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야와 함께 1
타니카와 후미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삶이란 어떠할까
 [만화책 즐겨읽기 186] 타니카와 후미코, 《사야와 함께 (1)》

 


  내가 나고 자란 인천에서 다닌 고등학교나 중학교에는 체육관이 없습니다. 이곳에는 아직도 체육관 건물이 서지 않습니다. 내가 다니던 중·고등학교 곁에는 화학공장이 있었는데, 학교가 서기 앞서부터 있던 공장입니다. 나는 중학교를 다니고 고등학교를 다니며 ‘학교 옆에 저런 공장이 있구나’ 하고 깨닫는데, 이 학교를 지은 이들은 어떻게 화학공장 곁에 학교를 지을 수 있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어떤 마음이요 어떤 생각이었을까요.


  곰곰이 살피면, 학교는 화학공장이 서고 나서 한참 뒤에 섰지만, 화학공장이 들어서기 앞서 그 동네에는 ‘사람들이 여느 살림집’을 꾸려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버젓이 살아가는 동네 한켠에 화학공장이 들어선 셈입니다. 새삼스레 생각해 봅니다. 화학공장을 세운 이들은 ‘사람들 살아가는 여느 살림집’을 어떻게 바라보거나 느끼며 공장을 세웠을까요. 공장 둘레에서 살아갈 사람들이 마실 바람과 물을 조금이나마 헤아렸을까요. 화학공장을 세우면서 쓰레기물을 어떻게 건사하거나 다루어야 할까를 얼마나 알뜰히 헤아렸을까요.


  중·고등학교 여섯 해를 다니며 날마다 화학공장 매연과 쓰레기물 냄새를 맡았습니다. 화학공장 둘레에는 폐수처리장도 있었습니다. 교실 창문 바깥으로는 폐수처리장에서 솟는 김이 늘 보였습니다. 학교 오가는 길에는 화학공장 굴뚝에서 구름처럼 피어나는 매염을 으레 보았습니다.


  공장은 우리 삶터를 북돋울까요. 어른들은 공장에서 일하며 받는 일삯으로 살림을 예쁘게 돌볼까요. 공장에서 새 물건을 잔뜩 만들어 주니, 사람들 경제생활이나 문화생활이나 사회생활이 한껏 나아질까요.


- ‘밝고 화사한 인사. 커다란 창문 밖에서 바람에 흔들리며 반짝반짝 빛나는 나무들. 이 모든 것들이 참을 수 없이 기쁘고, 이제 막 시작된 고교 생활이 얼마나 멋지고 근사할지, 정말 정말 기대됩니다.’ (8∼9쪽)
- ‘그렇구나. 다른 애들이 나랑은 뭔가 다르다고 느낀 건, 정숙함이나 멋진 특기 같은 것 때문이 아니라, 좀더 좀더.’ (31쪽)


  새 하루가 열립니다. 아이들은 오늘도 어제도 집을 나섭니다. 저마다 초등학교에 가거나 중학교에 가거나 고등학교에 갑니다. 때로는 기숙사에 묵으며, 늘 학교에 머뭅니다. 학교 둘레는 ‘어린이·청소년 보호구역’이라 일컫는데, 어린이와 푸름이를 지키는 자리로 여긴다 하면서도, 공장도 있고 고속도로도 있으며, 송전탑이나 유흥업소나 널따란 찻길이 으레 있습니다. 어쩌면, 이러저러한 ‘위험·위해시설’이 우리 삶터 곳곳에 있으니, 학교라 해서 이 ‘위험·위해시설’에서 홀가분하기는 어려울는지 몰라요. 학교에 앞서 우리들 삶터가 바로 이 ‘위험·위해시설’에 둘러싸인 셈이라 할 테지요. 자동차는 골목길에서도 싱싱 달리고, 공장은 어디에서나 매연을 내보내며, 발전소와 송전탑은 언제나 전자파를 뿜어요.


  학교는 숲 한복판에 깃들어야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숲 기운을 느끼고 숲을 보살피면서 숲사람 되는 길을 학교에서 배울 때에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학교가 숲 한복판에 깃들 때에 아름답다면, 우리들 살림집도 숲 한복판에 깃들 때에 아름다우리라 느껴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언제나 숲을 느끼고 사랑하며 즐길 수 있어야 아름답겠지요. 어른들부터 숲을 한껏 누리고 좋아하며 보살필 때에 아이들 또한 삶을 가꾸거나 보듬는 마음길을 물려받을 만하리라 느껴요.


