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호종이문에 붙이는 사진

 


  창호종이로 바르는 나무문살문에 아이들이 손가락으로 구멍을 숭숭 뻥뻥 뚫는다. 종이를 모두 벗겨 새로 발라야 하는데, 이 시골집으로 들어온 지 한 해가 되도록 좀처럼 새로 바르지 못하고 그냥 둔다. 다시 가을이 찾아들어 선선한 바람이 들어오는데 이대로 둘 수 없는 노릇이라, 집 곳곳에 많이 있는 아이들 사진을 붙이기로 한다. 그래, 이 사진을 상자에 넣고 간수하기보다는 이렇게 문에 붙이고 언제나 들여다볼 때에 더 좋겠지. 바람도 막고 보기에도 좋으며 언제나 너희들 예쁜 모습을 되새기도록 이끌겠지. 그나저나 사진은 떼지 않기를 빈다. 빈자리에 그림을 그리더라도 사진은 건드리지 말아 다오. (4345.9.1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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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9-11 02:39   좋아요 0 | URL
오~ 구멍 숭숭 뚫린 문종이에 아이들 사진 붙이는 거 좋은 생각인데요.^^

파란놀 2012-09-11 19:13   좋아요 0 | URL
음... 그저 '땜질'이라고 할까요 ^^;;;;;;;;;
 
닐스의 신기한 여행 1 - 클래식 라이브러리 1
셀마 라게를뢰프 지음, 배인섭 옮김 / 오즈북스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꿈을 꾸기에 꿈을 이루는 삶
 [어린이책 읽는 삶 24] 셀마 라게를뢰프, 《닐스의 신기한 여행 (1)》(오즈북스,2006)

 


- 책이름 : 닐스의 신기한 여행 1
- 글 : 셀마 라게를뢰프
- 옮긴이 : 배인섭
- 펴낸곳 : 오즈북스 (2006.10.30.)
- 책값 : 9000원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을 꾸면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꿈을 꾸는 그 자리에서 꿈을 이루고, 누군가는 꿈을 이루기까지 퍽 오랜 나날을 들입니다. 꿈을 꾸는 사람은 꿈을 이루지만, 꿈을 안 꾸는 사람은 꿈을 안 이룹니다.


  꿈을 꿀 때에는 가장 맑으며 가장 빛나는 넋이어야 합니다. 가장 환한 사랑으로 살아가며 가장 너른 믿음으로 지내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면서 믿고, 이웃과 동무를 사랑하면서 믿어야 합니다. 고운 사랑은 꿈을 이루도록 이끄는 밑거름이요, 너른 믿음은 꿈을 즐기도록 북돋우는 밑바탕입니다.


.. 어머니는 아버지의 말을 한 마디도 반박할 수 없었다. 다만 아버지와는 다른 걱정을 했다. 어머니의 걱정은 아이가 너무 거칠고 버릇이 없는데다가, 동물들에게 냉혹하고, 사람들에게 못되게 군다는 것이었다. “아, 신께서 아이의 나쁜 마음을 몰아내고 다른 마음을 선물해 주셨으면!” … “내 뿔 위에 올라타고 놀아 보게 해 줄게.” “와 보라니까, 와 보라고. 네가 던진 나막신으로 등을 맞았을 때의 느낌이 어땠는지 너도 한 번 제대로 맛봐야지!” … “그 수많은 못돼 먹은 일들에 대해서 단단히 보상을 해 줄 테니까. 너를 걱정하면서 네 엄마가 숱하게 흘렸던 눈물에 대해서도.” ..  (19∼20, 33쪽)


  이른새벽에 누런쌀을 씻어 불립니다. 이른새벽에 누런쌀을 씻어 불려야 비로소 아침밥을 지을 수 있습니다. 흰쌀이라면 몇 차례 스윽스윽 씻고 나서 곧바로 물을 맞추고 안칠 수 있겠지요. 누런쌀은 잘 불 때까지 제법 기다려야 합니다. 일찌감치 하루를 열며 식구들 맛나게 먹을 밥을 생각해야 합니다.


  쌀을 씻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새벽마다 쌀을 씻는가 하고. 나는 왜 날마다 식구들 밥을 차리고 집일을 도맡는가 하고.


