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는 괜찮다 - 그동안 몰랐던 가슴 찡한 거짓말
이경희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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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할매가 바라는 삶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52] 이경희, 《에미는 괜찮다》

 


- 책이름 : 에미는 괜찮다
- 글 : 이경희·최시남
- 펴낸곳 : 삶이보이는창 (2012.5.8.)
- 책값 : 12000원

 


  나이든 어머니하고 전화로 주고받은 이야기를 갈무리했다는 《에미는 괜찮다》(삶이보이는창,2012)를 읽습니다. 큰아이하고 나란히 앉아 큰아이한테는 여섯 칸 깍두기공책에 한글을 쓰도록 시키고, 나는 옆에서 책을 읽습니다. 식구들 밥을 차려 먹인 다음 기운이 쪼옥 빠져 살짝 방바닥에 모로 드러누워서 책을 읽습니다. 두 아이를 마당에서 물놀이를 하게끔 큰 고무통에 물을 받아 들어가라고 하고는, 그늘진 데에 앉아 책을 읽습니다. 아이가 그림책을 보거나 사진기를 갖고 노는 동안 곁에서 조용히 책을 읽습니다.


.. 아침나절 니 아배두 자구, 딴엔 노는 손이라 거들어 주려구 여기저기 걸레질 좀 힜드니, 니 올케 맘에 안 드는지 다시 청소허더라. 설거지두 못허게 허구 빨래 하나 개지 뭇허게 허니 심심히서 살 수가 있어야지. 병들어 말 뭇허는 니 아배만 쳐다보구 가만히 놀구먹으라니, 눈치 뵈서 살 수 있겄냐. 애당초 그런 일이 생길까 봐 그냥 니 아배허구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둘이 산다니께 니 오래비 지랄허구 부득불 데려다 놓더니, 사람을 아주 시절을 만드는구나 … 손톱이 닳게 엎드려 일허느라구 하늘이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지,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두 모르구 살었다. 내가 씨감자로 살아야 니들이 잘산다는 생각밖엔 읎었다. 그것이 잘못 산 것은 아니겄지만, 오늘 이 좋은 디 와서 보니께 사람 한평생 사는 것이 뭐 그리 대단헌 일두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  (26, 70∼71쪽)


  살림을 도맡고 집일을 도맡으며 돈벌이까지 하는 몸으로 책을 읽을 겨를은 아주 적습니다. 옆지기랑 두 아이하고 살아가며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내가 책을 읽고 책을 쓰며 책을 말하는 삶을 누리려 했다면, 혼인부터 안 할 노릇이요 아이들은 안 낳을 일이였구나 싶어요. 그러나, 혼인을 하면서 책을 새롭게 마주하고 새삼스럽게 씁니다. 아이들을 낳아 돌보면서 책을 새롭게 바라볼 뿐 아니라 새삼스럽게 엮습니다.


  조각조각 나누기는 했으되, 이틀에 걸쳐 다섯 시간 즈음 가까스로 틈을 내어 원고지 1600장에 이르는 글을 살피기도 합니다. 곧 새로 내놓을 내 책 원고 1600장인데, 내가 쓴 글이라 더 수월히 살핀다 할 테지만, 집일을 하고 아이들하고 복닥이는 틈바구니에서도 ‘스스로 해야겠다’ 생각하거나 ‘스스로 하고 싶다’ 여기는 일은 틀림없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홀가분하게 책을 읽지는 못해요. 더 많은 책을 읽지는 못해요. 더 골고루 책을 살피거나 읽지는 못해요.


