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581) 용변

 

아가가 엉거주춤 / 용변을 보고 있습니다
《정세훈-부평 4공단 여공》(푸른사상,2012) 108쪽

 

  한국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한국말이지만, 오늘날 한국말은 껍데기는 한국말이라 하더라도, 알맹이는 한국말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지난날에는 중국 사대주의에 찌들면서 한문을 높이 모셨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제국주의에 짓눌리면서 일본말과 한자말과 일본 말투가 파고들었으며, 해방 뒤에는 영어 자본주의가 넘치면서 영어와 번역 말투가 퍼집니다. 세 갈래 거친 물줄기를 떨치면서 오롯이 한국말다운 한국말을 누리는 사람이 매우 적어요. 그래서 “용변을 보고 있습니다” 같은 말투를 시인조차 제대로 못 느끼면서 쓰고 말아요.


  이 대목에서는 첫째, “보고 있습니다”가 잘못입니다. 한국 말투는 이러하지 않아요. “봅니다”라고만 해야지요. 한국말에는 현재진행형이 없습니다. “본다”나 “봅니다” 한 마디로 모든 때를 가리킵니다. 어떤 이는 “보고 계시다”처럼 적기도 하는데, ‘계시다’라 한대서 높임말이 아니에요. 높임말을 옳게 하자면, “보신다”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둘째, ‘용변’이 잘못입니다. 한자말 ‘용변(用便)’은 “대변이나 소변을 봄”을 가리킨다고 해요. 여기에서 ‘대변(大便)’은 “‘똥’을 점잖게 이르는 말”이라 하고, ‘소변(小便)’은 “‘오줌’을 점잖게 이르는 말”이라 하지요.

 

 용변을 보고 있습니다
→ 똥을 눕니다
→ 오줌을 눕니다
→ 똥오줌을 눕니다
→ 볼일을 봅니다
→ 뒤를 봅니다
 …

 

  똥은 똥이고 오줌은 오줌입니다. 똥이나 오줌을 ‘점잖게’ 말해야 할 일이 없습니다. 굳이 점잖게 말하고 싶다면 ‘볼일’이나 ‘뒤’라 말하면 돼요. 더군다나, 아가라 하면 아예 달리 쓰는 말이 있어요. ‘응가’가 있거든요.


  생각을 하면서 말을 합니다. 한국사람이 쓸 한국말은 어떤 빛과 무늬와 결일까 하고 생각을 하면서 말을 합니다. 내 살가운 이웃과 살가이 나눌 어여쁜 말은 어떤 모습일까 하고 생각을 하면서 말을 합니다.


  수수하게 나누는 말입니다. 즐겁게 주고받는 말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똥’과 ‘오줌’과 ‘볼일’과 ‘뒤’와 ‘응가’ 모두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며 쓰는 쉽고 바른 말이 되도록, 우리 어른들이 힘을 기울이기를 빕니다. 4346.1.21.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아가가 엉거주춤 / 응가를 눕니다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골목동네

 


밥 끓으며
고소한 내음 흐르고.

 

빨래 널며
상큼한 빛깔 퍼지고.

 

아이들과 노래하며
고운 목소리 감돌고.

 

골목마다
작은 집들
복닥복닥
어깨동무하던
어여쁜 날들 이야기는
달이 보고 해가 보아
흙에 깃든다.

 


4345.12.11.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문득, 이 말은 살짝 적어야겠다 싶어 살짝 적는다. 좀 '센' 말을 적어 보았지만, 알라딘서재에는 올리고 싶지 않다. '내 자유'가 있기에 '다른 사람 자유'를 건드린다든지, '내 권리'가 있대서 '다른 사람 권리'를 밟는 일은 무엇이 될까. 알라딘책방이 도서정가제를 이야기하는 일은 자유요 권리일 테지. 그래, 자유이면서 권리이다.

 

..

