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구가 된 헌책방

 


  헌책방이 크게 줄었다. 초·중·고등학교 언저리에 한둘 쯤 으레 있던 헌책방은 거의 사라졌다. 이제 대학교 둘레에조차 헌책방 한 군데 서지 못한다. 아니, 대학교 둘레에서는 새책방마저 자취를 감춘다. 새봄 맞이해 새내기 대학생들 대학교 옆 술집에서 머리가 핑핑 돌게끔 술을 마시기는 하되, 또 대학교 2·3학년 선배들 후배들한테 술을 사 주거나 차 한 잔 사 주는 일이 있기는 하되, 새내기 대학생 스스로 책방마실 즐기면서 책을 장만하여 읽는다든지, 선배 대학생 스스로 책방나들이 누리면서 후배들한테 선물할 책을 고르며 읽는다든지, 하는 모습은 어느새 머나먼 옛날 옛적 일처럼 되고 만다.


  전라북도 남원시 용성초등학교 옆에는 ‘지난날 초등학교 옆 헌책방’이 옛 간판 그대로 건 채 문을 연다. 그러나, 간판만 헌책방일 뿐, 문방구나 구멍가게 구실만 한다. 이곳으로 찾아오는 아이들은 게임기를 만지거나 뽑기를 하거나 군것질을 하거나 준비물을 사거나 할 뿐, 한쪽에 조그맣게 웅크린 책을 살피거나 뒤적이거나 넘기지 않는다.


  책은 사람 손을 타면 먼지가 앉지 않는다. 책은 사람 손길 받으면 빛이 바래지 않는다. 책은 사람 손가락이 살살 건드리는 따사로운 기운을 좋아한다.


  너무 마땅한 노릇인데,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으니 책방이 문을 닫는다. 더없이 마땅한 일인데, 사람들이 삶 밝히는 책 골고루 읽지 않으니 작은 출판사가 문을 닫는다. 참 마땅한 셈이겠지만, 사람들이 사랑을 꽃피우는 삶을 일구려는 한길에서 책을 길동무 삼지 못하기에, 착한 삶 아끼는 글꾼들 살림살이 힘겹다.


  그저, 읽으면 된다. 그저, 즐기면 된다. 그저, 사랑하면 된다. 더 많이 읽어야 하지 않다. 첫 줄부터 끝 줄까지 샅샅이 훑어야 하지 않다. 마음을 살찌우는 책이라고 느끼면 된다. 사랑을 북돋우는 책을 깨달으면 된다. 읽은 만큼 삶을 보듬고, 읽으면서 살림을 꾸리면 된다. 꼭 이 책을 읽어야 하지 않고, 반드시 저 책을 장만해야 하지 않다. 마음을 살찌우는 책을 헤아리면서 날마다 조금씩 삶을 살찌우면 된다. 그러면 내 곁 여러 사람들은 ‘마음 살찌우는 책 읽어 마음 자라는 내 모습’ 바라보면서 ‘책 하나로 저렇게 아름다운 삶으로 거듭나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책밭 일구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따사롭게 피어나는 삶꽃이 사랑꽃 되고, 글꽃으로 이어지면서 책꽃으로 영근다. 4346.3.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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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3-03-22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원에도 자주 간적이 있는데 그때는 헌책방을 못봤던것 같아요^^;;;

파란놀 2013-03-23 08:12   좋아요 0 | URL
헌책방을 자주 가는 분들도,
못 알아채고 말아
지나치는 데가 꽤 있지요
 

새 신 한 켤레

 


  큰아이한테 새 신 한 켤레 사 준다. 큰아이는 이 신 저 신 자꾸자꾸 바꾸어 신지만, 발에 꿰는 신마다 어느새 닳고 낡는다. 개구지게 뛰고 달리면서 노느라 신이 일찌감치 닳는다. 요즈음은 옛날과 달리 신 한 켤레 값이 그리 안 비싸다 할 테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5000원짜리 고무신을 꿰고, 큰아이는 2만 원이나 3만 원 하는 신을 꿴다. 그럴밖에 없으리라.


  볼이 조금 넓적해서 아이들 발이 덜 아프거나 안 아플 신을 고르고 싶은데, 큰아이는 볼이 조금 좁은 신을 고르고야 만다. 신고 놀다 보면 볼이 차츰 늘어나기는 하겠지. 이 신은 언제까지 갈 수 있으려나. 예쁜 신이라 하면서도 이 신을 신고 달리기를 하며 흙밭에서 뒹굴고, 비오면 빗물 찰박거리면서 노니, 올 한 해 못 넘기려나. 그래도, 얌전히 모시며 먼지를 먹기보다, 신나게 뒹굴면서 닳고 낡아 새로운 신을 다시 사는 일이 훨씬 낫다. 4346.3.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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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23 09:03   좋아요 0 | URL
아이..아버지가 사다 주신 새 신이 참 예쁘군요~*^^*
저희는 아들만 둘이라 이렇게 예쁜 신을 사준 적이 없어 서운합니다.^^;;

파란놀 2013-03-23 14:49   좋아요 0 | URL
헛. 아들만이라니!
에궁. 저도 아들로 태어나 자랐지만,
아들만 있는 집은.... 참.... 왁자지껄 재미난 소리가
나기 힘들더라구요 ㅠ,ㅜ
 

