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 이승편 - 상 신과 함께 시리즈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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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좋은 꿈을 꾸자
 [만화책 즐겨읽기 158] 주호민, 《신과 함께 (이승편 상)》

 


  좋은 꿈을 꿀 때에는 좋은 삶을 누릴 수 있구나 싶어요. 좋은 꿈을 못 꿀 때에는 좋은 삶을 못 누리는구나 싶어요. 왜냐하면, 내 마음속에서 좋은 삶을 누리는 좋은 길을 바라니까 좋은 일이 찾아들고, 내 마음속부터 좋은 삶을 누릴 좋은 길을 깨닫지 못하니까 좋은 일이 찾아들지 않아요.


  좋은 꿈을 안 꿀 때에도 좋은 일은 찾아올 수 있겠지요. 그런데, 좋은 꿈을 안 꿀 때에는 나한테 찾아드는 좋은 일이 참말 좋은지, 참으로 기쁜지, 참으로 아름다운지를 느끼지 못해요. 알아보지 못하고 살피지 못해요. 그저 스쳐 지나가기만 합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바라보고, 느끼며, 알아채요. 스스로 바라는 대로 생각을 잇고, 사랑을 나누며, 꿈을 펼쳐요.


  그래서 자꾸자꾸 생각합니다. 좋은 꿈을 자꾸자꾸 생각합니다. 내 마음속에 먼먼 옛날부터 스며들거나 깃든 얄궂거나 아프거나 슬프거나 궂은 생각이 무엇인가 하고 돌이키면서, 이런 생각들이 차츰차츰 허물을 벗으며 예쁘거나 곱거나 착하거나 참다운 빛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꿈을 꿉니다.


- “우린 이 집이 지어질 때부터 여기 있었지. 집이 우리고, 우리가 집이야.” (16쪽)
- “이 조건이면 임대아파트로 가실 수 있습니다.” “이보쇼. 내가 전쟁 끝나고 열여덟에 상경해서 58년째 여기 살고 있소. 가긴 어디로 가란 말여?” “에이, 어르신. 그래도 이참에 깨끗한 아파트로 가시는 게 손자 키우기도 편하시고.” “택도 없는 소리 마쇼! 지금 나보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닭장 같은 곳에서 살란 말요? 멀쩡한 우리 집 놔두고 왜?” (38∼39쪽)

 

 


  비가 내리는 하루이기에 빗소리를 듣습니다. 비가 멎고 맑게 갠 하루이기에 맑은 햇살을 누립니다. 바람이 산들산들 부는 하루이기에 산들산들 시원하며 싱그러운 바람을 즐깁니다.


  몸이 아파 힘들며 고단하고 괴로운 하루를 보냅니다. 몸이 나아 개운하면서 홀가분한 하루를 누립니다. 아이들 뒤척이는 소리에 밤에 한잠도 이루지 못하며 찌뿌둥합니다. 아이들 새근새근 잘 자는 소리를 들으며 나도 고요히 단잠을 이룹니다.


  스스로 즐기면서 누리는 삶입니다. 스스로 바라는 대로 누리는 삶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일도 겪고 저러한 일도 겪으면서 스스로 새롭게 거듭나고 싶은지 모릅니다. 이런 아픔과 저런 기쁨을 겪으면서 내 생각과 사랑을 한결 따사롭게 가다듬고 싶은지 몰라요.


  꿈이란 돈을 더 벌겠다는 생각이 아닙니다. 꿈이란 이름을 더 얻겠다는 생각이 아닙니다. 꿈이란 무언가 더 거머쥐겠다는 생각이 아니에요. 꿈이란 내 모습을 꾸밈없이 바라보면서 티없이 보듬고 싶은 생각입니다.


