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스미는 마루
저녁이 되어 아이들 재우려고 불을 끈다. 훅 어둠이 깔린다. 그런데 마루로 빛이 두 줄기 나뉘어 들어온다. 마루와 바깥을 막은 샷시문 기둥이 빛을 둘로 갈라 비추는 셈인데, 이 빛줄기는 저 멀리 달부터 우리 집 마루까지 닿는다. 달은 초승달, 누운 자리에서 고개를 바깥으로 돌리면 보인다.
풀벌레 노랫소리 가득한 호젓한 밤에, 달빛을 받으면서 마루에 큰아이하고 눕는다. 큰아이는 잠들기 앞서 몇 마디 조잘조잘 노래하고, 이 노랫소리 사그라들자 온 집안에는 풀벌레 노랫소리만 감돈다. 바람조차 한 점 불지 않는다. 엊저녁까지 드센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씨였다고 생각할 수 없을 만한 고즈넉한 밤이다.
문득, 이 고즈넉한 달밤을 퍽 먼 옛날부터 그렸다고 떠오른다. 언제였을까. 내가 꼬맹이였을 적인가. 이처럼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고 달빛을 누리면서 마루에 아이랑 드러누워 예쁘게 잠드는 나날을 꿈꾼 옛날은 언제였을까. 어쩌면 오백 해나 오천 해 앞서 꿈꾸었을까. 오만 해나 오십만 해쯤 앞서 이렇게 느긋한 달밤을 꿈꾸었을까. 날이 워낙 더워 찬물로 몸을 씻으며 빨래 몇 점 해야겠다. (4345.8.25.흙.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