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글공책

 


  의정부고등학교로 강의를 하러 가는 길에 글공책을 잃다. 늘 기차를 타다가 모처럼 고속버스를 탔는데, 띄엄띄엄 쉬는 휴게소에서 쉬를 눈다고 내리며 조금이라도 글조각 끄적일까 싶어 글공책을 들고 내리다가 그만 어디엔가 놓고 고속버스에 다시 올랐다. 휴게소를 떠난 고속버스는 다시 휴게소로 돌아갈 수 없다. 글공책은 내 곁을 떠나 조용히 운다. 휴게소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전화를 건다. 내가 깜빡 잊고 내려놓은 글공책을 찾을 수 있을까 여쭌다. 찾아보겠다고 이야기하지만, 몇 분 뒤 걸려온 전화를 받으니 내 글공책은 안 보인다고 말한다.


  잃어버린다. 두 달쯤 쓰던 글공책을 잃어버린다. 그동안 적바림한 이야기가 글공책과 함께 가뭇없이 사라진다. 글공책에만 끄적이고, 아직 옮겨적지 않은 싯말이며 여러 가지 글이 사르르 사라진다.
  사라진 글공책은 돌이키지 못한다. 문득 생각한다. 내가 즐겁게 읽던 책을 놓고 지나갔다면? 내 손전화기를 놓고 지나갔다면? 내 지갑을 놓고 지나갔다면? 내 사진기를 놓고 지나갔다면? 내 가방을 놓고 지나갔다면?


  어느 때라고 가슴이 안 아플 수 없다. 다만, 지갑이든 손전화기이든 사진기이든 가방이든 다시 장만할 수 있다. 글공책은 두 번 다시 장만할 수 없다.


  그래도, 글공책에 끄적인 이야기는 내 마음속에서 살아숨쉬며 가만히 기다리겠지. 내가 다시 떠올리거나 새삼스레 길어올리기를 가만히 기다리겠지. 사람들이여, 제 것이 아니면 건드리지 말고 그 자리에 그대로 두어 주시라. 사람들이여, 연락처 적힌 다른 이 글공책이나 수첩은 부디 임자한테 돌려주시라. 가로채거나 줍거나 빼앗는대서 이녁 것이 되지 못한다. (4345.10.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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