- “조왕이도 마찬가지야. 아파트에는 부뚜막이 없어.” “뭐?” (45쪽)
- “그뿐만이 아냐! 곧 이 동네까지 사라진다구. 이런 상황에 꼭 데려가야만 속이 시원하겠냐?” “사정은 안됐지만, 이 사정 저 사정 다 따지면 세상에 죽을 사람 하나도 없소.” (78쪽)
- “그래도 그런 상황이셨으면, 말씀이나 해 주시지, 에휴. 그럼 도와드렸을 텐데.” “말을 해야 아는 거요?” (292쪽)

 

 


  갓난쟁이가 뒤집습니다. 뒤집고 놀던 갓난쟁이가 깁니다. 기던 갓난쟁이가 걷습니다. 천천히 걷던 갓난쟁이가 드디어 뛰며 달리기를 합니다. 노래를 부르고 말꽃을 피웁니다. 하루하루 새롭게 자라납니다.


  곰곰이 돌이키면, 어른도 하루하루 새롭게 자라납니다. 어제는 모르던 무언가를 오늘 깨우칩니다. 이제껏 모르던 무언가를 시나브로 알아챕니다. 나이 서른이 되어 깨닫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이 쉰에 알아채는 슬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서로 스승이 되고, 서로서로 좋은 벗님이 됩니다. 나는 너한테 좋은 이웃이며, 너는 나한테 좋은 동무입니다.


  그러니까, 좋은 꿈을 꾸자고 생각합니다. 좋게 살아갈 나날을 꿈꾸자고 생각합니다. 내 삶을 좋게 빛내고, 나와 이웃한 사람들 삶 또한 당신들 스스로 좋게 빛내는 결을 생각합니다.


  내가 좋을 때에 네가 좋고, 네가 좋을 때에 내가 좋거든요. 내가 웃을 때에 네가 웃고, 네가 웃을 때에 내가 웃어요. 내가 골을 부릴 때에 네가 골을 부리고 말며, 네가 골을 부릴 때에 나까지 골을 부리고 말아요.


- “라면만 사?” “우리 집은 라면만 먹는데요! 할머니 안 계셔서 라면 먹어요. 할아버지는 밥할 줄 몰라요.” (72쪽)
- “얼마 정도요? 보증금이란 게.” “천 5백에서 2천만 원 정도구요, 월세는 20만 원 정도입니다.” “그럼 이 집 부수면 얼마가 나오는 거요?” “에, 2인 가구에 평수를 계산해 보면, 9백만 원 정도네요.” (122∼123쪽)

 


  주호민 님 만화책 《신과 함께》(애니북스,2011) 이승편 상권을 읽습니다. 사람들 곁에 늘 있던 ‘지킴이’가 오늘날 갑작스레 어떻게 달라졌는가 하는 줄거리를 바탕으로, 사람들 꿈과 사랑과 이야기를 빚습니다. 먼 옛날, 사람들은 지킴이를 바랐기에 집에 지킴이를 모셨어요. 오늘날, 사람들은 지킴이를 바라지 않으니 집에 지킴이를 모시지 않아요. 먼 옛날, 사람들한테는 돈이 없었어요. 흙이 있고, 살붙이가 있으며, 햇살과 바람과 물이 있었어요. 풀과 꽃과 나무가 있었어요. 오늘날, 사람들한테는 흙이 없어요. 햇살도 바람도 물도 풀도 꽃도 나무도 없어요. 오늘날 사람들한테는 돈만 있어요.


  집에 지킴이가 꼭 있어야 집을 지키지는 않습니다. 집에 지킴이가 없기에 집을 못 지키지는 않습니다. 나라에 군대가 있어야 나라를 지키지 않아요. 내 마음에 믿음이 참답게 있을 때에 나를 사랑하면서 나를 아끼고 나를 지켜요. 전투기나 탱크나 잠수함이 나를 지켜 주지 않아요. 믿음과 사랑과 꿈이 나를 지켜요. 돈이나 아파트나 자가용이 나를 지켜 주지 않아요. 생각과 마음과 가슴이 나를 지켜요.


