림책 7
오카베 리카 그림, 고바야시 마사코 글, 모노노베 다카코 도움글, 이선아 옮김 / 시공주니어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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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포르말린 예방 주사’를 아이한테 맞히는 어른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9] 오카베 리카·고바야시 마사코, 《두근두근 예방 주사》(시공주니어,2003)



 주사 맞기 싫다 하는 아이한테 ‘주사는 몸에 좋으니 괜찮아’ 하고 타이르는 이야기를 다루는 그림책 《두근두근 예방 주사》를 아이한테 읽히면 아이들은 예방 주사를 더는 두려워 하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안 아픈데, 왜 주사를 놓아서 아프게 하느냐?’고 따지는 말에는 달리 대꾸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큰물을 막으려고 둑을 쌓는 일하고 예방 주사 맞는 일은 같지 않습니다. 예방 주사란 ‘병을 막는 주사’가 아니라 ‘병을 넣는 주사’이기 때문입니다.

 어른들로서는 튼튼한 아이가 나중에 아플까 걱정해서 놓는다는 예방 주사라고 이야기합니다. 나중에 아플까 걱정스러우니까 아직 튼튼할 때에 ‘미리 손을 써야지’ 하고 생각할 만합니다. 이를테면, 배터지게 밥을 먹으려고 소화제를 미리 먹는 셈이라고 할까요.


.. 의사 선생님은 세균이 내뱉는 독을 약하게 만들어 건강한 사람의 몸 속에 집어넣습니다. 그러면 몸은 그 독을 잡아먹는 연습을 하게 되어, 세균에 강해집니다. 그래야 나중에 진짜 세균이 들어와도 이길 수 있지요. 이것이 예방 주사가 하는 일입니다 ..  (25쪽)


 예방 주사를 아이한테 맞히는 일은 어버이 몫입니다. 이러한 주사로 병을 미리 막을 수 있다고 여긴다면 놓을 노릇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사를 놓기 때문에 병에 안 걸린다고 말하는 일은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예방 주사는 ‘병을 100% 막아’ 주지 않을 뿐더러, 예방 주사 때문에 병에 걸리기도 할 뿐 아니라, 예방 주사 때문에 다른 병에 걸리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익히 안다고 이야기하듯이, ‘예방 주사 = 병원균 주사’입니다. 튼튼한 아이한테 ‘병원균을 몸속에 미리 집어넣는 주사’가 예방 주사입니다.

 사람들이 익히 안다고 이야기하듯이, 예방 주사는 몸이 여린 아이한테 맞힐 수 없습니다. 몸이 여린 아이는 예방 주사 병원균을 이기지 못합니다. 몸이 여린 아이한테 예방 주사를 맞히면, 몸이 여린 아이는 이 병원균이 몸에 퍼지면서 ‘예방 주사 맞힌 병’에 걸립니다. 아이가 튼튼할 때에만 맞힐 수 있는 예방 주사입니다. 더구나, 한꺼번에 여러 가지 주사를 맞히면, 여러 가지 병원균이 뒤섞여 어떤 합병증이 생길는지는 아직 연구가 되지 않았을 뿐더러, 예방 주사를 만든 제약회사에서조차 이렇게는 하지 말라고 합니다.


.. 불활성화백신은 병원체를 가열하거나 자외선을 쬐거나 포르말린 등으로 처리하여 면역을 만드는 기능만 남기는 것으로, 면역기능이 지속되지는 않는 백신입니다. 인플루엔자, 일본뇌염, 백일해, B형간염 등의 백신이 여기에 속합니다 ..  (30쪽)


 그림책 《두근두근 예방 주사》에서는 예방 주사 성분 가운데 한두 가지만 살짝 밝힙니다. 그림책 《두근두근 예방 주사》에서 밝히는 예방 주사 성분 가운데 하나는 ‘포르말린’입니다. 예방 주사를 맞히면서 아이한테 포르말린을 집어넣는 셈입니다. 그렇지만 포르말린을 썼기 때문에 예방 주사가 꼭 나쁘다고는 여길 수 없겠지요. ‘포르말린 우유’이든 무엇이든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으니까요. 더욱이, 아주 적게 몸속에 넣은 포르말린은 크게 탈이 되지 않는다지만, 예방 주사란 ‘병원균이 몸 바깥으로 빠져나오지 않으면서 오래오래’ 남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병이 걸리지 않게끔 할 테니까요. 곧, 예방 주사를 놓는 일이란 ‘몸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않는 화학약품과 화학첨가물을 집어넣는’ 일이 됩니다.