  읽을 수 있는 책은 그리 많지 않아요. 살피거나 다룰 수 있는 책은 퍽 적다 할 만해요. 다만, 혼자 살며 혼자 책을 읽던 때에는 혼자 생각하고 혼자 느끼며 혼자 말합니다. 여럿이 살며 여럿이 얼크러지며 책을 읽는 오늘은 내 생각을 옆지기랑 아이하고 버무립니다. 그림책을 보고 만화책을 보면서, 사진책을 보고 시집을 읽으면서, 내 마음이 어디에서 어디로 흐르는가를 찬찬히 짚습니다. 내 꿈과 내 사랑이 어떻게 샘솟아 어떻게 피어나는가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 농촌 인심이라는 게 산이구 들이구 널려 있어 음식 냄새 풍기구는 혼자 먹지 뭇허는 법이란다 … 니 아배 살아 있을 적이는 밭에서 일허다가두 그 양반(우체부) 오면 막걸리 한잔 허면서 시상 사는 얘기허구 돌아갔는디, 그 양반이라구 나이를 안 먹었겄냐. 어느 날부턴가 오지 않길래 물었더니 워디가 아프다구 허더니 결국 갔구나 … 그 양반 우리 집 편지 아니면 이 동네 출입헐 일도 읎었을 것이다 ..  (35, 49쪽)


  《에미는 괜찮다》라는 이야기책은 소설을 쓰는 딸아이 이경희 님이 글을 엮습니다. 이녁 어머님과 주고받은 전화 이야기를 책으로 갈무리했다는데, 목소리를 담아서 글로 옮겼는지, 그때그때 빈책에 옮겨적고는 갈무리했는지, 아니면 들은 이야기를 하나하나 되새기며 갈무리했는지 궁금해요. 이 대목은 안 밝히거든요. 어쩌면 여러 날 주고받은 전화 이야기를 한 가지 ‘이름(주제)’을 붙여 새롭게 엮었을는지 모르지요.


  아무튼 나는 시골마을 할머니 목소리를 책으로 읽습니다. 우리 집 네 식구 살아가는 전라남도 고흥군 시골마을 할머니들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책을 읽습니다. 시골마을 할머니는 충청도이든 전라도이든 경상도이든 강원도이든 경기도이든 서로 매한가지로구나 하고 느끼며 책을 읽습니다.


  참말 그래요. 할머니(에미)들은 한결같이 말해요. “에미는 괜찮다” 하고. 그런데,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버이인 나도 이렇게 말해요. “응, 아버지는 괜찮아.” 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요. 졸려도 괜찮다고 말해요. 배고파도 괜찮다고 말해요. 후끈후끈 덥거나 오들오들 추워도 괜찮다고 말해요.


.. 즌화 끊자마자 그 길로 니 동생네로 달려갔다. 까짓 품앗이구 뭐구 눈에 뵈는 게 읎더라. 모 안 심는다구 박힌 논이 워디로 도망갈 것두 아니구, 베 아니면 보리 심어 먹으면 그만이지 싶은 것이 아무 생각두 안 나더라. 손주새끼 살 냄새 맡을 생각을 허니께 가슴이 벌렁벌렁히서 그냥 있을 수가 읎어. 부랴부랴 옷 주서 입구 회관 앞으로 가 뽀스를 지달리는디 망할놈의 뽀스가 와야지. 뽀스 오기 지달리다가는 우리 손주 오줌 가리겄다 싶어서 냅다 택시 잡아탔다 … 내가 아무리 귀가 먹었어두, 내 새끼들 음성을 뭇 알아듣겄냐. 따르릉 소리만 듣구두 누군지 다 안다. 밭에서 일허다가두 즌화 소리 들리면 누가 즌화허는지 알 수 있단다 ..  (58, 77쪽)


  말 한 마디에 사랑을 담고 싶어요. 아이들과 마주하든 옆지기하고 마주하든 언제나 사랑 담은 말을 하고 싶어요.


  몸짓 하나에 사랑을 싣고 싶어요. 아이들을 쓰다듬든 옆지기하고 어깨동무하든 늘 사랑 싣는 몸짓으로 살고 싶어요.


  아무래도 나 스스로 오늘 하루 사랑스레 말하지 못한 나머지 이렇게 꿈꾸는구나 싶기도 해요. 아이들 앞에서 그야말로 사랑스러운 몸짓을 보여주지 못한 탓에 이렇게 바라는구나 싶기도 해요.


  아끼고 사랑한다면, 좋아하고 보살핀다면, 함께 살아가며 서로 꿈을 꾼다면, 내 하루와 아이들 하루는 어떻게 열릴까요. 나는 어떤 하루로 아침을 열고 저녁을 닫을 때에 즐거울까요. 아이들은 어떤 햇살을 맞으며 아침을 열고 어떤 달빛을 받으며 저녁을 닫을 때에 기쁠까요.