  숲은 푸른 숨결을 빛냅니다. 숲은 풀과 나무로 우거지며 푸른 빛을 펼칩니다. 숲은 온갖 새와 짐승과 벌레한테 보금자리를 내어줍니다. 숲은 온갖 새와 짐승과 벌레한테 밥을 내어줍니다.


  사람들도 숲이 있어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숲에서 ‘집지을 나무’를 얻습니다. 사람들은 숲에서 땔감을 얻습니다. 사람들은 숲에서 먹을거리를 얻습니다. 사람들은 숲에서 맑은 바람을 쐽니다. 사람들은 숲에서 나뭇잎에 반짝이는 햇살을 얻습니다.


  나무 한 그루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목숨들을 반가이 껴안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모든 목숨들은 나무 한 그루를 살가이 바라봅니다. 서로 아끼고 서로 돌봅니다. 따사로운 눈빛과 손길로 숲이 싱그러이 살아납니다.

 

 

 


- “아무것도 없다는 건, 앞으로 찾으러 갈 수 있다는 뜻이니까. 내 눈에는 너희 모두가 희망으로 가득 차 보이는걸. 정말 기대돼. 앞으로 뭐든지 선택할 수 있잖아.” (38쪽)
- ‘굉장해. 넓어져 간다. 바람이 불어, 나무들을 지저귀게 만든다. 미래의 언젠가 나는 어디에 있을까. 무엇을 하고 있을까. 조금은 무섭고 떨리지만, 그래도 가슴이 뛴다.’ (41∼42쪽)


  갓난아기는 냇물 소리를 들으며 새근새근 잠듭니다. 갓난아기는 풀벌레와 멧새 노랫소리를 들으며 아장아장 걷습니다. 갓난아기는 바람이 흔들며 내는 나뭇잎 노래와 풀잎 노래를 들으며 무럭무럭 자랍니다.


  쑥을 뜯으면 쑥내음이 퍼집니다. 미나리를 뜯으면 미나리내음이 번집니다. 정구지를 뜯으면 정구지내음이 감돕니다. 풀은 저마다 다른 풀내음으로 사람들한테 푸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풀은 사람 손을 거쳐 몸으로 천천히 깃들면서 푸른 숨결로 거듭납니다. 풀은 사람이 되고, 사람은 풀이 됩니다. 나무는 사람이 되고, 사람은 나무가 됩니다.


  천 해를 살고 이천 해를 살아온 나무는 천 해에 걸친 슬기와 이천 해에 걸친 깜냥을 둘레 짐승과 벌레와 사람한테 골고루 나누어 줍니다. 나무는 천 해나 이천 해에 걸쳐 숱한 씨앗을 숲에 퍼뜨립니다. 숱한 어린나무를 키우고서 나무는 조용히 숨을 거두며 쓰러집니다. 천 살이나 이천 살을 살아낸 나무는 어린나무한테 숲을 새롭게 가꾸어 주기를 바라는 꿈을 남기며 아스라한 빛 한 줄기가 됩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른은 어떤 빛줄기일까요. 나는 내 아이들한테 어떤 빛줄기 되어 삶을 일굴까요.


  어느 어버이라도 아이한테 돈을 물려주지는 못하리라 느껴요. 어느 어버이라도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주리라 느껴요. 어느 어버이라도 아이한테 집이나 땅을 물려주지는 못하는구나 싶어요. 어느 어버이라도 아이한테 씩씩한 몸과 튼튼한 손을 물려주는구나 싶어요.


- ‘선생님은 인생이 즐거우실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 봅니다.’ (12쪽)
- “타나카 양, 왜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지 알아?” “?” “꽃에는 요정이 있어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 준대.” (53쪽)


  1등을 해야 할 까닭이 없고, 책을 읽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밥을 먹어야 할 까닭이 없고, 옷을 입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시험을 치러야 하면 즐겁게 시험을 치를 노릇입니다. 책을 읽고 싶으면 즐겁게 읽을 노릇입니다. 밥을 마련하거나 차리려 하면 즐겁게 먹을 노릇입니다. 옷 한 벌 지었으면 즐거이 입고 뛰놀 노릇입니다.