 그림책에서 밝히지 않으나, 예방 주사 주요 성분으로 수은과 알루미늄과 페놀과 염산과 에릴렌글리콜 들이 있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미나마타병이나 이따이이따이병이 왜 생겼는가를 조금이라도 헤아려 본다면, 예방 주사에 수은을 넣는 일을 함부로 안 할 테지요. 그런데, 이 나라 정부와 의학계와 보건소와 학교에서는 예방 주사를 맞히라고는 말하지, 막상 예방 주사 성분이 무엇인지를 다루지 않으며 말하지 않으며 밝히지 않습니다.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아이들 급식을 할 때에 급식으로 쓰는 먹을거리가 어떤 재료인지를 꼼꼼히 따지는 어버이나 교사 가운데, 아이한테 먹이는 약이나 맞히는 예방 주사는 성분이 무엇인지를 낱낱히 살피는 분이 너무 드뭅니다.

 초코파이나 새우깡이 맛있다고 여기면 먹을 수밖에 없지만, 맛있다고 여기든 안 여기든, 초코파이나 새우깡이 어떤 성분으로 되었으며, 어떤 화학첨가물이 깃들었는지를 알면서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들이야 그냥 먹는다 하더라도 아이한테는 함부로 먹일 수 없으니까요. 어린이와 푸름이한테는 담배를 피우지 말라 하지만, 어른들은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웁니다. 어른으로서는 담배가 자유라 하지만,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한테 담배 연기가 오도록 하는 일까지 자유가 될 수 없겠지요. 아이가 병에 안 걸리기를 바라며 예방 주사를 맞히겠다 하는 일은 어느 어버이한테나 자유입니다. 그렇다면, 아이한테는 무슨 자유와 어떤 권리가 있을까 헤아려야 합니다. 아이는 제 어버이처럼 무엇이 옳거나 바른지를 살필 수 없고 따지지 못하니까요. 어버이는 ‘아이한테 좋으니까 하자’는 생각이 아니라, 옳은 길과 바른 길과 그릇된 길과 잘못된 길을 하나하나 밝히거나 따지거나 살피면서 참다운 길을 골라야 비로소 어버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예방 접종을 받는 것보다는 병에 걸렸을 때 스스로의 힘으로 면역을 만드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꽤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  (31쪽)


 몸이 아프다는 사람한테는 약을 써야겠지요. 약 가운데에는 ‘생약’이 있고 ‘화학약’이 있습니다. 약을 안 쓰겠다는 일이 ‘희생을 감수하자’는 일이 아닐 뿐더러, ‘예방 주사가 어떤 성분인지를 밝히며 안전한 예방 주사를 만들거나 걱정없이 예방 주사를 안 맞히며 살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잘못된 주장’을 하는 사람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되리라 봅니다. 생약도 사람 몸이 어떠하고 체질이 어떠한가를 살펴서 제대로 써야 합니다. 생약 아닌 화학약일 때에는 화학 약품에 어떠한 두드러기가 있는지를 미리 알아야 합니다.

