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과 감과 책읽기

 


  지난겨울에 이어 봄까지 감알을 아주 신나게 먹었다. 살아오며 감을 이토록 많이 먹고 둘레에 선물한 적은 처음이다. 가을을 다시 코앞에 두면서 새삼스레 감알을 생각한다. 우리 집 뒤꼍 감나무는 줄기는 크고 곧지만 알은 몇 안 맺힌다. 올해에 달린 얼마 안 되는 알은 거의 모두 태풍에 떨어지고 딱 한 알만 남았지 싶다. 우리 식구 들어오기 앞서까지 한동안 빈집이었고, 할머니 혼자 살며 뒤꼍을 돌보지 못했기에 이 감나무는 알을 제대로 못 맺었으리라 느낀다.


  우리 집 돌울타리하고 이웃한 옆 밭뙈기에 있는 작은 감나무를 바라본다. 작은 감나무인데 굵은 알이 퍽 많이 맺힌다. 태풍에도 그리 떨구지 않은 듯하다. 마을 어귀 감나무는 크고 알이 많이 맺혔는데, 아직 나무에 달린 알도 많고, 바닥에 떨어진 알도 많다. 이렇게나 많이 떨어졌으니, 올해에는 지난해처럼 감알 구경이 만만하지 않을 수 있겠다 생각하면서도, 감나무는 스스로 알맞춤하게 알을 달고는, 나머지는 떨구어 스스로 거름으로 삼는 셈 아닌가 싶기도 하다. 스스로 거름으로 삼을 만한 풋감이 많을수록 감나무는 해마다 더 튼튼하게 무르익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뒤꼍 감나무가 떨군 애꿎은 풋감을 모두 주워 감나무 곁에 놓는다.


  나는 감알을 먹고 싶어 감나무를 바라본다. 마을 이웃들도 감알을 먹겠다는 생각으로 감나무를 바라보리라. 이 감알을 알뜰히 따서 살뜰히 내다 팔 생각으로 바라보리라고는 느끼지 않는다. 마을 어디에나 감이 너르고 흔한데, 감알을 어디에 내다 팔겠는가. 게다가 무거운 감알을 이고 지고 읍내에 나간들, 읍내 사람들이라 해서 감알만 먹으며 살지는 않는다. 아주 눅은 값에 도매상한테 넘겨 도시로 보내도록 해야 비로소 감알을 팔 만하리라 본다. 그러니까, 시골 어르신들은 당신 술안주로 감알을 먹고, 도시로 나간 딸아들한테 감알을 부치며, 때때로 놀러오는 당신 딸아들이랑 손주들한테 감알을 내놓을 생각이리라 느낀다.


  감이 익을 무렵이면 날마다 감을 다섯 알쯤 먹을까. 우리 네 식구는 날마다 감을 열다섯 알이나 스무 알씩 먹으면서 지낼까. 뒤꼍 큰 감나무랑 작은 감나무 모두 차근차근 기운을 북돋우며 알을 예쁘게 맺을 수 있기를 빈다. (4345.8.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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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바람

 


  들바람 부는 들판에 섭니다. 나는 들바람을 마시고 싶어 들 앞에 섭니다. 거세거나 드세거나 모질다 하는 커다란 비바람이 들을 휘젓습니다. 어디에서는 지붕을 날리고 비닐집을 뜯는다 하는데, 어디에서는 자동차도 날리고 멧자락을 무너뜨리기도 한다는데, 나는 이 들바람이 볏포기를 눕히거나 꺾지는 못하고, 그저 벼춤을 추도록 하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바다에서는 파란 물결이 일렁입니다. 들판에서는 푸른 물결이 일렁입니다. 큰 비바람이 한 차례 훑으며 볏포기를 이리저리 흔들어 춤추도록 하니까, 볏포기한테 달라붙어 볏포기를 갉아먹는 벌레를 떨굴 수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어릴 적 외할머니나 외삼촌 이야기가 얼핏 떠오릅니다. 충청남도 시골마을 어르신들은 ‘태풍이 한두 차례 지나가야 벼가 잘 익는다’고 했어요. 태풍이 안 훑는 논은 벌레가 많이 들어 힘들다고 했어요.


  요즈음에는 태풍이 한두 차례 찾아와서 스윽 훑고 지나가기를 바라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들판에 풀약을 치면서 태풍을 반기지 않습니다. 태풍이 아니더라도 조금 거세거나 드센 바람이 불어도 모두들 못마땅해 합니다.