- “지금껏 집에만 있다가 요즘에 세상 구경을 해 보니까 많은 걸 느낀다.” “어떤 거?” “인간들의 세상이란 참으로 이상하다는 것을 배웠지. 한쪽이 살려면 다른 한쪽이 죽어야 한달까?” “뭐야, 그런 게 어딨어. 둘 다 살면 되잖아.” “문제는, 누구든지 자신은 사는 쪽일 거라 생각한다는 거지.” “뭐래.” (213쪽)
- “집이 없어지면 장맛이 다 무슨 소용이죠? 장독대도, 심지어 먹을 사람도 사라지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요? 난 부엌의 신이에요. 하지만 이렇게 싸우고 있죠.” (268쪽)


  내 곁 좋은 이웃들이 좋은 꿈을 생각할 수 있기를 빕니다. 나 또한 언제나 내 하루를 좋은 꿈으로 빚으면서 내 이웃들한테 좋은 동무로 살아가자고 빕니다. 내 곁 좋은 이웃들이 좋은 사랑과 생각으로 하루를 빛내기를 바랍니다. 나 또한 늘 나부터 내 하루를 좋은 사랑과 생각으로 빛내면서 기쁘게 웃는 꿈을 빛내자고 바랍니다. (4345.6.24.해.ㅎㄲㅅㄱ)

 


― 신과 함께 (이승편 상) (주호민 글·그림,애니북스 펴냄,2011.11.11./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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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중꽃 책읽기

 


  뒷밭에서 풀을 뽑다가 까마중풀은 그대로 둔다. 까마중꽃이 하얗게 피기도 했고, 벌써 꽃이 지면서 푸르게 익는 열매가 보인다. 이제 하루하루 좋은 날이 이어지면, 까마중알은 까맣게 달게 맛나게 익겠지. 내가 따로 심지 않아도 스스로 씩씩하게 나는 어여쁜 까마중풀은 다음해에도 또 다음해에도 새롭게 어여쁜 빛깔로 찾아오리라. (4345.6.2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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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2-06-25 13:32   좋아요 0 | URL
작년이었던가 류도 산소에 가서 까마중을 보았는데,,
까맣게 익은 까마중을 따 먹어보라고 했더니 망설이더니 입에 하나 넣고 웃더라구요,
그리고 가끔 엄마네 집에 가서 보게 되면 아주 반가워해요,,ㅎㅎ

파란놀 2012-06-26 03:24   좋아요 0 | URL
아주 어릴 적부터 들열매를 먹어 버릇하지 않으면
누가 건네거나 내밀어도
낯선 먹을거리가 되고 말아요.

아이도 어른도 자연을 느끼는 삶이란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 있는데..
모두들 씩씩하게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
 
독과 도 - 울자, 때로는 너와 우리를 위해
윤미화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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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느낌글(서평)'은 나중에 따로 쓸 생각이지만, 이에 앞서, 내 책을 다룬 꼭지에서 잘못 적은 대목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렇게 붙인다. 부디 잘못 적은 곳은 낱낱이 바로잡아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바로잡은 결과를 '실물'로 나한테 보내 주기 바란다.

 

..

 


 파란여우(윤미화) 님, 《독과 도》를 읽다가
 ― 《사진책과 함께 살기》 잘못 다룬 곳 짚기

 


  2012년 6월 15일에 나온 《독과 도》(북노마드)를 읽다가, 내가 쓴 책 가운데 하나인 《사진책과 함께 살기》를 다룬 대목을 자꾸 잘못 말하기 때문에, 몇 가지 바로잡고자 이 글을 쓴다. 벌써 종이에 찍혀 나온 《독과 도》이기 때문에, 나로서는 달리 어찌할 길이 없으니, 이렇게 ‘바로잡기’를 한다.


