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 끓이는 마음

 


  하루나 이틀 집을 비우고 바깥마실을 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바깥마실 하는 날은 퍽 먼 곳에서 강의를 와 달라고 할 때입니다. 큰아이가 아직 많이 어릴 적이랑, 또 작은아이가 태어나서 퍽 어릴 적에는, 따로 강의나 먼 바깥마실을 잘 안 다녔습니다. 거의 안 다녔다고 할 만합니다. 강의 한 번 다녀오면 살림돈 이럭저럭 벌 수 있지만, 그동안 아이하고 하루나 이틀쯤 떨어져 얼굴도 못 보고 목소리도 못 들으며 집일 못 하는 흐름이 내키지 않아요. 고작 하루나 이틀이라 여길 사람이 많을까 싶은데, 바로 하루나 이틀 떨어져 버릇하면서 아이하고 어버이가 쌓을 사랑이 조금씩 흐려지곤 합니다.


  어른들은 아침에 바깥 일터로 떠나 저녁에 돌아오면 아이들 볼 수 있다 여기곤 하는데, 아침저녁 사이에 아이들과 오래도록 떨어져 지낼수록 아이들하고 멀어질밖에 없습니다. 거꾸로 헤아려도 쉬 알 수 있어요. 입시공부를 해야 한다며 중·고등학생 적에 새벽밥 먹고 학교에 가서 밤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온다면, ‘수험생인 나’와 ‘집에 있는 어버이’하고 어떤 사이가 될까요. 서로 어떤 말을 얼마나 섞을까요. 어버이와 아이 사이라 하지만, 나날이 멀어지기만 합니다. 대학교에 붙었다며 대학생 되어 집을 오래도록 비우면, 또 어머니 아버지하고 나 사이는 훨씬 멀어집니다. 함께 나눌 생각이 사라지고, 함께 바라보는 곳이 줄어들며, 함께 속삭이는 이야기가 옅어집니다.


  아이들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맡기는 일이 아이들한테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시설이나 기관에 맡기는 어버이부터 스스로 얼마나 삶이 즐거울는지 모릅니다. 아이가 자라 일고여덟 살 되어 초등학교에 넣는다 할 때에도, 우리네 초등 교육기관이 얼마나 초등 교육기관다운가 모르겠어요. 아이들을 학교에 넣는 일이란, 어버이 스스로 아이하고 ‘등을 지겠다’는 뜻이 되는 한국 사회 아닌가 싶어요. 아이들하고 더 살가이 지내고, 아이들하고 더 가까이 어울리면서, 어른들부터 새 일거리 새 보금자리 새 터전 새 삶을 생각하고 찾을 노릇이지 싶어요.


  이제 아이들이 제법 자랐기에, 아이들을 믿고 가끔 바깥마실을 합니다. 강의할 이야기 챙기랴 짐 꾸리랴 바쁘기도 하지만, 기찻길이나 버스길에서 이런저런 이야깃거리 챙기자고 생각하면서, 바쁜 새벽나절에 밥거리 꾸리고 미역국 끓입니다. 미역국은 끓이면 끓일수록 더 구수하며 맛나기에 한 솥 가득 끓입니다. 한 솥 가득 끓일 미역을 미리 불려 헹구고 볶자면, 여느 때에 먹는 미역국보다 품과 겨를을 더 들여야 합니다. 큰길까지 이십 분 즈음 걸어가서 아침 여덟 시 군내버스를 잡아타고 읍내로 가야 하는 만큼, 일곱 시 반까지 모든 일 마무리짓고 집을 나서야 합니다.


  아이들아, 어머니하고 미역국 먹으면서 네 아버지가 먼 바깥마실 홀가분히 일구기를 빌어 다오. 미역국에 담은 마음을 읽어 다오. 즐겁게 놀고, 씩씩하게 놀며, 하루를 맑게 웃음으로 채우며 지내 다오. 노래와 이야기로 흐드러지는 어여쁜 시골집 삶자락 보듬어 다오. 4346.3.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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