 

책값, 글밥

 


  책값 만 원 붙은 책이 있으면, 이 책을 쓴 사람은 으레 글삯으로 10퍼센트인 천 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책을 쓴 사람이 글삯으로 10퍼센트를 받으려면, 이 책은 ‘책에 붙은 값’인 만 원 그대로 팔려야 합니다. 인터넷책방에서 10퍼센트 에누리를 하는데다가 10퍼센트 적립금까지 준다면, 책을 쓴 사람은 글삯 10퍼센트 받기 만만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책이 처음 나온 지 한 해 지났대서 인터넷책방에서 20퍼센트 에누리를 한다든지, 책이 처음 나온 지 여러 해 지났대서 인터넷책방에서 30퍼센트 에누리를 하거나, 때로는 50% 에누리까지 한다면, 책을 쓴 사람은 무슨 글밥을 먹을 수 있을까 아리송합니다.


  매장책방이든 인터넷책방이든, 글밥 먹는 글꾼을 애틋하게 사랑한다고 밝히려 한다면, 갓 나온 책이든 열 해나 스무 해쯤 지난 책이든, 출판사에서 책에 붙인 값 그대로 사람들이 사서 읽을 수 있도록 이끌어야 올바르고 아름답습니다. 나온 지 여러 해 지났다고 책값을 마구 후려치는 일을 버젓이 하면서 ‘글밥 먹는 글꾼’ 권리를 지켜 준다는 말을 함부로 읊어서는 안 될 노릇입니다. 하늘 무서운 줄 알아야지요.

 .. (......) ..

 

  도서정가제 이야기에 앞서, 아니 도서정가제 이야기를 하자면,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 스스로 어떤 책을 어떻게 읽으려 하는가 하는, 몸가짐과 마음가짐 이야기부터 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책을 책 그대로 마주하면서 삶을 살찌우는 사랑스러운 마음밥으로 아로새기지 못한다면, 아무런 이야기도 나누지 못합니다. 글밥 먹는 사람들 삶을 헤아리지 않고 책값 이야기를 나눌 수 없습니다. 곧, 흙밥 먹는 사람들 삶을 헤아리지 않고 쌀값 이야기를 나눌 수 없습니다. 기름밥 먹는 사람들 삶을 헤아리지 않고 사회·정치·경제·노동·환경 이야기를 나눌 수 없습니다. 4346.1.21.달.ㅎㄲㅅㄱ


댓글(8)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13-01-21 10:53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하지만 만원도 부담스러운 저 같은 학생으로서는....

도서관을 애용하면 될 텐데요.
아무래도 도서관에 책이 없다는 건 변명이겠지요.

파란놀 2013-01-21 10:59   좋아요 0 | URL
도서관에 책 없어요 ㅋㅋㅋ
그래서 도서관에 없는 책을 종이에 적어 신청해야지요.
언제 그 책이 들어올는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지만,
그래도 요즘은 옛날과 견줘 많이 나아졌어요.

도서관에 책이 없기에,
저는 스스로 '서재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

oren 2013-01-21 11:34   좋아요 0 | URL
이번 일을 계기로 책값의 본질을 건드리는 얘기들이 좀 더 많이 쏟아져 나왔으면 좋겠어요. 함께살기님의 글들을 읽으면서 저도 그런 면에서 공감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파란놀 2013-01-21 14:18   좋아요 0 | URL
무엇이 옳으느니 그르느니 하고 말다툼 하는 일은 누구한테도 도움이 되지 않아요. 책을 읽는 삶, 책을 마주하는 사랑, 책을 나누는 즐거움, 이런저런 샘물 같은 이야기를 꽃피울 수 있어야지 싶어요.

책은 즐겁게 '선물'할 수 있고, 책은 고맙게 '선물받을' 수 있어요. 책값이란 참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그러나, 이를 어떤 정략이나 책략으로 삼아 무언가 꿍꿍이를 벌인다면... 참 딱한 노릇이지요.

sslmo 2013-01-21 12:46   좋아요 0 | URL
저도 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도서정가제 라는 것이, 책을 사 읽는 독자들을 위한 정가제가 아니지요.

책 표지에 적정가격을 정하여 기록하지 않게 하고,
인터넷 서점에서 그 책에 합당한 가격을 자기네들 마음대로 정한다는 의미의 '도서 정가제 프리'라고 알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책값이 얼마, 책에 들어가는 종이값이 얼마, 작가나 역자에게 얼마...가 들어가고 그 남은 금액에서 몇 퍼센트의 이익을 인터넷서점과 출판사가 나눠 먹는다는 의미의 정가제 프리가 아니지요.

