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 즐겁게 읽기
[말사랑·글꽃·삶빛 26] ‘행복’과 ‘즐거움’

 


  나는 늘 즐겁게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며 즐겁지 않은 일이 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빨래를 하든 밥을 하든 즐겁습니다. 옷을 입든 밥을 먹든 즐겁습니다. 나는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썩 반기지 않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만, 반기지 않더라도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가장 좋아하면서 가장 믿음직하고 가장 사랑스러운 일을 할 때에 가장 즐겁습니다. 가장 좋은 마음이 되어 가장 좋은 길을 걸을 때에 가장 기뻐요.


  사진을 좋아하는 삶을 이야기하는 《사진일기, 날마다 나를 찾아가는 길》(포토넷,2012)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사진으로 쓰는 일기를 말하는 글을 즐겁게 읽습니다. 즐겁게 읽다가 63쪽에서 “각자 이유는 다르겠지만 결국 내가 즐겁고 행복하려고 선택한 것 아닌가.”와 같은 글월을 봅니다. “즐겁고 행복하려고”라는 말마디를 가만히 되읽습니다. 새삼스레 국어사전을 펼칩니다. 국어사전에서 ‘행복(幸福)’은 “(1) 복된 좋은 운수 (2)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으로 풀이합니다. 말풀이에 나온 ‘만족(滿足)’은 “(1) 마음에 흡족함 (2) 모자람이 없이 충분하고 넉넉함”으로 풀이합니다. ‘기쁨’은 “마음에 즐거운 느낌이 있다”로 풀이하고, ‘흡족(洽足)’은 “조금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넉넉하여 만족함”으로 풀이합니다. 마지막으로 ‘복(福)되다’를 찾아보니, “복을 받아 기쁘고 즐겁다”로 풀이하고, ‘흐뭇하다’는 “마음에 흡족하여 매우 만족스럽다”로 풀이합니다.


  국어사전 풀이말을 놓고 곰곰이 살핍니다. 먼저 ‘만족 = 충분함 = 넉넉함’이 됩니다. 다음으로 ‘흡족 = 흐뭇함’이 됩니다. 그리고 ‘행복 = 기쁨 = 즐거움’이 돼요.


  다시 한 번 국어사전을 뒤적여 ‘즐겁다’를 찾아봅니다. 국어사전에서는 “마음에 거슬림이 없이 흐뭇하고 기쁘다”로 풀이합니다. 모두 돌림풀이인 셈입니다. 한국말을 한자말로 풀이하고, 한자말을 한국말로 풀이합니다. 한국말도 한자말도 다른 어슷비슷한 낱말하고 뭉뚱그리듯 ‘돌려막기’를 합니다. 다만, ‘기쁘다’는 어떠한 삶을 ‘느끼는’ 대목을 나타내기에 알맞고, ‘즐겁다’는 어떠한 삶을 ‘누리는’ 대목을 나타내기에 걸맞겠구나 싶어요.


  그나저나, ‘행복’이란 ‘복되다’를 가리키고, ‘복되다’는 ‘즐겁다’를 가리키는데, 이렇게 가리키는 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이 땅에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말을 하면서 국어사전을 살피는 사람이 있을까요. 말을 하면서 국어사전을 살피면서 곰곰이 생각하고 거듭 생각하면서 말뜻과 말느낌을 헤아리는 사람이 있을까요.


  옳고 바르게 써야 하기 때문에 국어사전을 뒤적이거나 말뜻을 살피지 않습니다. 바른 말 고운 말이 아름다운 말이라서 국어사전을 찾거나 말느낌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나타내고 내 삶을 드러내는 말을 깨달으려고 국어사전을 뒤적입니다. 내 마음을 찾고 내 삶을 누리려고 말을 살피고 생각합니다.


  한번 거꾸로 생각해 봅니다. 한국말 ‘즐겁다’를 영어로 옮길 적에는 어떤 낱말로 적바림할까요. 한자말 ‘행복’을 영어로 옮길 적에는 어떤 낱말로 적을까요. 한국사람은 영국사람이나 미국사람한테 ‘기쁨-즐거움-흐뭇함’을 어떤 낱말로 들려줄 수 있을까요. ‘행복-만족-흡족’을 어떤 영어로 외국사람한테 알려줄 수 있는가요.


