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에 누가 살아? - 산타와 나무의 "모든 생명과 함께 웃는 세상 이야기" 2 작은돌고래 3
노정임 기획.글, 이경석 그림 / 웃는돌고래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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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한테서 선물받은 밥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96] 노정임·이경석, 《땅속에 누가 살아?》(웃는돌고래,2012)

 


  낮에는 날이 참 따스합니다. 저녁이면 날이 퍽 서늘합니다. 한가위를 앞둔 가을날은 낮과 밤 날씨가 꽤 벌어집니다. 저녁 날씨를 느끼자면, 모기가 다 죽어서 잠들 만하건만, 낮 날씨를 헤아리자면, 모기가 아직 용을 쓰며 살아남으려 하겠구나 싶습니다.


  텃밭 가장자리에 모기들이 왱왱거립니다. 모기 날갯짓 소리를 들으면서 풀을 뜯습니다. 돗나물도 뜯고 까마중잎도 뜯습니다. 망초잎도 뜯고 올해에 갓 뿌리를 내려 보드라운 줄기를 올린 여린 산초줄기를 꺾습니다. 부추잎을 꺾고 모시잎을 땁니다. 쑥도 쇠비름도 질경이도 하나하나 뜯습니다. 이밖에 이름을 잘 모르지만 보드랍고 자그마한 풀잎을 뜯습니다.


  모기를 쫓으며 뜯은 풀잎은 흐르는 물에 헹구어 흙을 떨굽니다. 한동안 그대로 두어 물기를 빼고, 젓가락으로 집기 좋게 톡톡 썹니다. 숟가락에 된장 조금 퍼서 나물을 골고루 비빕니다. 왼손으로 석석 비벼서 접시에 담고, 왼손은 쪽쪽 빤 다음 씻습니다.


  텃밭 풀을 뜯자면 후박잎을 걷어야 합니다. 이제 가을날 후박나무 가랑잎이 텃밭에 꽤 떨어졌습니다. 치우고 다시 치워도 새 가랑잎이 춤춥니다. 밤과 새벽에 찬이슬 맞고 오들오들 떠는 풀잎은 시들시들합니다. 사이사이 갓풀이 새로 돋습니다. 이른봄에 쑥 곁에서 쑥쑥 자라는 갓풀인데, 한가을에도 이처럼 먹을 수 있군요.


.. 산타가 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나는 흙을 파며 놀았어요. 흙으로 집도 짓고, 기차도 만들었어요. 불도저처럼 손으로 흙을 밀어 작은 산도 만들었지요 ..  (19쪽)


  식구들이 도시에서 살아갈 적에는 흙땅을 밟기 퍽 어려웠습니다. 도시라는 곳은 빈터 하나 없이 촘촘하거든요. 도시에서는 작은 땅뙈기 하나에라도 집을 짓거나 길을 내거나 합니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자동차 대는 터가 돼요. 도시에서는 나무 한 그루 느긋하게 뿌리를 뻗지 못해요. 도시에서는 아이들 신나게 뛰놀 빈터가 없어요. 따로 놀이공원을 만들지 않고서야 아이들 놀이터와 쉼터가 없는데, 이곳마저 푸름이나 어른들 담배터나 술터로 바뀌곤 해요.


  곰곰이 생각하면, 도시사람이건 시골사람이건 흙이 있어야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를 거두고, 이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로 밥을 먹어요. 뭍고기를 먹는다 하더라도, 또 뭍고기인 소나 돼지나 닭을 시멘트로 바닥을 댄 우리를 지어서 키운다 하더라도, 짐승한테 줄 먹이(밥)는 흙에서 얻습니다. 사료이든 항생제이든, 또 이것저것 무어라 하든, 집짐승이든 우리짐승이든 흙에서 얻는 먹이를 먹으며 살을 찌워요. 풀을 즐겨먹든 고기를 즐겨먹든, 누구나 흙이 있어야 비로소 밥을 먹을 수 있어요.


.. “물속 벌레들도 숲속 땅에 사는 동물들처럼 물속에 쌓인 잎사귀들을 먹어치우며 흙을 만들고, 또 물을 깨끗하게 해. 물 밑에 있는 땅도 온갖 생명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야.” ..  (43쪽)

 

 


  아이들이 쉽고 재미나게 읽을 만한 그림이야기 《땅속에 누가 살아?》(웃는돌고래,2012)를 읽으며 생각을 기울입니다. 《땅속에 누가 살아?》는 어린이가 스스로 읽으며 스스로 깨닫도록 돕는 그림이야기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아이라면 으레 흙을 만질 테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흙을 만지기 어렵기에, 이 책을 읽으며 무언가 느끼며 깨달을 만해요. 다만, 책을 아무리 많이 읽더라도 손수 흙을 만지면서 살갗으로 느끼지 않는다면 머리에 깃든 앎조각은 삶으로 스며들지 않아요. 머리에는 앎조각이 가득하지만, 정작 몸으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셈이에요.