 01. 책이름 잘못 적음
  알라딘서재에서 ‘된장’이라는 이름을 쓰는 내(최종규)가 지난 2010년에 내놓은 책 가운데 하나는 《사진책과 함께 살기》이다. 그런데, 파란여우(윤미화) 님이 쓴 《독과 도》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진 책과 함께 살기”로 적는다. 왜 띄어쓰기를 바꾸는가? 게다가 ‘사진집’은 붙여서 적으면서 ‘사진 책’은 띄어서 써야 할 까닭이 있을까? 내가 인천에서 2007년부터 꾸리다가 2011년에 전남 고흥으로 옮긴 서재도서관은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이다. 내 서재도서관 이름을 밝힐 때에도 ‘사진 책’을 띄어야 할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 머리말을 살피면, 머리말 끝자락에 ‘사진책’이라는 낱말을 일부러 쓰려고 한 까닭을 밝혔다. 한국 사진문화를 한 걸음 나아가게 하고 싶기 때문에 ‘사진책·사진밭·사진말·사진읽기·사진찍기·사진마을’ 같은 새 낱말을 나 스스로 지어서 썼다. 이와 같은 대목을 처음부터 옳게 살피지 않는다면,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 담은 줄거리와 고갱이는 어떻게 돌아볼 수 있을까.


 02. 사진책 비평 갈래
  파란여우 님은 234쪽에서 “‘사진 책 서평집’이라는 장르는 물론 없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있다. 없을 까닭이 없으며, 없어야 할 까닭도 없다. 이 갈래로 나온 책이 한국에는 몇 가지 없고, 도서관 분류법에 제대로 나누어지지 않았대서 이 갈래가 없다 할 수 있을까. ‘사진책 서평’이란 곧 ‘사진읽기’를 뜻하고, ‘사진비평’이다. 사진책을 말하는 책이 바로 사진비평인데, 이러한 갈래가 없다는 말은 할 수 없다.


 03. 헌책방에서 건진 사진 책 위주로 썼다 (234쪽)
  《사진책과 함께 살기》는 모두 1·2·3부로 나눈다. 이 가운데 3부는 ‘새책방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사진책만 다룬다. 1부는 도서관에서 찾아볼 만한(그러나 아직 한국 도서관에서는 알뜰히 못 갖추는) 사진책을 다룬다. 2부는 사진책을 널리 장만할 수 있는 좋은 헌책방을 소개하면서, 이 헌책방에서 장만한 사진책을 다룬다. “헌책방에서 건진 사진 책 위주”란 무엇일까? 더욱이, “헌책방에서 건진”이라는 말마디는, 이렇게 ‘건지기’까지 품을 많이 팔아야 하거나 다른 책들은 썩다리라는 뜻을 풍긴다. 나는 헌책방을 다닐 때에 “책을 건진” 적이 없다. 《독과 도》라는 책을 쓴 분이 내 책을 제대로 읽었다면 이를 모르지 않으리라. 나는 언제나 “책을 살” 뿐이다. 살림을 장만하듯 “책을 장만한”다.


 04. 글쓴이의 주관적 견해가 많은 (234쪽)
  모든 글은 스스로 쓰니까 모든 글은 ‘주관’이다. 《독과 도》는 주관인가 객관인가? 《독과 도》를 쓴 사람 눈길로는 ‘주관’이라 하더라도, 이 주관이란 무엇인가. 게다가, 서평이든 비평이든 모든 ‘평가’란 주관이 내리는 평가이지, 객관이 내리는 평가일 수 없다. 스스로 읽은 다음 느낌을 말하는 일이 평가요, 서평이나 비평이 된다.


 05. 사진의 속내를 통해 (235쪽)
  내가 쓴 글이라면서 따온 대목인데, 나는 이 책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서 ‘토씨 -의’하고 ‘통(通)해’라는 말투를 어느 한 곳에서도 안 썼다. 그런데 갑작스레 이런 말투를 ‘내가 쓴 말투’인 듯 따온글로 적어 놓았다. 몇 쪽에 이런 말투가 나오는지 밝혀 주기를 바란다(교정지에서 바로잡았으나 출판사에서 나한테 말하지 않고 이런 말투로 책을 냈으면, 내 책 또한 새로 고쳐야 하니까). 글쓴이 말투가 아닌 글을 마치 따온글이라면서 함부로 적는 일은 올바르지 않다.