  즐겁게 생각하는 말입니다. 즐겁게 주고받는 글입니다. 즐겁게 살아가는 나날입니다. 즐겁게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책 한 권 즐겁게 읽습니다. 밥 한 그릇 즐겁게 먹습니다. 내 한 삶 즐겁게 누립니다. 밭뙈기에서 즐겁게 김을 맵니다. 아이들을 즐겁게 씻깁니다. 들바람을 쐬면서 즐겁게 자전거를 달립니다. 숲바람을 느끼면서 즐겁게 고개를 오르내립니다. 즐거울 때에 아름다움을 생각합니다. 즐거웁기에 사랑을 깨닫습니다. 즐거울 적에 꿈을 꿉니다. 즐거운 나머지 활짝 웃고 두 팔 벌려 서로서로 예쁘게 껴안습니다. (4345.8.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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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
메리 몽간 지음, 정환욱.심정섭 옮김 / 샨티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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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맑을 때에 아기도 맑다
 [사랑하는 배움책 6] 메리 몽간,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샨티,2012)

 


- 책이름 :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
- 글 : 메리 몽간
- 옮긴이 : 정환욱, 심정섭
- 펴낸곳 : 샨티 (2012.7.10.)
- 책값 : 2만 원

 


  한여름 새벽에 일어나 찬물로 몸을 씻으며 빨래 한 점을 합니다. 아침에 새삼스레 다시 몸을 씻고 나서 빨래 여러 점을 합니다. 이제 낮이 되어 아이들이 뛰놀고 땀에 젖은 옷을 벗기고 씻길 무렵, 또 빨래를 하겠지요. 낮에 여러 차례 아이들 씻기며 빨래를 하는 여름이요, 저녁에도 아이들을 또 씻기고 빨래하는 여름입니다.


  빨래거리를 그러모아 기계에 넣고는 한꺼번에 돌려도 된다 하지만, 여름날 자주 몸을 씻거나 씻기는 틈틈이 손으로 빨래를 합니다. 몸을 씻으며 흐르는 물로 빨래감을 적시고, 씻은 몸을 말리면서 빨래를 합니다. 따사로운 햇살은 빨래를 보송보송 말려 줍니다.


  네 식구 살림을 꾸리며 하는 빨래는 하루 내내 이어집니다.


.. 당신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생각해 보세요. 또 아기가 자라면서 여러 변화들이 생길 텐데 그때 당신의 느낌이 어떨지 생각해 보세요 … 왜 우리는 정상적인 출산을 부인하고 있고, 출산 교실에서는 왜 출산을 어쩔 수 없는 위험한 의료 작업으로 묘사하는 것일까? … 왜 여성들이 이런 경험을 해야 하는가? 왜 완벽한 출산을 할 수 있도록 창조된 여성의 몸이 진통을 시작하기도 전에 통제되어야 하는가 … 출산이 고통스럽다는 믿음이 너무 강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 믿음이 맞는지 어떤지 생각도 해 보지 않은 채 고통을 합리화하고 출산이 고통스러운 이유를 스스로 설명하기도 하며 거기에 고상한 목적을 갖다 붙이기도 한다 ..  (31, 65, 81, 83쪽)


  햇살 뜨거운 여름에는 빨래가 잘 마릅니다. 햇살 포근한 봄가을에도 빨래는 잘 마릅니다. 햇살 따사롭지만 겨울에는 빨래가 잘 안 마릅니다. 그러나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빨래를 합니다. 기저귀를 빨래하고 여느 옷가지를 빨래합니다. 날씨에 따라 빨래 마르기가 달라지지만, 철에 따라 빨래는 다 다른 기운을 햇살과 바람한테서 받아먹습니다. 햇살을 먹으며 마르고, 바람을 먹으며 마릅니다.


  볕이 좋은 날은 이불을 마당에 넙니다. 이불은 좋은 볕을 듬뿍 쬐며 좋은 기운으로 한결 보송보송합니다. 좋은 볕을 머금은 이불을 덮으며 좋은 날씨를 떠올립니다. 장마철을 맞이해 이불을 말리지 못하고, 또 이불을 빨지 못하며 눅눅한 기운을 느껴야 할 때에는 햇살조각을 그립니다. 날은 춥지 않더라도 해가 들지 않는 날에는 살림살이가 얼마나 고단한가 하고 깨닫습니다.


  햇빛이 좋을 때에는 햇볕도 햇살도 좋아, 아이들과 들길이나 멧길을 걷기에 좋습니다. 내 몸은 좋은 빛살을 누리고, 내가 걷는 길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도 좋은 빛살을 누립니다. 저마다 좋은 기운을 뿜으면서 좋은 삶터를 이룹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어버이인 나부터 스스로 가장 즐겁게 누리는 삶을 아이들하고 함께 누리고 싶습니다. 어버이인 나한테 가장 즐겁게 찾아드는 삶을 아이들한테 찬찬히 보여주면서 나누고 싶습니다. 곧, 어버이와 아이로서 다 함께 햇살을 누리고 싶습니다. 어버이와 아이는 다 같이 바람과 풀과 나무를 누리고 싶습니다. 고운 바람을 누리고, 고운 꿈을 빚으며, 고운 사랑을 열고 싶습니다.


