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 도서관

 


  우리 식구들이 시골마을에서 꾸리는 도서관으로 찾아온 사람이든 안 찾아온 사람이든, 우리 도서관을 말하면서 자꾸 ‘헌책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붙이곤 한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이름이지만, 이런 말을 하는 사람 스스로 책을 모르고 책에 눈길을 두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쓸밖에 없구나 싶다.


  아주 마땅한 노릇으로, 먼저 국어사전부터 뒤적일 일이다. ‘헌책’이란 무엇인가. 종이가 낡거나 닳은 책이 ‘헌책’이 될 테고, 이 다음으로 누군가 읽은 책이 ‘헌책’이 된다. 곧, 아직 아무도 펼치지 않은 빳빳한 물건일 때에는 ‘새책’이요, 이 빳빳한 종이꾸러미를 누군가 손으로 집어 펼치면 ‘헌책’이 된다. 그러니까, 모든 책은 헌책이 된다. 또한, 모든 책은 새책이 된다. 종이꾸러미로 볼 때에, 사람들한테 읽히는 책이기에 헌책이요, 아직 모든 사람한테 알려지지 않은 책이니까 새책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두고두고 되읽히는 책이기에 헌책이며, 언제까지나 새로운 넋과 숨결을 불어넣기에 새책이다.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을 헤아려 본다. 지구별 모든 도서관에 깃든 책은 어떤 ‘책’일까. 도서관에서 ‘새책’을 사들여 갖춘다 할 때에, 도서관은 ‘새책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을까. 수많은 사람이 책시렁에서 꺼내어 읽고, 또는 집으로 가져가서 읽는 책들이 있는 도서관은 어떤 책이 있는 곳인가. 가만히 따지면, 도서관이야말로 ‘헌책’이 그득그득 있는 ‘헌책방’인 모양새이다.


  나는 내 책들(우리 식구 책들), 이른바 ‘내 서재’ 책으로 도서관을 열었다. 내 살림돈에서 달삯으로 낼 돈을 덜어 개인도서관을 꾸린다. 그러니까 우리 식구 도서관은 ‘서재도서관’이다. 서재도서관으로서 가장 눈여겨보며 살피는 갈래는 사진책이니 ‘사진책 도서관’이다. 지자체나 정부에서 꾸리는 도서관은 개인이 아닌 공공기관이 꾸리니까 ‘공공도서관’이라는 이름이 붙겠지.


  다시금 헤아리면, 이 나라 모든 헌책방들은 ‘책을 파는 가게’이면서 ‘책을 살피는 도서관’과 같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나는 예나 이제나 이 나라 헌책방을 바라보며, ‘헌책방은 가게이면서 도서관’, 곧 ‘헌책방 = 헌책 도서관’이라고 여긴다.


  사람들이 헌책방에도 새책방에도 즐겁게 나들이를 하면 좋겠다. 사람들이 도서관에서도 집에서도 책을 기쁘게 읽으면 좋겠다. 좋은 마음이 되어 좋은 책을 마주하고, 좋은 이야기를 아로새기며 좋은 삶으로 거듭난다면 참 아름다우리라 생각한다. (4345.9.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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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단댕기·비단구두

 


  아이들한테 자장노래로 〈오빠 생각〉을 부를 때에, 나 스스로 미처 생각하지 못하면, 어릴 적 국민학교에서 길든 노랫말대로 부르고 만다. 나도 모르게 잘못된 노랫말이 튀어나오면 얼른 노래를 끊고, 숨을 고른 다음 다시 부른다. 사람한테 한 번 잘못 아로새겨진 말버릇은 고치기 힘들구나 싶은데, 나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는 틀을 놓지 않기에 내 잘못된 말버릇이 모두 씻기지 못하는지 모른다.