'정가제 프리'가 그냥 인터넷에서 책값 10%를 싸게 받는 그것만을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책을 사읽는 독자나, 책을 사읽을 수도 있는 잠재의 독자들이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가격은 시장경제의 원리에 의해서 정해져야 하는 것이지,
그냥 사실은 두루뭉술, 수박겉핥기식으로 호도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파란놀 2013-01-21 14:22   좋아요 0 | URL
값은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붙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이번에 9만 원 넘는 번역책 나왔어요.
이러한 책은 굳이 '시장경제 원리'를 따지지 않아요.

<윤길수 책>이라고 있고, '포노'라는 출판사에서
어느 음악가 전집을 내놓기도 했는데,
이들 책값은 시장원리하고는 살짝 떨어져요.
저도 1인잡지를 내는데,
이런 책에 붙이는 값은
읽을 사람, 글을 쓴 사람, 책을 엮는 사람,
모든 품을 살피면서, 나중에는 책을 파는 일꾼한테까지
즐거운 땀을 베풀어 주어요.

아무튼, 하늘 무서운 줄 모르면서
어떤 권력을 내세우려 하면
다들 스스로 무너지는 줄 참말 모르는구나 싶어요...

북극곰 2013-01-22 09:47   좋아요 0 | URL
저도 상황 파악이 잘 안되어서 관련 서재글들을 읽으러 다니고 있습니다.
얼핏 구간에까지 정가를 왜 적용해야 할까 생각했는데,
내가 읽고 싶은 책이라면 구간이라도 제 값을 주고 살것 같단 생각이 드네요.
구간이라는 이유로 또 다른 이유로 가격적으로 압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독자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은 하기가 힘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파란놀 2013-01-22 09:51   좋아요 0 | URL
신간이든 구간이든 '똑같은 책'이니까요.

<태백산맥>이나 <난 쏘 공>처럼 이름난 작품뿐 아니라,
모든 책들이 '구간'이 되어도 언제나 똑같은 '책'으로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제도가 도서정가제예요.

책은 책이어야 할 뿐이니까요.
구간이라 하면서 할인율을 왕창 적용하면
작가도 출판사도...
말 그대로 손가락만 빨면서 굶어야 해요...
구간 할인율을 왕창 적용하도록 하자는
인터넷책방 주장은
작가와 출판사를 다 굶겨죽이자는 소리일 뿐이에요.

사실, 구간은 '새로 찍지' 않으면
처음 붙인 책값이라서,
오래도록 천천히 팔리는 책은
몇 해 뒤에는 물건값 오름세와 견주면
퍽 싼값이 된답니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인터넷책방이 구간 책값을 마구 후려치기 하는 바람에,
출판사에서는 '구간 절판'을 시키고
'개정 신판'으로 다시 내놓기도 해요.
 

이불놀이 2

 


  이불을 해바라기 할 적에, 작은아이도 큰아이도 이불 밑으로 슬그머니 들어간다. 너, 거기 숨으면 안 보일 듯하지? 네 맨발 다 보이거든요? 누나 머리끈은 어째 네 손목에 하나씩 감고 이불에 웃몸만 살그마니 숨기니. 숨바꼭질 하자고? 4346.1.2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폭죽소리 길벗어린이 작가앨범 1
리혜선 지음, 이담 외 그림 / 길벗어린이 / 199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19

 


겨울밤 가랑비 소리
― 폭죽소리
 리혜선 글,이담·김근희 그림
 길벗어린이 펴냄,1996.3.1./10500원

 


  깊은 새벽 어떤 소리 하나 듣고 잠에서 깹니다. 아이들이 쉬 마렵다고 보채는 소리 아니요, 큰아이가 뒹굴다가 잠꼬대 하는 소리 아닙니다. 설마 들쥐가 집에 들어와서 무얼 갉아먹는 소리인가 생각하다가,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이 소리인가 하고 부시시 일어나 마당을 내다봅니다.


  한겨울 깊은 밤, 마당은 겨울비로 촉촉하게 젖습니다. 생각해 보니, 어제 하루 햇살 보기 힘들 만큼 구름이 두껍게 끼었습니다. 고흥은 날이 따사롭기에 눈은 안 올 테고 비라도 뿌릴 듯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깊은 밤 참말 겨울비 흩뿌립니다. 비오는 소리였구나.