  엊저녁 미룬 설거지를 마칩니다. 오늘 할 빨래가 얼마쯤 되는가 가늠합니다. 이러는 동안 시나브로 깨닫습니다. 나는 어린 나날부터 ‘집일을 즐겁게 도맡으며 살림을 꾸리는 아버지’로 살고 싶다는 꿈을 꾸었어요. 내 둘레 어른들 누구나 어머니나 아줌마한테만 모든 집일을 맡기는 아버지나 아저씨였어요. 내 또래 또한 가시내가 집일을 해야 하고 사내는 집일을 안 건드려야 하는 줄 여겼어요. 사촌동생들은 사내이고 가시내이고 아예 집일을 모를 뿐더러 하지 않았어요.


  나는 이 모습이 도무지 말이 안 된다고 느꼈어요. 집일을 안 하거나 부엌일하고 등을 지는 사내라면 사내 구실을 못 하는 셈이라고, 아니 사람 구실을 안 하는 셈이라고 느꼈어요. 사내라면, 또 가시내라면, 아니 사람이라면, 스스로 먹고 입고 잠자는 모든 것을 스스로 가누거나 꾸릴 수 있어야 한다고 느꼈어요.


.. 닐스는 밝은 녹색의 사각형을 가장 먼저 알아보았다. 그것은 지난해 가을 파종한 호밀밭이었다. 겨울 동안 눈에 덮인 채로 녹색으로 자라난 것이었다 … 닐스는 스코네에 대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았던 것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이날 단 하루 만에 볼 수 있었다 … 작은 다람쥐도 자기 집에서 도토리를 꺼내서는 가지 위에 앉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찌르레기가 수염뿌리를 물고 날아갔고, 검은방울새는 나무 꼭대기에서 노래했다. 그때 닐스는 해가 이 모든 작은 생명체들에게 말하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깨어나라, 그리고 너희들의 집에서 나와라. 내가 여기 왔다. 이제 너희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  (39, 42, 66쪽)


  꿈이란 스스로 꾸는 대로 이룹니다. 스스로 좋다고 여기는 꿈이든, 스스로 슬프다고 여기는 꿈이든, 스스로 즐겁다고 여기는 꿈이든, 스스로 아프다고 여기는 꿈이든, 스스로 ‘이렇게 해야겠구나’ 하고 마음에 살포시 품으면, 이 꿈은 어느 날 천천히 이루어집니다.


  꿈을 품는 사람은 스스로 품는 꿈이 어느 길로 나아가는가를 언제나 돌아봅니다. 꿈을 품는 사람은 꿈이 이루어질 길을 씩씩하게 걸어갑니다. 살아가며 하나둘 깨닫는데, 꿈이 있기에 사람들 누구나 목숨을 이어요. 꿈을 생각하기에 오늘 하루 새롭게 맞이해요. 꿈을 천천히 이루기에 내 삶은 내가 마음에 담은 모양대로 가만히 빛을 내요.


  셀마 라게를뢰프 님이 쓴 《닐스의 신기한 여행》(오즈북스,2006) 첫째 권을 읽으며 낱낱이 느낍니다. 이 이야기책에 나오는 ‘닐스’는 스스로 하찮다고 생각합니다. 닐스는 스스로 이녁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벗어나 집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못난 짓을 일삼는 닐스는 스스로 참 못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꿈대로 이루어집니다. 집요정을 괴롭히다가 바야흐로 ‘집요정처럼 자그마한 사람’으로 바뀌어요. 흰거위랑 집을 떠나 멀리멀리 하늘을 날면서 온누리를 떠돌아요.