  삶에는 까닭이 없어요. 즐거이 누리기에 삶이 될 뿐이에요. 삶을 어떤 모습이 되도록 이끌어야 하지 않아요.


  삶에는 틀이 없어요. 기쁘게 맞이하기에 삶이 돼요. 삶은 이래야 하거나 저래야 하지 않아요. 삶은 날마다 새로운 모습이에요. 삶은 늘 새로운 빛깔과 내음과 숨결이에요.


  더 예쁜 것이 없습니다. 더 못난 것이 없습니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더 나쁜 것이 없습니다. 모두 삶을 이루는 조각입니다. 모두 삶을 빛내는 자리입니다.


  졸립기에 누워서 자요. 고프니까 밥을 차려 먹어요. 냇물에 손을 담가 낯을 씻어요. 들판을 맨발로 거닐며 흙을 느껴요.


  가을을 맞이해서 가을을 누려요. 겨울이 찾아오니 겨울을 누려요. 꽃을 볼 때에는 꽃잎이 어여쁘구나 생각해요. 힘차게 뛰노는 아이들을 볼 때에는 아이들 몸짓이 야물딱지구나 생각해요.


- “나도 너를 좋아해. 언젠가 너와 내가 어른이 돼서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며 만날 수 없게 됐을 때를 상상해 봤는데, 너무 속상했어. 하지만 한편으로 괜찮다는 생각도 들었어. 옆에 없어도, 몇 년이 지나도, 미야비가 잘 지내고 있다면 나도 열심히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거든. 너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렇게, 그렇게, 나는 너를 좋아할 거야.” (80∼81쪽)
- ‘열심히 일해서, 하루라도 빨리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다. 그렇지만, 조금은 여유를 부려도 되겠지.’ (126쪽)


  사랑하는 삶이란 어떠할까요. 사랑하는 사람이란 어떤 눈빛이 될까요. 사랑하는 꿈이란 어떻게 두근거리며 찾아올까요. 타니카와 후미코 님 만화책 《사야와 함께》(대원씨아이,2012) 첫째 권을 읽습니다. 하루하루 온통 사랑으로 살아내는 ‘사야’라 하는 푸름이 이야기를 읽습니다. 사야는 만화책에만 나오는 아이일 수 있으나, 참말 우리 곁 어디에나 사랑스레 있는 아이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삶을 사랑하는 사야입니다. 남들이 사랑하라고 말하니까 삶을 사랑하지 않아요. 스스로 걷고 싶은 길을 걷는 사야입니다. 남들이 일러 주거나 가르친대서 길을 걷는 사야는 아닙니다.


  아이도 어른도 스스로 숨을 쉽니다. 아이도 어른도 스스로 몸을 움직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스스로 생각합니다. 누구나 스스로 보살피는 삶입니다. 누구나 스스로 가꾸는 하루입니다.


  아침햇살은 새삼스레 빛납니다. 저녁햇살은 다시금 곱게 물듭니다. 하루가 조용히 흐릅니다. 맑은 바람은 시골마을에도 도시 한복판에도 상긋상긋 불고 싶습니다. 고운 햇살은 너른 들판에도 아파트 유리창에도 비추고 싶습니다. (4345.10.21.해.ㅎㄲㅅㄱ)

 


― 사야와 함께 1 (타니카와 후미코 글·그림,강동욱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2.8.15./42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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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글공책

 


  의정부고등학교로 강의를 하러 가는 길에 글공책을 잃다. 늘 기차를 타다가 모처럼 고속버스를 탔는데, 띄엄띄엄 쉬는 휴게소에서 쉬를 눈다고 내리며 조금이라도 글조각 끄적일까 싶어 글공책을 들고 내리다가 그만 어디엔가 놓고 고속버스에 다시 올랐다. 휴게소를 떠난 고속버스는 다시 휴게소로 돌아갈 수 없다. 글공책은 내 곁을 떠나 조용히 운다. 휴게소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전화를 건다. 내가 깜빡 잊고 내려놓은 글공책을 찾을 수 있을까 여쭌다. 찾아보겠다고 이야기하지만, 몇 분 뒤 걸려온 전화를 받으니 내 글공책은 안 보인다고 말한다.