  섬돌 언저리에 놓은 책상자를 빗물 들이치지 않을 만한 자리로 옮깁니다. 흙바닥과 이웃집 마늘밭과 마당과 후박나무 잎사귀를 가볍게 때리는 겨울 가랑비 소리를 듣습니다. 그래, 나는 빗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군요.


  하기는. 신문배달을 하던 무렵부터 빗소리에 벌떡 일어나곤 했어요. 아주 어릴 적에는 창밖으로 들리는 빗소리 듣고 밤에도 문득 눈을 뜨기는 했지만 딱히 일어나지는 않았는데, 나는 아마 꽤 어릴 적부터, 어쩌면 아주 먼먼 옛날부터 빗소리 알아듣는 유전자가 몸속에 깃들었을 수 있어요.


.. 왕씨는 관 속에 이상한 차림의 여자아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도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됫박 속에서 뭔가 노르스레한 것이 가볍게 떨어져 내렸다. 이를 본 왕씨 아주머니의 얼굴빛이 갑자기 굳어졌다. “당신 조 씨앗은 누굴 갖다 줬어요?” “저 애와 바꾸었지.” 왕씨는 싱글거리며, 마침 부엌데기를 두려던 참인데 씨앗 한 됫박으로 이 여자아이와 바꾸었으니 얼마나 싸냐고 장사꾼답게 말을 늘어놓았다 ..  (10쪽)


  빗소리를 곧 알아채기에, 눈소리도 이내 알아챕니다. 바람소리도 알아챕니다.


  아이들 이불깃 여미다가 다시금 생각합니다. 나는 어린 날부터 코가 퍽 나빴는데, 코로 냄새를 맡아 헤아리는 느낌을 다른 사람들처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터라, 나로서는 귀로 소리를 들어 헤아리는 느낌에 더 마음을 기울였을 수 있겠다 싶습니다. 사람들이 “냄새 좋네.” 하거나 “냄새 나빠.” 할 적에 나는 무슨 냄새가 나는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곤 합니다. 콧물을 늘 달고 살았으며, 코가 늘 막히니 머리도 늘 멍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도 소리는 먼저 느껴요. 이를테면, 국민학생 때 담임선생이 골마루를 끌신을 질질 끌며 걸어오는 소리를 느낍니다. 교실에서 동무들이 왁자지껄 떠들어도 문득 이런 소리를 듣고는 후다닥 내 자리로 돌아가 앉습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담임선생이 교실 문 앞까지 와도 못 알아채지요.


  소리를 듣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소리는 어디부터 어디까지 들을 수 있을까요.


  식구들과 아직 도시에서 지낼 적에는 전철 소리와 자동차 소리 때문에 귀가 몹시 아팠습니다. 찢어지는 듯한 이들 소리는 참말 가슴을 좍좍 찢는구나 싶었어요.


  도시를 떠나 시골에 깃들며 전철도 버스도 자동차도 멀리 떨어지면서 홀가분합니다. 비로소 내 귀와 마음과 몸을 아늑하게 쉴 만한 소리를 듣습니다. 멧새와 풀벌레 소리를 듣습니다. 바람과 햇살 소리를 듣습니다. 풀과 나무 소리를 듣습니다. 구름과 비와 눈 소리를 듣습니다.


  비오는 날씨를 좋아하는 분들은 빗소리를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나는 눈오는 소리, 곧 ‘눈소리’도 좋아합니다. 눈소리는 귀로도 들을 수 있지만, 귀보다 몸으로 먼저 들어요. 몸으로 퍼뜩 느끼지요. ‘아, 눈이 오네.’ 하고. 저기 높디높은 하늘에도 눈송이 하나둘 떨어지며 내는 가볍고 포근한 소리를 몸이 먼저 듣습니다. 그러고 나서 눈으로 눈송이를 보고, 눈으로 눈송이를 보면서 머리카락부터 발가락까지 쩌릿쩌릿 울리듯 눈소리를 받아들입니다.