.. 기러기들은 길들여진 기러기들이 자기들의 말을 더 잘 알아들을 수 있게 하려고 아래로 내려가 소리쳤다. “함께 가자. 그러면 너희들도 날고 헤엄치는 법을 배우고 싶어질 거야.” 그러나 길들여진 기러기들은 오히려 모욕을 당했다고 느꼈다. 그래서 몇 마디 중얼거릴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 기러기들과 함께 여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지, 자꾸만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배고프고 추울 것이다, 당연하다. 닐스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신에 일하지 않아도 되고, 공부를 할 필요도 없었다 … 닐스는 자신이 앞으로 보게 될 모든 것들과 경험하게 될 모든 모험들을 하나하나 그려 보았다. ‘집에서 일이나 하면서 이런저런 욕이나 먹는 것하고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아, 기러기들의 여행에 함께할 수 있다면, 그러면 내 몸이 변한 것이 하나도 괴롭지 않을 텐데!’ ..  (43, 93, 94쪽)


  세 권으로 나누어 옮겨진 《닐스의 신기한 여행》 첫째 권에서 닐스는 아직 ‘스스로 꿈꾸었기에 이루어진 삶’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느끼지 못합니다. 다만, 닐스한테 찾아온 ‘집요정처럼 자그마한 사람’이 된 삶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닐스는 스스로 이러한 삶을 누려야 한다고 받아들입니다. 닐스는 스스로 이렇게 살며 무언가 새롭게 배워야 한다고 받아들입니다.


  이리하여 닐스한테는 새로운 삶이 펼쳐집니다. 이제껏 짐승들을 괴롭히거나 들볶던 짓이 어떠한 바보짓인가를 몸소 느낍니다. 짐승과 벌레와 풀과 해와 바람과 구름이 들려주는 속삭임을 들을 수 있습니다. 다람쥐하고도 여우하고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기러기나 황새나 거위 등에 업힌 채 하늘을 날아다니며 지구별을 새롭게 바라봅니다. 이웃과 동무와 어버이를 새로운 눈으로 마주합니다.


  아, 그래요. 닐스는 ‘어른이 되고’ 싶었군요. 닐스는 철부지 어린이에서 벗어나, 바야흐로 씩씩하며 아름다운 어른이 되고 싶었군요. 날마다 개구진 짓으로 말썽을 부리는 바보가 아닌, 언제나 맑게 웃고 환하게 노래하는 아름다운 어른이 되고 싶었군요.


  맑게 웃는 삶을 누리고 싶기에 기러기들과 먼 길을 돌아다니며 ‘맑음’과 ‘웃음’이 무엇인가를 몸소 겪습니다. 환하게 노래하는 아름다움을 빛내고 싶기에 여러 들짐승을 도와주면서 ‘환함’과 ‘노래’가 무엇이요, ‘아름다움’을 어떻게 읽는가를 몸소 익힙니다.


.. (기러기 우두머리) 아카가 곧바로 대답해 주었다. “다람쥐, 토끼, 피리새, 박새, 딱따구리, 종달새 같은 숲과 들판의 작은 동물들과 친하게 지내도록 해 봐. 그들과 친구가 되면 위험을 미리 알려주고, 숨을 곳을 일러 주고, 아주 위급한 경우에는 너를 보호해 주려고 함께 힘을 합칠 거야.” … 처음 쿨라베리에 온 모든 동물들은 왜 이 축제를 두루미 대무도회라고 부르는지, 그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춤에는 야성이 담겨 있었다. 그러면서도 달콤한 동경이 감정을 일깨웠다. 이 순간 싸움을 생각하는 동물은 하나도 없었다 … ‘어떻게 아카, 이크시, 카크시, 그리고 모르텐 같은 새들에게, 그리고 또 다른 새들에게 총을 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정말 아무 생각도 없단 말인가?’ ..  (96, 137, 185쪽)