  어버이로서 생각하기도 하고, 한 사람으로서 생각하기도 하며, 나 또한 내 어버이한테는 아이인 만큼 나부터 아이 눈길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잠든 아이들 이불을 여미며 생각합니다. 개구지게 노는 아이들 옷을 벗겨 씻기면서 빨래를 새로 하며 생각합니다. 이 자그마한 몸뚱이에도 내 커다란 몸뚱이하고 똑같은 넋이 깃들어요. 이 조그마한 몸짓에도 내 커다란 몸짓하고 똑같은 얼이 흘러나와요.


.. 세 사위 모두 책상머리에 앉아 펜대만 굴리는 인사들인디, 멋모르구 밭고랑을 뛰어다녔으니 지금쯤은 아마 허리깨나 아플 것이다 … 도시에서만 살아 먹어 보기만 힜지, 언제 고구마를 캐 봤겄냐. 아마 일두 아니라구 생각힜겄지. 소풍 나온 거보다 더 재밌게 생각힜을 것이다. 지 식구들이 캔 고구마는 몽땅 가져가라구 힜으니 신이 날 만두 허지 … 일 안 허구 놀이 나오니 좋긴 좋더구나. 언제 그렇게 꽃이 피었는지 밭고랑에 엎드려 있느라구 봄이 가는 줄두 물렀다 ..  (73, 92, 151쪽)


  아침에 식구들 모두 이웃마을로 천천히 걸어갔다가 천천히 돌아왔습니다. 이웃마을 어느 빈터 돌울타리에 부추풀이 자라는 모습을 보았어요. 옆지기와 아이들도 이 모습을 보았나 궁금한데, 아이들이 앞서 빨리 걷느라 미처 붙잡지 못하고 사진만 찍고 지나갔어요. ‘풀’이니까 흙에 뿌리를 내릴 노릇이요, 시골은 어디에나 흙인데, 이 부추풀은 돌울타리에 얹은 기왓장에서 자라더군요. 똑똑히 말하자면, 돌울타리에 얹은 기왓장에 이끼가 꼈고, 이끼가 오래되면서 흙처럼 되었으며, 이 자리에 부추풀이 씨앗을 드리우며 씩씩하게 자랐어요. 하얀 몽우리가 쌀알만 한 꽃잎을 한창 터뜨리더군요.


  논둑에 우람하게 자란 쑥풀을 감싸던 어느 덩굴은 샛노라면서 무척 고운 냄새를 짙게 풍겨요. 마을 할머님한테 무슨 풀인지 아시느냐고 여쭈었더니 “지심이여, 지심.” 하고 말씀합니다. ‘김’이란 소리요, ‘잡풀’이란 얘기예요.


  논둑길이나 밭둑길을 걸어가면 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뜯어서 내놓은 ‘지심’을 많이 봅니다. 이 지심들 가운데에는 바랭이풀도 많고 이런저런 풀도 많은데, 질경이도 미나리도 지칭개도 모시도 있어요. 나물로 먹을 생각이 아니면 돗나물도 지심꾸러미에 들어가는 풀이 돼요. 자운영도 광대나물도 온통 지심으로만 여기셔요.


.. 읍내만 히두 우리 동네허구 공기가 달라서 쪼끔만 서 있어도 가슴이 답답허구 머리가 무거워 … 봄이면 꽃 피구 겨울이면 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 아니겄냐 … 이 방송 틀어두 먹을 거, 저 방송 틀어두 먹을 거만 나오니, 노인네들조차 배가 북통만 히서 다니지. 그리들 먹어 놓구는 또 살을 뺀다구 굶거나 약을 먹으니 뭔 조홧속인지 모르겄다 ..  (125, 140, 193∼194쪽)


  큰아이가 오줌그릇에 눈 오줌을 비웁니다. 나도 오줌을 눕니다. 낮에는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밤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뭇별을 올려다봅니다. 날마다 입으로 마음으로 ‘좋다’ 하고 읊습니다. 하늘이 좋아 좋다고 읊습니다. 구름도 별도 달도 해도 좋아서 좋다고 읊어요. 그러다 문득, 옆지기랑 아이들한테 다들 참 좋네, 하는 말을 얼마나 즐겁게 읊었는가 하고 곱씹습니다.


