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사진강의 (도서관일기 2013.3.6.)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서울로 사진강의를 간다. 서울 한 번 오가자면 찻삯이랑 밥값이랑 잠값이랑 이래저래 줄이고 줄여도 10만 원을 웃돈다. 가장 싼 기차나 버스를 타고, 가장 눅은 값으로 밥을 사다 먹는데다가, 가장 싼 잠집(여관) 찾아 묵는다 하더라도 고흥부터 서울 사이는 참 먼길이 된다. 게다가 하루이틀 통째로 들여야 하는 먼길인 만큼, 강의삯 30만 원 받는다고 하더라도 잘 받거나 많이 받는다 하기 어렵다.


  그런데, 나는 곧잘 강의를 간다. 품과 겨를이 많이 들고, 시골집에 옆지기와 아이를 두고 홀로 강의를 다녀오곤 한다. 사진길 걷는 넋이 곱거나 맑거나 싱그러운 사람들이 부를 적에는, 이들한테 즐거운 웃음꽃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사진넋 북돋우고 싶어 마실을 다녀온다. 나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시골 고흥에서 사진책도서관 꾸리며 살아가기에, 이곳에서 지내며 누리는 웃음과 기쁨을 이야기 한 자락에 담아 누구한테든 들려줄 수 있다. 다만, 어디에서건 고흥으로 찾아오는 이한테는 ‘거저로 이야기를 들려줄’ 테지만, 어디에서건 와 달라 할 적에는 찻삯이랑 밥값이랑 잠값이랑 보태고, 우리 살림돈에도 이모저모 도움이 될 만하기를 바란다.


  물병 둘 챙긴다. 하루에 한 병씩 시골물 마시면서 서울마실을 견디자 생각한다. 다음에는 물병을 셋이나 넷쯤 챙겨야겠다고 느낀다. 시골물 챙겨 서울마실을 하면, 딱히 이것저것 사다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시골바람과 시골햇살 머금은 시골물 마시면서, 내 깜냥껏 서울내기 메마른 가슴에 사랑싹 돋도록 고운 말 한 마디 건네는 큰힘이 된다고 느낀다.


  ‘서양 사진이론 들춘대서 사진밭 일구기에 즐겁지 않아요. 시골자락 삶 일구는 수수한 이야기 한 가지 펼치면서 언제 어디에서나 사진밭 아름다이 일구며 즐거워요. 이론은 늘 이론이요, 실기(기술)는 그예 실기이지만, 삶은 언제나 삶이고, 사랑은 한결같이 사랑이랍니다. 사진은 이론도 실기도 아니라, 삶이고 사랑이에요.’ 사진강의 자리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 기쁘다. 이 이야기 듣는 이들도 다 함께 웃고 기쁠 수 있기를 빈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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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한테 남기는 글

 


  새벽 일찍 짐을 꾸리고 집을 나서야 한다. 아이들 모두 깊이 잠든 때에 조용히 일어서야 한다. 아이들 볼을 한 번씩 두 번씩 세 번씩 자꾸 부비고 이마를 쓰다듬는다. 그러고 길을 나서려다가 두꺼운종이에 글을 하나 남긴다. 큰아이더러 읽고 써 보라는 뜻으로 글월 하나 적바림한다. 아버지가 하루 내내 없대서, 또 이튿날에도 못 돌아올 수 있대서, 울면서 기다리지만 말고 네 생각날개 곱게 펼치면서 수많은 놀이와 노래와 이야기로 하루를 밝히렴. 네 즐거운 놀이를 떠올리고, 네 기쁜 삶을 즐기며, 네 고운 노래로 우리 보금자리를 돌보렴.


  이야기는 입과 입으로 나누지만, 때때로 입과 입 아닌 손으로 빚는 글 하나로도 아로새기면서 건넬 수 있는 이야기가 있구나 싶다. 마음을 담을 수 있다면, 입으로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리라. 마음을 담기에, 손으로 적바림해서 띄우고는 여러 날 천천히 기다릴 수 있는 이야기가 태어나리라. 어떤 이들은 새로운 권력을 거머쥐려고 글을 휘두를 테지만, 훨씬 더 많은 수수한 사람들은 새로운 사랑을 꽃피우고 싶은 꿈을 꾸면서 글월 한 닢 따사로운 넋으로 일구리라. 4346.3.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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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국 끓이는 마음

 


  하루나 이틀 집을 비우고 바깥마실을 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바깥마실 하는 날은 퍽 먼 곳에서 강의를 와 달라고 할 때입니다. 큰아이가 아직 많이 어릴 적이랑, 또 작은아이가 태어나서 퍽 어릴 적에는, 따로 강의나 먼 바깥마실을 잘 안 다녔습니다. 거의 안 다녔다고 할 만합니다. 강의 한 번 다녀오면 살림돈 이럭저럭 벌 수 있지만, 그동안 아이하고 하루나 이틀쯤 떨어져 얼굴도 못 보고 목소리도 못 들으며 집일 못 하는 흐름이 내키지 않아요. 고작 하루나 이틀이라 여길 사람이 많을까 싶은데, 바로 하루나 이틀 떨어져 버릇하면서 아이하고 어버이가 쌓을 사랑이 조금씩 흐려지곤 합니다.


  어른들은 아침에 바깥 일터로 떠나 저녁에 돌아오면 아이들 볼 수 있다 여기곤 하는데, 아침저녁 사이에 아이들과 오래도록 떨어져 지낼수록 아이들하고 멀어질밖에 없습니다. 거꾸로 헤아려도 쉬 알 수 있어요. 입시공부를 해야 한다며 중·고등학생 적에 새벽밥 먹고 학교에 가서 밤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온다면, ‘수험생인 나’와 ‘집에 있는 어버이’하고 어떤 사이가 될까요. 서로 어떤 말을 얼마나 섞을까요. 어버이와 아이 사이라 하지만, 나날이 멀어지기만 합니다. 대학교에 붙었다며 대학생 되어 집을 오래도록 비우면, 또 어머니 아버지하고 나 사이는 훨씬 멀어집니다. 함께 나눌 생각이 사라지고, 함께 바라보는 곳이 줄어들며, 함께 속삭이는 이야기가 옅어집니다.