  나는 바람을 더 좋아하지 않으나 바람을 덜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바람을 못마땅해 하지 않으며, 바람더러 어서 오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기에, 부는 바람을 쐬면서 들판에 섭니다. 바람이 멎기에, 고요한 저녁을 가로지르는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들바람 불어 푸르게 푸르게 푸르게 노래하는 들판을 오래도록 바라봅니다. (4345.8.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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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당 있는 집

 


  아이들이 마당에서 논다. 여름날 마당 한켠에 커다란 고무통을 놓고 물을 받아 놀도록 하다 보니, 이틀이나 사흘에 한 차례 물갈이를 하며 ‘헌 물’을 텃밭에 주거나 마당을 쓸 때에 좌악 뿌리곤 했는데, 이틀이나 사흘에 한 차례 마당을 물로 쓸어내니 아이들도 어른도 맨발로 다닐 만하게 된다고 느낀다. 큰아이는 마당을 물로 쓸고 고무통에 새 물을 받을 때에 여러모로 잘 도와준다.


  작은아이가 씩씩하게 서고, 제법 빨리 걸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제 차근차근 달리기를 익힐 무렵이 되니, 두 아이끼리 마당에서 잡기놀이를 하곤 한다. 숨기놀이도 하고, 여러모로 서로 오붓하게 놀 만하다.


  마당이 더 크다고 더 재미나게 논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마당이 작다고 덜 재미나게 논다고 느끼지 않는다. 마당이 있고, 풀숲이 있으며, 나무가 자랄 때에 비로소 마당이라고 느낀다. 한식구 살아가는 보금자리라 한다면 마땅히 마당이 있으면서 텃밭이 붙어야 하는구나 싶다.


  아이들은 숨을 쉬어야 한다. 어른들도 숨을 쉬어야 한다. 아이들이 먹을 푸른 잎사귀가 있어야 한다. 어른들이 뜯을 푸른 잎사귀가 있어야 한다. 도시에서 아파트를 짓는다 하더라도 마당 구실을 할 자리가 있어야 할 텐데. 마당과 함께 텃밭으로 삼을 자리가 있어야 할 텐데. 마당도 텃밭도 없는 아파트라 한다면, 이곳에서는 아이들이나 어른들 모두 살가이 숨을 쉬거나 노닐기 힘들 텐데. (4345.8.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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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8-30 12:20   좋아요 0 | URL
맞아요 마당있는 집이 참 좋아요
요즘 그런 집 찾기 쉽지 않지요

파란놀 2012-08-30 12:32   좋아요 0 | URL
음... 시골에는 널렸구요. 도시에도 꽤 많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스스로 안 찾으려고 하니까 잘 안 보이는 셈 아닌가 싶어요 ^^;;

카스피 2012-08-31 21:00   좋아요 0 | URL
워낙 아파트 숲에 가려살다보니 마당있는 집을 쉬이 찾지 못하는것 같아요.

파란놀 2012-09-01 00:31   좋아요 0 | URL
스스로 찾으려고 생각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마련이에요..
 
첫사랑 카르페디엠 31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이유림 옮김 / 양철북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푸른 넋을 맑게 꽃피우도록 이끄는
 [푸른책과 함께 살기 99] 구드룬 파우제방, 《첫사랑》(양철북,2012)

 


- 책이름 : 첫사랑
- 글 : 구드룬 파우제방
- 옮긴이 : 이유림
- 펴낸곳 : 양철북 (2012.7.23.)
- 책값 : 9500원

 


  푸른 넋을 맑게 꽃피우도록 이끄는 한 가지는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 말고는 푸른 넋을 맑게 꽃피우도록 이끌지 못하리라 느껴요. 학력도 재산도 이름도 어느 무엇도 푸른 넋을 맑게 꽃피우도록 이끌지는 못하지 싶어요.


  푸른 잎 틔운 나무가 씩씩하고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도록 하는 한 가지는 사랑스러운 햇살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스러운 햇살 말고 무엇이 나무를 푸르게 할까 궁금해요. 화학비료가? 항생제가? 성장촉진제가? 농약이? 다른 무엇으로 나무를 푸르게 할 수 있을까요.