  닐스한테는 마땅한 스승이 아직 없었습니다. 뭐랄까, 닐스한테는 좋은 동무조차 아직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닐스는 닐스 스스로 마땅한 스승이 되지 않았고, 닐스는 닐스 스스로 좋은 동무가 되지 않았어요.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스승이 되고 스스로 동무가 돼요. 어버이는 아이한테 삶을 가르치는 스승이면서 아이와 함께 노는 동무예요. 아이는 어버이한테 사랑을 가르치는 스승이면서 어버이와 함께 노는 동무예요. 그런데 닐스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닐스 스스로도, 또 닐스 어버이도, 또 닐스 둘레 동무들도, 서로서로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모두들 삶을 슬기롭게 바라보지 못했어요. 모두들 삶을 사랑스레 껴안지 않았어요. 모두들 삶을 꾸밈없이 마주하지 못했어요. 모두들 삶을 아름답게 어깨동무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닐스는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닐스는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새로운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닐스는 꿈을 꾸어야 했고, 꿈을 누려야 했으며, 꿈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 “한 번이라도 저녁에 덤불 속에서 들려오는 나이팅게일의 노래를 들으면서 여기 암벽가에 앉아 저기 저 너머 칼마르 해협을 바라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섬이 다른 섬들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생겨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할 거예요.” … “그렇다고 너희들이나 농부들도 어쩌지 못했던 그 여우들을 설마 나처럼 작고 힘없는 꼬마가 물리쳐 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작고 똑똑한 이는 많은 일을 할 수 있어.” 숫양이 대답했다 … ‘좋아, 이제 너를 도울 수 있는 것은 너 자신뿐이야, 닐스 홀게르손!’ 닐스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이제 네가 야생의 세계에서 보낸 몇 주일 동안 무언가 배웠다는 것을 증명해 봐야 해.’ ..  (208, 227, 271쪽)


  내가 꿈을 꾸는 어버이일 때에 아이들도 꿈을 꾸는 아이들로 살아갑니다. 내가 좋은 사랑을 빚는 어버이일 때에 아이들도 좋은 사랑을 빚는 아이들로 살아갑니다. 내가 곱게 노래하는 어버이일 때에 아이들도 곱게 노래하는 아이들로 살아가요.


  내가 스스로 울타리에 갇힌 바보짓을 한다면, 아이들도 제 어버이한테서 울타리에 갇힌 바보짓을 물려받습니다. 내가 스스로 쳇바퀴를 맴도는 얼간이 꼴을 한다면, 아이들도 제 어버이한테서 쳇바퀴를 맴도는 얼간이 꼴을 이어받습니다.


  환히 웃으며 부엌일을 하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은 환히 웃으며 부엌일을 하는 즐거움을 천천히 물려받습니다. 신나게 노래하며 비질을 하고 걸레질을 하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은 신나게 노래하며 비질을 하고 걸레질을 하는 재미를 찬찬히 이어받습니다.


  어버이가 스스로 빛을 나누는 삶을 누릴 때에, 아이들은 이 빛이 참으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버이가 스스로 사랑을 빚는 삶을 누릴 때에, 아이들은 이 사랑이 더없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버이가 스스로 꿈을 기쁘게 이루는 삶을 누릴 때에, 아이들은 바야흐로 이 꿈을 꾸면서 아이 깜냥껏 새로운 삶을 엽니다.


.. 닐스 홀게르손은 한 가지를 놓치고 말았다. 이 도시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아름답고 특별하다는 것이었다. 뒷골목의 예쁜 집들도 보지 못했다. 검정색 담장과 하얀색 모퉁이, 그리고 번쩍이는 창틀 아래로 빨간 화분받침이 있는 자그마한 집들이었다. 울긋불긋 꽃들이 활짝 피어난 정원과 덩굴로 뒤덮여 있는 폐허의 놀라운 아름다움도 스쳐 지나고 말았다 … 부모들은 모두 이렇게도 간절하게 자기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닐스는 여태껏 그런 줄을 몰랐다. 아니, 아이들이 곁에 없다고, 자신의 삶이 끝난 것처럼 그렇게 살아간단 말인가! … “어디로 가고 있니? 어디로 가고 있니?” 기러기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아이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 “책도 숙제도 없는 곳으로!” 닐스가 소리쳤다. “오, 우리도 데리고 가 줘! 우리도 데리고 가라고!” 아이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올해는 안 돼. 내년에 보자!” ..  (248, 307, 316쪽)


  가을비가 내립니다. 여러 날 잇달아 내리는 가을비는 나한테 가을비 노랫소리를 들려줍니다. 가을비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가을비 빛깔이 알록달록합니다.


  가을비를 마주하며 가을빛을 느끼는 나라면, 나를 어버이로 삼으며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가을빛을 느끼는 가슴을 물려받아 키웁니다. 가을비를 마주하며 가을빛을 안 느끼거나 못 느끼는 나라면, 나하고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은 빗소리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가을비가 지붕을 적십니다. 가을비가 도랑을 타고 흐릅니다. 가을비가 후박나무를 적십니다. 가을비가 들판을 덮습니다.


