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사람들이 계단으로 오르내리지 않는다. 자동계단이 멈추어도 자동계단을 밟고 오르지, 돌계단으로 오르지 않는다. 사람들이 여느 거님길을 걷지 않는다. 가만히 서도 도르르 움직이는 길을 걷는다. 스스로 다리를 쓸 일이 없다. 스스로 다리를 쓸 일을 줄인다. 스스로 다리를 쓸 일을 없앤다. 아직 자가용으로 다니지 않기에 지하철을 타는구나 싶다. 앞으로 자가용을 탄다면 지하철이든 시내버스이든 탈 일이 없겠구나 싶다. 서울에서는 자가용을 굴려야 비로소 다닐 만한 길이 된다. 서울에서는 두 다리로 거닐어서는 가고픈 곳을 즐겁게 다니기 힘들다.


  지하철은 전기를 어마어마하게 먹는다. 지하철을 타자면 전기를 엄청나게 쓰는 땅밑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 환한 낮에도 지하철은 전기를 써서 불을 밝힌다. 까만 밤에도 지하철은 전기를 들여 불을 켠다. 낮에는 낮이 없고 밤에는 밤이 없다. 자가용을 타고 다닌다 하더라도 낮에 낮을 느끼지 않고 밤에 밤을 느끼지 않지만, 자가용을 타지 않더라도 낮에 낮을 마주하기 어렵고 밤에 밤을 만나기 힘들다.


  사람들이 밟을 흙이 없다고도 하지만, 사람들 스스로 흙을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만질 흙이 없다고도 할 텐데, 사람들 스스로 흙을 헤아리지 않는다. 서울에 오면 숨이 막히는 까닭은 내 발이 흙을 못 밟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 곁을 스치는 여느 사람들 마음에 흙내음이 없으니까. 내 둘레에서 예쁘게 웃고 곱게 수다를 떠는 사람들 넋에 흙기운이 서리지 않으니까. 4346.3.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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