  푸른 넋은 사랑을 먹으며 살아갑니다. 푸른 나무는 사랑스러운 햇살을 먹으며 살아갑니다. 푸른 넋은 사랑 담은 꿈을 먹으며 자라납니다. 푸른 나무는 사랑스러운 햇살에 깃든 꿈결을 먹으며 자라납니다.


.. 할머니가 말했다. “다들 고개만 돌리고 있지. 너도 위험을 똑바로 보지 않는구나.” … 하지만 오빠는 전쟁을 반겼다. 어찌나 들떴는지 마치 조금취하기라도 한 것 같았다. 새로운 소식이 나올 때마다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 전쟁이 끝날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해전이 확장되었다. 남자들이 돌아오기는커녕 나이가 좀 더 많은 사람들까지 전쟁터로 나갔다 …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우리랑 전쟁을 치르는 나라 사람들은 적이라는 것, 그래서 미워해야 하고 군인이라면 죽여야 한다는 건 한니도 학교에서 배웠다. 평화로울 때 사람을 죽이는 것은 범죄지만 전쟁일 때 사람을 죽이는 것은 범죄가 아니라는, 이 어처구니없는 논리에 한니는 자주 의아해 했다. 심지어 전쟁에서 적군을 많이 죽인 사람한테는 훈장까지 준다 ..  (22, 34, 44, 218∼219쪽)


  ‘어린이’라는 낱말이 널리 쓰이기 앞서, ‘아이’와 ‘어른’ 두 낱말로 삶을 살폈습니다. 아이 때를 거쳐 어른 나날을 누린다고 말했습니다. 시집이나 장가를 가지 않은 사람들은 몸이 크고 나이를 먹어도 ‘아이’로 여겨 버릇했고, 굳이 시집이나 장가를 들지 않고 아이 또한 낳지 않되, 스스로 삶길을 씩씩하게 열 적에는 새롭게 ‘어른’이라 일컫곤 했습니다. 시집이나 장가를 들고 아이도 여럿 낳았으니 ‘어른’ 아닌 ‘아이’라는 소리를 들은 사람도 많아요. 요즈음에는 ‘아이’와 ‘어른’을 으레 나이 숫자로만 따지지만, 두 낱말은 나이로는 헤아릴 수 없는 삶길을 보여주지 싶어요.


  곧, 방정환 님이 널리 쓰자고 하며 뿌리내린 ‘어린이’는 ‘아이’라는 낱말과 사뭇 다릅니다. ‘어린이·젊은이·늙은이’로 이어지는 이 낱말은 오직 나이와 몸피로 살피는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어린이’와 ‘젊은이’ 사이에 이른바 한자말로 가리킬 ‘청소년(靑少年)’은 없습니다. 곰곰이 따지면, 방정환 님이 살던 무렵에는 ‘어린이’ 다음으로 곧장 ‘젊은이’ 또는 ‘어른’이었지 싶어요. 열대여섯 살이면 시집이나 장가를 들고, 열서너 살이라 한다면 ‘한 사람 어른 몫’ 일을 했어요. 따로 학교를 다니며 ‘배우는 디딤돌’을 거치지 않았어요. 지난날에는 누구나 여느 살림집이 ‘먹고자는 집이면서 배우는 터’ 노릇을 했어요. 우리 삶과 삶터를 찬찬히 짚는다면, ‘청소년’이라고 하는 사람이 태어난(?) 지는 얼마 안 되었다 할 만해요. 어쩌면 오늘날에는 ‘청소년’이라 할 만한 사람이 새삼스레(?) 태어났다 할 만해요.


.. 이번에는 엄마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만약 이 애가 우리 애라면 어땠을까? 당신이 전쟁터에 나가 있는 동안 혹시 내가 죽고 우리 애들을 어딘가 보내야 한다면?” … “그 프랑스인은 군인이야. 혼자서 그랬든 여럿이 그랬든, 혹시 어떤 독일인을 죽였는지 누가 알겠니. 포로로 잡힌 적을 학대해서도 안 되지만 너무 위해 줘서도 안 돼.” 엄마가 담담하게 말했다. “만약 우리 위르겐이 포로가 된다면, 전 누군가가 그 애를 잘 보살펴 줬으면 좋겠어요.” … 할머니가 말했다. “세상이 대체 어찌 돌아가는지. 우리 로베르트는 파리에 가 있고 필리프는 여기 와 있고. 그 반대라면 우리한테나 필리프 엄마한테나 훨씬 좋았을 텐데.” ..  (61, 96, 157쪽)