  요즈음에는 〈오빠 생각〉을 부르며 노랫말을 내 나름대로 바꾸어 본다.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을 “우리 오빠 말 타고 시골 가시면”으로 바꾼다. 그리고, 이 다음 노랫말은 “감알 잔뜩 사들고 오신다더니”로 바꾼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우리 식구인데, 자꾸 서울 가느니 서울에서 무얼 사오느니 하는 노랫말을 듣거나 부르는 일은, 이 노랫말대로 나와 아이들을 길들이는 노릇이 되겠구나 하고 느낀다. 그래서 시골사람답게 이 시골(여기)에서 저 시골(저곳, 옆마을)로 나들이를 가서 감알을 사온다고 하는 흐름으로 바꾸어 본다.


  1990년에 ‘한겨레신문사’에서 《겨레의 노래》 두 권을 내놓는다. 이 노래책에서 처음으로 ‘그동안 잘못 알려진 노래’를 바로잡는다. 그러나, 이 노래책에서 노랫말을 바로잡는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익히 길들던 대로 노래를 부르곤 한다. 이를테면, 최순애 님 〈오빠 생각〉을 부르며 “비단구두 사 가지고 오신다더니” 하는 노랫말을 바로잡지 못한다. 비단구두란 없는데, 비단으로 구두를 만들 수 없고, 비단으로 만든 구두는 신지도 못하는데, 이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노래로 끝없이 부르고 또 부른다. 최순애 님도 이 대목을 무척 안타깝게 여기셨지만, 사람들이 이 노랫말로 길들여져서 고치기 힘든데 어찌 하겠느냐 하고 말씀한 적 있다. 이 안타까움을 1990년에 비로소 바로잡으려 했는데, 너무 작은 움직임이었을까.


  그러나, 누구라도 생각해 보면 ‘비단구두’가 얼마나 어이없고 뜬금없는지 깨달으리라. 나도 국민학생 때에 ‘비단구두’는 뭔가 얄궂다고 느꼈다.


  신영복 님 책 《변방을 찾아서》를 읽다가 “비단구두 사 가지고 오신다며 서울 가신 오빠는(72쪽)”이라는 글월을 본다. 신영복 님도 ‘비단구두’로만 알고, 이렇게 글을 쓴다. 그러나 이 노래 이 대목은 ‘비단댕기’이다. 최순애 님은 처음부터 ‘비단댕기’로 시를 썼는데, 이 시를 노래로 지어 내놓을 무렵, 일제강점기 군홧발이 ‘댕기’를 ‘구두’로 고쳤다. 왜 그랬을까? 뻔한 일이겠지. 아이부터 어른까지 널리 부르는 노래에 한겨레 넋과 얼을 북돋우는 대목이나 말마디가 깃들지 못하도록 가로막으려 했겠지.


  아이들한테 〈오빠 생각〉을 부를 때에, 곧잘 노랫말 한 마디를 살짝 바꾸기도 한다. 시골에 가서 감알을 사오는 이야기로 바꾸기도 하지만, 참말 시골사람답게 “우리 오빠 걸어서 읍내 가시면, 비단댕기 사 가지고 오신다더니” 하고 불러 본다. (4345.9.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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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에 누가 살아? - 산타와 나무의 "모든 생명과 함께 웃는 세상 이야기" 2 작은돌고래 3
노정임 기획.글, 이경석 그림 / 웃는돌고래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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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한테서 선물받은 밥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96] 노정임·이경석, 《땅속에 누가 살아?》(웃는돌고래,2012)

 


  낮에는 날이 참 따스합니다. 저녁이면 날이 퍽 서늘합니다. 한가위를 앞둔 가을날은 낮과 밤 날씨가 꽤 벌어집니다. 저녁 날씨를 느끼자면, 모기가 다 죽어서 잠들 만하건만, 낮 날씨를 헤아리자면, 모기가 아직 용을 쓰며 살아남으려 하겠구나 싶습니다.


  텃밭 가장자리에 모기들이 왱왱거립니다. 모기 날갯짓 소리를 들으면서 풀을 뜯습니다. 돗나물도 뜯고 까마중잎도 뜯습니다. 망초잎도 뜯고 올해에 갓 뿌리를 내려 보드라운 줄기를 올린 여린 산초줄기를 꺾습니다. 부추잎을 꺾고 모시잎을 땁니다. 쑥도 쇠비름도 질경이도 하나하나 뜯습니다. 이밖에 이름을 잘 모르지만 보드랍고 자그마한 풀잎을 뜯습니다.


