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43) 발견의 1 : 발견의 예술
사진은 발견의 예술이다. 그렇다면 사진을 통해서 무얼 발견할까
《임동숙-사진일기, 날마다 나를 찾아가는 길》(포토넷,2012) 41쪽
“사진을 통(通)해서”는 “사진으로”나 “사진을 보면서”로 손질해 줍니다. 한자말 ‘발견(發見)’은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거나 아직 알려지지 아니한 사물이나 현상, 사실 따위를 찾아냄”을 뜻한다 합니다. 곧, “사진을 통해서 무얼 발견할까”는 “사진으로 무엇을 찾아낼까”로 손질하면 되고, “사진을 보면서 무엇을 찾을까”로 손질할 수 있어요.
사진은 발견의 예술이다
→ 사진은 찾아내는 예술이다
→ 사진은 새로보는 예술이다
→ 사진은 새롭게 찾는 예술이다
…
말뜻을 헤아리면, 한국말은 ‘찾아내다’이고 한자말은 ‘發見’입니다. 한국사람은 ‘찾아내다’라 이야기하며, 한자를 쓰는 중국사람이나 일본사람은 ‘發見’이라 이야기하는 셈이에요. ‘發見’을 소리값 ‘발견’이라 적는대서 한국말이 되지 않아요. 요즈음은 ‘사진’을 ‘포토’라든지 ‘photo’라 적는 이가 많고, ‘사진관’도 ‘스튜디오’나 ‘studio’로 적는 이가 많은데, ‘포토’나 ‘photo’는 한국말이 아니에요. ‘스튜디오’나 ‘studio’도 한국말이 아니에요.
생각을 기울여 ‘사진관’을 ‘사진집’이나 ‘사진가게’로 새롭게 적을 수 있어요. ‘사진마당’이나 ‘사진터’나 ‘사진누리’처럼 적어도 어울려요.
새롭게 바라보는 눈길을 틔우면 됩니다. 새롭게 느끼는 가슴을 열면 됩니다. 새롭게 생각하는 마음을 추스르면 돼요.
인터넷을 할 때에 어느 글쇠를 누르면 ‘새로고침’을 합니다. 예전에 어떤 영어로 이 말마디를 나타냈는지 모르겠으나, 이제 누구나 ‘새로고침’이라고 말해요. 2012년까지 아직 국어사전에 이 낱말이 안 실렸으나, 어엿하고 떳떳하며 씩씩하게 쓰는 예쁜 한국말이에요.
‘새로고침’을 발판 삼아 새롭게 다른 낱말을 헤아립니다. 새롭게 바라본다 할 때에는 ‘새로보기’나 ‘새로보다’를 헤아립니다. 새롭게 알아보려 할 때에는 ‘새로알기’나 ‘새로알다’를 헤아립니다. 새롭게 읽는다 할 때에는 책이나 글이나 사회나 흐름을 ‘새로읽기’나 ‘새로읽다’로 헤아립니다.
발견의 즐거움 → 새로찾는 즐거움 / 새로보는 즐거움
발견의 순간 → 새로찾는 때 / 새로보는 그때
‘새로쓰기’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새로맺기’라든지 ‘새로살기’나 ‘새로가기’나 ‘새로걷기’처럼, 숱한 새말이 하나둘 태어날 수 있습니다. ‘새로사랑’이나 ‘새로믿음’이나 ‘새로꿈’이나 ‘새로마음’처럼 적어도 돼요. 스스로 새 뜻과 넋과 이야기를 담으면 돼요. 보기글도 이러한 흐름을 살펴 “사진은 새로보는 예술이다. 그렇다면 사진으로 무엇을 새로볼까.”처럼 다시 적어도 되겠지요. (4345.10.3.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사진은 새롭게 보는 예술이다. 그렇다면 사진으로 무얼 새롭게 볼까
(최종규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