.. 아기를 처음 본 날, 아기가 이 세상에 ‘잡아당겨져’ 나오면서 겪었을 경험을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 기분이 몹시 우울해졌고 한편으로는 분하기도 했다 … 약물을 쓰지 않고 내 아기를 안전하게 출산하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나는 그(의사)에게 거듭 설명했다 … 의사가 있든 없든 아기는 정확히 자기가 나오고 싶을 때 나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 진통의 단계 구분은 의료진을 위해 개발된 평가의 척도일 뿐이다. 산모에게 진통은 하나의 연속 과정이고 산모가 깊이 이완할 때 출산은 시작된다 … 산모들은 두려움이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깨닫도록 도움을 받기보다는 약물을 사용하자거나 의료 개입을 받으라고 먼저 권유받는다. 두려움의 실체를 알기보다는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부터 선택하도록 내몰리는 것이다 ..  (46∼47, 70∼71, 88∼89쪽)


  두 아이와 살아가는 나날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새벽녘 빗소리를 들으며 네 식구 살림을 돌아봅니다. 옆지기와 빚는 삶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비구름 걷히고 맑은 햇살 따사로이 내리쬐는 빛무늬를 느끼며 시골살이를 돌아봅니다.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저희 삶길을 살피거나 찾으리라 느낍니다. 아이들이 시골살이를 어떻게 여길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나중에 다른 터로 옮기든 그대로 함께 살든 오늘 이곳에서 지내는 나날을 몸과 마음에 새기리라 느낍니다.


  나는 예나 이제나 하루 앞을 걱정하거나 근심하며 보낸 적이 없습니다. 주머니에 맞돈이 하나도 없어 우체국에서 30만 원을 빌고는 ‘도둑맞아 사라진 사진기’ 하나를 헌것으로 13만 원 치르고 장만해서 사진을 찍고 살던 때에도, 은행계좌에 남은 돈이 10만 원이 채 안 되던 때에도, 하루 앞을 걱정하거나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돈은 빌릴 수 있고 갚을 수 있습니다. 스무 해쯤 지나야 갚을는지 모르고, 백 해쯤 지나야 갚을는지 모르지요. 어찌 되든 돈은 얼마든지 빌리거나 갚아요. 다만, 내 마음이나 삶은 오늘을 오늘대로 누리지 못하면 덧없이 지나갑니다. 팍팍한 살림이라 하더라도 오늘은 오늘대로 누려야 비로소 새 하루가 찾아오고, 새 하루도 이날대로 누려야 다시금 새 하루가 찾아와요.


  내 어버이 집을 떠나 서울에서 혼자 살 적에는 다달이 찾아오는 집삯 내는 날이 참 빨랐다고 느낍니다. 서울에서는 혼자 살며 방을 얻을 적이든, 어디를 돌아다닐 때이든, 사람을 만날 때이든, 으레 돈이 들어요. 서울은 전철역조차 걸상이 몇 군데 없습니다. 버스 타는 데에 걸상이 널따랗게 있지 않아요. 사람이 걷는 길은 너무 좁을 뿐 아니라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서기 일쑤요, 전봇대와 꽃밭이 ‘걷는 길을 막’습니다. 제대로 마음을 가다듬지 못한다면, 사람다운 나날을 스스로 깨닫거나 아끼기는 힘든 터가 서울이로구나 하고 느꼈어요. 언제나 돈으로 굴러가는 얼거리이다 보니, 나 스스로 홀가분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집삯이라든지 밥값이라든지, 자꾸 돈에 마음이 쓰이곤 했어요.


  그러나, 이런 서울에서도 돈보다 사람한테 마음을 쓰는 이는 틀림없이 있으리라 믿어요. 빠듯한 살림살이 걱정보다 즐거울 하루 삶에 찬찬히 마음을 기울이는 이는 어김없이 있으리라 믿어요. 모든 사람이 온통 돈에 마음을 빼앗겼다면 그예 불구덩이 같은 서울이요 한국이겠지요.


  서울을 떠나 시골에서 지내고, 고향 인천으로 돌아가서 몇 해를 살며, 다시 시골로 옮겨 지내다가, 이제 아이들 낳고 한결 깊은 시골마을로 옮겨 살아갑니다. 지나온 나날을 하나하나 짚습니다. 도시에서 살던 나날이 끔찍했거나 힘들었다고만 느끼지 않습니다. 다만, 도시하고 시골은 무엇보다 한 가지가 크게 달라요. 내가 보고, 내가 느끼며, 내가 맡고, 내가 마시는 모든 숨결이 크게 달라요.


  나는 푸른 들판과 숲을 보고 싶지, 끝없는 건물과 아파트를 보고 싶지 않아요. 나는 풀 돋는 흙길을 걷고 싶지, 아스팔트나 시멘트로만 덮인 길을 걷고 싶지 않아요. 풀숲에 드러누우면 풀내음을 맡으며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어 즐거워요. 하늘빛이 파랗구나 하고 느끼고 싶어요. 파란 하늘을 하얗게 물들이는 구름을 느끼고 싶어요. 도시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나 스스로한테 하늘을 말하고 구름을 말하며 별을 말했어요. 비가 모질게 퍼부으면 이 빗물이 도시를 다 휩쓸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했어요. 도시에 있는 모든 것이 모조리 빗물에 휩쓸려 사라지면 도시에도 차츰 푸른 싹이 트며 풀밭이나 꽃밭이나 나무숲으로 거듭날까 하고 생각했어요.