  모기를 쫓으며 뜯은 풀잎은 흐르는 물에 헹구어 흙을 떨굽니다. 한동안 그대로 두어 물기를 빼고, 젓가락으로 집기 좋게 톡톡 썹니다. 숟가락에 된장 조금 퍼서 나물을 골고루 비빕니다. 왼손으로 석석 비벼서 접시에 담고, 왼손은 쪽쪽 빤 다음 씻습니다.


  텃밭 풀을 뜯자면 후박잎을 걷어야 합니다. 이제 가을날 후박나무 가랑잎이 텃밭에 꽤 떨어졌습니다. 치우고 다시 치워도 새 가랑잎이 춤춥니다. 밤과 새벽에 찬이슬 맞고 오들오들 떠는 풀잎은 시들시들합니다. 사이사이 갓풀이 새로 돋습니다. 이른봄에 쑥 곁에서 쑥쑥 자라는 갓풀인데, 한가을에도 이처럼 먹을 수 있군요.


.. 산타가 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나는 흙을 파며 놀았어요. 흙으로 집도 짓고, 기차도 만들었어요. 불도저처럼 손으로 흙을 밀어 작은 산도 만들었지요 ..  (19쪽)


  식구들이 도시에서 살아갈 적에는 흙땅을 밟기 퍽 어려웠습니다. 도시라는 곳은 빈터 하나 없이 촘촘하거든요. 도시에서는 작은 땅뙈기 하나에라도 집을 짓거나 길을 내거나 합니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자동차 대는 터가 돼요. 도시에서는 나무 한 그루 느긋하게 뿌리를 뻗지 못해요. 도시에서는 아이들 신나게 뛰놀 빈터가 없어요. 따로 놀이공원을 만들지 않고서야 아이들 놀이터와 쉼터가 없는데, 이곳마저 푸름이나 어른들 담배터나 술터로 바뀌곤 해요.


  곰곰이 생각하면, 도시사람이건 시골사람이건 흙이 있어야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를 거두고, 이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로 밥을 먹어요. 뭍고기를 먹는다 하더라도, 또 뭍고기인 소나 돼지나 닭을 시멘트로 바닥을 댄 우리를 지어서 키운다 하더라도, 짐승한테 줄 먹이(밥)는 흙에서 얻습니다. 사료이든 항생제이든, 또 이것저것 무어라 하든, 집짐승이든 우리짐승이든 흙에서 얻는 먹이를 먹으며 살을 찌워요. 풀을 즐겨먹든 고기를 즐겨먹든, 누구나 흙이 있어야 비로소 밥을 먹을 수 있어요.


.. “물속 벌레들도 숲속 땅에 사는 동물들처럼 물속에 쌓인 잎사귀들을 먹어치우며 흙을 만들고, 또 물을 깨끗하게 해. 물 밑에 있는 땅도 온갖 생명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야.” ..  (43쪽)

 

 


  아이들이 쉽고 재미나게 읽을 만한 그림이야기 《땅속에 누가 살아?》(웃는돌고래,2012)를 읽으며 생각을 기울입니다. 《땅속에 누가 살아?》는 어린이가 스스로 읽으며 스스로 깨닫도록 돕는 그림이야기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아이라면 으레 흙을 만질 테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흙을 만지기 어렵기에, 이 책을 읽으며 무언가 느끼며 깨달을 만해요. 다만, 책을 아무리 많이 읽더라도 손수 흙을 만지면서 살갗으로 느끼지 않는다면 머리에 깃든 앎조각은 삶으로 스며들지 않아요. 머리에는 앎조각이 가득하지만, 정작 몸으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셈이에요.


  쉽고 재미나게 읽도록 구수한 글과 예쁜 그림으로 어우러진 그림이야기 《땅속에 누가 살아?》인데, 어린이는 이 책을 읽으며 쉽고 재미나게 ‘흙삶’을 익히거나 살필 수 있다지만, 정작 어린이와 살아가고 어린이한테 밥을 먹이며 어린이를 가르치거나 이끄는 어른은 어떤 책을 읽으며 ‘흙삶을 쉽고 재미나게’ 생각하거나 바라보거나 느끼거나 깨달을까 궁금합니다. 어른들은 이 그림이야기를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생각밭을 북돋울까요? 어른들은 이 그림이야기를 아이들한테 찬찬히 읽히면서 새삼스레 깨달을까요?