 퍽 많은 사람들이 달걀이나 우유를 몸에서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달걀을 못 먹는 아이한테는 예방 주사 가운데 맞혀서는 안 되는 주사가 꽤 있습니다. 예방 주사 가운데에는 ‘달걀 성분’으로 만드는 예방 주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아이들 급식으로 나오는 달걀을 안 먹이면서, ‘달걀 성분’이 든 예방 주사를 맞힌다면, 어버이로서는 아이키우기를 잘못하는 셈일 뿐 아니라, 자칫 아이 목숨을 잃게 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가장 마땅한 일입니다만, 내 살림살이와 살림집이 ‘병에 안 걸릴 만큼 정갈하거나 좋거나 아름다울’ 수 있어야 합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복닥이는데다가 너무 많은 자동차가 배기가스를 내뿜으며 숱한 공장이 잔뜩 몰린 곳에서 살아가는데, 이러한 곳에서 예방 주사를 맞힌들 아이 몸이 튼튼하기를 바라기 어렵습니다. 주사를 맞히면서 ‘이제 병에 안 걸리겠지’ 하고 생각할 수 없어요. ‘병에 걸리지 않을 터전이란 어떤 곳일까’를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요즈음에는 결핵이라는 병이 거의 사라졌지만, 예방 주사 때문에 다시금 도지기도 합니다. 지난날 결핵에 걸린 사람이 많았던 까닭은 ‘제대로 못 먹고 힘들게 일하며 썩 안 좋은 집’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처럼 웬만하면 다 잘 먹고 힘든 일은 거의 안 하면서 깨끗하다는 터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결핵이 걸릴 일이 거의 없어요. 예부터 결핵에 걸린 사람은 물과 바람이 맑은 시골로 보내 깨끗한 곡식과 푸성귀로 지은 밥을 먹였습니다.

 어떠한 병이든 약으로는 몸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약으로 병원균을 다스릴 수 있어도 몸을 다스리지 못해요. 예방 주사로 병원균을 다스린다지만, 밑바탕이 되는 몸이 튼튼하지 못하다면 예방 주사란 부질없을 뿐 아니라, 여리거나 야윈 몸에는 예방 주사가 부작용이나 반작용을 일으킵니다. 곧, 튼튼한 몸이 되도록 아이와 어른이 함께 즐거이 살아간다면, 예방 주사를 맞더라도 잘 버티거나 받아들이지만, 예방 주사가 없더라도 얼마든지 튼튼하고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언제나 가장 크게 돌아볼 대목은 한 가지입니다. ‘예방 주사로 병을 이겨내자’는 대목이 아니라, ‘내 살림집과 내 마을이 얼마나 깨끗하며 아름답고 좋은가’ 하는 대목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이한테 ‘좋다는 책’을 많이 읽힌대서 아이가 똑똑해지거나 슬기롭게 살아가지 않습니다. 좋다는 책에 앞서 ‘좋은 삶을 사랑하는 나날’이 되도록 사랑으로 얼싸안아야 합니다. 좋다는 책이든 나쁘다는 책이든 아무 책을 안 읽히더라도 씩씩하면서 아름다이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어버이한테서 따뜻하고 넉넉히 사랑을 받은 아이들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사랑으로 큽니다. 아이도 어른도 좋은 밥으로 몸이 튼튼해집니다. 아이도 어른도 좋은 보금자리에서 좋은 삶을 일굽니다.

 주사가 옳으냐 그르냐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사랑하려 하느냐를 생각하고, 주사이든 약이든 밥이든 ‘어떤 성분’인가를 살피면서, 참다운 길을 찾아 다 함께 알뜰히 누리는 삶자락을 아낄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입시지옥이 문제라면 입시지옥을 없애도록 힘써야지, 입시지옥과 학력차별 사회이기 때문에 대학교 졸업장을 반드시 따도록 아이들을 밀어붙이기만 하면, 아이도 어른도 입시지옥과 학력차별 사회에서 그저 시름시름 앓을밖에 없다고 느껴요. (4344.5.10.불.ㅎㄲㅅㄱ)  


※ 함께 읽을 책
 1.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스테파티 케이브 씀,바람 펴냄,2005)
 2. 《예방접종, 부모의 딜레마》(그레그 비티 씀,잉걸 펴냄,2006)
 3. 《백신,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팀 오시 씀,여문각 펴냄,2006)

― 두근두근 예방 주사 (오카베 리카 그림,고바야시 마사코 글,이선아 옮김,시공주니어 펴냄,2003.3.5./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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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1-05-10 16:36   좋아요 1 | URL
예방주사나 면역이라고 하면 좀 딱딱하다 싶지만,
상처나 상처가 만들어낸 옹이라고 하면 훈장처럼 느껴지기도 하니,
그렇게 위안을 얻을 밖에요~

제 자신과 제 주변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파란놀 2011-05-10 17:33   좋아요 1 | URL
'예방주사를 맞히자'고 하는 어린이책에도 '예방주사 주요 성분 가운데 하나가 포르말린'이라고 밝힐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책을 보는 어른(부모, 교사, 의사)들이 이 그림책을 바탕으로 아이들한테 예방주사 맞아야 한다고 교육을 하니... 참 어이없도록 슬픈 한국이 아닌가 싶어요.