  애써 밥을 차려서 밥 먹으라 불러도 밥상 앞에 앉을 생각을 안 한다고 이맛살을 찌푸리거나 골을 부리는 내 모습입니다. 밥상 앞에서 깨작거리는 젓가락질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내 모습입니다. 참 딱한 노릇인데, 이맛살을 찌푸리거나 한숨을 쉬는 내가 그야말로 딱합니다. 즐겁게 맞이하는 밥상이 되도록 하고, 즐겁게 누리는 밥 한 그릇이 되도록 하면 되거든요. 밥을 차리는 일은 무슨 ‘공양’도 ‘인덕’도 아니에요. 그저 ‘밥 한 그릇 차리기’예요. 빨래도 다른 집일도 그래요. ‘해 주는’ 일이 아니라 ‘즐기는’ 일이고 ‘누리는’ 일이에요. 내 목숨을 살찌우는 일이고, 내 사랑을 북돋우는 일이에요. 그러니까, 이 땅 모든 ‘에미’들이 한 마디로 말하겠지요. “에미는 괜찮다” 하고.


.. 우리 오매두 워쩌면 나처럼 시집살이가 고되서 굴뚝 뒤에 숨어서 울기두 힜을 것이다. 혼자 실컷 울구 나서는 다시 방긋거리는 새끼들을 쳐다보며 살어야지 생각힜을 것이다 … 아래채는 새로 지은 건물이라 위채만은 뭇허다. 위채는 나무와 흙으로 지은 집이라 낡긴 힜지만 콘크리트 같지 않구 구수한 냄새가 난단다 … 나는 아파트라닌 디 영 마땅찮더라. 토끼장 같이 지어 놓구는 왜 또 그리 비싸다니 ..  (175, 211, 240쪽)


  그나저나, 참말 에미들 누구나 괜찮은지는 알쏭달쏭해요. 굴뚝 뒤나 처마 밑에서 그렇게 눈물짓던 에미들 누구나 오늘 하루 시골집에서 홀로 밭일을 하고 집일을 하면서 혼자 밥상을 차려서 먹는 삶이 얼마나 괜찮은지 아리송해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왜 하나같이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아파트에 스스로 갇혀 살아야 하나요. 아이들한테 자연을 아끼도록 이끌고 아이들이 자연을 사랑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하면서, 왜 정작 도시에 숲을 일구지 않을 뿐 아니라, 도시를 떠나 숲 어여쁜 시골에서 아이들하고 살아갈 생각은 안 하나요.


  흙으로 지은 집에서는 흙내음이 나요. 시멘트로 지은 집에서는 시멘트내음이 나요. 나무 기둥을 세운 집이니 나무내음이 나겠지요. 쇠붙이와 플라스틱을 쓴 아파트에는 아주 마땅히 쇠붙이랑 플라스틱이 풍기는 내음이 가득해요.


  들판에서 일하는 시골 할매와 할배는 흙을 맡고 햇살을 맡으며 바람이랑 나무랑 냇물을 맡아요. 자동차를 몰고 전철을 타며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도시 젊은이는 자동차와 전철과 컴퓨터 내음을 맡겠지요.