.. 여성은 양육자인 동시에 치유자였다 … 자연스럽게 아기를 낳는 동안 여성들은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접받았다. 이러한 태도는 수천 년간 계속되었다 … 출산에서 필요한 것은 출산을 빨리, 급박하게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고 이완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부드러운 격려와 출산을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 중요하며 …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말과 생각을 할 필요가 있고, 원치 않는 환경을 불러들이는 부정적이고 불필요한 말이나 행동은 삼가는 것이 좋다 … 서로를 격려해 주는 것만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사는 것이 산모가 긍정적인 출산 경험을 하도록 돕는 것이다 ..  (74∼75, 92, 105, 108쪽)


  메리 몽간 님이 빚은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샨티,2012)을 읽습니다. ‘평화롭게 아기 낳기’를 밝히는 이야기책입니다. 메리 몽간 님은 당신 아이를 ‘조금도 평화롭지 않게’ 낳았다고 해요. 그러니까, 메리 몽간 님은 ‘아주 끔찍하고 매우 아프게 아이를 낳았’답니다. 당신 몸은 가장 슬프고 아픈 생채기를 치러야 했다고 해요. 당신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새로운 아이를 낳을 무렵, 당신 아이한테 ‘평화롭게 아기 낳기’를 이끌어 보았고, 이렇게 이끌며 아기를 낳을 때에 당신 아이와 ‘당신 아이가 낳은 아기’ 모두 평화롭게 이 땅에서 어우러질 수 있었다고 해요.


  간추려서 말하자면, 메리 몽간 님은 몸으로는 슬픔을 겪었습니다. 마음으로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몸에 아로새겨진 생채기를 마음으로 품은 사랑으로 달래면서 쓴 책이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이로구나 싶습니다. 당신은 평화로운 아기 낳기를 할 수 없었으나, 당신 아이를 비롯해 당신 아이 또래 젊은이, 또 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새로 짝꿍을 맺으며 낳을 아이들을 헤아리며 쓴 책이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이라 할 만해요.


  몸으로 배우고 마음으로 익혔기에 책을 쓸 수 있었달까요. 몸으로 배우고 마음으로 익혔으니 기쁘게 글을 쓰고 ‘아기 낳는 참 예쁜 길’ 하나를 깨달아 밝힌다고 할까요.


..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부모가 할 일은 자신들이 아기를 정말 원했으며 환영하고 있다는 것을 배 속의 아기에게 말해 주는 것이다 … 아기가 배 속에 있는 9개월은 아기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도 부모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성장해 가는 기간이다 … 아기들은 자신이 선택한 장소에서 안전하게 나온다 … 산모의 자연스러운 몸의 파동이 아기를 산도로 부드럽게 내려 보낸다 … 누에고치에 있는 나비를 억지로 빼내겠는가? 자연 출산 과정에는 아기와 산모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꼭 필요하다 ..  (118, 156, 172쪽)


  가시버시를 맺어 주는 혼례식장에서 가시버시 두 사람한테 ‘평화로운 마음’이 들도록 이끄는 일은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혼례식장은 가시버시 두 사람이 느긋하며 아늑하게 사랑다짐을 하도록 이끌지 않아요. 시간에 맞추어 착착착 형식을 밟습니다. 틀을 세워 틀에 맞추도록 합니다.


  가시버시가 되는 두 사람은 초등학교이든 중학교이든 고등학교이든 ‘사랑을 배우는’ 일이 없습니다. 어느 학교에서도 사랑을 들려주지 않아요. 사랑을 가르치는 교과목이 없기에 사랑을 못 들려주지 않아요. 오늘날 제도권학교는 사랑하고는 동떨어져요. 오늘날 문명사회 제도권학교는 학력자격증을 떼어 주는 기관입니다. 가시버시가 서로를 사랑하는 길을 밝히지 않을 뿐 아니라, 가시버시가 사랑으로 맺은 아이를 사랑으로 보듬는 길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가시버시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뜻을 들려주지 않으며, 가시버시가 사랑으로 빚은 아이가 사랑스레 무럭무럭 자라는 꿈을 이야기하지 않아요.


.. 농약을 많이 쓰거나 방부제 처리된 야채나 과일은 피할 수 있는 지식도 갖추어야 한다 … 산모와 남편이 산모 자신과 아기를 위해 지극히 자연스럽고 평화로우며 만족스러운 출산에 대한 그림을 분명하게 그리고 있다면, 자신의 출산의 다른 사람에 의해 통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 몇 시간에 걸쳐 아기를 인위적으로 밀어내느라 녹초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역으로 오직 산도가 준비되었을 때에만 아기가 아래로 내려오게 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 아기가 태어난 뒤 다른 사람 손에 아기를 맡기는 걸 아예 막거나 최소화해야 한다. 아기는 자신에게 익숙한 체취나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 친구나 친지 등 손님은 엄마가 해야 할 집안일을 도와주려는 목적으로 방문하는 사람만 허용한다. 방문해서 식사를 가져다주고, 세탁기를 대신해서 돌려주고, 시장을 봐주고, 집을 청소해 주는 등 손님이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  (206, 223, 297, 317, 326쪽)


  어버이가 맑은 숨을 마실 때에 아이가 맑은 숨을 마십니다. 어버이가 고운 풀벌레 노랫소리를 누릴 때에 아이가 고운 풀벌레 노랫소리를 누립니다.