'인체에 무해한 만큼만 포르말린을 쓴다'고 할는지 모르는데, '인체에 나쁘'기 때문에 '인체에 무해하다 할 만한 양을 썼다는 수은(치메로살)을 넣은 예방주사'는 일본에서 '수은 없는 예방주사'를 만들기까지 했지만, 수은을 다른 화학성분으로 대체했어도, 다른 성분 또한 화학조합물이기 때문에 똑같이 문제가 많아요.

군산복합체처럼 병의약산업복합체를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나와 내 아이와 이웃 아이들 몸과 마음을 지킬 수 없어요...

pjy 2011-05-11 11:56   좋아요 1 | URL
선택의 여지가 너무 좁고, 뭘 선택해도 참 어렵습니다~

파란놀 2011-05-11 12:45   좋아요 1 | URL
예방주사가 어떠한 노릇을 하는지를 깨달으면, 어느 쪽 길을 즐겁게 걸어가야 좋을는지를 잘 알 수 있어요~ ^^

참 쉽답니다~
 



 삶과 죽음과 책읽기


 나는 오늘을 살아서 오늘 새로 나오는 책을 헤아릴 수 있고 장만할 수 있으며 읽을 수 있다. 내가 오늘을 살지 못한다면 오늘 새로 나오는 책뿐 아니라 모레 새로 나올 책을 알 수도 장만할 수도 읽을 수도 없겠지. 이뿐 아니라, 이제껏 살아오며 미처 모르는 채 지나온 숱한 책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살피거나 장만하거나 읽을 수 없다. 하루하루 더 목숨을 잇는 일이란 몹시 고맙다.

 날마다 내 눈이 차츰 어두워진다고 느끼지만,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며 그닥 힘들지 않다. 글도 쓰고 책도 읽을 수 있는 눈이란 얼마나 고마운가. 둘째를 밴 옆지기 배를 바라보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첫째 아이를 쳐다볼 수 있는 하루란 얼마나 고마우면서 즐거운가. 책을 읽을 수 있는 삶이란, 사랑할 수 있는 삶이며, 살림을 꾸리며 어깨동무할 수 있는 삶이로구나 싶다.

 뒷간에서 꼬물꼬물거리면서 기어다니는 구더기를 본다. 이 구더기들은 곧 파리가 되겠지. 파리가 되면 이 녀석들은 며칠쯤 살아갈까. 파리마다 고작 한 달도 못 산다 하지만, 새로운 파리가 까고 예전 파리는 죽고 하기를 되풀이할 테지.

 맛나게 먹은 두릅나무 새싹 자리에 새로운 싹이 돋는다. 두릅나무 새싹은 어느새 퍽 커다란 잎사귀로 바뀐다. 더 잘리고 싶지 않은 뜻인지 제법 기운차게 뻗는다. 이토록 기운차니까 두릅나무 새싹은 두 차례 잘라서 먹을 수 있다고 했겠지.

 비가 온다. 텃밭 푸성귀도 잘 자랄 테고, 텃밭에서 움트려는 온갖 풀도 잘 자라겠지. 푸성귀 말고 다른 풀은 호미질을 해서 뽑아야 하고, 멧자락이나 숲속에서 자라는 풀은 가만히 바라보기만 한다. 나는 내 손에 쥐어진 책을 읽는다. 삶과 죽음을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이야기했다는 《돼지가 있는 교실》(달팽이,2011)을 읽고, 삶과 죽음 사이에서 엇갈리는 슬픈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프로메테우스출판사,2011)를 읽는다. 누구나 살아가기에 글을 쓰고 책을 낸다. 누구나 살아숨쉬니까 글을 읽고 책을 읽는다. 살면서 살림을 일구고, 죽으면서 손을 놓는다. 사는 동안 바짝 기운을 내고, 죽는 자리에서는 스스럼없이 기쁘게 주먹을 풀어야겠지. (4344.5.1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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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메 칸타빌레 25 - 완결
토모코 니노미야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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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무리는 뻔할 만화일 테지만, 예쁜 사람들
 [만화책 즐겨읽기 36] 니노미야 토모코, 《노다메 칸타빌레 (24∼25)》



