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과 책읽기


 나는 오늘을 살아서 오늘 새로 나오는 책을 헤아릴 수 있고 장만할 수 있으며 읽을 수 있다. 내가 오늘을 살지 못한다면 오늘 새로 나오는 책뿐 아니라 모레 새로 나올 책을 알 수도 장만할 수도 읽을 수도 없겠지. 이뿐 아니라, 이제껏 살아오며 미처 모르는 채 지나온 숱한 책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살피거나 장만하거나 읽을 수 없다. 하루하루 더 목숨을 잇는 일이란 몹시 고맙다.

 날마다 내 눈이 차츰 어두워진다고 느끼지만,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며 그닥 힘들지 않다. 글도 쓰고 책도 읽을 수 있는 눈이란 얼마나 고마운가. 둘째를 밴 옆지기 배를 바라보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첫째 아이를 쳐다볼 수 있는 하루란 얼마나 고마우면서 즐거운가. 책을 읽을 수 있는 삶이란, 사랑할 수 있는 삶이며, 살림을 꾸리며 어깨동무할 수 있는 삶이로구나 싶다.

 뒷간에서 꼬물꼬물거리면서 기어다니는 구더기를 본다. 이 구더기들은 곧 파리가 되겠지. 파리가 되면 이 녀석들은 며칠쯤 살아갈까. 파리마다 고작 한 달도 못 산다 하지만, 새로운 파리가 까고 예전 파리는 죽고 하기를 되풀이할 테지.

 맛나게 먹은 두릅나무 새싹 자리에 새로운 싹이 돋는다. 두릅나무 새싹은 어느새 퍽 커다란 잎사귀로 바뀐다. 더 잘리고 싶지 않은 뜻인지 제법 기운차게 뻗는다. 이토록 기운차니까 두릅나무 새싹은 두 차례 잘라서 먹을 수 있다고 했겠지.

 비가 온다. 텃밭 푸성귀도 잘 자랄 테고, 텃밭에서 움트려는 온갖 풀도 잘 자라겠지. 푸성귀 말고 다른 풀은 호미질을 해서 뽑아야 하고, 멧자락이나 숲속에서 자라는 풀은 가만히 바라보기만 한다. 나는 내 손에 쥐어진 책을 읽는다. 삶과 죽음을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이야기했다는 《돼지가 있는 교실》(달팽이,2011)을 읽고, 삶과 죽음 사이에서 엇갈리는 슬픈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프로메테우스출판사,2011)를 읽는다. 누구나 살아가기에 글을 쓰고 책을 낸다. 누구나 살아숨쉬니까 글을 읽고 책을 읽는다. 살면서 살림을 일구고, 죽으면서 손을 놓는다. 사는 동안 바짝 기운을 내고, 죽는 자리에서는 스스럼없이 기쁘게 주먹을 풀어야겠지. (4344.5.1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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