  좋게 누리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즐겁게 누리는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즐겁게 누리는 사랑은 어떤 그림으로 나타날까요. 《에미는 괜찮다》를 읽는 내내 내 마음속에서는 한 가지 생각이 피어오릅니다. 시골 할머니는 다 괜찮다고 말씀하지만, 당신이 낳은 아이들이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즐거우며 가장 아름다울 보금자리에서 다 함께 얼크러지며 웃음꽃을 피울 수 있는 삶을 가장 바라며 기다린다고 느껴요. 돈 없어도 최시금 할머니는 충청도 시골집에서 잘 살아가시잖아요. 왜냐하면, 돈이 없다 하더라도 집이 있고 옷이 있으며 밥이 있어요. 사랑이 있고 꿈이 있으며 믿음이 있어요. 학력이나 종교나 재산은 없으시겠지요. 그렇지만, 흙을 누리고 햇살을 누리며 숲을 누려요. 참말, 시골 할매 최시금 님은 이녁 아이들이 부디 ‘저희 나고 자란’ 멧골집으로 돌아와서 오순도순 예쁘게 살아갈 나날을 기다리시는구나 싶어요. (4345.8.2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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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방은 2010년 8월 13일에 열었다. 이무렵, 알라딘서재를 그만둘까 생각하며 만들었는데, 알라딘서재는 그만두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나는 내가 좋아해서 쓰는 글을 내 둘레 좋은 이웃하고 나눌 생각으로 쓰기 때문에, '따로 편집자한테서 원고 독촉을 받거나 원고 채점을 받는' 일이 있는 인터넷신문이 아니라 한다면, 내가 어디를 그만두거나 새로 들어갈 까닭이 없다고 느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알라딘서재가 영 어수선하게 흐르는구나 싶어, 마음을 둘 만하지 않다고 느낀다. 아마, 언제가 될는지 모르나, 어느 곳에도 글을 안 쓸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그저 '단행본 책'으로만 글을 내놓고, 어떠한 인터넷 터에도 글을 안 쓸 날이 오겠지.

 

그때가 언제가 될까 모른다면, 올리는 동안에는 즐겁게 올리자고 생각한다. 예스24에는 느낌글(리뷰)을 올리며 사진을 못 붙이고 말아 많이 아쉬운데, 어느 모로 보면, '오직 글로만 생각하도'록 도우니까 좋다고도 할 만하다. 다만, 왼쪽이나 오른쪽에 자질구레한 메뉴가 어쩔 수 없이 많이 붙는다.

 

아무튼. 예스24 방에는 느낌글만 올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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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묶음표 미국말 37 : 셀렉트select

 


처음 사진을 선택할(셀렉트select) 때는 대부분이 찍을 때의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임동숙-사진일기, 날마다 나를 찾아가는 길》(포토넷,2012) 132쪽

 

  ‘대부분(大部分)이’는 ‘거의 모두가’로 다듬을 수 있는데, 글흐름을 살펴 ‘으레’나 ‘흔히’로 다듬어도 됩니다. “찍을 때의 감정(感情)에서”는 “찍을 때 받는 느낌에서”나 “찍을 때 든 느낌에서”로 손질합니다.

 

 사진을 선택할(셀렉트select)
→ 사진을 고를
→ 사진을 추릴
→ 사진을 뽑을
→ 사진을 가릴
 …

 

  보기글을 쓴 분은 ‘선택(選擇)’이라는 한자말을 쓰면서 묶음표를 치고는 굳이 ‘셀렉트’라고 영어를 한글로 적은 다음 ‘select’라고까지 덧붙입니다. 왜 이렇게 글을 썼을까요. 찍은 사진을 ‘고르는’ 일은 한자말 ‘선택’으로 가리키기에 알맞지 않다고 느꼈을까요. 사진을 ‘고르는’ 일은 영어 ‘select’가 아니고서는 나타낼 수 없기 때문인가요.


  영어로 ‘select’를 말해야 한다면, ‘사진’이라는 낱말도 ‘포토’나 ‘포토(photo)’나 ‘photo’로 적어야 한다고 느껴요. 그러나, 구태여 ‘포토’나 ‘포토(photo)’나 ‘photo’로 적어야 하지 않아요. ‘사진’이라고 적으면 돼요. ‘사진가’나 ‘사진작가’라 하면 되지, ‘포토그래퍼’라 할 까닭은 없어요.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다시 생각할 일이로구나 싶습니다. 사진이 서양에서 만들었고, 한국에서 사진을 배우는 이들이 으레 서양으로 가서 배운다고 하는데, 아무리 이러한 얼거리라 하더라도, 한국에서 사진을 이야기하는 자리라 한다면 ‘사진’을 말하고 ‘고르기’를 말하면 넉넉하다고 생각해요. 사진은 ‘찍는다’고 하면 돼요. 한자말 ‘촬영(撮影)’도 쓰기는 하는데, 하나하나 따지면 ‘촬영’이라는 한자말 또한 따로 안 써도 돼요. ‘찍다’라는 한국말이 있어요. 그러니까, ‘찍다’와 ‘촬영’이라는 낱말이 있는 만큼, 이런 낱말까지 영어로 따로 무어라 하고 적어야 하지 않아요. (4345.8.25.해.)