  가을비 맞은 잎사귀는 더 짙게 푸른 빛깔입니다. 가을비 내리는 하늘은 더 하얗고 더 파랗습니다. 가을비 찾아드는 날은 더 선선하고 서늘합니다. 가을비 노랫소리 굵어질수록 들새나 멧새나 풀벌레 노랫소리는 조용히 잦아듭니다.


  불현듯 봄비를 생각합니다. 여름비와 겨울비를 생각합니다. 철마다 다른 이 빗소리는 내 삶에 어떤 무늬로 아로새길까 궁금합니다. 날마다 다른 이 빗물결은 내 넋에 어떤 결로 스며들까 궁금합니다.


  가을비는 나한테 무엇을 가르치려고 찾아올까요. 나는 무엇을 배우고 싶어 가을비를 부를까요. 가을은 나한테 무엇을 보여주려고 찾아올까요. 나는 무엇을 바라보고 싶어 가을을 부를까요.
  어버이는 아이를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는가요. 아이는 어버이를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는가요. 어버이는 아이를 어떤 목소리로 부르는가요. 아이는 어버이를 어떤 목소리로 부르는가요.


.. 나무들은 아직 완전히 초록색 옷을 차려입지 않았지만, 어디서나 파릇한 새순이 돋아나고 있었다. 웅덩이마다 가득 물이 차올랐고, 웅덩이 가장자리에는 머위꽃이 활짝 피어났다 … 전혀 질서와 규칙이 없었지만 토끼들의 놀이는 숨이 가빠질 정도로 큰 흥분을 안겨 주었다. 이제 봄이 온 것이다. 재미와 기쁨이 다가오고 있었다.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다가온다. 곧 생명이 활짝 피어날 것이다 … 첫 번째 봄비가 대지를 후두둑 두드리는 순간, 나무와 초원 위의 모든 작은 새들은 기쁨의 지저귐을 토해 냈다 … 기러기들은 길고 좁다란 그 도시 위를 날아갔다. 여기서도 기러기들은 도시 밖의 교외 지역에서 그랬듯이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그러나 도시 안으로 들어오니 한참 동안 아무도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멈추어 서서 기러기들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  (20, 132∼133, 139, 314쪽)


  꿈을 꾸기에 꿈을 이루는 삶을 생각합니다. 즐겁게 꿈을 꾸기에 즐겁게 이루는 삶을 생각합니다. 바보스레 꿈을 내팽개치기에 바보스레 삶을 내팽개치는 모습을 생각합니다. 어리석게 꿈을 짓밟기에 어리석게 삶을 짓밟는 모습을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밥을 먹으며 목숨을 잇는다 하는데, 밥이란 꿈이 깃든 먹을거리입니다. 밥이란 사랑이 담긴 먹을거리입니다. 꿈과 사랑이 깃들지 않은 밥을 먹을 때에는 ‘나이를 숫자로 늘릴’ 수는 있되, 삶을 빛내는 목숨을 아름다이 누릴 수는 없습니다. 아름답게 빛내는 삶을 누리려고 일자리를 찾아 돈을 버는 나날입니다. 은행계좌 숫자를 늘리려고 돈을 버는 나날일 수 없습니다. 연금도 보험도 부질없습니다. 연금이 있어야 할 삶이라 생각하니까 연금을 부어야 합니다. 보험이 있어야 할 삶이라 생각하기에 보험을 들어야 합니다.


  사랑을 생각하는 삶이라면 사랑을 스스로 빚을 뿐 아니라, 내 둘레 벗님들이 사랑을 나누어 줍니다. 꿈을 꾸는 삶이라면 꿈을 즐겁게 이룰 뿐 아니라, 내 좋은 살붙이들 모두 스스로 꿈을 즐겁게 꾸며 이루도록 북돋웁니다.