<독과 도>라는 책에서 내 책 <사진책과 함께 살기> 이야기를 22군데 잘못 적었다. 그러나, 이 잘못 적은 대목을 바로잡지도 않고, 나는 엉뚱한 글을 쓴 사람처럼 되고 말았다. 왜 '글 쓰는 사람'은 글을 쓰면서 자료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자료를 올바로 헤아리지 않으며, 글을 아름답게 쓰려고 마음을 기울이지 못할까. 이번에 드디어 나온 <뱅뱅클럽>이라는 사진책에는 '케빈 카터'라고 하는 사람이 '굶어서 쓰러져 죽으려고 하는 아이' 모습 찍은 사진에 얽힌 '참된 이야기'를 밝힌다. 나는 케빈 카터라고 하는 사진작가를 '나쁘게' 여기지 않는데, <독과 도>라는 책을 쓴 사람은 내가 케빈 카터라는 사진작가를 '나쁘게' 여기는 듯 엉뚱하게 추측하면서 글을 썼다. <뱅뱅클럽>을 쓴 사람은 이렇게 이녁 스스로 '참모습'을 이야기하며 책을 내놓듯, 나도 이렇게 살아서 움직이니까, 거짓말과 참말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 하고 이처럼 몇 글자 끄적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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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뱅클럽
그레그 마리노비치, 주앙 실바 지음, 김성민 옮김 / 월간사진출판사 / 2013년 3월
17,000원 → 15,300원(10%할인) / 마일리지 850원(5% 적립)
2013년 03월 22일에 저장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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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만에 집으로 돌아오다.

온몸이 뻑적지근하다.

비질을 조금 하고

밥을 먹고

아이들 선물 나누어 주고

큰아이 새 치마 건네고

몸을 씻고

빨래 조금 한 다음,

잠자리에 눕는다.

큰아이가 곁에 같이 눕기에

노래 조금 부르다가

나는 스르르 곯아떨어진다.

 

몇 시간 누웠을까.

아직 등허리 아프다.

찬찬히 쉬자.

오늘 읍내에서 장만한 어린나무 여섯 그루

이제 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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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빚기
― 사진이란 무엇일까

 


  사진을 말하는 사람들이 사진을 쉽고 아름다우면서 해맑게 말하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사진을 말하지 않고 사진을 ‘비평’하기 때문이다. 사진을 말하는 사람이라면 사진을 기쁘게 바라보면서 즐긴다. 사진을 ‘비평’하려는 사람이라면 사진을 이리 쪼개고 저리 가르면서 서양 미학과 이론으로 버무린다. 이리하여, 사진을 기쁘게 바라보는 사람은 마음속에서 샘솟는 웃음과 눈물을 스스럼없이 이야기꽃 하나로 빚는데, 사진을 비평하는 사람은 자꾸자꾸 어렵고 딱딱하며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껍데기잔치를 열어 허덕거린다.


  사진은, 이야기를 즐기며 얼굴 하나 빚는 꿈이다. 사진은, 삶을 노래하며 따순 손길 되는 사랑이다. 사진은, 어깨동무하는 이웃하고 오순도순 주고받는 밥 한 그릇이다.


  즐겁지 않다면 사진을 찍지 말아야 한다. 즐겁지 않으면 사진을 읽지 말아야 한다. 즐겁지 않다면 집일이고 회사일이고 그만두어야 한다. 즐겁지 않으면 이곳에서 바로 떠나야 한다. 즐거울 일을 하면서 즐거운 놀이를 맞아들여 즐거운 삶 되도록 하루하루 북돋울 노릇이다. 즐거운 생각을 하면서 즐거운 사랑을 한껏 빛낼 노릇이다.


  글 한 줄 즐겁게 써야, 비로소 글이 된다. 노래 한 가락 즐겁게 불러야, 바야흐로 노래가 된다. 사진 한 장 즐겁게 찍지 않거나 읽지 않으면, 그야말로 무엇이 될까. 사진 한 장 즐겁게 찍으면서, 시나브로 참말 사진이 된다. 사진기를 손에 쥔대서 사진을 빚지 못한다. 사진책을 들여다보거나 사진잔치에 마실을 간대서 사진을 읽지 못한다. 내 마음을 읽고, 내 옆지기 마음을 읽으며, 숲과 하늘과 들과 바람과 햇살과 풀과 나무와 꽃과 벌레 마음을 읽을 때에, 사진 한 장에 깃드는 이야기 한 타래를 읽는다.


  사진이란 무엇일까. 스스로 생각하며 찾고 느껴야 한다. 사진이란 무엇인가. 어느 비평가나 전문가나 사진작가 토론잔치나 비평잔치를 들어야 사진을 알 수 있는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스스로 키워야지, 어느 육아전문가한테 아이를 맡기겠는가. 내 삶을 어떻게 누려야 하는가. 어느 컨설턴트 찾아가서 도움말 받아야 내 삶을 누리는가. 아이는 어버이로서 사랑을 나누어 주며 함께 살아갈 때에 육아가 된다. 삶은 스스로 길을 살피고 일굴 때에 인생이 된다. 사진은 사진기 손에 쥔 내가 스스로 이루고픈 이야기빛 찬찬히 돌아보면서 방긋 웃을 때에 예술이 된다.


  밥짓기는 사랑이다. 빨래는 삶이다. 졸린 아이나 뛰노는 아이 곁에서 고운 목소리 뽑아 부르는 노래는 예술이다. 사랑과 삶과 예술을 살가이 생각하면서 사진 한 장 마주하는 사람은 사진을 읽는다. 사랑과 삶과 예술을 손수 짓고 빚으면서 가꾸는 사람은 사진을 찍는다. 사진이란 무엇인가. 이야기가 사진이다. 사랑이 사진이다. 삶이 사진이다. 예술이 사진이다. 꿈이 사진이다. 믿음이 사진이다. 곧,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누리는 하루에 따라 싱그러이 웃는 눈길 하나로 사진을 이룬다. 4346.3.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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