.. 흙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땅 위의 풀들이 다 자란 뒤에 시들면 몇 백 년 동안 썩으면서 부슬부슬한 흙이 됩니다.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들도 썩어서 몇 년이 지나면 흙이 됩니다. 물속에서 자라는 물풀도 시든 뒤에 수십 년 동안 썩어서 흙이 됩니다. 동물들도 죽으면 한참 지나 썩어서 흙이 되고요. 커다랗고 단단했던 바위도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잘게 쪼개지면서 자갈, 모래, 흙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렇게 동식물과 바위의 가루로 만들어진 흙들이 다 섞여서 지구를 덮고 있는 흙이 되어요 ..  (61∼62쪽)

 


  자연과 생태와 평화와 민주와 통일 들을 다루는 어린이책이 그림책을 읽을 때마다 늘 궁금합니다. 이 좋고 아름다운 어린이책과 그림책은 아이들한테만 읽혀야 할까 궁금해요. 어른들부터 이 좋고 아름다운 어린이책과 그림책을 읽으면서, ‘어른이 되는 동안 스스로 버리거나 잊은 마음’이 무엇인가를 헤아려야 하지 않나 싶어요.


  흙을 먹을 때에 밥을 먹고, 흙을 눌 때에 밥이 살아요. 흙을 만질 때에 내 삶을 보듬고, 내 삶을 보살필 때에 흙 또한 곱게 돌봐요.


  어른들 누구나 자가용은 좀 덜 타면서, 아이들 손을 잡고 들길이건 멧길이건 흙길이건 시멘트길이건 거닐면 좋겠어요. 어른들 누구나 아이들과 함께 이 지구별을 두 발과 두 손과 온몸으로 느끼면서 따순 사랑을 생각하면 좋겠어요. 땅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비롯해, 땅 위쪽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슬기롭게 살피고 곱게 어깨동무할 수 있기를 빌어요.


  그나저나, 이 책 18쪽에 “산타는 먼 곳으로 여행하기 싫어서 마당에 텃밭을 만든”이라 나오는데, 이 책에서 산타가 사는 곳은 서울 남산 꼭대기예요. 이 책에서 산타는 남산탑 아래쪽 숲속에 밭을 일구어요. 곧, ‘마당 텃밭’이 아니라 ‘숲속 밭’ 또는 ‘숲밭’이라고 말해야 올발라요. 다음으로, 이 책 60쪽에 “흙이 두텁고 기름진 땅”이라 나오는데, ‘두텁다’는 마음이나 생각을 가리키는 자리에만 쓸 수 있어요. “흙이 두껍고 기름진 땅”으로 바로잡아야 알맞습니다.


  아무쪼록, 도시사람이건 시골사람이건 흙한테서 선물받은 밥을 맛나게 먹고 기운차게 삶을 일구면서 날마다 예쁜 사랑을 이웃들과 재미나게 나눌 수 있다면 참 좋으리라 생각해요. (4345.9.24.달.ㅎㄲㅅㄱ)

 


― 땅속에 누가 살아? (노정임 글,이경석 그림,웃는돌고래 펴냄,2012.9.5./90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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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9-25 13:51   좋아요 0 | URL
"흙한테서 선물받은 밥" - 늘 기억해야겠네요.

맨 끝의 그림이 아주 재밌어요. 똥 종합 선물세트... 그런데 똥이 싫다는군요.ㅋㅋ

파란놀 2012-09-25 18:02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는 여러모로 아쉬운 대목이 보였지만,
이만 하게 빚은 한국 어린이 창작책이 워낙 없기에
점수를 좀 넉넉히 주었어요 ^^;;;

글쓴이와 그린이가
앞으로 더 슬기롭게 발돋움하기를 빌어요~

..