  닐스 홀게르손은 날마다 새로운 곳을 날아다니고 새로운 삶을 마주하면서 새로운 아이로 거듭납니다. 새로운 사랑을 빛내고, 새로운 믿음을 가꾸며, 새로운 생각을 갈고닦습니다. 《닐스의 신기한 여행》 첫째 권이 끝날 무렵, 닐스는 아주 놀랍도록 멋스러운 슬기 한 자락을 스스로 빚어 가슴으로 품습니다. (4345.9.1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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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베개

 


  나무베개를 베면 참 좋다. 나한테 맞는 나무베개는 어느 손가락 길이라 하는데, 아무튼 나무베개를 베면 나무결과 나무내음 솔솔 내 몸으로 스며든다. 마땅한 노릇인데, 여관에 들어 여관 베개를 베면 여관내음이 배어든다.


  아이들 재우며 내 팔로 베개를 삼으면, 시나브로 내 살결 기운이 아이들한테 스며든다. 책을 베고 누워 본다. 책에 깃든 얼과 꿈이 가만히 내 몸으로 스며들며 콩닥콩닥 뛴다. (4345.9.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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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바다는 끝없이 물결치며
촤르르 솨솨
이야기한다
노래한다

 

아기는
바다 이야기 물결 노래
고이 들으면서
새근새근 잔다

 

나도 아기 따라
곁에 살몃 눕고
바다 품에 안겨
색색 잠이 든다

 


4345.6.2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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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란 서울
어효선 지음, 한영수 사진 / 대원사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 사진쟁이 한영수 님 책은 <내가 자란 서울> 한 가지만 남았는데, 이마저도 절판입니다. 하는 수 없이 이 책에 이 사진책 느낌글을 걸치지만, 사람들이 이분 사진을 맛보거나 누릴 수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

 

..

 

 

 

 

 


 사람들이 살지 않는 우리 자연
 [찾아 읽는 사진책 111] 한영수, 《우리 강산》(열화당,1986)

 


  구월 살짝 넘긴 이른가을에 벌써 벼베기를 마친 논이 있습니다. 아마 가장 먼저 모내기를 한 논이겠지요. 환한 가을햇살 가득 넘치던 어제 하루, 마을마다 할머니 할아버지 들은 길가에 콩포기를 죽 늘어놓고는 경운기로 밟거나 큰돌 얹은 수레를 밀거나 나무방망이를 두들기며 콩을 터느라 부산했습니다. 오늘 새벽부터 밤까지 빗줄기가 이어집니다. 쉬지 않고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다가 문득, 어제 하루 할머니 할아버지 누구나 그토록 부산하게 움직인 까닭을 알 만합니다. 이렇게 오늘 비가 찾아들 줄 몸과 마음으로 느끼신 듯합니다.


  저녁에 빗줄기가 조금 잦아들며 개는가 싶기에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는 설렁설렁 자전거마실을 다녀옵니다. 이웃마을 옆마을 천천히 돌며 가을바람을 쐽니다. 마을마다 길가에 털다 못 턴 콩포기가 꽤 많습니다. 마을 분들은 마저 털어야 할 콩포기를 커다란 비닐로 둘둘 말아 놓았습니다. 오늘날 흙일꾼은 이렇게 비닐이 꼭 있어야 하는구나 싶습니다. 밭에 심을 때에도, 비가 찾아들어 얼른 걷거나 건사할 때에도, 비닐집을 칠 때에도, 온갖 곳에 비닐을 씁니다.


  2005년 무렵이지 싶은데, 중국 연길시 둘레를 다녀온 적 있습니다. 시내에서 벗어나 시골을 자동차로 달리는데, 길가와 먼 멧자락마다 가득한 밭뙈기 드문드문 ‘비닐로 덮은 자리’가 보입니다. 중국 흙일꾼도 흙일 아닌 비닐일을 하는구나, 중국도 이렇게 비닐일로 바뀌는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그 널따란 중국에서 밭뙈기마다 온통 비닐로 덮어씌운다면 지구별 사람들은 비닐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 얼마나 많이 써야 할까요. 중국 흙일꾼이 한 해 동안 쓴 비닐을 태울 때에는 얼마나 많은 매연과 공해가 생길까요.