  아이들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맡기는 일이 아이들한테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시설이나 기관에 맡기는 어버이부터 스스로 얼마나 삶이 즐거울는지 모릅니다. 아이가 자라 일고여덟 살 되어 초등학교에 넣는다 할 때에도, 우리네 초등 교육기관이 얼마나 초등 교육기관다운가 모르겠어요. 아이들을 학교에 넣는 일이란, 어버이 스스로 아이하고 ‘등을 지겠다’는 뜻이 되는 한국 사회 아닌가 싶어요. 아이들하고 더 살가이 지내고, 아이들하고 더 가까이 어울리면서, 어른들부터 새 일거리 새 보금자리 새 터전 새 삶을 생각하고 찾을 노릇이지 싶어요.


  이제 아이들이 제법 자랐기에, 아이들을 믿고 가끔 바깥마실을 합니다. 강의할 이야기 챙기랴 짐 꾸리랴 바쁘기도 하지만, 기찻길이나 버스길에서 이런저런 이야깃거리 챙기자고 생각하면서, 바쁜 새벽나절에 밥거리 꾸리고 미역국 끓입니다. 미역국은 끓이면 끓일수록 더 구수하며 맛나기에 한 솥 가득 끓입니다. 한 솥 가득 끓일 미역을 미리 불려 헹구고 볶자면, 여느 때에 먹는 미역국보다 품과 겨를을 더 들여야 합니다. 큰길까지 이십 분 즈음 걸어가서 아침 여덟 시 군내버스를 잡아타고 읍내로 가야 하는 만큼, 일곱 시 반까지 모든 일 마무리짓고 집을 나서야 합니다.


  아이들아, 어머니하고 미역국 먹으면서 네 아버지가 먼 바깥마실 홀가분히 일구기를 빌어 다오. 미역국에 담은 마음을 읽어 다오. 즐겁게 놀고, 씩씩하게 놀며, 하루를 맑게 웃음으로 채우며 지내 다오. 노래와 이야기로 흐드러지는 어여쁜 시골집 삶자락 보듬어 다오. 4346.3.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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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울타리 책읽기

 


  아이들이 돌울타리 돌을 집으며 논다. 놀아도 될 만하지. 그런데 돌울타리 돌을 하나씩 쥐어 어디론가 던진다. 엥? 너희 어디다 던지니? 가뜩이나 낮은 돌울타리인데 너희들이 어느새 몰래 하나씩 던지고 놀며 낮추었구나. 옆지기가 두 가지를 말한다. 울타리 얼른 제대로 쌓아야겠다고. 아이들 뛰놀 밭흙 얼른 마무리지어야겠다고.


  서울마실 다녀오고, 샛자전거 붙인 자전거수레 끌어 아이들 태우고 하느라, 몸이 퍽 고단하지만, 뒷밭에서 골라낸 큰돌을 날라 대문 옆 울타리부터 조금 쌓는다. 옆밭 울타리도 조금 가지런하게 손질한다. 이쁘장하게 쌓고 손질해 놓으면, 아이들도 울타리는 안 건드릴 테지. 아이들이 뒹굴고 파헤칠 빈터 흙땅이 있으면, 아이들은 돌을 아무 데나 휙휙 던지는 놀이는 안 할 테지.


  놀 자리가 있어야 즐겁게 논다. 놀 거리가 있어야 기쁘게 논다. 아이도 어른도 모두 매한가지이다. 홀가분하게 즐길 삶이어야 한다. 맑으며 밝게 노래하면서 빛낼 삶이어야 한다. 학교 졸업장을 반드시 따야 할 까닭 없다. 베스트셀러이니까 꼭 읽어야 할 책이란 없고 꼭 봐야 할 영화란 없다. 해야 할 한 가지라면 딱 하나, 사랑뿐이다. 4346.3.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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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

 


  2013년 3월 8일 낮, 큰아이가 웃통을 벗고 마당에서 논다. 그래, 노는구나. 벌써 한여름인 줄 아니? 그래도, 낮에 마당에 서거나 앉고 보면, 봄볕이 따사롭기는 무척 따사롭다. 너희들 곧 얼굴 까맣게 타겠구나. 손도 타고 발도 타고, 웃통까지 벗고 뛰놀면 웃통까지 몽땅 까맣게 타겠구나. 네 아버지가 뒷밭 옆밭 파헤친 흙을 쟁기와 가래로 뒤집어 고르게 펴 놓으면, 이제 밭뙈기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흙이랑 뒹굴면서 까망둥이가 되겠네. 놀아라. 놀자. 놀아. 놀고 또 놀아. 4346.3.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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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 2013-03-09 21:50   좋아요 0 | URL
헉! 벼리는 벌써 여름이네요. 종규님, 춘천으로 이사 안하길 참 잘하셨어요. 추워도 너무 추워요. 이제야 조금 살 것 같아요. 꽁꽁 닫아 놓았던 창문도 열고, 더불어 마음도 열리고요~~

파란놀 2013-03-10 02:27   좋아요 0 | URL
ㅋㅋ 어쩌면 그러할 수도 있어요 ^^;;;
그러나, 삶이란 모르는 일이니까요.
머잖아 남녘과 북녘 골고루
따스한 바람 불어
모두한테 좋은 이야기 불러일으켜 주리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