두더지는 똥을 안 먹으니까요 ^^;;;;
 


 사진 한 장으로 읽기

 


  자그마한 헌책방을 찾아갑니다. 찾아가 보니, 크기가 작아 ‘자그마한 헌책방’이라 말하지만, 이곳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곳입니다. 크기가 크대서 ‘더 나은’ 헌책방이 아니요, 크기가 작대서 ‘덜 떨어지는’ 헌책방이 아닙니다. 책을 더 많이 읽었다는 사람이 더 뛰어난 사람이 아니요, 책을 적게 읽은 사람이 덜 떨어진 사람이 아니듯, 책방이나 책터는 크기로 따지지 않습니다.


  갖춘 책이 더 많아야 더 좋은 헌책방이 되지 않습니다. 사고파는 책 가짓수나 숫자가 더 많아야 더 훌륭한 헌책방이 되지 않습니다. 나는 어느 헌책방에 들든 내가 읽을 마음이 드는 책 하나 만나면 됩니다. 주머니를 털어 책 하나 장만하지 않더라도, 책시렁을 가만히 돌아보며 책내음을 맡고 책이야기 느낄 수 있으면 됩니다.


  사진 한 장을 찍습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습니다. 어떤 모습을 남기려고 찍는 사진이란 없습니다. 어떤 모습을 남기려고 찍는 사진이란 나한테는 아무 값을 못합니다. 오직 하나, 나 스스로 좋아하는 마음이 샘솟는 데에 좋아하는 그대로 찍는 사진만 값합니다. 아이들을 찍든, 내 보금자리와 시골마을을 찍든, 또 헌책방을 찍든, 이웃을 찍든, 자전거를 찍든, 내 마음속 가장 따사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키며 사진기를 들 때에 비로소 뿌듯하고 즐거습니다.


  나는 사진 한 장을 찍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삶을 읽습니다. 나는 사진 한 장을 찍으면서 내가 마음으로 아낄 이웃 삶을 읽습니다. 나는 사진 한 장을 찍으면서 지구별 삶을 읽고, 내 발자국이 닿는 아름다운 삶터를 읽습니다. (4345.9.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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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 오징어 소녀 11
안베 마사히로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왜 쳐다봐?
 [만화책 즐겨읽기 180] 안베 마사히로, 《침략! 오징어 소녀 (11)》(대원씨아이,2012)

 


  아이들은 개미를 가만히 바라보며 몇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들 합니다. 참말 그래요. 그렇지만 오늘날 어른이나 어버이 가운데 이녁 아이가 개미를 가만히 바라보며 여러 시간을 보낸다 할 때에, 곁에서 물끄러미 지켜보거나 걱정없이 다른 볼일을 보는 분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요.


  아이들은 개미뿐 아니라 들풀이나 들꽃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몇 시간쯤 가벼이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만 이와 같지 않아요. 어른도 이와 같아요. 어느 어른이라 하더라도 들풀 한 포기나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며 여러 시간을 너그러이 누릴 수 있어요.


- “새해 복 많이 받아라징어! 올해도 잘 부탁한다징어! 근데 세뱃돈은 왜 안 주냐징어?” “그런 문화는 귀신같이 안다니까.” (3쪽)
- “놀이기구 하나 만드는데 사람과 수고가 얼마나 많이 드는데. 게다가 정기적으로 점검도 해야 하는걸. 그래도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매일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야. 오징어 소녀는 그걸 혼자서 다 해내는 거니까, 놀이기구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오징어 소녀야말로 놀이기구 계의 침략자라 할 수 있지.” (49쪽)


  외딴섬에 갇힐 적에 무엇을 가져가겠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어요. 아마 이것저것 떠올리며 챙길 수 있겠지요. 스스로 외딴섬에서 지내 보지 않았다면 외딴섬 삶이 어떠한가를 알 수 없을 텐데, 외딴섬에 책이나 영화나 놀잇감을 애써 가져가야 삶을 즐기거나 누릴 수 있지는 않아요. 외딴섬에서는 섬을 생각하고, 섬이 깃든 바다를 헤아리며, 섬을 둘러싼 하늘을 돌아보면 돼요.