 


.. “헤이랑(개)아, 순돌(염소)아, 너희들도 엄마가 없는 거니? 그래, 우리 셋은 다 엄마가 없는 거야. 울 엄마는 선녀같이 예뻤어. 나처럼 치마저고리를 입으셨지. 날 미워서 버린 건 아니야. 무슨 일 때문인지 날 두고 가셨어. 엄만 꼭 무슨 일이 있었을 거야. 꼭 무슨 일이 …….” ..  (24쪽)


  밥을 끓이면, 밥 익는 냄새 구수하게 퍼집니다. 그리고 밥 끓는 소리 자글자글 보글보글 퍼집니다. 냄새와 소리가 어우러지면서 즐겁게 기다립니다. 냄새와 소리가 얼크러지면서 기쁘게 웃습니다.


  서로 웃으며 웃음소리를 나눕니다. 서로 이야기보따리 끌르면서 이야깃소리 나눕니다. 서로 사랑을 속삭이면서 사랑소리를 나눕니다. 모든 움직임에는 소리가 있습니다. 몸을 움직이든 마음을 움직이든 소리가 있습니다. 즐겁게 울리는 소리요, 환하게 퍼지는 소리입니다.


  까르르 웃어 보셔요. 내 웃음이 얼마나 멀리까지 퍼지는지 느껴 보셔요. 벌컥 골을 내 보셔요. 내 골부리는 얄궂은 소리가 얼마나 멀리까지 퍼지는가 느껴 보셔요.


  사랑을 나누듯 미움까지 나눕니다. 사랑을 건네듯 미움까지 건넵니다. 사랑을 속삭이듯 미움을 퍼뜨립니다.


  어떤 삶이 나부터 즐겁고, 어떤 삶이 나한테서 비롯할 때에 아름다울까요. 내 목소리는 어떤 결 어떤 무늬일 때에 해맑게 빛날까요.


.. 왕씨네 집에서는 옥희를 내세워 선을 보이고 언니 쉬메이를 좋은 가문에 시집 보냈다. 폭죽 터뜨리는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옥희는 순돌이와 헤이랑을 데리고 숲속으로 갔다. 참으로 화창한 날씨였다. “순돌아, 헤이랑아. 이제 여기서 십 리만 더 가면 울 엄마 같은 분들이 사는 곳이 있대. 난 그리로 갈 거야.” ..  (42쪽)


  리혜선 님 글에, 이담·김근희 두 분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 《폭죽소리》(길벗어린이,1996)를 읽습니다. 고향나라 아닌 중국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한겨레 ‘아무개’ 눈물과 서러움이 깊이 깃든 이야기 한 자락 읽습니다. 중국사람한테 폭죽소리란 기쁨과 웃음을 나누려는 소리였을 테지요. 한국사람한테 폭죽소리는 어떤 삶을 나눌 만한 소리였을까요.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자가용 없는 집은 드뭅니다. 자가용을 모는 이들이 내는 소리는 서로한테 어떤 소리가 될까요. 도시를 쩌렁쩌렁 울리는 온갖 기계소리는 어떤 소리가 될까요. 시골에 짓고는 도시로 전기를 보내는 발전소와 송전탑에서 내는 웅웅 소리는 어떤 소리가 될까요. 도시사람이 탈 비행기 오르내릴 비행장이 서는 시골마을에서 늘 들어야 하는 귀를 찢는 소리는 시골사람한테 어떤 소리가 될까요.


  기찻길도 시골을 가로지릅니다. 고속도로도 시골을 가로지릅니다. 도시 한복판에 고속도로나 기찻길을 놓으며 마을을 둘로 쪼개는 일이란 없습니다. 도시사람은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싱싱 내달리며 귀를 째는 찻소리를 내는데, 이 찻소리가 시골사람과 시골숲 들짐승과 풀벌레한테 어떻게 스며드는가 하는 대목을 헤아리는 분은 얼마나 있을까요.


  깊은 겨울밤, 빗소리를 조용히 다시 듣습니다. 아이들 색색거리며 깊이 잠든 소리를 가만히 듣습니다. 식구들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습니다. 고즈넉하니 아름다운 겨울밤을 보듬을 착한 소리를 생각하면서, 나도 다시 이부자리를 파고듭니다. 4346.1.2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