  누구한테나 ‘푸름이’, 그러니까 ‘청소년’이던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는 내 푸름이 적 삶을 떠올려 봅니다. 아무래도 오늘날 푸름이라 한다면, 열네 살 중학교에 들 적부터 열아홉 고등학교 3학년을 마칠 때까지를 일컫는다 할 텐데, 중·고등학생으로 지내는 나(와 내 동무)를 가만히 돌아보면, 이무렵 여섯 해를 두고 둘레에서 ‘푸름이 대접’을 한 일은 거의 없었구나 싶어요. 둘레 어른들은 나와 내 동무들을 바라보며 ‘학생’이라고만 했어요. ‘푸름이’라든지 ‘청소년’이라고 가리키는 일은 거의 없었어요.


  버스를 타건 도서관에 들어가건 ‘학생 요금’을 받지 ‘청소년 요금’을 받지 않았어요. 버스나 전철에서 ‘청소년 요금’이 생긴 지 얼마 안 되었어요. 얼마 안 되기도 했지만, 중·고등학교를 안 다니는 청소년은 아직도 ‘어른’으로 쳐서 버스삯이나 기차삯을 받기도 해요. 중·고등학교를 안 다니면 푸름이 아닌 어른으로 친달까요. 그런데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학교나 집에서 푸름이로 대접받는지 아리송하곤 해요. 왜냐하면, 어린이는 어린 사람이요, 푸름이는 푸른 사람인데, 어린 사람이 어린 삶에 걸맞게 삶을 배우거나 보거나 즐기거나 누린다고는 느끼기 힘들며, 푸른 사람이 푸른 삶에 알맞게 삶을 익히거나 마주하거나 맞이하거나 펼친다고는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버스를 타며 ‘청소년 요금’이든 ‘학생 요금’을 내야 푸름이 대접이 되지 않아요. 어린이는 어린 넋을 사랑하며 북돋울 수 있을 때에 어른들이 어린이 대접을 한다 말할 수 있고, 푸름이는 푸른 얼을 믿고 아낄 수 있을 때에 어른들이 푸름이 대접을 한다 말할 수 있어요.


.. 한니는 다시금 궁금해졌다. 필리프도 이렇게 그리워할 여자친구가 있을까?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 소식을 애타게 기다릴까 … 한니한테 있어 사랑은 뭔가 위대하고 진지하고 영원한 것이었다. 한니는 참된 사랑이란 엄마 아빠이ㅡ 사랑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 한니의 생각은 다시 필리프를 맴돌기 시작했다. 필리프한테 물어 보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지 몰랐다. 필리프는 어렸을 때 어땠을까? 학교에서는 어떤 과목을 가장 좋아했을까? 시를 써 본 적이 있을까? 누구를 닮고 싶어 했을까 … 한니는 필리프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눈치채고 자기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눈물방울이 건반 위에 떨어졌다 ..  (119, 130. 136, 145쪽)


  동물원에 갇힌 짐승이든, 여느 집에서 애완동물로 지내는 짐승이든, 모두 사랑을 받아야 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을 못 받으며 동물원에 갇힌 짐승은 모두 불쌍합니다. 사랑을 못 받는 애완동물이라면 ‘애완’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습니다. ‘애완’이든 ‘반려’이든, 또는 ‘한식구’이든, 이런저런 이름을 붙이자면 오직 하나 사랑으로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 해요.


  밥 한 그릇을 지을 적에 어버이는 밥알에 사랑을 담습니다. 사랑 담지 않은 밥그릇이라면 아이들은 맛나게 먹지 못합니다. 비싼 밥이나 놀라운 밥이나 멋진 밥이나 대단한 밥일 까닭은 없어요. 사랑 담은 밥이면 돼요. 옷 한 벌을 지어 입힐 적에도 어버이는 옷에 사랑을 담아요. 말 한 마디를 건네더라도 사랑을 담아요. 어느 몸짓이든 사랑을 담는 말입니다. 낯빛도 사랑 담은 낯빛이요, 몸가짐도 사랑이 샘솟는 몸가짐이에요.