  하루 내내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어요. 하루 내내 바다를 바라볼 수 있어요. 하루 내내 섬을 돌며 생각에 잠길 수 있어요.


  어떤 성과를 내거나 목표를 이루거나 결과를 빚어야 하는 삶이 아니에요. 어떤 경제성장을 이루거나 연봉을 받거나 은행계좌를 불려야 하는 삶이 아니에요. 날마다 기쁘게 웃고, 언제나 맑게 노래하면 좋은 삶이에요.


  아침에 햇살을 마주하며 기지개를 켜면 즐겁습니다. 차츰 낮이 되는 햇살을 쳐다보며 싱긋빙긋 웃으면 즐겁습니다. 낮 동안 멧새와 들새가 얼마나 바지런히 날아다니며 부산을 떠는가를 살펴보면 즐겁습니다. 뉘엿뉘엿 기우는 햇살을 느끼며 빨래를 걷고 천천히 개면 즐겁습니다.

 

 


- “(귀신의 집) 거기 있는 애들은 아주 적극적이야!” “더 무섭잖냐징어?” “그래 봤자 다 가짜야.” (22쪽)
- “이런 게 뭐가 재밌냐징어.” “귀신을 볼 때마다 펄쩍 뛰는 널 보는 게 재미있는 거지.” “못됐다징어.” (25쪽)
- “밤에도 일하니까 보고 싶은 TV프로그램을 못 본다징어! 생각이 짧았다징어!” (149쪽)


  오늘날에 이르러 ‘집일’을 ‘가사노동’으로 여기곤 하는데, 이렇게 가사노동으로 여기는 집일을 ‘돈벌이로 치면 돈을 얼마나 번다 하는가’를 숫자로 따지기까지 해요. 그래서, 집에서 일하는 살림꾼이 ‘무보수 푸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온통 가시내한테 굴레처럼 집일을 뒤집어씌우며 꿈날개를 못 펴도록 한다고 여겨요.


  어느 모로 본다면 틀린 말은 아니리라 느껴요. 그러나, 집일을 왜 ‘가사노동’이라는 틀로 바라보아야 하는지 아리송해요. 집에서 하는 일, 곧 집일은 ‘집살림’이거든요. 집살림은 어떤 돈을 바라며 하는 일이 아니에요.


  아이를 사랑하는 집살림입니다. 아이가 커서 돈을 벌어 가져다주기를 바라는 가사노동이 아니에요. 아이키우기는 그저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도록 곁에서 도우며 어깨동무하는 삶이지 ‘육아노동’이 될 수 없어요.


  이른바 ‘가사 노동자’란 없어요. 집 바깥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버는 사람한테도 똑같이 말할 수 있어요. ‘회사 노동자’나 ‘공장 노동자’ 또한 없어요. 스스로 회사나 공장에서 톱니바퀴 몫만 한다면야 노동자가 되겠지요. 그렇지만, 톱니바퀴 노릇 아닌 사람 노릇을 한다면, 스스로 가장 즐겁게 여길 일거리를 찾아 언제나 가장 즐겁게 삶을 빛낸다면, 이때에는 ‘경제활동’이나 ‘노동’이 아니에요. 집안일과 맞물리는 ‘집밖일’이 되면서, 스스로 삶을 가꾸는 ‘삶일’이에요. 한 마디로 ‘삶’입니다.


  삶일 때에는 어떤 일이고 힘들지 않아요. 아이가 개미를 하염없이 바라보듯, 어른도 스스로 가장 좋아하고 가장 아름답다 여기는 일을 하며 힘들지 않아요. 왜냐하면, ‘일 = 놀이’요, ‘놀이 = 일’이기 때문입니다. 삶을 밝히는 일이란 삶을 밝히는 놀이요, 삶을 누리는 놀이란 삶을 누리는 일이에요.


