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댕기·비단구두
아이들한테 자장노래로 〈오빠 생각〉을 부를 때에, 나 스스로 미처 생각하지 못하면, 어릴 적 국민학교에서 길든 노랫말대로 부르고 만다. 나도 모르게 잘못된 노랫말이 튀어나오면 얼른 노래를 끊고, 숨을 고른 다음 다시 부른다. 사람한테 한 번 잘못 아로새겨진 말버릇은 고치기 힘들구나 싶은데, 나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는 틀을 놓지 않기에 내 잘못된 말버릇이 모두 씻기지 못하는지 모른다.
요즈음에는 〈오빠 생각〉을 부르며 노랫말을 내 나름대로 바꾸어 본다.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을 “우리 오빠 말 타고 시골 가시면”으로 바꾼다. 그리고, 이 다음 노랫말은 “감알 잔뜩 사들고 오신다더니”로 바꾼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우리 식구인데, 자꾸 서울 가느니 서울에서 무얼 사오느니 하는 노랫말을 듣거나 부르는 일은, 이 노랫말대로 나와 아이들을 길들이는 노릇이 되겠구나 하고 느낀다. 그래서 시골사람답게 이 시골(여기)에서 저 시골(저곳, 옆마을)로 나들이를 가서 감알을 사온다고 하는 흐름으로 바꾸어 본다.
1990년에 ‘한겨레신문사’에서 《겨레의 노래》 두 권을 내놓는다. 이 노래책에서 처음으로 ‘그동안 잘못 알려진 노래’를 바로잡는다. 그러나, 이 노래책에서 노랫말을 바로잡는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익히 길들던 대로 노래를 부르곤 한다. 이를테면, 최순애 님 〈오빠 생각〉을 부르며 “비단구두 사 가지고 오신다더니” 하는 노랫말을 바로잡지 못한다. 비단구두란 없는데, 비단으로 구두를 만들 수 없고, 비단으로 만든 구두는 신지도 못하는데, 이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노래로 끝없이 부르고 또 부른다. 최순애 님도 이 대목을 무척 안타깝게 여기셨지만, 사람들이 이 노랫말로 길들여져서 고치기 힘든데 어찌 하겠느냐 하고 말씀한 적 있다. 이 안타까움을 1990년에 비로소 바로잡으려 했는데, 너무 작은 움직임이었을까.
그러나, 누구라도 생각해 보면 ‘비단구두’가 얼마나 어이없고 뜬금없는지 깨달으리라. 나도 국민학생 때에 ‘비단구두’는 뭔가 얄궂다고 느꼈다.
신영복 님 책 《변방을 찾아서》를 읽다가 “비단구두 사 가지고 오신다며 서울 가신 오빠는(72쪽)”이라는 글월을 본다. 신영복 님도 ‘비단구두’로만 알고, 이렇게 글을 쓴다. 그러나 이 노래 이 대목은 ‘비단댕기’이다. 최순애 님은 처음부터 ‘비단댕기’로 시를 썼는데, 이 시를 노래로 지어 내놓을 무렵, 일제강점기 군홧발이 ‘댕기’를 ‘구두’로 고쳤다. 왜 그랬을까? 뻔한 일이겠지. 아이부터 어른까지 널리 부르는 노래에 한겨레 넋과 얼을 북돋우는 대목이나 말마디가 깃들지 못하도록 가로막으려 했겠지.
아이들한테 〈오빠 생각〉을 부를 때에, 곧잘 노랫말 한 마디를 살짝 바꾸기도 한다. 시골에 가서 감알을 사오는 이야기로 바꾸기도 하지만, 참말 시골사람답게 “우리 오빠 걸어서 읍내 가시면, 비단댕기 사 가지고 오신다더니” 하고 불러 본다. (4345.9.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