 한국에서는 2002년부터 옮겨진 《노다메 칸타빌레》가 2011년 4월 15일에 25권으로 드디어 마무리가 됩니다. 이제껏 니노미야 토모코 님이 그린 만화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데, 《노다메 칸타빌레》 1권을 집어들던 첫무렵부터 이 만화가 어떻게 마무리가 될는지 훤히 보였습니다. 아주 뻔하다 싶은 줄거리로 이어질 만화가 되리라 느꼈어요.

 줄거리가 훤히 보이는 작품이지만, 《주식회사 천재패밀리》라든지 《GREEN》이라든지 《음주가무연구소》라든지 즐겁게 읽을 만화입니다. 니노미야 토모코 님 만화책은 ‘줄거리를 살피는’ 작품이 아니라, 당신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툭탁툭탁 부대끼거나 올망졸망 어울리는 삶’을 들여다보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 “어차피 하는 건, 같은 모차르트잖아. 비에라 선생님도 나와 같은 총보를 사용해. 난 충분히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24권 113쪽)


 생각해 보면, 니노미야 토모코 님 만화책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만화책은 마무리가 어떻게 될는지 어림할 수 있습니다. 조금 뜻밖이다 싶도록 마무리가 되더라도 ‘이렇게 될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첫 권을 집어들면서 ‘아하, 이 만화는 이러저러하게 되다가 몇 권쯤에서 요리조리하게 끝나겠구나.’ 하고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은 아닙니다. 만화를 읽든 글을 읽든 사진을 읽든, 마무리나 줄거리는 그닥 대수롭지 않아요. 이야기를 어떻게 엮느냐가 대수로우며, 어떠한 이야기로 어떠한 사랑과 삶과 사람을 그리느냐가 대수롭습니다.


- “이 오페라만큼은 웃으며 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요. 아마 우리 관객들은 오페라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 (25권 123쪽)


 이제껏 한국말로 옮겨진 니노미야 토모코 님 만화책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분 만화에 한결같이 흐르는 넋이란 ‘밝은 웃음’과 ‘맑은 사랑’입니다. 회사원으로 일을 하든 흙을 일구며 땀흘리든 피아노 건반을 두들기든, 저마다 선 자리에서 제 삶을 아끼면서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를 어여삐 사랑하는 나날을 살며시 보여줍니다. 더 돋보이는 삶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더 빼어난 사람을 추켜세우지 않아요. 더 따스한 사랑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수수한 자리에서 수수한 나날을 수수한 사람과 수수한 사랑으로 가꾸는 착한 사람들이 어떻게 밝은 웃음을 나누면서 맑은 사랑을 꽃피우는가 하는 실타래를 풉니다.

 《노다메 칸타빌레》 스물다섯 권은 스물다섯 가지로 나누어 들여다보는 수많은 밝은 웃음과 숱한 맑은 사랑이 춤추는 노래잔치라고 할까요.


- ‘그래, 처음부터 제대로 된 적은 한 번도 없었어.’ (25권 87쪽)
- “세계적인 노다메 양이 바로 마법의 방울이지. 받아들여! 치아키.” (25권 135쪽)
- ‘그녀가 앞으로도 쭉 나와 함께 음악의 길을 가 주는 것만으로 기쁘기 때문에, 모두의 연주를 들으러 세계 각지로 가 보고 싶어.’ (25쪽 172쪽)



 빈틈 많은 사람들이 빈틈 많은 삶을 꾸리며 빈틈 많은 사랑을 맺습니다. 처음부터 제대로 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어쩌면, 니노미야 토모코 님 만화책치고 ‘제대로 된’ 작품이 없다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되든 안 되든 무엇이 대단하겠습니까. 웃으면서 읽고 싱그럽게 받아들이며 착하게 가슴에 여미면 넉넉할 테니까요.