  밭에 비닐을 씌우고 감자를 거둔 지 그리 오래되지 않습니다. 밭에 비닐을 씌우고 고추를 심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감자도 고추도 한국에 들어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한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라 하더라도, 밭자락에 비닐을 널따랗게 덮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습니다. 미국도 프랑스도 독일도 네덜란드도 영국도 덴마크도 폴란드도 그리스도, 흙일꾼은 흙을 만지며 삶을 일구었지, 비닐을 만지며 삶을 일구지 않았어요.


  흙일 아닌 비닐일로 달라지는 오늘날 한국에서는, 시골마다 ‘나뭇가지에 비닐이 꽃처럼 걸려 바스락바스락 춤추는 모습’을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골마다 넘치는 비닐은 비바람에 날려 높다란 나뭇가지에 매달리곤 합니다. 어찌저찌 걷지 못합니다. 높은 나뭇가지에 걸린 연을 못 꺼내듯, 높은 나뭇가지에 걸린 비닐은 깃발처럼 휘날립니다.

 

 

 

 

 


  1933년에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났고, 1999년에 숨을 거둔 한영수 님이 빚은 사진책 《우리 江山》(열화당,1986)을 읽습니다. 사진책 《우리 강산》은 책이름 그대로 한겨레 냇물과 멧자락을 보여줍니다. 한겨레가 먼먼 옛날부터 깃들이며 숨결을 이은 냇물과 멧자락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한영수 님은 “지구상의 가장 위대한 드라마, 그것은 곧 산천수목의 변화가 아니겠느냐.” 하고 사진책 끝에 붙입니다. 임응식 님은 이 사진책을 기리며 “그(한영수)는 우리 나라 광고사진계의 개척자로서 광고사진의 중요성을 사회적으로 확립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서 사업적으로도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성공도 했다.”고 적습니다. 그러니까, 한국 광고사진을 환하게 열며 뜻을 이룬 한영수 님이 이 땅 뒷사람한테 ‘이 땅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보여주고 싶어 이만 한 사진책을 일구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이 땅이 아름답다면 냇물과 멧자락만 보여주어서 되겠느냐?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이야말로 아름답지 않겠느냐?’ 하고 물을는지 모릅니다. 네, 그래요. 멋들어진 골짜기와 바위만 보여준대서는 ‘아름다운 삶’을 다 말할 수 없겠지요. 그래서 한영수 님은 《우리 강산》을 1986년에 선보였고, 이듬해인 1987년에는 《삶》(신태양사)을 선보여요. 《우리 강산》에는 오직 숲살림만 사진으로 드러낸다면, 《삶》에는 오직 사람살림만 사진으로 드러내요. 한영수 님은 한겨레 아름다운 꿈과 사랑을 ‘강산(자연)’과 ‘삶(사람)’으로 살포시 나누어서 이야기꽃을 피워요.


  커다란 판으로 시원스레 엮은 사진책 《우리 강산》을 가만히 되넘깁니다. 높은 멧자락도, 눈을 함박 뒤집어쓴 겨울나무도, 물방울 힘차게 튀기는 냇물도, 드넓은 하늘과 바다와 들도, 참으로 아름답구나 싶습니다. 어쩌면 너무 마땅한 소리일 텐데, 아름다운 한겨레 삶터를 사진책 200쪽이나 300쪽, 또는 500쪽이나 1000쪽에 담아서 보여줄 수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전라남도나 전라북도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사진으로 보여준다고 헤아려 보셔요. 구례군이나 임실군이나 고흥군이나 영암군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사진으로 보여준다고 헤아려 보셔요. 나는 전남 고흥에서 살아갑니다. 전남 고흥 한 곳만 따지더라도, 동강면이나 도화면이나 풍양면이나 봉래면 한 자락 아름다운 자연을 사진으로 보여준다면, 더 깊이 파고들어 도화면에서 지죽리나 신호리나 봉산리나 가화리나 발포리 한 자락 아름다운 자연을 사진으로 보여준다면, 사진책 몇 쪽이 있어야 할까요. 자그마한 군 면 리 한 곳에서조차 사진책 500쪽이나 1000쪽으로도 ‘봄 여름 가을 겨울에 걸쳐 누릴 빛나는 아름다움’을 낱낱이 담기는 몹시 어려우리라 느껴요. 전남 고흥 도화면 신호리 동백마을 조그마한 시골자락에서조차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 이야기를 다루려 하더라도 사진책 1000쪽마저 빠듯하구나 싶어요.

