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사람들이 계단으로 오르내리지 않는다. 자동계단이 멈추어도 자동계단을 밟고 오르지, 돌계단으로 오르지 않는다. 사람들이 여느 거님길을 걷지 않는다. 가만히 서도 도르르 움직이는 길을 걷는다. 스스로 다리를 쓸 일이 없다. 스스로 다리를 쓸 일을 줄인다. 스스로 다리를 쓸 일을 없앤다. 아직 자가용으로 다니지 않기에 지하철을 타는구나 싶다. 앞으로 자가용을 탄다면 지하철이든 시내버스이든 탈 일이 없겠구나 싶다. 서울에서는 자가용을 굴려야 비로소 다닐 만한 길이 된다. 서울에서는 두 다리로 거닐어서는 가고픈 곳을 즐겁게 다니기 힘들다.


  지하철은 전기를 어마어마하게 먹는다. 지하철을 타자면 전기를 엄청나게 쓰는 땅밑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 환한 낮에도 지하철은 전기를 써서 불을 밝힌다. 까만 밤에도 지하철은 전기를 들여 불을 켠다. 낮에는 낮이 없고 밤에는 밤이 없다. 자가용을 타고 다닌다 하더라도 낮에 낮을 느끼지 않고 밤에 밤을 느끼지 않지만, 자가용을 타지 않더라도 낮에 낮을 마주하기 어렵고 밤에 밤을 만나기 힘들다.


  사람들이 밟을 흙이 없다고도 하지만, 사람들 스스로 흙을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만질 흙이 없다고도 할 텐데, 사람들 스스로 흙을 헤아리지 않는다. 서울에 오면 숨이 막히는 까닭은 내 발이 흙을 못 밟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 곁을 스치는 여느 사람들 마음에 흙내음이 없으니까. 내 둘레에서 예쁘게 웃고 곱게 수다를 떠는 사람들 넋에 흙기운이 서리지 않으니까. 4346.3.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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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에 서울에서 사진강의를 한다.

아침 11시에 하기에 내일 새벽차 타고 가기에는 늦어

오늘 먼저 서울로 간다.

 

미역국 끓이고 이것저것 챙기고

어제 미리 장을 보아 놓고

아주 부산스럽다.

 

이제 다 마쳤으니

즐겁게 가방 메고 나가자.

마을로 지나가는 버스 없어

큰길까지 20분쯤 걸어가야 한다.

 

식구들 모두 아버지 없는 동안

시골집에서 봄볕 듬뿍 누리며

예쁘게 지내기를 빈다.

 

일 잘 하고

살림돈 즐겁게 벌고 돌아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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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3-05 13:25   좋아요 0 | URL
수요일에 서울에서 강의를 하시는군요.
축하드립니다.
번성하시길...^^

파란놀 2013-03-06 06:33   좋아요 0 | URL
네, 잘 해야지요.
어젯밤 상갓집에서 밤샘을 하고 피시방입니다.
에궁.... @.@
 

유채잎 책읽기

 


  바야흐로 유채잎 먹는 철이 돌아온다. 논둑이나 밭둑에서 스스로 씨를 내려 돋는 유채잎은 2월 끝무렵부터 뜯어서 먹는다. 읍내에 내다 팔려고 유채씨 밭에 뿌리는 마을에서는 3월로 접어들 언저리에 유채밭에 잎사귀 푸짐하다. 자전거로 고갯길 넘으며 헐떡거리다가, 흙 있는 길가에 씨가 퍼져 자라는 유채풀을 보면, 두 잎 뜯어서 하나는 큰아이 주고 하나는 내가 먹는다. 고갯길 자전거로 오르며 등판이 땀으로 흠씬 젖는데, 싱그러운 봄햇살 받으며 푸르게 자란 유채잎 뜯어먹으면 목마름이 가시고 배고픔도 사라진다. 햇볕 먹은 풀잎이란 참 좋다고 새삼스레 느낀다. 집 앞 논둑에서 자라는 유채풀 몇 잎 뜯어서 밥상에 올린다. 유채잎 한 가지만으로도 밥상이 넉넉하고 즐겁다. 유채풀 곁에서 자라는 봄까지꽃이랑 별꽃이랑 광대나물풀 조금씩 뜯는다. 이 풀도 먹고 저 풀도 먹는다. 풀을 먹는 봄이란, 봄을 먹는 숨결이리라. 4346.3.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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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3-03-05 09:53   좋아요 0 | URL
우왓
정말 봄!

파란놀 2013-03-06 06:32   좋아요 0 | URL
되게 맛있답니다~ ^^

페크pek0501 2013-03-05 13:34   좋아요 0 | URL
와우, 맛있겠다.
먹고 싶네요.