  어버이가 돈벌이 회사에 얽매일 때에 아이는 시험점수 학교에 얽매이면서 제 어버이와 똑같은 길로 나아갑니다. 어버이가 밥과 옷과 집이 이루어지는 삶을 슬기롭게 살피지 않을 때에, 아이도 밥과 옷과 집이 이루어지는 삶을 스스로 슬기롭게 살피지 않아요.


  ‘아기 낳기’는 점 하나입니다. 점 하나를 찍는 앞뒤 흐름, 곧 삶을 헤아리면서 아기를 맞이하고 아기를 사랑할 노릇입니다. 그런데, 점 하나를 찍는 ‘아기 낳기’는 하늘에서 똑 하고 떨어지지 않아요. 가시버시가 살아가는 나날이 고이 흐르면서 아기도 낳고 무럭무럭 자라며, 어느새 아이들 키는 제 어버이보다 커집니다.


  냇물은 물방울 하나가 아니에요. 물방울이 모여 냇물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냇물에서 물방울 하나를 떼어낼 수 있지만, 이 물방울 하나는 여럿으로 더 나눌 수 있으며, 물방울 하나로도 또다른 냇물이 되어 흐르곤 합니다.


  햇살이 비춥니다. 햇살은 조각과 조각이 모여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햇살 가운데 조각 하나만 떼어내지 못합니다. 풀벌레가 노래합니다. 풀벌레 노랫소리 가운데 조각 하나를 떼어내 듣지 못합니다. 사랑은 사랑일 뿐이요, 삶은 삶입니다. 가시버시 몸속에서 자라는 씨앗부터 사랑하면서 아기가 태어나고, 아기는 스스로 튼튼한 나무 한 그루 되어 살아갑니다.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에서 말하는 ‘평화롭게 아기 낳기’를 살피면, 아기를 낳는 때에만 평화로울 수 없다는 줄거리입니다. 여느 내 삶이 평화로울 때에 아기를 낳을 때에도 평화를 생각하면서 아기를 평화로 맞이합니다. 언제나 사랑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기를 사랑으로 맞아들여 사랑으로 낳아 사랑으로 돌봅니다.


  무엇을 걱정할까요. 이 아기가 벙어리로 태어날까 걱정하나요. 이 아기가 앞으로 학교에서 1등을 못할까 걱정하나요. 이 아기가 앞으로 대학교에 못 갈까 걱정하나요.


.. 출산은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좋습니다 … 사랑의 하나님이 부부가 사랑으로 아기를 갖게 하고는 이런 고문 같은 심한 고통 속에서 아기를 낳도록 하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 출산은 과학이 아니다. 해부학도 아니다. 또한 의사나 조산사, 간호사의 일도 아니며, 누군가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출산은 부모와 아기의 것이다 ..  (32, 43, 59쪽)


  아기는 사랑으로 낳으면 됩니다. 아기는 사랑으로 돌보면 됩니다. 아기는 사랑으로 먹이고 입히며 재우면 됩니다.


  어버이는 스스로 제 삶을 사랑으로 보살피면 됩니다. 어버이는 스스로 제 하루를 사랑스레 누리면 됩니다. 어버이는 스스로 제 일과 놀이를 가장 빛나는 사랑이 되도록 가꾸면 됩니다.


  걱정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여느 때에도 걱정투성이요, 아기를 낳을 때에도 걱정덩어리입니다. 근심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근심꾸러미요, 아기를 낳을 적에도 근심나라입니다.


  가르칠 수 없고 배울 수 없습니다. 살아갈 뿐입니다. 걱정도 사랑도 누가 따로 가르치거나 누구한테서 배우지 않습니다. 스스로 생각해서 맞아들일 뿐입니다. 사랑으로 맺은 두 사람이 아기를 낳을 적에 참말 사랑이 될 수 있지만, 걱정이 되기도 할 테지요. 어버이 두 사람이 참다이 사랑이 아닌 근심이나 걱정이라면, 어버이 두 사람이 착하게 사랑이 아닌 다른 물질이나 욕망에 사로잡힌다면,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을 읽더라도 아기를 평화롭게 낳지 못합니다. 책 한 권 읽는대서 아기를 평화롭게 맞이하지 못해요. 삶이 평화로울 때에 아기도 평화롭게 낳지, 삶은 평화롭게 다스리지 않으면서 아기만 평화롭게 낳지 않아요. (4345.8.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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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8-20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한 저를 위해 써 주신 리뷰 같아요.
두어번 반복해서 읽습니다.
비슷한 다큐를 본적이 있어요
큰 아이를 낳을 때 기체조를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걸 배웠지요
내가 아프다지만 밖으로 나오는 아이는 낯선 세상에 더 두렵고 더 아프고 더 고통스럽다고,
그래서 아이 낳는 순간에도 아이 숨을 편히 쉬게 해주려고 복식호흡에 힘썼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입을 벌리지 않았죠
입을 벌리면 복식호흡이 안되니까요.
아기와 건강하게 만나길 바라는 요즘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파란놀 2012-08-20 06:57   좋아요 0 | URL
잘 아실 테지만, 아기를 낳는 일은 '아이와 살아가는 긴 흐름' 가운데 하루예요. 이 하루를 걱정할 일이 없어요. 이 하루를 기쁘게 맞이하면서, 기나긴 나날을 어떻게 즐거이 살아갈까를 생각하시기를 빌어요~ 좋은 기운 내셔요~
 