  쉽고 재미나게 읽도록 구수한 글과 예쁜 그림으로 어우러진 그림이야기 《땅속에 누가 살아?》인데, 어린이는 이 책을 읽으며 쉽고 재미나게 ‘흙삶’을 익히거나 살필 수 있다지만, 정작 어린이와 살아가고 어린이한테 밥을 먹이며 어린이를 가르치거나 이끄는 어른은 어떤 책을 읽으며 ‘흙삶을 쉽고 재미나게’ 생각하거나 바라보거나 느끼거나 깨달을까 궁금합니다. 어른들은 이 그림이야기를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생각밭을 북돋울까요? 어른들은 이 그림이야기를 아이들한테 찬찬히 읽히면서 새삼스레 깨달을까요?


.. 흙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땅 위의 풀들이 다 자란 뒤에 시들면 몇 백 년 동안 썩으면서 부슬부슬한 흙이 됩니다.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들도 썩어서 몇 년이 지나면 흙이 됩니다. 물속에서 자라는 물풀도 시든 뒤에 수십 년 동안 썩어서 흙이 됩니다. 동물들도 죽으면 한참 지나 썩어서 흙이 되고요. 커다랗고 단단했던 바위도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잘게 쪼개지면서 자갈, 모래, 흙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렇게 동식물과 바위의 가루로 만들어진 흙들이 다 섞여서 지구를 덮고 있는 흙이 되어요 ..  (61∼62쪽)

 


  자연과 생태와 평화와 민주와 통일 들을 다루는 어린이책이 그림책을 읽을 때마다 늘 궁금합니다. 이 좋고 아름다운 어린이책과 그림책은 아이들한테만 읽혀야 할까 궁금해요. 어른들부터 이 좋고 아름다운 어린이책과 그림책을 읽으면서, ‘어른이 되는 동안 스스로 버리거나 잊은 마음’이 무엇인가를 헤아려야 하지 않나 싶어요.


  흙을 먹을 때에 밥을 먹고, 흙을 눌 때에 밥이 살아요. 흙을 만질 때에 내 삶을 보듬고, 내 삶을 보살필 때에 흙 또한 곱게 돌봐요.


  어른들 누구나 자가용은 좀 덜 타면서, 아이들 손을 잡고 들길이건 멧길이건 흙길이건 시멘트길이건 거닐면 좋겠어요. 어른들 누구나 아이들과 함께 이 지구별을 두 발과 두 손과 온몸으로 느끼면서 따순 사랑을 생각하면 좋겠어요. 땅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비롯해, 땅 위쪽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슬기롭게 살피고 곱게 어깨동무할 수 있기를 빌어요.


  그나저나, 이 책 18쪽에 “산타는 먼 곳으로 여행하기 싫어서 마당에 텃밭을 만든”이라 나오는데, 이 책에서 산타가 사는 곳은 서울 남산 꼭대기예요. 이 책에서 산타는 남산탑 아래쪽 숲속에 밭을 일구어요. 곧, ‘마당 텃밭’이 아니라 ‘숲속 밭’ 또는 ‘숲밭’이라고 말해야 올발라요. 다음으로, 이 책 60쪽에 “흙이 두텁고 기름진 땅”이라 나오는데, ‘두텁다’는 마음이나 생각을 가리키는 자리에만 쓸 수 있어요. “흙이 두껍고 기름진 땅”으로 바로잡아야 알맞습니다.


  아무쪼록, 도시사람이건 시골사람이건 흙한테서 선물받은 밥을 맛나게 먹고 기운차게 삶을 일구면서 날마다 예쁜 사랑을 이웃들과 재미나게 나눌 수 있다면 참 좋으리라 생각해요. (4345.9.24.달.ㅎㄲㅅㄱ)

 


― 땅속에 누가 살아? (노정임 글,이경석 그림,웃는돌고래 펴냄,2012.9.5./90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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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9-25 13:51   좋아요 0 | URL
"흙한테서 선물받은 밥" - 늘 기억해야겠네요.

맨 끝의 그림이 아주 재밌어요. 똥 종합 선물세트... 그런데 똥이 싫다는군요.ㅋㅋ

숲노래 2012-09-25 18:02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는 여러모로 아쉬운 대목이 보였지만,
이만 하게 빚은 한국 어린이 창작책이 워낙 없기에
점수를 좀 넉넉히 주었어요 ^^;;;

글쓴이와 그린이가
앞으로 더 슬기롭게 발돋움하기를 빌어요~

..

두더지는 똥을 안 먹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