파란놀 2013-03-06 06:32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봄이에요.
고흥이라서 더 재미난 봄입니다 ^^;;;;
 
코르다의 쿠바, 그리고 체
크리스토프 로비니.알레산드라 실베스트리 레비 엮음, 이재룡 옮김, 알베르토 코르다 사진 / 현대문학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찾아 읽는 사진책 133

 


사진이 가르치는 즐거움 누리기
― 코르다의 쿠바, 그리고 체
 알베르토 코르다 사진·글,이재룡 옮김
 현대문학 펴냄,2006.5.17./13000원

 


  알베르토 코르다 님 사진과 삶을 들려주는 사진책 《코르다의 쿠바, 그리고 체》(현대문학,2006)를 읽습니다. 쿠바사람 알베르토 코르다 님은 처음에 패션사진만 찍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쿠바혁명을 맞이했고, 쿠바혁명 뒤로는 패션사진 아닌 ‘혁명’사진을 찍었다고 할 수 있는데, 사진책 《코르다의 쿠바, 그리고 체》에 담은 사진과 글을 읽다 보면, 코르다 님과 쿠바가 이루는 혁명은 ‘갑작스럽지 않구나’ 싶어요. 삶에서 천천히 녹이는 혁명이고, 삶을 차근차근 즐기며 빛내는 혁명이며, 삶을 사랑하는 하루하루 모아서 어깨동무하는 혁명이로구나 싶어요.


  코르다 님은 사진을 찍으면서 “나는 자연광만 좋아한다. 인공광은 현실을 왜곡한다(18쪽).” 하고 말합니다. 혁명쿠바에서 사진을 찍기 앞서, 패션사진을 찍으면서도 자연스러운 햇빛을 좋아했다고 해요.


  그렇지요. 빛은 자연이지요. 햇빛은 자연이에요.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에 따라 달라지는 빛은 자연이에요. 달빛과 별빛은 자연이에요. 구름빛과 무지개빛은 모두 자연이에요. 풀빛도 물빛도 모두 자연입니다. 사진으로 이루는 빛인 사진빛 또한 얼마든지 자연스럽게 가꿀 수 있어요. 누군가는 따로 불을 펑펑 터뜨리며 찍을 수 있고, 누군가는 코르다 님처럼 가장 자연스러운 빛깔과 빛결을 살리는 사진길을 살필 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쿠바라는 나라에 혁명이 없었으면 코르다라고 하는 사진쟁이는 어떠한 길을 걸어갔을까요. 패션사진만 서른 해 쉰 해 찍으면서 패션사진밭에서 내로라하는 사람이 되었을 코르다 님일까요. 패션사진을 오래오래 찍다가 그만 이쪽 길에 질려서 다른 사진길을 걸었을 코르다 님일까요. 아니, 쿠바에 혁명이 없이 미국 식민지인 채 있었으면, 코르다 님은 쿠바사람 삶과 사랑과 꿈을 어느 만큼 짚거나 헤아리는 하루를 누렸을까요.


  사회를 살핀다고 해서 눈이 밝은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정치나 경제나 문화를 돌아본대서 눈이 맑은 사진을 찍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사회에 어두운 사람이 눈 밝은 사진을 찍는지 모르겠어요. 정치나 경제나 문화에 어두운 사람이 눈 맑은 사진을 찍을까 궁금해요.


  코르다 님은 “가벼운 삶만을 영위하던 중 서른 살에 운명을 바꾸는 예외적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혁명이었다. 인형이 없어서 그 대신 나무토막을 끌어안고 있는 어린아이를 찍은 것이 그무렵이었다. 이러한 불평등의 해소를 주장했던 혁명을 위해 이 작품을 헌사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28쪽).” 하고 말합니다. 이녁 스스로 뜻하지 않았으나, 서른 살부터 이녁 사진삶이 아주 달라졌다고 말해요. 사진을 새로 찍으면서 삶을 새로 바라보고, 사진을 새로 느끼면서 이웃을 새로 느꼈겠지요.


  사진을 새로 생각하며 삶을 새로 생각합니다. 새 사진으로 거듭나면서 새 마음으로 거듭납니다. 이제까지 찍던 사진에서 사뭇 다른 사진을 찍으면서, 스스로 새 눈길을 틔웁니다. 여태껏 걸어온 사진길하고는 아주 다른 사진길 걸어가면서, 스스로 새로 배웁니다.

 

 


  그러고 보면, 어떠한 갈래로 사진을 찍든, 스스로 배울 때에 스스로 새로 찍습니다. 새로 배우는 넋이나 매무새 아니라면, 스스로 새로운 사진을 못 찍습니다.


  서른이 되건 쉰이 되건 일흔이 되건 언제나 새로 배웁니다. 새로 배우면서 새로 태어나는 삶이고, 삶이 새로 태어날 때에 사진이 새로 태어납니다.