 06. 상업광고에서 나타나는 감각적인 스타일은 애초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사진은 여러 갈래이고, 사진책도 여러 갈래이다. 상업사진과 상업사진책을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서 안 다루었대서 내가 이러한 갈래에 아예 눈길을 안 둔다는 투로 말하는 일은 얼마나 올바른 서평이나 비평이 될까. 내 알라딘서재(blog.aladin.co.kr/hbooks)에서 사진책 비평 게시판에 올린 글을 읽으면 알 테지만, 나는 ‘사진으로 이루어진 책’이나 ‘사진을 말하는 책’을 모두 다룬다. 다만, 이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서는 상업사진이나 상업사진책은 굳이 안 다루어도 된다고 여겼고, 출판사에서도 이렇게 하자 해서 이와 같이 나왔을 뿐이다. 책 하나만 서평으로 다룬다 하더라도, 어느 책 하나를 쓴 사람이 펼치는 ‘글누리(작품세계)’를 찬찬히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07. 인천 배다리 골목길에 살면서
  사람은 ‘골목길’에서 살 수 없다. 내가 쓴 다른 책 《골목꽃,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에서도 여러 차례 밝히지만, 사람은 ‘골목동네’에 산다. ‘길’은 오가는 자리이다. 그리고, 나는 ‘배다리 골목동네’에만 살지 않았다. 내가 산 곳은 ‘인천 골목동네’이고, 배다리 헌책방거리 한쪽에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를 세 해 반 열다가 시골로 삶터를 옮겼다.


 08. 사진 책 도서관 (235쪽)
  앞서 내 책 이름에서도 말했지만, 내 책이름도 이름이고, 내 도서관 이름도 이름이다. 이름을 옳게 읽지 못하고 옳게 말하지 못하는 일이란 더없이 슬프다. 내 도서관은 ‘사진책 도서관’이다.


 09. 최종규는 골목을 수집하는 사람이다 (236쪽)
  비평이나 감상은 자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비평과 감상을 들을 사람’ 눈높이에서도 한 번쯤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나는 인천에서 나고 자란 이야기를 내 보금자리에서 사진으로 찍었을 뿐, 나는 어떠한 모습도 그림도 ‘수집’한 적이 없다.


 10.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서 다룬 이야기는 대개 ‘잊혀 가는 것들’이거나 ‘이미 잊은 것들’이다. 그래서 책은 굴피집 사진과 지금은 원로가 된 복서들로부터 시작한다 (237쪽)
  거듭 말하지만, 비평이나 감상은 자유다. 그러나 ‘잘못 읽기’는 자유가 아니다. 내 책 《사진책과 함께 살기》는 잊혀진 이야기를 한 가지도 다루지 않는다. 내 책 《사진책과 함께 살기》는 오직 ‘사진’을 다룬다. 오직 ‘사진’을 다루기 때문에, 사진책과 사진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매우 대단한 《굴피집》이 첫머리에 들어갔고, ‘일본 사진문화’를 돌아보면서 ‘한국 사진문화’를 견주는 첫 책으로 ‘일본 사진쟁이가 찍은 한국 권투선수 이야기’ 사진책 이야기 또한 첫머리에 들어갈 만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제대로 읽어야지, 잘못 읽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굴피집》은, 내가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서 다룬 37권 사진책 가운데 첫째 꼭지였으나, 《Korean Boxer》는 여섯째 꼭지이다. 여섯째 꼭지로 다룬 글은 맨 처음에 나오는 글이 아닌데, 왜 파란여우 님이 이렇게 글을 썼는지 아리송하다.


 11. 1967년에 나온 주한미군 기념사진 책 《더이상 우리를 슬프게 하지 말라》에는 주한미군 범죄 행위가 붙어 있다고 한다 (237쪽)
  주한미군 기념사진책 이름은 《7th BN(HAWK) 2nd ARTY》이다. 왜 엉뚱한 이름을 붙였을까? 《7th BN(HAWK) 2nd ARTY》라는 사진책을 이야기하다가, 끝자락에 오연호라는 기자가 쓴 《더이상 우리를 슬프게 하지 말라》라는 책 이야기를 살짝 곁들였다. 두 가지 책을 헷갈려서 섞으면 안 된다. 이 대목 또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마치 내가 엉뚱한 글을 쓴 사람처럼 되고 만다.