 노벨상을 받겠다는 작품이 아니고, 1000만 권이 팔리기를 꿈꾸는 작품이 아니며, 세계명작으로 손꼽히기를 바라는 작품이 아닙니다. 작은 사람들이 작은 꿈을 작은 가슴에 품으면서 작은 사랑으로 열매를 이루는 작은 삶길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 “나한텐 꿈만 같았어요! 선배와의 첫 협연!” “바보. ‘협연’은 피아노 솔로로 협주곡을 같이 하는 거야.” “전 오케스트라 속에 있는 것도 꿈이었는걸요. … 너무 행복해서 앞으로 1년 동안은 이걸 반찬 삼아 혼자서도 맛있게 밥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25권 150∼151쪽)


 협연이면 어떠하고 오케스트라이면 어떠하며 오페라이면 어떠하겠습니까. 이것이든 저것이든 아무것이 아닙니다. 함께 살아가는 동무요 이웃입니다. 서로 아끼는 벗이며 살붙이입니다. 나란히 한길을 뚜벅뚜벅 걷는 고운 님입니다. 곁에서 따사롭게 어루만지며 돌보는 옆지기입니다.

 피아노 천재가 아닌 노다메입니다. 지휘 천재가 아닌 치아키입니다. 노래를 사랑하고, 노래를 이루는 삶을 사랑하며, 노래를 이루는 삶을 조용히 일구며 복닥이는 여느 사람들을 사랑하는 노다메이고 치아키입니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한 사람인 노다메이면서 치아키입니다. 누구 위에 올라선다거나 누구 밑에 밟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 자리에서 어깨동무하면서 웃고 떠들며 울다가는 얼싸안는 예쁜 사람입니다.

 예쁜 넋이 곱다시 담긴 《노다메 칸타빌레》 이야기는 2002년부터 2011년까지 꼭 열 해를 이었습니다. 이제 다음에는 어떤 예쁜 마음이 어떠한 고운 손길에 실려 새로운 이야기로 펼쳐질까 궁금합니다. (4344.5.10.불.ㅎㄲㅅㄱ)
  

― 노다메 칸타빌레 24∼25 (니노미야 토모코 글·그림,서수진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0.9.15.+2011.4.15./4200원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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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짱dirn 2014-05-24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네요!
 
장차이 Chang Ts‘ai 열화당 사진문고 30
장차이 사진, 젠융빈 글, 한정선 옮김 / 열화당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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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기록하는 사진’이란 없어요
 [찾아 읽는 사진책 21] 젠융빈·한정선 엮음, 《장차이》(열화당,2008)



 지난날 ‘열화당 사진문고’는 ‘프랑스 photo poche’를 그대로 옮겨서 내놓았습니다. 오늘날 ‘열화당 사진문고’는 ‘영국 phaidon’을 고스란히 옮겨서 내놓습니다. 사진문화나 사진예술이 거의 자리잡지 못하는 한국 사진밭을 헤아린다면, 포토 포쉐이든 페이돈이든 옮겨서 내놓는 일이란 무척 고맙습니다. 한 발 나아가 ‘taschen’이라든지 ‘朝日カメラ’를 옮겨서 내놓을 수 있어요. 사진책을 팔아 돈을 벌기 힘든 한국땅에서, 돈있는 출판사가 선뜻 프랑스나 영국이나 독일이나 일본에서 만든 손꼽히는 사진책을 펴낼 수 있다면 참으로 반갑습니다. 가만히 보면, 이름난 사진쟁이라 하든 이름 안 난 사진쟁이라 하든, 사진책을 낼 때에는 으레 제살깎기를 하듯 내놓기 마련입니다. 아주 이름난 사진쟁이가 아니고서는 제살깎기 아닌 ‘사진책 내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지난날이든 오늘날이든, 이러구러 나라밖 사진문고를 한국말로 옮겨서 낸다 할 때에는, 이러한 사진책을 내면서 저작권삯을 치렀든 안 치렀든 조금 더 바지런히 옮겼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몇몇 아주 이름난 사진쟁이 사진책뿐 아니라, 한국에 거의 안 알려졌다 하더라도 ‘아름다운 사진’이나 ‘사랑스러운 사진’이나 ‘믿음직한 사진’을 펼쳐 보인 사람들 따사로우면서 넉넉한 손길을 느끼도록 했다면 얼마나 고마웠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2008년을 끝으로 더는 안 나오는 ‘새 열화당 사진문고’ 가운데 하나인 《장차이》(열화당,2008)를 읽습니다. 장차이 님 사진은 “서양 문물이 유입되던 시기의 상하이 풍경, 정치사회적 격변기의 타이완 사람들과 원주민들의 생활상 등을 관찰과 탐구의 열정으로 기록한 타이완의 선구적인 사진가”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사진은 ‘역사를 기록한다’는 노릇을 톡톡히 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이처럼 지난 한삶을 고이 보여주는 사진을 요즈음 들어 높이 사곤 합니다. 틀림없이 사진은 ‘본 대로 찍어서 남깁’니다. 내가 보는 모습이든 네가 보는 모습이든, 저마다 보는 모습을 고스란히 찍어서 남깁니다.