 글을 쓰는 때

 


  새벽에 조용히 일어나서 글을 쓰면 개운하다. 아이들이 그만 아주 일찍 깨어서 아침을 맞이할 때 글 한 조각 제대로 여미지 못하면 속이 답답하다. 그러나, 새벽이나 아침에 못 쓴 글은 낮이나 저녁에 쓸 수 있다. 또는 밤이나 이듬날 새벽에 한꺼번에 쓸 수 있겠지. 며칠 늦출 수 있을 테고, 몇 달이나 몇 해 늦어지는 때도 있으리라. 조바심을 낼 까닭이 없다. 흐르는 삶은 내 넋을 저버리지 않을 테니까. 나는 언제나 내 마음이 고이 이어갈 수 있도록 다스리면 된다. 내 꿈을 생각하면서 내 사랑을 글에 살포시 싣는 매무새를 예쁘게 추스르면 된다. 어느 날은 새벽 아닌 아침에 글을 쓰고, 어느 날은 낮이나 저녁에 글을 쓴다. 어느 날은 도무지 한 줄조차 쓰지 못한다. 글을 쓰는 때는 따로 없다. 글을 잘 쓸 만한 때 또한 딱히 없다. 내가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언제라도 글을 못 쓰고, 내가 마음을 가다듬을 줄 안다면 언제라도 글을 쓴다. 마음이 있을 때에 어떤 글을 쓰면 즐거울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고, 마음이 싱그러울 때에 어떤 글을 쓰면 빛날까 하는 생각이 샘솟는다. (4345.8.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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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드롭스 5
우니타 유미 지음, 양수현 옮김 / 애니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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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란
 [만화책 즐겨읽기 174] 우니타 유미, 《토끼 드롭스 (5)》

 


  더운 여름날 자전거를 함께 타던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새근새근 잠듭니다. 바람을 쐬며 달리는 자전거수레이지만, 작은아이 얼굴에는 땀이 송알송알 맺힙니다.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작은아이를 잠자리에 눕힙니다. 머리에는 기저귀 한 장을 손닦개처럼 깝니다. 날이 워낙 무더워 잠든 아이 머리에도 땀이 흐르며 잠자리가 폭삭 젖습니다.


  작은아이 코끝 땀이 식도록 천천히 부채질을 합니다. 머리카락을 적신 땀을 식히고 손발과 목덜미에 맺힌 땀을 식힙니다. 땀이 식을 만큼 살며시 부채질을 하고 나서 가만히 지켜보다가 다시 부채질을 합니다. 천천히 천천히 땀이 마릅니다. 늦여름 무더위를 받아들이는 아이는 하루하루 씩씩하게 자랍니다.


- “너, 그거 아냐?” “뭐가?” “겉은 그래 보여도, 속은 할머니랑 다를 게 없는 겨.” (12쪽)
- “조그만 게 돈 걱정 같은 거 하지 마! 난 린의 아버지는 아니지만 벌써 10년이나 네 보호자야. 이제 꽤나 베테랑 아니냐! 그 베테랑 님이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거다! 그리고, 내가 그러고 싶어서 말하는 거야.” (127∼128쪽)

 


  아침을 차립니다. 저녁을 차립니다. 한국말은 ‘아침’과 ‘저녁’ 두 가지만 때와 밥을 함께 가리킵니다. 한국말 ‘낮’은 때만 가리킬 뿐 밥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낮에 먹는 밥을 ‘점심(點心)’이라는 한자말로 가리킨다지만, 이 낱말을 언제부터 썼을까 아리송합니다.


  어릴 적 이 대목이 궁금해서 둘레 어른들한테 여쭈곤 했지만, 뾰족하다 싶은 대꾸를 듣지 못했습니다. 둘레 어른들은 ‘점심’은 한국말이 아닌 줄 생각조차 않을 뿐더러, 이런 말을 언제부터 썼을까 하는 대목은 아예 살피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참’이라는 낱말을 곧잘 듣습니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몸 많이 쓰는 일을 하는 어른들은 ‘참’을 먹는다고 했습니다. ‘새참’이라고도 일컫고, ‘사잇밥’이나 ‘샛밥’이라고도 일컬으며, ‘곁두리’라고도 일컫습니다.