 


* 보기글 새로 쓰기
처음 사진을 고를 때에는, 거의 모두, 찍을 때에 들던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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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빛 스미는 마루

 


  저녁이 되어 아이들 재우려고 불을 끈다. 훅 어둠이 깔린다. 그런데 마루로 빛이 두 줄기 나뉘어 들어온다. 마루와 바깥을 막은 샷시문 기둥이 빛을 둘로 갈라 비추는 셈인데, 이 빛줄기는 저 멀리 달부터 우리 집 마루까지 닿는다. 달은 초승달, 누운 자리에서 고개를 바깥으로 돌리면 보인다.


  풀벌레 노랫소리 가득한 호젓한 밤에, 달빛을 받으면서 마루에 큰아이하고 눕는다. 큰아이는 잠들기 앞서 몇 마디 조잘조잘 노래하고, 이 노랫소리 사그라들자 온 집안에는 풀벌레 노랫소리만 감돈다. 바람조차 한 점 불지 않는다. 엊저녁까지 드센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씨였다고 생각할 수 없을 만한 고즈넉한 밤이다.


  문득, 이 고즈넉한 달밤을 퍽 먼 옛날부터 그렸다고 떠오른다. 언제였을까. 내가 꼬맹이였을 적인가. 이처럼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고 달빛을 누리면서 마루에 아이랑 드러누워 예쁘게 잠드는 나날을 꿈꾼 옛날은 언제였을까. 어쩌면 오백 해나 오천 해 앞서 꿈꾸었을까. 오만 해나 오십만 해쯤 앞서 이렇게 느긋한 달밤을 꿈꾸었을까. 날이 워낙 더워 찬물로 몸을 씻으며 빨래 몇 점 해야겠다. (4345.8.2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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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숲 21 - 신장판
이시키 마코토 지음, 손희정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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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 마음속 나를 느끼기
 [만화책 즐겨읽기 177] 이시키 마코토, 《피아노의 숲 (21)》

 


  새벽에는 홀로 조용히 일어나서 낯을 씻고 쉬를 눕니다. 이러고 나서 기지개를 켠 다음 쌀을 씻습니다. 누런쌀로 밥을 짓기 때문에 바지런히 일어나 쌀을 씻어서 불립니다. 날마다 하는 일이기는 한데, 날마다 새롭습니다. 하루에 두 차례 쌀을 씻어서 불릴 적마다 가만히 헤아려 보곤 합니다. 내 밥짓기는 내 살붙이한테 목숨을 잇는 좋은 삶짓기일까 하고. 스스로 좋은 삶짓기로 여기면서 쌀 한 톨이랑 물 한 방울에 좋은 넋을 담는가 하고.


- ‘내가 슈우헤이랑 같은 라인에 있다면, 세계 어디에 있든 마음이 향하는 곳은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라인에서 떨어지기 싫어서, 아무리 힘들어도 열심히 노력할 수 있었다. 나란 놈은 대체 얼마나 슈우헤이에게 의지해 온 걸까?’ (24쪽)
- “어느 날 갑자기 제가 없어져도 괜찮도록, 저는 카이와 진심으로 마주하고 있었으니까요.” (84쪽)


  지난밤에 비가 그칩니다. 오늘은 날이 맑으리라 생각합니다. 해가 환하게 뜨고 마당이 말라 물기가 사라지면, 며칠째 눅눅하기만 한 채 안 마르던 빨래를 모두 내놓고 보송보송 말리려 합니다. 새벽녘에 하늘을 바라보려고 마루에 앉아 밖을 내다 보는데, 모기그물문에 매미 한 마리 붙었더군요. 이 매미는 지난밤 비바람을 그으려고 여기에 붙었을까요. 아직 나뭇가지나 풀잎 모두 물기로 촉촉하니, 모기그물에 붙어 날개와 몸을 말릴 생각일까요.