 다만, 사진은 본 대로 찍어서 남기도록 하되, ‘내가 본 대로’ 찍어서 남기도록 합니다. 사진은 내가 본 대로 찍어서 남기도록 하되, ‘내가 생각하면서 본 대로’ 찍어서 남기도록 합니다. 사진은 내가 생각하면서 본 대로 찍어서 남기도록 하되, ‘내가 살아가며 내가 생각하는 동안 내가 보는 대로’ 찍어서 남기도록 합니다.

 사진으로 담기는 ‘역사를 기록한다’는 모습이란, 어느 한 나라나 한 겨레 역사라 할 수 없습니다. 사진으로 담기는 ‘역사를 기록한다’는 모습이란, 어느 한 사람이 한 곳에서 부대끼는 만큼 바라보거나 생각한 이야기를 담는 모습입니다.

 사진은 더 담아내지 않습니다. 사진은 덜 담아내지 않습니다. 사진은 오직 사진기를 쥔 사람 삶 깜냥과 무게와 깊이와 너비와 속살만큼 담아냅니다.

 사진기를 쥔 한 사람이 타이완 어느 도시에서 어느 한 동네 사람들하고 깊이 사귀거나 어울렸다면 바로 이 어느 한 동네 사람들 삶자락만을 아주 깊으면서 살갑게 사진으로 담습니다. 사진기를 쥔 사람이 타이완 토박이하고 멧자락 깊이 들어가 조용히 살아갔다면 바로 이 멧자락 깊은 터전 토박이들 여느 삶(토속 생활)을 사랑스레 사진으로 담습니다. 사진기를 쥔 한 사람이 집에서 아이를 도맡아 키웠다면, 어느 한때(1920년대이든 1950년대이든 1970년대이든) 여느 살림집 아이 하나 자라는 동안 입거나 걸친 옷자락을 비롯해 생김새와 놀잇감이나 집살림을 요모조모 들여다볼 만한 사진을 남깁니다.

 ‘사진은 역사를 기록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진은 내가 살아온 발자취를 담는다’고 말해야 올바릅니다.

 1980년대 민주운동을 사진으로 담는다고 할 때에도 ‘역사를 기록한 사진’이라 할 수 없습니다. ‘1980년대 민주운동하고 살아온 내 발자취’를 담는 사진일 뿐입니다.

 1980년대 민주운동 언저리에서 구경꾼으로 지냈는지, 그저 보도사진기자로만 머물렀는지, 민주운동을 ‘거친 폭력 시위대 몹쓸 짓’으로 여기며 지냈는지, 민주운동 한복판에서 온몸을 던지며 ‘독재정권 몰아내기’에 힘을 기울였는지 하는 내 삶자락이 담기는 사진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사진으로 담던 사람들도 매한가지입니다. 축구경기를 마음껏 즐긴 사람인지 축구경기가 벌어지는 언저리에서 구경꾼으로 머물렀는지, 또는 이무렵 일어난 ‘미군 장갑차 살인사건’을 살피는 한 사람으로 지냈는지 하는 ‘내 삶 한 자락 발자취’를 담는 사진이 됩니다.

