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기놀이 어린이

 


  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 순천 기차역에서 2000원 넣고 돌리는 뽑기에서 ‘뽀로로 도장 꾸러미’가 나온다. 그런데 도장만 있고 인주가 없다. 읍내로 와서 문방구에서 도장놀이 꾸러미를 더 장만한다. 집에 닿은 아이들은 고단할 텐데, 끝없이 더 놀려 한다. 땀내음 물씬 밴 한복을 굳이 더 입겠다고 하는 큰아이는 덥다며 저고리는 벗고 치마만 입은 채 찍기놀이에 빠진다. 밤은 깊어 열두 시가 넘는다. 작은아이는 곯아떨어지고, 큰아이는 아직 멀쩡하다. (4345.10.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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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군내버스 불러

 


  마실을 나가는 군내버스 들어온다. 어머니 등에 업힌 산들보라가 버스를 바라보며 손을 든다. 저기, 저기, 버스 와, 하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 저기 버스야. 저 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가지. 산들보라도 사름벼리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저 버스를 타고 시골을 한 바퀴 휭 돌지. (4345.10.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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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씩씩한 아이들

 


  마실 가는 길에 큰아이더러 마을 어귀 샘가에서 낯을 씻으라고 이야기한다. 큰아이는 “네!” 하고 씩씩하게 외치며 달린다. 곧이어 작은아이가 큰아이 뒤를 따른다. 두 시간에 한 차례 지나가는 군내버스도 뜸하지만, 여느 때 여느 자동차도 거의 지날 일 없어, 마을 어귀 앞 찻길이 그리 걱정스럽지 않다. 큰아이 작은아이 모두 시골마을 시골집에서는 누구보다 씩씩하고 튼튼하다. 자동차를 근심하거나 살필 일이 없으니 씩씩할 수 있다. 아이들이 거리껴 하거나 두렵게 여길 걸림돌이 없으니 튼튼할 수 있다.


  아이들이 살아가기에 마땅한 터라면 어른들 또한 오순도순 즐겁게 살아가기에 마땅한 터가 된다고 느낀다.


  곰곰이 돌아본다. 나한테 아이들이 찾아오기 앞서도 이 같은 대목을 알았을까. 나 혼자 살아가던 때에도 이러한 대목을 슬기롭게 헤아렸을까. 아이들이 나한테 찾아오면서 조금 더 깊이 돌아보거나 한결 넓게 생각할 수 있을까. 모두 아는 이야기였으나 오래도록 잠들었을 뿐일까. 무엇을 알 때에 참으로 기쁜 앎이요, 무엇을 헤아릴 때에 더없이 사랑스러운 생각이라 할 만할까.


  찻길이 생긴 지 얼마 안 된다. 자동차가 드넓은 찻길을 씽씽 달린 지 얼마 안 된다. 사람은 사람으로 살아갈 뿐이었지, 자동차에 기대거나 길들여진 목숨이 아니었다. 사람들 누구나 씩씩한 다리로 씩씩한 삶을 꾸렸다. 사람들 모두 튼튼한 몸으로 튼튼한 마음을 아꼈다.


  씩씩한 아이들이듯 씩씩한 어버이로 살아가는 길을 생각한다. 나 또한 튼튼한 몸과 마음이 되어 하루를 누리자고 생각한다. 아이들아, 마음껏 뛰렴. 나도 너희하고 나란히 마음껏 뛰며 살아갈게. (4345.10.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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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43) 발견의 1 : 발견의 예술

 

사진은 발견의 예술이다. 그렇다면 사진을 통해서 무얼 발견할까
《임동숙-사진일기, 날마다 나를 찾아가는 길》(포토넷,2012) 41쪽

 

  “사진을 통(通)해서”는 “사진으로”나 “사진을 보면서”로 손질해 줍니다. 한자말 ‘발견(發見)’은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거나 아직 알려지지 아니한 사물이나 현상, 사실 따위를 찾아냄”을 뜻한다 합니다. 곧, “사진을 통해서 무얼 발견할까”는 “사진으로 무엇을 찾아낼까”로 손질하면 되고, “사진을 보면서 무엇을 찾을까”로 손질할 수 있어요.

 

 사진은 발견의 예술이다
→ 사진은 찾아내는 예술이다
→ 사진은 새로보는 예술이다
→ 사진은 새롭게 찾는 예술이다
 …

 

  말뜻을 헤아리면, 한국말은 ‘찾아내다’이고 한자말은 ‘發見’입니다. 한국사람은 ‘찾아내다’라 이야기하며, 한자를 쓰는 중국사람이나 일본사람은 ‘發見’이라 이야기하는 셈이에요. ‘發見’을 소리값 ‘발견’이라 적는대서 한국말이 되지 않아요. 요즈음은 ‘사진’을 ‘포토’라든지 ‘photo’라 적는 이가 많고, ‘사진관’도 ‘스튜디오’나 ‘studio’로 적는 이가 많은데, ‘포토’나 ‘photo’는 한국말이 아니에요. ‘스튜디오’나 ‘studio’도 한국말이 아니에요.


  생각을 기울여 ‘사진관’을 ‘사진집’이나 ‘사진가게’로 새롭게 적을 수 있어요. ‘사진마당’이나 ‘사진터’나 ‘사진누리’처럼 적어도 어울려요.


  새롭게 바라보는 눈길을 틔우면 됩니다. 새롭게 느끼는 가슴을 열면 됩니다. 새롭게 생각하는 마음을 추스르면 돼요.


  인터넷을 할 때에 어느 글쇠를 누르면 ‘새로고침’을 합니다. 예전에 어떤 영어로 이 말마디를 나타냈는지 모르겠으나, 이제 누구나 ‘새로고침’이라고 말해요. 2012년까지 아직 국어사전에 이 낱말이 안 실렸으나, 어엿하고 떳떳하며 씩씩하게 쓰는 예쁜 한국말이에요.


  ‘새로고침’을 발판 삼아 새롭게 다른 낱말을 헤아립니다. 새롭게 바라본다 할 때에는 ‘새로보기’나 ‘새로보다’를 헤아립니다. 새롭게 알아보려 할 때에는 ‘새로알기’나 ‘새로알다’를 헤아립니다. 새롭게 읽는다 할 때에는 책이나 글이나 사회나 흐름을 ‘새로읽기’나 ‘새로읽다’로 헤아립니다.

 

 발견의 즐거움 → 새로찾는 즐거움 / 새로보는 즐거움
 발견의 순간 → 새로찾는 때 / 새로보는 그때

 

  ‘새로쓰기’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새로맺기’라든지 ‘새로살기’나 ‘새로가기’나 ‘새로걷기’처럼, 숱한 새말이 하나둘 태어날 수 있습니다. ‘새로사랑’이나 ‘새로믿음’이나 ‘새로꿈’이나 ‘새로마음’처럼 적어도 돼요. 스스로 새 뜻과 넋과 이야기를 담으면 돼요. 보기글도 이러한 흐름을 살펴 “사진은 새로보는 예술이다. 그렇다면 사진으로 무엇을 새로볼까.”처럼 다시 적어도 되겠지요. (4345.10.3.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사진은 새롭게 보는 예술이다. 그렇다면 사진으로 무얼 새롭게 볼까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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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바람 고요히 잠든
별과 달 고이 빛나는
깜깜한 하늘 가득
풀벌레와 논개구리 어우러져

노랫소리

 

퍼뜨린다
속삭인다
간질인다
피어난다

 


4345.7.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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