 

 


  곧, 사진책 《우리 강산》은 아주 간추린 판입니다. 이 사진책을 밑거름 삼아 이곳저곳에서 ‘내가 누리는 아름다운 강산’을 사진과 사진책으로 선보일 노릇입니다. 사진쟁이 한영수 님 말마따나 ‘가장 거룩하고 놀라운 춤사위’가 펼쳐지는 삶자락이요 자연이며 숲이자 마을이에요.


  시골 흙일꾼 손길이 깃든 밭자락이나 논배미를 보셔요. 시골 흙일꾼이 기나긴 해를 대물림하면서 차근차근 쌓은 돌울타리나 비탈논을 보셔요. 스스로 뿌리내려 오백 해 천 해를 웃도는 나무들을 보셔요. 강원도 태백산이나 설악산에만, 또 울릉섬에만 오래된 숲이 있지는 않아요. 한국땅 골골샅샅 깊은 시골마을마다 크고작은 오래된 숲이 있어요. 너비가 백 미터는 되어야 아름다운 냇물이 아니에요. 너비가 일 미터라 하더라도 아름다운 냇물이 돼요.


  아름다움은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숲에서 느끼지 않아요. 사람들 가슴속에서 꿈과 사랑이 피어날 때에 비로소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요. 봄을 맞이해 찾아드는 ‘봄까지꽃’ 작은 떨기 하나가 바로 아름다움이에요. 흙일꾼이 심건 말건 스스로 씨앗을 퍼뜨리는 유채꽃이나 부추풀이 바로 아름다움이에요. 나팔꽃 씨앗을 받아서 따로 심어야 나팔꽃이 피지 않아요. 접붙이기를 해야 감나무가 된다지만, 감나무 가지와 잎사귀와 꽃과 열매는 감나무 스스로 빚어요. 돌울타리를 따라 마삭줄이 줄기를 뻗어 꽃을 피워요. 돌울타리에는 수세미도 호박도 하늘타리도 포도도 참다래도 서로서로 줄기가 얼크러져요. 꽃 아닌 꽃을 피우는 무화과나무도 스스로 곳곳에 어린나무를 키워 내요. 우람한 느티나무 밑에서 조그마한 새끼 느티나무가 자라요.


  남미 어느 나라에 있다는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폭포가 되어야 비로소 아름다운 자연이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높이가 십 미터는 넘어야 볼 만한 폭포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높이가 삼천 미터나 오천 미터는 되어야 거룩하거나 빼어난 멧봉우리일까 궁금해요. 사진책 《우리 강산》은 넌지시 이야기를 건네요. 우리 냇물과 멧자락은 참말 이름 그대로 ‘우리 냇물’이고 ‘우리 멧자락’이에요. 오늘날 한국사람은 송두리째 시골과 숲과 자연을 버리고는 도시로 몰려들지만, 오늘날 한국사람은 스스로 시골과 숲과 자연을 내팽개치고 도시에서 돈벌 자리만 찾지만, 아름다움을 말하거나 보여주는 자리에서는 누구라도 언제나 시골과 숲과 자연을 사진으로 찍어서 말하거나 보여주려 해요. 사진을 찍는 이나 그림을 그리는 이나 글을 쓰는 이나, 아름다움을 말하거나 보여주려 할 때에는 으레 시골로 가요.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다 할 적에는 늘 숲을 찾아요.


  1933년부터 1999년까지 목숨을 누린 한영수 님은 두툼하고 커다란 사진책 《우리 강산》을 우리들한테 선물로 물려주었어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우리 뒷사람인 이 나라 아이들한테 무엇을 선물로 빚어 물려줄 만할까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누리거나 마주하거나 껴안거나 어깨동무하는 ‘아름다움’은 무엇이며, 우리들은 무엇을 사진으로 찍고 그림으로 그리며 글로 담으며 살아가는가요. (4345.9.9.해.ㅎㄲㅅㄱ)

 


― 우리 江山 (한영수 사진,열화당 펴냄,1986.4.1./판끊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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