 장차이 님 사진을 담은 《장차이》는 ‘1940∼50년대 현대 타이완 사회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장차이가 살았던 1940∼50년대 타이완 어느 한켠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기록이란 없습니다. 사진기록이란 없습니다. 글기록이든 그림기록이든 따로 없습니다. 모두 내 삶이면서 내 이야기가 되고, 내 모습이면서 내 얼굴이 됩니다. 더 뜻있는 사진이란 없고, 더 뜻없는 사진이란 없습니다. 더 좋은 사진이나 더 나쁜 사진은 없습니다. 2050년이나 2100년쯤 될 때에는, 이들 2050년이나 2100년 뒷사람은 2000년대나 2010년대 오늘 이야기를 어떤 눈길로 바라보려나요. 앞으로 2050년대 뒷사람이나 2100년대 뒷사람 또한 ‘2000년대 한국 사회 모습’이나 ‘2010년대 한국 서민 생활 모습’ 같은 이름을 붙이는 ‘사진기록’을 이야기하려나요. (4344.5.9.달.ㅎㄲㅅㄱ)


― 장차이 (젠융빈·한정선 엮음,열화당 펴냄,2008.11.15./12000원)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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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이 너무 맛!있습니다~~
    from 즐겁게~재밌게~美色不同面 半夜佳人 2011-05-09 17:49 
    된장님의 글이 너무 좋습니다~~ 제 맘대로 순서는 초큼 바꿔보았습니다~잘 발효된 된장에 맛나게 조물조물,나물반찬처럼 자꾸자꾸 생각이 납니다*^^*‘사진은 역사를 기록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어느 한 사람이 한 곳에서 부대끼는 만큼 바라보거나 생각한 이야기를 담는 모습입니다.사진은 더 담아내지 않습니다. 사진은 덜 담아내지 않습니다. 사진은 오직 사진기를 쥔 사람 삶 깜냥과 무게와 깊이와 너비와 속살만큼 담아냅니다.다만, 사진은 본 대로 찍어서 남기도록
 
 
 



 둘째와 책읽기


 둘째가 태어날 오월을 맞이한다. 곧 둘째가 태어나는데, 나는 우리 살림집에서 어떤 일을 하면서 집안을 다스렸는가 헤아린다. 둘째가 오늘 저녁에 곧바로 태어나더라도 우리 살림집은 둘째가 느긋하면서 즐거이 깃들 만큼 알뜰히 다스렸는가 곱씹는다.

 새롭게 함께 살아갈 아이도, 둘째를 낳아 몸을 더욱 제대로 추스를 옆지기도, 동생을 맞이할 첫째도, 이들을 건사하며 집일을 도맡을 아버지도, 이 작은 시골집에서 옹기종기 복닥일 만큼 살림집을 다부지게 다스리는지 생각해 본다.

 아이가 태어날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손에 책을 쥘 겨를이란 차츰차츰 줄어든다. 첫째가 태어나던 때에도 이와 같았다고 느낀다. 하루에 책 한 줄 안 읽으면 마음이 무너지느니 어쩌느니 한다지만, 집식구를 살피면서 하루살림을 꾸리자면, 살짝 허리를 펼 틈이 없을 때가 잦다. 어쩌면 책읽기란 ‘있는 사람만 누리는 기쁨’은 아닐까. 지난날 그토록 수많은 책을 사들여 읽던 내 삶이란, 나 또한 ‘무언가 있는 사람’이었다는 소리가 아닐까.

 나한테는 돈이 그닥 있지 않다. 나한테는 그저 실컷 부리는 몸뚱이하고 돈푼 조금 모이면 집살림 아닌 책살림에 보태는 마음가짐만 있었다. 홀로 살아가던 지난날에는 모든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을 책살림에 들이부었다. 이러니까 돈이 없고 집이 없으며 이름이 없달지라도, 여기에 지식이 없고 가방끈이 없으며 권력 따위가 없을지라도, 얼마든지 내 깜냥껏 ‘책삶을 누리는 기쁨’을 맛보았다 할 만하다.

 이제 나는 내 몸뚱이를 집식구와 함께 살아가는 흐름에 맞추어 부려야 한다. 돈푼 조금 생기면 집살림을 마련하거나 집식구 먹을 여러 가지를 장만하는 데에 보태야 한다. 나로서는 종이에 담긴 사랑넋을 받아먹을 틈바구니가 거의 없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읽어 주지 않는다면, 내 마음밥을 살찌운다는 책읽기를 하나도 못하고 지나가는 하루하루가 되고 만다. (4344.5.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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