 12. 최종규는 헌책방 순례자다. 지금은 사라진 책이거나 품절된 책을 다루는 그는 이미 헌책방을 주제로 한 책을 펴냈다 (237쪽)
  나는 ‘헌책방 순례자’가 아니다. 나는 새책방도 가고 헌책방도 간다. 나는 “책방에 책을 사러 가는 사람”이다. 헌책방에 순례하러 다니지 않는다. 더구나, 나는 “내가 읽을 책을 사는” 사람이지, 사라지거나 없어진 책을 다루지 않는다.


 13. 《우리말과 헌책방》
  내 책 가운데 하나 이름을 또 잘못 적었다. 내가 한동안 내던 1인잡지 이름은 《우리 말과 헌책방》이다. 나는 ‘우리 말’처럼 띄어서 적는다. 왜냐하면, ‘우리 글’, ‘우리 옷’, ‘우리 문화’, ‘우리 강’, ‘우리 겨레’처럼 띄어서 적는 말법이 올바르기 때문이다.


 14.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서 언급한 대부분 사진 책이 헌책방에서 찾은 책이다 (237쪽)
  앞에서 이 말이 잘못이라고 밝혔으니 덧붙이지는 않는다. 왜 이런 터무니없는 말을 《독과 도》라는 책에서 자꾸 이야기하는지 궁금하다.


 15.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까지 (237쪽)
 일본 ‘아이돌 화보집’ 《I♥U》를 말하는 듯한데, 이 사진책은 ‘실제 중학생’을 ‘아이돌 그라비아 사진책’으로 만드는 일본 사진문화를 돌아보면서, 한국에서 상업사진을 하는 이들이 사진책을 빚으려고 얼마나 애쓰거나 어떠한 눈길로 사진책을 빚는가 하는 이야기를 할 때에 다루었다.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이라니, 참 듣기에 남우세스럽다.


 16. 최종규가 최민식의 《HUMAN》을 두고 쓴 글이다 (239쪽)
  그러나, 이 따온글은 최민식 님이 손수 쓴 글이지, 최종규가 쓴 글이 아니다. 최종규가 쓴 글인지 최민식이 쓴 글인지 헷갈릴 만큼 책을 제대로 안 읽었는가.


 17. 케빈 카터 사진 이야기 (240∼241쪽)
  케빈 카터 님이 찍은 사진은 그이가 찍은 수많은 사진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 사진과 얽힌 이야기를 더 꼼꼼히 더 널리 더 찬찬히 헤아린 다음 고쳐쓰기를 바란다. 파란여우 님은 케빈 카터 님이 ‘어린 소녀’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적는데, 케빈 카터 님은 ‘사진을 찍는 사람’이지 ‘자원봉사자’가 아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곳에는 도움을 받아야 할 아이가 한둘이 아니라 수백 수천인데, 어느 한 아이만 도와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케빈 카터 님은 ‘사진을 찍으며 그곳 아이들을 돕는 사람’이다. 케빈 카터 님이 찍은 사진을 보는 사람들이 가슴속으로 따스한 사랑을 불러일으키면서, 그곳 아이들을 돕도록 이끄는 사람이다. 그 아이를 비롯해 다른 아이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돕는다’면 훨씬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을 테지만, 이런 ‘가설’은 함부로 들추지 않기를 빈다. ‘외신 전속 사진가’이든 ‘프리랜서 사진가’이든, 저마다 계약한 회사에 보내줄 사진을 찍는 사람이기에, 부자도 아니고 시간도 넉넉하지 않다. 사진가한테 왜 자원봉사자 노릇을 바라는가. 그곳에 있는 다른 자원봉사자가 이 아이를 알아보지 못한 일을 탓해야 하지 않는가. 아이를 돕지 않고 사진만 찍었다고 손가락질할 수 없다. 아이를 도울 어버이와 자원봉사자가 어디에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곧, 케빈 카터 님 사진을 파란여우 님이 이야기하면서 “사진 찍기에 앞서 사진 읽기가 안되는 현실을 개칸하는 최종규는 사진 학교의 꼬장꼬장한 훈장님 같다(241쪽)” 같은 대목은 하나도 올바르지 않다. 최종규는 케빈 카터 님 사진과 삶을 파란여우 님이 《독과 도》에서 적은 대로 바라보지 않는다. 최종규가 마치 이렇게 ‘훈계하는 훈장님’이라도 되는 듯 끼워넣는 일은 바람직하지도 옳지도 알맞지도 않다. 나는 케빈 카터 님 사진을 ‘파란여우 님 말처럼 비판’하지 않는다.