  아이들 하나씩 일어나고 햇볕 찬찬히 깃들 무렵, 모기그물에 붙던 매미는 마당 한켠 후박나무로 옮겨 앉습니다. 이윽고 우렁차고 시원스런 목청을 뽑아 노래를 부릅니다.

 

 


- “도면 자체가 아무리 훌륭해도 그걸 어떻게 파악하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건물이 되지 않니.” “엄청 허술하게 날림 공사로 지은 집이 될 수 있고, 몇 세기에 걸쳐 칭송받는 예술품 같은 건물이 될 가능성이 있어요.” (53쪽)
- “10명의 장인이 있으면 10가지 집이 만들어져요?”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어떤 재료를 쓰는지에 따라서 전혀 달라지잖아요. 나무를 쓸지, 돌을 쓸지, 흙을 쓸지, 짚으로도 지을 수 있고.” (54쪽)
- “소중한 사람을 잃기도 하고,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하지만 즐거운 일도 기쁜 일도 있지?” “뭐, 뭐, 그렇죠.” “어떤 식으로든 상처받고 싶지 않다면 평생 누구와도 관계 맺지 말고 외톨이로 숨어 살 수밖에 없어.” “그런 건 불가능해요. 밥을 안 먹으면 죽어 버리잖아요.” “괴로운 일은 마음을 강하게 해 주고, 즐거운 일은 마음을 풍부하게 해 준단다.” (56쪽)


  겨울과 봄 사이에는 멧새가 노래했어요. 봄부터 제비가 찾아들어 노래했어요. 늦봄과 여름 사이에 개구리가 노래했어요. 이윽고 풀벌레 노랫소리가 이어졌고, 바야흐로 매미들 노랫소리가 울려퍼집니다. 봄부터 겨울까지, 다시 겨울부터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 거쳐 겨울이 되기까지, 언제나 소리는 끊이지 않습니다.


  소리와 함께 빛깔도 끊이지 않습니다. 봄빛에 이어 여름빛이 찾아옵니다. 여름빛에 이어 가을빛이 찾아듭니다. 가을빛 다음으로 겨울빛이 찾아와요.


  저마다 온누리에 한 가지 있는 소리요 빛입니다. 사랑스레 태어나고 아름답게 자라나는 무늬요 결입니다.


  이른아침부터 섬돌에 앉아 만화책을 읽는 큰아이를 바라봅니다. 나와 옆지기와 아이들은 이 땅에 무엇을 누리거나 즐기려고 찾아왔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놀이를 하며 어떤 이야기를 나누려고 이 땅으로 찾아왔을까요. 학교를 다니려고 이 땅에서 태어나지 않았겠지요. 무언가를 거머쥐거나 어떤 길 하나를 찾아 걸어가려고 이 땅에 서지 않았겠지요.


  꿈을 꾸려고 태어났으리라 생각해요. 다만, 꿈을 꾸려는 삶이지, 목표를 이루거나 욕심을 채우거나 하는 삶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즐겁게 누릴 꿈이고, 사랑스레 보듬을 꿈이라고 생각해요.

 

 


- “선생님이 말씀하신 건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 있어요!” “자, 마지막 강의다. 그것들을 전부 잊어버려라. 내게서 배운 건 깨끗이 잊어버려야 한다.” “예? 깨끗이 잊으라니요?” “‘잊어버리는 것’도 훌륭한 재능 중 하나야.” (59쪽)
- “지금 너에게 필요한 건 이미 네 속에 들어 있어.” (63쪽)
- “카이, 그 녀석이 없어도 이미 네 안에는 ‘숲의 피아노’가 존재하지? 네 안에 존재하는 건 잃어버릴 수가 없지 않니! 나는 내가 가진 건 전부 다 가르쳤단다. 그리고 넌 너에게 필요한 걸 확실히 소화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어! 그러니 안심하고 전부 잊어버려! 머릿속을 완전히 비우고 파이널에 도전하는 거야. 협주곡은 수많은 장인들과 벌이는 공동작업이란다. 그곳에 가면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해.” (65∼66쪽)


  날마다 밥을 짓습니다. 날마다 밥을 먹습니다. 살붙이들한테 밥을 먹입니다. 날마다 옷을 빨래합니다. 잘 빨래하고 잘 말리고 잘 개서 입고 입힙니다.