  잃어버린다. 두 달쯤 쓰던 글공책을 잃어버린다. 그동안 적바림한 이야기가 글공책과 함께 가뭇없이 사라진다. 글공책에만 끄적이고, 아직 옮겨적지 않은 싯말이며 여러 가지 글이 사르르 사라진다.
  사라진 글공책은 돌이키지 못한다. 문득 생각한다. 내가 즐겁게 읽던 책을 놓고 지나갔다면? 내 손전화기를 놓고 지나갔다면? 내 지갑을 놓고 지나갔다면? 내 사진기를 놓고 지나갔다면? 내 가방을 놓고 지나갔다면?


  어느 때라고 가슴이 안 아플 수 없다. 다만, 지갑이든 손전화기이든 사진기이든 가방이든 다시 장만할 수 있다. 글공책은 두 번 다시 장만할 수 없다.


  그래도, 글공책에 끄적인 이야기는 내 마음속에서 살아숨쉬며 가만히 기다리겠지. 내가 다시 떠올리거나 새삼스레 길어올리기를 가만히 기다리겠지. 사람들이여, 제 것이 아니면 건드리지 말고 그 자리에 그대로 두어 주시라. 사람들이여, 연락처 적힌 다른 이 글공책이나 수첩은 부디 임자한테 돌려주시라. 가로채거나 줍거나 빼앗는대서 이녁 것이 되지 못한다. (4345.10.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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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06. 책마실 아이와 헌책방 - 헌책방 유빈이네 2012.10.19.43

 


  돈 이천 원을 들고 헌책방으로 마실을 나옵니다. 아이는 돈 이천 원으로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을 텐데, 이 가운데 헌책방으로 책마실을 나와서 만화책 하나 가만히 살피는 놀이를 즐깁니다. 아이는 여러 만화책을 살피다가 한 권을 오래도록 들여다봅니다. 오래도록 들여다본 만화책은 내려놓고 다른 책을 하나 집어 장만해도 되지만, 굳이 오래도록 들여다본 만화책을 장만합니다.


  내 어린 나날을 돌아봅니다. 나도 이 아이처럼 책마실을 나와서 책을 살필 적에 오래도록 들여다본 책을 장만하곤 했습니다. 사서 읽고 싶은 책을 책방에 선 채로 먼저 죽 읽습니다. 죽 읽었으니 내려놓고 다른 책을 사지 않습니다. 참말 사서 읽고 싶은 책이기에 책방에 선 채로 한참 읽어 봅니다. 한참 읽으면서 그야말로 읽을 만하구나 하고 느껴서 즐겁게 장만합니다. 이렇게 장만한 책은 책방에서 한 번, 집에서 다시 한 번, 다음에 새롭게 한 번, 자꾸자꾸 되풀이하며 읽습니다.


  삶을 읽습니다. 책 하나에 기대어 삶을 읽습니다. 삶을 느낍니다. 책 하나에 빗대어 삶을 느낍니다.


  사람들은 글 한 줄 쓰거나 그림 한 장 그리면서 어떤 이야기를 책에 실을까요. 사람들은 사랑과 꿈과 믿음을 어떻게 나누고 싶어 책을 내놓고 책방을 열며 책마실을 다닐까요.


  돈 이천 원을 턱으로 집고는 만화책을 한참 살피던 아이는 책방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헌책방 아저씨한테 책값을 내밉니다. 헌책방 아저씨가 에누리를 해 줍니다. 아이는 에누리받은 돈을 한손에 들고 새로 장만한 책을 다른 한손에 듭니다. 아이는 한손에 꿈을 들고, 다른 한손에 사랑을 듭니다.