  코르다 님은 체 게바라 님을 만난 이야기를 여러 가지로 적바림합니다. 먼저, “‘이 친구야, 목에 카메라를 걸고 다니는 꼴이 영락없이 양키군!’ 골프를 치는 체를 찍으려고 했더니 그가 내게 던진 말이다. ‘자네 호주머니에 가득 든 그 필름이 우리나라가 얼마나 비싼 값을 치룬 것인지 알기나 하나?’ 나는 그 자리에서 대답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그게 무슨 문제야? 내가 내 돈 주고 산 건데!’ 나는 나중에 해안봉쇄가 시작된 후에야 그 말의 뜻을 깨달았다(96쪽).”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패션사진에서 혁명 찍는 사진으로 삶이 바뀌었다지만, 겉모습이나 속모암은 아직 혁명답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 혁명가와 이 시민을 좇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저 혁명가와 저 백성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지만, 아직 사람들 마음속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는 뜻이에요.


  그렇지만, 다 좋아요. 누구는 일찌감치 깨달을 수 있고, 누구는 나중에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언제가 되든 스스로 깨달으면 돼요. 내 삶이 어떠한 빛깔인지 스스로 살피며 깨닫습니다. 내 사진빛이 어떠한 결인지 스스로 돌아보며 깨닫습니다.

 

 


  하늘빛은 나 스스로 어떤 하늘빛인가 하고 읽을 때에 하늘빛입니다. 남들이 말하는 결대로 바라볼 수 없어요. 풀빛은 나 스스로 어떤 풀빛인가 하고 읽으며 비로소 풀빛이에요. 똑같은 풀이 없고, 똑같은 빛이 없어요. 똑같은 숨결이 없으며, 똑같은 빛무늬가 없습니다.


  “체는 프랑스 기술자와 함께 개발한 신형 사탕수수 수확기인 알자도라를 시험운전하고 있었다. 내가 찾아갔을 때 당시 복용하고 있던 코디손 때문에 조금 부은 얼굴은 기름때와 흙먼지로 새까맸다. 그는 냉소 섞인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더니 ‘아, 코르다, 자네 왔군. 어디에서 오는 길인가? 시골인가, 도시인가?’ ‘나요? 아바나에서 오는 길입니다, 대장.’ ‘사탕수수를 추수해 본 적 있나?’ ‘아뇨.’ 그러나 그는 곁에 있는 군인에게 말했다. ‘알프레도, 이 기자 동무에게 추수용 칼을 구해 주게.’ 그러고 다시 나를 돌아보며 ‘사진촬영은 다음주에나 합시다.’라고 했다(156쪽).” 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빙긋 웃습니다. 코르다 님은 이러한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들려줍니다. 사탕수수를 많이 심고 거두는 쿠바에서 아직 사탕수수를 베어 본 적 없는 ‘인털레 사진기자 동무’한테, ‘쿠바 인민 누구나 온몸 바쳐 하는 일’이라 할 ‘사탕수수 베기 체험’을 시키는 체 게바라 님이에요. 손가락질로만 찍는 사진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고 가슴으로 느낄 때에 찍는 사진이라고 가르쳐 주는 셈이에요. 바깥에서 구경만 하는 사진이 아니라, 온몸으로 부딪히고 온마음으로 어깨동무할 때에 찍는 사진이라고 일러 주는 셈이에요.


  한국에서 사진을 찍는 분 가운데 낫으로 나락 베어 본 적 있는 분은 몇이나 될까요. 한국 사진기자 가운데 텃밭을 일구는 분은 몇이나 될까요. 한국 사진작가 가운데 아이들 낳아서 온 하루 바치며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함께 놀고 글 가르치고 그림책 읽히고 하면서 살아가는 분은 몇이나 될까요.


  한국에서 사진을 찍는 분들은 어떠한 삶결을 스스로 누리면서 사진을 찍을까요. 한국에서 사진을 읽는(비평하는) 분들은 어떠한 삶결을 스스로 사랑하면서 사진을 말할(비평할)까요.


  사진이 가르치는 즐거움을 새삼스레 누리며 사진을 찍은 코르다 님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사진이 가르치는 즐거움을 듬뿍 누리며 카스트로 님을 찍고 체 게바라 님을 찍으며 쿠바 여느 사람들을 찍은 코르다 님이네 하고 느낍니다.


  누구나 내 삶을 사랑할 때에 사진을 사랑합니다. 누구나 내 삶을 아낄 때에 사진을 아껴요. 사진솜씨나 사진재주를 키우기 앞서, 내 삶이 어떠한가부터 헤아리기를 빌어요. 스스럼없이 사랑하는 삶으로 스스럼없이 사랑하는 사진입니다. 티없이 맑고 밝게 살찌우는 삶으로 티없이 맑고 밝게 살찌우는 사진입니다. 4346.3.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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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에서 태어나 열 살 적까지 자랐다고 하는 장이지 님 시를, 고흥읍내 장날에 맞추어 나들이 가는 군내버스에서 읽는다. 2011년에도 이 시집을 내놓은 줄 이제서야 헤아려 본다. 어떤 마음으로 시를 쓸까. 장이지 님이 쓰는 시는 장이지 님 외가 있는 고흥에서 살아가는 분들한테 어떻게 스며들 만한 이야기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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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의 입술
장이지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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