  어버이가 들려주고 보여주며 나누는 사랑을 언제나 보고 자라며 어린 나날을 누린 고운 목숨은, 푸름이라 하는 자리에 접어들어 여러 해를 누리면서 저마다 가슴에 품을 사랑을 생각합니다. 저마다 가슴에 품을 사랑으로 어떤 꿈을 이루면서 삶을 빛낼 때에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푸름이란, 바야흐로 삶을 사랑으로 느끼고 이 사랑을 꿈으로 피울 길을 찾는 사람이라고 하겠어요. 푸름이로 누리는 삶이란, 사랑이 꽃을 피우는 한때라 하겠어요. 푸름이일 적에 사랑으로 꽃을 피우고, 이른바 어른이 되면서 사랑이 열매를 맺겠지요. 어른이 되어 사랑이 열매를 맺으면, 이 열매를 소담스레 무르익히면서 씩씩하고 튼튼한 씨앗을 남겨요. 이 씨앗은 새로운 터에서 다시금 사랑을 먹으면서 천천히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요.


.. 한니는 이렇게 생각했다. 다행이야, 마음은 감시할 수 없으니 … “아, 얘야.” 엄마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너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내가 얼마나 일찍 눈치챘는지 아니? 사랑은 완전히 가릴 수 없단다. 특히 너처럼 아주 젊은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은 온몸에서 행복을 발산하지.” ..  (181, 211쪽)


  “사람들은 전쟁 없이 지내는 법을 언제나 배울 수 있을까요(7쪽)” 하는 글월로 머리말을 여는 이야기책 《첫사랑》(양철북,2012)을 읽습니다. 《첫사랑》을 쓴 구드룬 파우제방 님은 1928년에 태어나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밥그릇 숫자는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가장 푸른 꿈을 길어올리는 글을 써서 지구별 푸름이한테 맑디맑은 사랑이란 어디에서 피어나 어떻게 꽃이 되는가를 밝힙니다.


  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1940년대이든 2010년대이든 아직 ‘전쟁 없이 지내는 길’을 배우지 않아요. 사람들은 예나 이제나 ‘전쟁을 곁에 둔 채 지내는 길’에 길들어요. 나라에 군대를 둬요. 경찰에 전투경찰에 사복경찰에 경호원에 경비업체에, 온갖 몽둥이와 총과 무기를 둬요. 사람들은 예나 이제나 ‘가장 크고 많은 돈과 품과 겨를’을 새로운 전쟁무기를 만드는 데에 바칠 뿐 아니라, 전쟁무기를 움직이는 데에 들여요. 가장 푸르고 가장 젊은 사내들은 전쟁터로 가거나 군대에서 살인무기를 손에 쥐며 사람 죽이는 재주를 배워요. 맑은 사랑으로 고운 꿈을 생각할 젊은 사내들이 전쟁무기(곧 살인무기)를 손에 쥔 채 ‘사랑할 이웃’이 아닌 ‘미워할 놈’이 누구인가부터 머리에 아로새겨요.


  할머니 구드룬 파우제방 님은 《첫사랑》이라는 이야기책으로 우리들한테 한 마디를 들려줍니다. ‘사람들은 사랑으로 지내는 길을 이제부터 배우면 좋겠어요.’ 하고.


.. 할머니가 말했다. “전쟁에선 많은 이들이 아프단다. 때때로 너무 아파서 죽기도 하지.” … “전쟁이 아무리 끔찍해도 우리 여자들한테는 기회야.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수 있거든. 여자들이 없으면 남자들은 전쟁을 할 수도 없어.” … 오빠는 훈제 생선이랑 염소젖과 양젖으로 만든 치즈를 엄마와 카린에게 소포로 보냈다. 두 집안 식구들은 먹을 게 조금이라도 더 생겨서 기뻐했다. 엄마가 소포를 끄를 때 할머니가 중얼거렸다. “그런데 프랑스랑 노르웨이 사람들은? 그 사람들도 먹을 게 충분할까?” ..  (39, 44, 58쪽)