 18. 최종규의 책에선 회화적 이미지를 찾기는 어렵다. 요컨대 《사진책과 함께 살기》는 사진 생태학적 해석에 가까운 평론을 펼친다 (242쪽)
  모든 사진은 ‘회화’를 보여준다. 모든 사진은 ‘이미지’이다. 어떤 사진을 들여다보든 ‘회화 이미지’를 찾기 마련이다. 이러한 회화 이미지는 사람마다 달리 느낀다. 그래서 나는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서는 ‘주관 감상’을 따로 적지 않았다. 파란여우 님은 《사진책과 함께 살기》가 ‘주관 해석’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어떤 사진 어떤 책 어떤 작품’을 놓고도 ‘주관 해석이나 감상’을 달지 않았다. 부디, 내 책을 제대로 읽고서 제대로 이야기해 주기를 바란다. ‘주관 해석이나 감상’은 사진을 보는 사람들 몫이기에, 굳이 어떤 비평가나 평론가가 애써 안 밝혀도 된다. 시를 읽는 사람이 시를 느끼지, 평론가가 시를 느끼는가. 아니, 평론가가 느낀 시를 독자가 똑같이 느껴야 하는가. 평론가는 다른 대목을 말하는 사람이다. 시를 평론하든 사진을 평론하든 똑같다. 파란여우 님은 사진책을 평론하는 일을 너무 모르는구나 싶다. 더군다나,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서 다룬 여러 사진책 가운데 《Photograms of the year 1929》라는 사진책을 다룬 꼭지는 안 읽으신 듯하다. 다른 사진책에서도 어엿하고 번듯하게 숱한 ‘회화 이미지’를 느낄 수 있는데, 파란여우 님 스스로 못 느끼거나 안 느끼면서, 이처럼 말하는 일이야말로 ‘주관 해석과 감상’이라고 느낀다. 그나저나, ‘사진 생태학적 해석’이란 무엇인지 궁금하다.


 19. 우리나라 독자로부터 인기를 얻었던 에두아르 부바 사진 책 《뒷모습》도 벗은 사진을 표지로 삼았다 (244쪽)
  틀린 말이다. 프랑스에서 나온 이 사진책은 ‘발레하는 소녀’ 뒷모습이 표지로 들어간다(이 얘기는 내 알라딘서재에도 사진을 올리면서 밝힌 적 있다). 한국판을 펴낸 출판사에서 ‘한국 (남자) 독자 눈길을 사로잡아 책을 많이 팔려는 생각’으로 표지 사진을 바꾸었을 뿐이다.