  가만히 보면, 아침과 저녁은 하루를 열고 닫는 때를 가리키기도 하고, 하루를 열며 집을 나섰다가 집으로 들어오는 때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낮에는 집 아닌 일터, 곧 들판이나 멧골에서 밥을 먹기 마련이었으고, 꼭 낮 어느 때라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만큼 ‘참’이나 ‘샛밭’이나 ‘곁두리’ 같은 낱말로 가리킬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 “혼자 먹으나 둘이 먹으나 만드는 건 똑같고, 예전엔 계속 다이키치가 밥해 줬으니까, 이제는 내가 할게.” (15쪽)
- “그치만 저, 대학 갈지 말지도 아직 잘 모르겠고, 취직을 빨리 하고 싶어서.” “아깝게 왜 그래, 린.” “설마, 다이키치 생각해서 그런 거니?” (121쪽)
- “원래 이런 옛날 집이 아파트보다 더 시원해. 흙벽에다 지붕이 앞으로 나와 있어서, 햇볕을 막아 주거든.” (167∼168쪽)

 

 


  때를 맞추어 밥을 먹는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때를 맞추어 밥을 먹어야 하는지 늘 궁금했습니다. 배가 고플 때에 먹고, 배가 안 고플 때에는 안 먹으면 될 노릇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배가 고픈데 밥때까지 참아야 하고, 배가 안 고픈데 밥때이니 먹어야 한다면 참 괴로운 노릇이라고 느꼈습니다.


  학교에서는, 또 군대에서는, 또 회사에서는, 시계에 따라 사람이 움직입니다. 사람에 따라 시간을 살피지 않아요. 딱딱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하는 때이고, 몇 시가 안 되거나 몇 시를 지나면 일손을 놓습니다. 수업을 하는 50분에만 공부에 파고들고, 날마다 몇 시에 똑같이 일어나 점호를 하고 온갖 것을 합니다. 뒷간은 몇 차례 몇 분 동안 다녀와야 하며, 일할 때에는 수다를 떨지 못하도록 합니다. 학교에서도 수업 때에는 옆짝이랑 말을 섞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러니까, 떠들지 않기·밥때에 먹기·때맞춰 움직이기, 이 세가지 틀에 맞추도록 하는 사회입니다. 몇 시에 일어나 몇 시에 자야 하고, 주어진 일(숙제)이 날마다 어느 만큼 있으며, 집과 일터(배움터) 사이에서 딴 데로 새거나 곁눈을 팔지 않도록 하는 사회입니다. 언제나 톱니바퀴처럼 착착 맞물려야 비로소 ‘사람 구실’을 한다고 여겼습니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리지 않을 때에는, 이를테면 글쟁이나 그림쟁이처럼 ‘남들 자는 때’에 일어나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는, ‘남들 일하는 때’에는 곯아떨어져 자거나 바깥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영 못마땅하게 바라보도록 길들이는 사회입니다.


  사내는 부엌을 기웃거리지 않도록 하는 사회입니다. 오늘날 적잖은 사내가 부엌일을 거든다고 하지만, ‘거들기’를 할 뿐, 부엌일을 ‘하지’는 않아요. 사내들은 집 바깥에서 ‘돈벌이’만 하도록 이끌어요. 가시내들은 바깥에서 돈벌이를 해 주어도 좋으나, 집안에서 온갖 집일을 도맡은 다음에 바깥일을 하든 말든 해야 하는 듯 여겨요.


- “난 아직 남자친구 필요 없어. 누구랑 사귀려고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고 휘말리고, 그러면서 아슬아슬하게 관계를 유지하는 게, 뭐가 재밌는지 잘 모르겠어.” (47쪽)
- “있지, 다이키치는 사귀는 상대를 보고 그 사람한테 실망한 적 없어? 난 코우키가 누구랑 사귄다고 했을 때 엄청 실망했었어. 왜 코우키가 저런 사람이랑 사귀나 싶어서. 그땐 어렸지. 뭐, 지금도 어리지만. 그래도 예전부터 코우키를 좋아했었어. 그런데 그 일 때문에 코우키에 대한 마음이 사라져 버렸어.” (72∼73쪽)

 

 

 


  삶이란, 시계추로 따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삶이란, 교과서처럼 가르치거나 배울 수 없다고 느껴요. 삶이란, 톱니바퀴처럼 틀에 맞추어 맞물려 돌아가는 나날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삶이란, 주어진 몫을 다하며 보람을 누리는 일은 아니라고 느껴요.


  삶이란,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삶이란 사람으로 태어났을 때에 사람답게 사랑하는 나날이라고 느껴요.


  영어를 배우려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어요. 돈을 벌려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어요. 대학교에 가려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어요. 예쁜 몸매나 얼굴을 가꾸려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어요. 가수가 되거나 연예인이 되거나 운동선수가 되려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어요. 사람은 오직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태어나요. 사람은 오로지 사람답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꿈을 누리려고 태어나요.