  어버이는 아이를 사랑하는 길을 슬기롭게 배울 노릇이에요. 교사는 학생을 사랑하는 길을 착하게 배울 노릇이에요. 회사 대표는 회사 일꾼을 사랑하는 길을 예쁘게 배울 노릇이에요. 노동자는 돈만 버는 회사 아닌 삶을 사랑하는 길을 밝히는 일터를 찾아, 이녁 몸과 마음을 아름답게 빛낼 일을 생각하며 배울 노릇이에요. 흙일꾼은 돈이 될 곡식이나 열매 아닌 삶을 북돋우는 사랑스러운 곡식이나 열매를 거둘 가장 예쁘고 가장 기름지며 가장 살기 좋은 마을을 돌보며 배울 노릇이에요. 푸른 넋을 맑게 꽃피우도록 이끄는 한 가지는 다만 사랑이니까요. 푸른 넋이 젊은 넋이 되는 길에서도 그예 사랑으로 빛날 테니까요. 어버이가 아이를 낳을 때에는 사랑이 빛날 때일 테니까요.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을 맞아들여 무언가를 가르칠 때에는 바로 사랑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북돋아야 교육이 이루어질 테니까요.


.. 알프레드는 어느새 가까운 도시를 가로지르는 전방에 소년병으로 나갔다. 알프레드랑 같은 분대 소년들은 겨우 일주일 동안 전쟁터에 나갈 준비를 한 다음 광신적인 친위대 장교에게 넘겨졌다. 그는 전선 경험이 전혀 없는 소년들을 적군의 총구 앞에 총알받이로 내세웠다 ..  (242쪽)


  그나저나, 푸른책 《첫사랑》 이야기는 온통 전쟁으로 얼룩집니다. 할머니 말을 귓결로 흘린 나이든 사내나 젊은 사내 모두 전쟁터에서 이슬처럼 사라집니다. 바보스러운 우두머리가 홀린 말에 휘둘리던 사내들도 전쟁터에서 이슬처럼 사라지고, 바보스러운 우두머리를 똑같은 전쟁무기로 맞서려고 나선 사내들도 전쟁터에서 이슬처럼 사라집니다.


  돌이켜보면, 서로 전쟁무기를 갖추었으니 전쟁이 이루어져요. 두 쪽 모두 전쟁무기를 가득 쟁였으니 전쟁을 할밖에 없어요. 어느 한쪽이 전쟁무기를 갖추면 전쟁무기 없는 다른 한쪽은 식민지가 된다고들 말하더군요. 그런데, 참말 이렇게 될까요? 전쟁무기 없는 다른 한쪽은 식민지가 될까요. 외려, 전쟁무기 많은 한쪽이야말로 스스로 식민지 노릇을 하면서 삶을 잃거나 잊지 않을까요. 전쟁무기 많은 미국에 평화가 감도는가요? 전쟁무기 키우는 일본이나 중국에 사랑이 감도는가요? 전쟁무기 늘리려 하는 한국이나 대만에 평등과 통일이 감도는가요?


  푸른책 《첫사랑》은 소설이지만 꼭 소설이지는 않습니다. 이 푸른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참말 있던 이야기요, 독일과 프랑스뿐 아니라 지구별 곳곳에서 널리 있던 이야기예요. 포로가 된 프랑스 젊은이는 독일 시골에서 ‘흙일꾼’ 구실을 해요. 마땅한 노릇인데, 독일 시골에는 전쟁무기 아닌 낫이랑 쇠스랑이랑 삽이 있거든요. 프랑스 젊은이이든 알제리 젊은이이든 ‘국경’에 서야 한다면 총을 쥐어야 할 테고 슬픈 눈빛으로 군인 구실을 하겠지요. 독일 젊은이이든 일본 젊은이이든 시골에서 흙이랑 마주한다면 총이나 칼을 쥘 까닭 없이 낫이랑 쇠스랑이랑 삽을 손에 쥐고는 숲을 보살피고 숲 품에 안기며 푸른 숨결을 마시며 살아갈 테지요.


  전쟁 없이 살아가는 길을 배워야 할 푸름이는, 과학문명 없이 살아가는 길을 배워야 하는구나 싶습니다. 전쟁무기 없이 살아가는 길을 배워야 할 푸름이는, 도시문명 없이 살아가는 길을 배워야 하는구나 싶습니다.


