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한테 남기는 글

 


  새벽 일찍 짐을 꾸리고 집을 나서야 한다. 아이들 모두 깊이 잠든 때에 조용히 일어서야 한다. 아이들 볼을 한 번씩 두 번씩 세 번씩 자꾸 부비고 이마를 쓰다듬는다. 그러고 길을 나서려다가 두꺼운종이에 글을 하나 남긴다. 큰아이더러 읽고 써 보라는 뜻으로 글월 하나 적바림한다. 아버지가 하루 내내 없대서, 또 이튿날에도 못 돌아올 수 있대서, 울면서 기다리지만 말고 네 생각날개 곱게 펼치면서 수많은 놀이와 노래와 이야기로 하루를 밝히렴. 네 즐거운 놀이를 떠올리고, 네 기쁜 삶을 즐기며, 네 고운 노래로 우리 보금자리를 돌보렴.


  이야기는 입과 입으로 나누지만, 때때로 입과 입 아닌 손으로 빚는 글 하나로도 아로새기면서 건넬 수 있는 이야기가 있구나 싶다. 마음을 담을 수 있다면, 입으로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리라. 마음을 담기에, 손으로 적바림해서 띄우고는 여러 날 천천히 기다릴 수 있는 이야기가 태어나리라. 어떤 이들은 새로운 권력을 거머쥐려고 글을 휘두를 테지만, 훨씬 더 많은 수수한 사람들은 새로운 사랑을 꽃피우고 싶은 꿈을 꾸면서 글월 한 닢 따사로운 넋으로 일구리라. 4346.3.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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