- “정말 대학 가고 싶다면 공부 더 열심히 해!” (167쪽)
- “니타니 씨는 어디서 그렇게 일할 힘이 나세요?” “30대는 원래 그렇잖아요. 애가 있든 없든 간에, 아, 전 이제 마흔이 되지만. 소중한 게 있으면 힘이 나요. 다이키치 씨도 그렇죠?” (188∼189쪽)
- ‘다이키치 씨 옷에 콧물 묻혀 버렸다. 다이키치 씨, 좋은 냄새가 났어. 바보, 바보.’ (209쪽)

 


  우니타 유미 님 《토끼 드롭스》(애니북스,2010) 다섯째 권을 읽습니다. 어린이집에 들어가고 초등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고등학생이 됩니다. 장가를 가지 않았으면서 어린이를 맡은 ‘다이키치’는 벌써 열 해째 아버지 구실을 하며 집안일과 집밖일을 도맡습니다. 다이키치를 비롯해 둘레 어른 모두 ‘린’한테 ‘린이 누릴 삶이나 사랑’보다는 ‘여느 사람이 맞물리는 톱니바퀴와 같은 틀’을 바랍니다. 다만, 린이랑 가장 가까운 데에 있는 다이키치는 처음 린을 맡을 적부터 ‘톱니바퀴 같은 틀’은 그리 바라지 않았기에, 린이 스스로 하고픈 일을 하며 가고픈 길을 가도록 문을 엽니다. 린은 린 스스로 톱니바퀴에 맞출 뜻이 없고 언제나 스스로 제 삶을 누릴 마음입니다. 누가 이렇게 하라 해서 하는 일이 아니고, 누가 이리로 가라 해서 가는 길이 아니에요. 스스로 마음으로 느끼기에 하는 일이요, 스스로 마음으로 가고 싶기에 가는 길이에요.


- 그 사람도 알아챌 수 없도록 소중한 말은 가슴속에 묻고서 그 힘으로 다시 나아간다. (212쪽)


  삶은 누구한테나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길을 찾으니 삶은 누구한테나 아름답습니다. 삶은 어디에서나 사랑스럽습니다. 스스로 일을 누리니 삶은 어디에서나 사랑스럽습니다.


  돈을 벌기에 일이 아닙니다. 김을 매기에 일이 아닙니다. 삶을 짓기에 일입니다. 삶을 빚기에 일입니다. 삶을 누리기에 일이에요. 삶을 사랑하기에 일이에요. 만화책에 나오는 다이키치는 ‘돈과 이름을 조금 더 누리는 길’이 아니라 ‘삶과 사랑을 한결 예쁘게 누리는 길’을 걸었습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린은 ‘돈이나 이름이라는 허울을 벗고, 삶과 사랑이라는 옷을 입으며 걸어갈 길’을 스스로 생각하면서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그야말로 가장 푸른 나이인 ‘푸름이’로 살아갑니다. (4345.8.19.해.ㅎㄲㅅㄱ)

 


― 토끼 드롭스 5 (우니타 유미 글·그림,양수현 옮김,애니북스 펴냄,2010.11.12./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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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빨리 읽기

 


  나는 책을 빨리 읽고픈 마음이 없다. 그렇다고 책을 느리게 읽고픈 마음이 없다. 그저 읽는 책이요, 내 삶에 걸맞게 읽는 책이다. 내 마음이 이끌리거나 내 마음이 닿을 때에는 제아무리 두툼한 책이라 하더라도 훌쩍 읽는다.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거나 내 마음이 노래하지 않으면 제아무리 얇은 책이라 하더라도 오래도록 먼지가 쌓이도록 잊는다.


  책은 왜 빨리 읽어야 할까. 책을 빨리 읽으면 무엇이 좋을까.


  베스트셀러를 읽는다고 좋은 책읽기라고 느끼지 않는다. 스테디셀러나 이름있는 책을 읽을 때에도 썩 좋은 책읽기라고는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책이란 내가 바라는 책을 읽을 때에 책이지, 남들이 이것 읽으라 저것 읽으라 해서 책이 되지 않는다. 내가 마음으로 바라던 책을 누군가 알려줄 수 있으나, 남이 시키거나 잡아끄는 대로 읽을 수 있는 책은 없다.


  내 몸이 고플 때에 먹는 밥처럼, 내 마음이 고플 때에 읽는 책이다. 내 몸을 아름답게 다스리고 싶어 알맞게 살피어 골고루 밥을 먹듯, 내 마음을 어여삐 돌보고 싶어 차근차근 헤아려 고루고루 책을 읽는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는 책이다.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읽는 책이다. 기쁜 마음으로 읽는 책이다. 좋은 마음으로 읽는 책이다. 이뿐 아닐까? 책을 빨리 읽는다든지 더디 읽는다든지 하는 갈래란 덧없다. 책을 많이 읽었다든지 책을 조금 읽었다든지 하는 갈래는 부질없다. 즐겁게 누린 하루라면 즐거운 삶이요, 활짝 웃으며 빛낸 하루라면 활짝 웃으며 빛내는 삶이 된다. 좋은 삶을 좋은 사랑으로 삭혀 좋은 사람으로 거듭난다. (4345.8.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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