  경제성장률이나 주식시세표를 소리높이 외치는 중앙정부요 대한민국 서울입니다만, 태풍 하나 찾아든다고 벌벌 떨면서 온통 어수선합니다. 태풍 하나 찾아들어 길디긴 송전탑 전깃줄 하나 끊으면 서울이고 부산이고 온통 깜깜나라가 돼요. 전기가 끊어진 도시사람은 냉장고도 승강기도 전철도 지하상가도 백화점도 할인마트도 어찌하지 못해요. 모두 쓰레기가 되고 모두 바보가 돼요. 풀포기 하나 나지 않으니, 도시에서는 몽땅 굶어서 죽어야 해요. 이런 도시에서 태어나 대입수험 공부만 하도록 등떠밀리는 푸름이는 어떻게 해야 삶을 밝힐 만할까요. 푸름이들 생일선물로 으리으리한 무언가 손에 쥐어 준대서 푸름이들이 삶을 빛낼 만할까요.


  서울 한복판에서, 또는 부산이나 대구나 인천 한복판에서, 전기와 물과 가스가 모두 끊어진 채 사흘쯤 보내야 하는 나날을 푸름이들 스스로 생각할 수 있기를 빌어요. 푸름이들 스스로 사랑을 가슴에 품으면서 열넷·열다섯·열여섯·열일곱·열여덟·열아홉, 해맑으며 싱그러운 이야기를 환하게 빛낼 수 있기를 빌어요. 태풍이 몰아치면 건물이 무너져 쓰레기가 될 테지요. 태풍이 몰아친 바람이 나무가 꺾이거나 뽑히기도 하는데, 무너진 건물은 그예 쓰레기이지만, 꺾이거나 뽑힌 나무는 ‘태풍이 오기 앞서 뿌린 씨앗’이 땅에서 천천히 싹을 틔워 새로운 나무로 자라요. 꺾이거나 뽑힌 나무는 스스로 거름이 되거나 땔감이 되거나 멧새랑 멧짐승한테 보금자리가 돼요. 푸른 넋은 푸른 사랑을 먹을 때에 푸른 빛으로 춤을 춰요. (4345.8.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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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깨꽃 책읽기

 


  참깨를 심어 참깨를 거둔다. 들깨를 심으면 들깨를 거둔다. 그런데, 참깨나 들깨를 따로 안 심었는데 참깨나 들깨가 자라나곤 한다. 사람이 하나하나 손으로 심어도 자라나지만, 참깨와 들깨 스스로 잎을 틔우고 줄기를 올린 다음 꽃을 피우고 나서 씨앗을 맺어 퍼뜨리면 이듬해에 스스로 싹이 돋기 마련이다.


  시골이든 도시이든, 여느 사람이 바라보기에 뜬금없다 싶은 데에서 ‘둥글레풀’이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곤 한다. 민들레나 쑥 또한 사람들로서는 도무지 생각하지 못하던 데에서 피어나곤 한다. 그렇지만, 민들레나 쑥은 스스로 생각을 기울여서 그곳에서 자라난다. 그리고, 사람들 가운데 어느 누구는 도시 곳곳이 온통 시멘트로만 덮이기보다는 풀이 함께 있기를 바라곤 하는데, 이 바람이 솔솔 맺혀 ‘돌 틈 들꽃’이 되곤 한다. 시골에서는 들사람이 들마음을 펼치며 들꽃이 흐드러지곤 한다.


  사랑을 심어 사랑을 거둔다. 내가 심은 마음씨앗이 사랑이라면 사랑을 거둔다. 나는 사랑이라고 말하며 심었으나 정작 속으로는 사랑 아닌 다른 무엇을 생각했다면, ‘입으로 말한 사랑’이 아닌 ‘속으로 생각한 다른 무엇’이 자라난다. 내가 심었으니 내가 거두고, 내가 뿌렸으니 내가 맺는다.


  좋고 나쁨은 없다. 옳고 그름은 없다. 참깨풀이 맺는 참깨풀꽃이 들깨풀이 맺는 들깨풀꽃과 견주어 더 예쁘거나 덜 곱지 않다. 참깨꽃이 복숭아꽃보다 덜 곱지 않다. 참깨꽃이 감꽃보다 더 예쁘지 않다. 참깨꽃은 참깨꽃이요, 참깨꽃은 참깨를 맺는 씩씩한 사랑이다. (4345.8.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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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8-30 12:21   좋아요 0 | URL
참깨꽃 소박하니 곱네요 첨보아요

파란놀 2012-08-30 12:32   좋아요 0 | URL
사람들이 깨를 먹을 때에, 또 깻잎을 먹을 때에,
깨꽃이 얼마나 고운가를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하늘바람 2012-08-31 12:21   좋아요 0 | URL
님 덕분에 저도 이제 그리 생각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