  누구라도 스스로 삶을 밝히면서 누려야지, 돈을 더 벌어야 한다는 굴레를 뒤집어쓸 까닭이 없어요. 돈을 벌 때에도 즐겁게 돈을 벌고 즐겁게 돈을 써야지, 통장에 남은 돈이 줄어든다고 걱정할 까닭이란 없어요. 벌이가 적거나 많다고 가름할 수 없어요. 99만 원을 벌든 100만 원을 벌든 101만 원을 벌든 같아요. 102만 원이나 103만 원이나 같은 일이듯, 차츰 꼬리를 물고 물어 5만 원을 벌든 5억 원을 벌든 같아요. 왜냐하면, 돈을 많이 번다 하더라도 스스로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슬픈 굴레에 갇힌 모습이요, 돈을 적게 번다 하더라도 스스로 웃고 노래하는 삶을 누리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우는 모습이거든요.


- “여자만 감시하고 그러면 못써.” “안 그래!” “농담이다. 네가 열심히 일하는 거 잘 알아.” “어?” “아들이 얼마나 활약하고 있는지 자랑을 하려 해도 뭘 알아야 하잖니. 지금까지 너 몰래 이렇게 찾아와서 가끔 보곤 했다.” (36쪽)
- “마당에 수영장이 있다징어. 부럽다징어!” “무슨 일이야? 우리 집도 코앞에 바다라는 거대한 수영장이 있잖아.” “그거랑 이건 다르다징어!” (95쪽)


  안베 마사히로 님 만화책 《침략! 오징어 소녀》(대원씨아이,2012) 열한째 권을 읽습니다. 사람나라로 쳐들어온 ‘오징어나라’ 가시내는 사람나라를 ‘치지’는 못하고, 사람나라에서 ‘삶을 누립’니다. 사람들이 바다를 하도 더렵히는 나머지, 바다에서 살기 힘들다며 뛰쳐나왔는데, 사람들을 일깨우거나 나무라며 이제 바다를 깨끗하게 하도록 이끌지는 못해요. 그러나 오징어 가시내는 씩씩합니다. 누가 무어라 하건 말건 스스로 바닷가 쓰레기를 줍습니다. 아이들한테 바닷가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고 정갈하게 지키자고 말하며 함께 놉니다. 어느새 오징어 가시내 스스로 ‘사람나라에 왜 찾아왔는’지 잊습니다. 왜 찾아왔는지는 잊으나, 하루하루 새롭게 맞이하고 언제나 새삼스레 웃고 떠듭니다.


- “자! 이러면 됐다! 찡오의 스케일에 비해 (달마 인형) 눈알 두 개는 너무 적잖아. 꿈도 많이 가지고, 다 이뤄야지!” “응!” (112쪽)
- ‘늘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징어. 존경의 눈빛이라면 몰라도 호기심의 눈빛은 별로 달갑지 않은데징어. 그렇다면징어.’ (129쪽)
- “신디를 하루 종일 관찰해 봤더니 어땠어?” “나팔꽃 관찰이 훨씬 재밌다징어.” (136쪽)


  나팔꽃은 나팔꽃을 쳐다보는 아이한테 ‘너, 왜 자꾸 나를 쳐다보니!’ 하고 따지거나 묻지 않습니다. 가만히 제 모습을 내줍니다. 햇살이나 구름이나 하늘이나 무지개 또한 우리들한테 ‘너 말야, 왜 자꾸 나를 쳐다보냐구!’ 하면서 윽박지르지 않아요. 햇살을 느끼고 구름을 누리며 하늘이랑 무지개를 올려다보는 우리들한테 고운 빛과 내음과 소리와 무늬와 결을 베풀어요.


  스스로 맑게 생각하며 맑은 말이 샘솟습니다. 맑은 말 샘솟는 하루를 빚으면서 맑은 삶 널리 나누는 어깨동무를 시나브로 이룹니다. 오징어 가시내는 ‘사람나라를 이녁 발 아래 놓는 지구 정복’을 하겠다고 곧잘 말하지만, 정작 오징어 가시내가 하는 일이란 ‘날마다 재미나게 놀고, 날마다 또 또 또 신나게 노는 일’입니다. (4345.9.24.달.ㅎㄲㅅㄱ)

 


― 침략! 오징어 소녀 11 (안베 마사히로 글·그림,김혜성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2.6.25./45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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