 20. 결국 최종규가 말하는 사진의 정수란, 삶에서 그대로 보여주는 날것이자 삶에 대한 한없는 애정이다. 최종규는 이럴 때 ‘사진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246쪽)
  파란여우 님 ‘주관 해석과 감상’을 존중하고 싶다. 《독과 도》라는 책은 틀림없이 파란여우 님 ‘주관 해석과 감상’으로 이루어진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말하는 ‘아름다운 사진’이란 “삶에서 그대로 보여주는 날것”이 아니다. “삶에 대한 한없는 애정”도 아니다. 또한, 이럴 때 “사진을 즐길 수 있”지도 않다. 나는 어느 사진책을 비평하거나 다루더라도 언제나 이야기하는데, ‘스스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만큼 사진을 찍는다’고 밝힌다. 다큐사진이든 상업사진이든 언제나 이와 같다. 사진기를 손에 쥔 이가 모델을 얼마나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느냐 하는 마음결에 따라 사진이 달라진다. ‘사진 의뢰한 회사’에서 이래저래 조건을 붙인다 하더라도,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 매무새와 삶이 어떠한가에 따라 사진이 달라지지, 기계질에서 사진이 달라지는 일은 없다. 모델은 마네킹이 아닌 사람이니까. 사람 아닌 마네킹을 찍어도 똑같다. 애써 사람인 사진가가 사진을 찍어야 할 까닭이 없다면, ‘사진 의뢰하는 회사’는 왜 비싼값을 치르면서 여러 이름나거나 훌륭한 사진가를 찾아다니면서 사진을 맡기겠는가. 사진을 어느 사진가한테 맡기지 말고, 자동사진기로 찍어도 될 노릇 아닌가. 회사마다 스스로 사진을 찍으면 될 노릇 아닌가. 나는 ‘날것 사진’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날것을 찍으면 그냥 날것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스스로 즐기고 싶은 사진을 찍고 싶으면, 삶을 즐기고 사랑을 즐기면 된다. 스스로 좋아하고 싶은 사진을 찍고 싶으면, 삶을 좋아하고 사랑을 좋아하면 된다. 이런 이야기와 ‘날것’ 얘기는 한참 동떨어진다.


 21. 끝으로 덧붙이면, 《독과 도》 3부 〈사람을 찍는다는 것은 사랑을 찍는 것〉이라는 자리는 거의 다 내 책 《사진책과 함께 살기》를 놓고 쓴 글인데, 책 뒷날개에 붙은 “파란 여우가 탐닉한 책”에는 수전 손택 책이 실렸다. 꽤나 뜬금없구나 싶었으나, 내 책을 내 책 그대로 즐기지 못했구나 하고 느끼고 보니, 이렇게 뒷날개에 딴 사람 책을 적은 일이 외려 참 고맙구나 싶다.

 

..

 

http://blog.aladin.co.kr/hbooks/5700614

(에두아르 부바 사진책 <뒷모습>이 어떠한 책인가 하는 느낌글을 새로 썼다. 이 글을 함께 읽는다면, 파란여우 님이 내 '사진책'을 이야기하며 든 다른 책들 이야기란 너무 안 어울릴 수밖에 없다고 느끼실 수 있을까... 파란여우 님 또한 <뒷모습>이라는 사진책이 어떤 사진책인지 옳고 바르게 헤아리시기를 바란다. 한국 번역판 <뒷모습>은 표지부터 원본 프랑스책과 달리 잘못 나온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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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쁜 손

 


  뒤꼍에 묵히는 땅 가운데 두 평 즈음 쓰레기를 캐고 돌을 고른 자리는 갖가지 풀이 신나게 자랐다. 한동안 손을 못 대고 지내다가 어제 비로소 아픈 몸을 이끌고 풀을 뽑고 잔돌을 촘촘히 고른다. 작은 고랑을 짓고 손가락 구멍을 낸다. 첫째 아이 손바닥에 씨앗을 톡톡 올린다. 마무리 씨앗심기는 아이 몫. 씨앗을 올린 한손과 씨앗을 집는 다른 한손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이는 예쁜 일을 예쁜 손으로 해낸다. 땅을 일구기까지 어버이가 품을 퍽 많이 들여야 하나, 바로 이렇게 씨앗을 심는 손을 바라볼 수 있다는 보람이 있으니 즐겁다. 아이 손바닥을 거쳐 좋은 기운이 땅으로 스며들었으리라 믿는다. (4345.6.2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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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 (딸기)

 


문을 닫은 지
열 몇 해
작은 시골
작은 초등학교

 

우람하게 자란
나무 밑
너른 그늘
새빨간 구슬송이

 

작은 손길에
톡 떨어지며
온 하늘 목숨
따숩게 스며든다.

 


4345.5.2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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