  살아가는 나날입니다. 살아가며 사랑하는 나날입니다. 살아가며 사랑하는 꿈을 생각하는 나날입니다.


  밥을 먹는 까닭이란 따로 없습니다. 그저, 살아가려고 밥을 먹는데, 살아가려는 까닭이라면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을 뿐이요,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은 까닭이라면, 사랑하며 살아가는 꿈을 꾸고 싶기 때문이라 할 만해요.


  내 마음속 나를 느끼면서 좋아하는 삶이지 싶어요. 내 마음속 나를 헤아리면서 보살피는 삶이지 싶어요.


  어떤 재주를 부려야 하지 않아요. 어떤 솜씨를 뽐내야 하지 않아요. 어떤 이름을 날려야 하지 않아요. 어떤 나인가를 살포시 느끼면서 스스로 웃을 수 있는 삶이면 넉넉해요.

 

 


- “연습할 대로 연주해서는 의미가 없어! 왜인지는 알겠지?” “무대는 살아 있으니까!” (72쪽)
- “지금 말한 것도 잊어버리라고 하실 거예요?” “하하, 잊어버리렴. 괜찮아! 자신감을 가져. 나한테서 배운 걸 떠올리지 않아도 넌 이미 너란다! 넌 이미 나한테서 가져가고 싶은 전부 가져갔고, 그걸 넘어섰어. 이찌노세 카이, 바로 너 자신이 된 거야.” (73쪽)


  이시키 마코토 님 만화책 《피아노의 숲》(삼양출판사,2012) 스물첫째 권을 읽습니다. 스물첫째 권에 이르러 ‘스승한테서 홀로서기’를 하려는 카이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런데, 카이는 스승한테서 홀로서기를 한다기보다, 스승한테서 처음 피아노와 삶을 배울 때부터 홀로서기를 했어요. 누가 누구한테서 무엇을 배운다 할 때에는 홀로서기를 한다는 뜻이에요. 홀로서기를 하면서 더 살갑고 깊은 동무로 살아간다는 뜻이에요. 서로 오롯한 목숨으로서 마주하고, 서로 옹근 꿈으로 만나며, 서로 오달진 삶으로 어깨동무를 한다는 뜻이에요.


  아침을 차리는 나는 ‘아침밥’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 옷가지를 빨래하는 나는 ‘빨래’를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 둘 태운 자전거수레를 끌면서 ‘자전거’를 생각하지 않아요. 글을 쓸 때에 ‘글’을 생각하는 일이란 없고, 사진을 찍으며 ‘사진’을 생각하지 않아요. 사랑을 속삭이는 사람이 ‘사랑’을 생각할 일이란 없습니다. 피아노를 치며 아름다운 꿈을 누릴 카이는, 피아노를 치는 동안 ‘피아노’를 생각할 일이 없어요. 예나 이제나 카이는, 피아노 앞에 앉건 숲에서 뛰놀건 어머니하고 작은 집에서 밥을 먹건 ‘삶을 생각’하고 ‘삶을 사랑’하는 나날이었어요. 카이한테 ‘피아노 치기’를 이끈 분은 카이가 ‘피아노 치는 재주’가 모자라다고 여겨 ‘피아노 교사’ 노릇을 하지 않았어요. 카이 스스로 삶을 생각하고 사랑하면서 ‘피아노를 카이 것으로 녹여’낼 수 있는 길을 손을 맞잡고 즐겁게 걸어갔어요.


  카이는 카이대로 카이 마음속에서 숨을 쉬는 ‘나’를 느낍니다. 피아노를 사이에 두고 카이와 가르치고 배우던 분은 이녁대로 이녁 마음속에서 숨을 쉬는 ‘나’를 느낍니다. (4345.8.25.흙.ㅎㄲㅅㄱ)

 


― 피아노의 숲 21 (이시키 마코토 글·그림,문보람 옮김,삼양출판사 펴냄,2012.8.3./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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