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과 감과 책읽기
지난겨울에 이어 봄까지 감알을 아주 신나게 먹었다. 살아오며 감을 이토록 많이 먹고 둘레에 선물한 적은 처음이다. 가을을 다시 코앞에 두면서 새삼스레 감알을 생각한다. 우리 집 뒤꼍 감나무는 줄기는 크고 곧지만 알은 몇 안 맺힌다. 올해에 달린 얼마 안 되는 알은 거의 모두 태풍에 떨어지고 딱 한 알만 남았지 싶다. 우리 식구 들어오기 앞서까지 한동안 빈집이었고, 할머니 혼자 살며 뒤꼍을 돌보지 못했기에 이 감나무는 알을 제대로 못 맺었으리라 느낀다.
우리 집 돌울타리하고 이웃한 옆 밭뙈기에 있는 작은 감나무를 바라본다. 작은 감나무인데 굵은 알이 퍽 많이 맺힌다. 태풍에도 그리 떨구지 않은 듯하다. 마을 어귀 감나무는 크고 알이 많이 맺혔는데, 아직 나무에 달린 알도 많고, 바닥에 떨어진 알도 많다. 이렇게나 많이 떨어졌으니, 올해에는 지난해처럼 감알 구경이 만만하지 않을 수 있겠다 생각하면서도, 감나무는 스스로 알맞춤하게 알을 달고는, 나머지는 떨구어 스스로 거름으로 삼는 셈 아닌가 싶기도 하다. 스스로 거름으로 삼을 만한 풋감이 많을수록 감나무는 해마다 더 튼튼하게 무르익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뒤꼍 감나무가 떨군 애꿎은 풋감을 모두 주워 감나무 곁에 놓는다.
나는 감알을 먹고 싶어 감나무를 바라본다. 마을 이웃들도 감알을 먹겠다는 생각으로 감나무를 바라보리라. 이 감알을 알뜰히 따서 살뜰히 내다 팔 생각으로 바라보리라고는 느끼지 않는다. 마을 어디에나 감이 너르고 흔한데, 감알을 어디에 내다 팔겠는가. 게다가 무거운 감알을 이고 지고 읍내에 나간들, 읍내 사람들이라 해서 감알만 먹으며 살지는 않는다. 아주 눅은 값에 도매상한테 넘겨 도시로 보내도록 해야 비로소 감알을 팔 만하리라 본다. 그러니까, 시골 어르신들은 당신 술안주로 감알을 먹고, 도시로 나간 딸아들한테 감알을 부치며, 때때로 놀러오는 당신 딸아들이랑 손주들한테 감알을 내놓을 생각이리라 느낀다.
감이 익을 무렵이면 날마다 감을 다섯 알쯤 먹을까. 우리 네 식구는 날마다 감을 열다섯 알이나 스무 알씩 먹으면서 지낼까. 뒤꼍 큰 감나무랑 작은 감나무 모두 차근차근 기운을 북돋우며 알을 예쁘게 맺을 수 있기를 빈다. (4345.8.30.나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