  책을 읽는 동안 길거리 오가는 자동차 소리를 못 듣습니다. 책을 읽으며 길거리 오가는 사람들 수다 소리를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을 간질입니다. 가을해가 저물며 얼굴을 적십니다. (4345.10.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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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한테 영향 끼친 작가

 


  글을 쓰는 나한테 영향을 끼친 작가가 있는지 궁금해 하는 분이 있어 내 삶을 찬찬히 이야기한다. 먼저, 나한테 영향을 끼친 작가는 아직 아무도 없다. 그리고, 나한테 영향을 끼칠 작가는 앞으로 아무도 없으리라 느낀다. 왜냐하면, 나는 나한테 영향을 끼치지, 어느 다른 사람이 나한테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나 스스로 마음그릇이 넉넉할 때에 다른 사람들 글이나 책을 받아들이거나 헤아릴 수 있지, 내 마음그릇이 넉넉하지 않다면 다른 사람들 글이나 책을 못 받아들이거나 못 헤아린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내 눈높이가 얕을 때에는 ‘둘레에서 아름답다고 손꼽는 책’을 내가 읽는다 하더라도 ‘이 책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눈높이 낮은 내가 못 알아채게 마련’이다. ‘알차고 훌륭하며 좋다 하는 책’이라 하더라도 ‘눈썰미 얕은 내가 못 읽어내게 마련’이다. 줄거리를 살피거나 훑는대서 책읽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알찬 이야기를 알찬 삶으로 받아들여 알찬 넋을 일굴 때에 비로소 책읽기가 이루어진다.


  곧, 나는 ‘아름다운 책이 얼마나 어떻게 왜 아름다운가를 알아챌 수 있게끔’ 스스로 눈높이를 기르고 가꾸며 북돋아야 한다. 마음그릇이 얕거나 눈높이가 낮을 때에는 어느 책을 읽더라도 못 알아듣고 못 알아보며 못 알아챈다. 눈높이가 낮은 사람은 어느 누구한테서도 영향을 못 받는다. 영향을 받는 일이란 ‘스스로 거듭나는’ 일이거나 ‘스스로 새 눈길을 얻는’ 일인데, 눈높이가 낮을 때에는 이도저도 되지 않는다. 마음그릇이 얕을 적에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나아가지 못한다. 마음을 갈고닦지 않았을 때에는 어떠한 책도 읽지 못한다. 생각을 열지 못했을 때에는 어떤 스승이 곁에 있더라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그러니까, 어느 누구도 나한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나는 오직 나한테 영향을 끼친다. 나는 나 스스로 곰곰이 돌아보거나 되짚거나 헤아리면서 나 스스로 얼마나 아름답게 거듭나고 얼마나 사랑스레 다시 태어나야 즐거운가를 깨달을 뿐이다. 내가 나를 가르치고 내가 나한테서 배운다. 스스로 삶을 일구면서 넋을 일구고, 스스로 넋을 일굴 때에 책 하나 글 한 줄 살살 녹일 수 있다. (4345.10.2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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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빛 가득한 집으로

 


  경기도 의정부에서 네 시에 고속버스를 탄다. 정안휴게소를 찍고, 순천을 찍은 다음, 비로소 고흥 읍내에 닿아, 택시를 마지막으로 타고는 우리 시골마을에 닿는다. 택시삯 14500원을 치른다. 이제 찻삯은 다 낸다. 택시 일꾼한테 잘 들어가시라 인사하고는 기지개를 켠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밤 열 시 반 즈음 된 하늘은 새까맣다. 별빛이 가득하다. 어제는 서울에서 오늘은 의정부에서 온통 이 건물 저 건물에 가려져 손바닥만큼조차 바라보기 힘들던 하늘을 우리 시골마을에 닿고서야 시원스레 올려다본다.


  낮에는 구름을 보고 밤에는 별을 보아야 참말 삶터라 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낮에는 해를 누리고 밤에는 달을 즐겨야 참으로 삶자리라 할 만하리라 생각한다. 식구들은 모두 잠들었다. 새근새근 자는 식구들 깨지 않도록 조용히 옷을 벗는다. 몸을 씻는다. 도시에서 묻은 먼지를 하나하나 털어낸다. 읍내 가게에서 산 몇 가지 주전부리를 먹는다. 큰아이가 쉬 마렵다며 깬다. 큰아이 쉬를 누이고 오줌그릇을 비운다. 큰아이는 다시 잠자리에 든다. 조용하고 호젓한 밤이다. 별들이 속삭이고 밤바람은 포근하게 온 마을을 감싼다. (4345.10.2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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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10-21 13:04   좋아요 0 | URL
호젖한 밤을 즐길 수 있는 집
부럽네요

파란놀 2012-10-22 07:37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 님도 이러한 집을
곧 누리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