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놀이 1

 


  매화나무 하야말간 꽃송이 터진다. 볕 잘 드는 마을에서는 벌써 꽃송이 하나둘 지는데, 우리 마을에서도 우리 집은 이제서야 꽃봉오리 하나둘 터진다. 지난주에는 다른 집 꽃송이를 누리고, 이제부터는 우리 집 꽃송이를 즐긴다.


  아이들과 함께 매화나무 곁에 선다. 아이는 팔을 뻗어 꽃가지를 꺾으려 한다. 아이야, 꽃가지는 꺾지 말자. 꽃송이만 몇 따자. 가지째 꺾으면 나무가 아프잖니. 잔가지는 여럿 솎았지만, 한창 꽃이 피어나는 어여쁜 가지를 꺾으면 나무가 얼마나 힘들까.


  아이 손이 닿는 데에서 꽃송이 몇 딴다. 작은 아이 작은 손바닥에 작은 꽃봉오리 놓는다. 봄이 익는다. 봄이 노래한다. 봄이 춤춘다. 봄이 맑다. 매화나무 곁에 서기만 해도 온몸에 매화내음 흠씬 배고, 꽃송이 흐드러진 가지를 살살 만지며 꽃봉오리 몇 따면서 매화내음 새삼스레 손끝부터 발끝까지 곱게 스민다. 우리는 모두 꽃이로구나. 4346.3.2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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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24 08:43   좋아요 0 | URL
햐아~~어린이와 매화꽃이 하나가 되었네요.* ^^
사름벼리 예쁜손에 담긴 예쁜 매화꽃.

파란놀 2013-03-24 08:55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아이와 옷과 꽃이 모두 하나입니다~
 
국경 없는 공장
하종오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사랑과 삶 사라지는 서울
[시를 노래하는 시 44] 하종오, 《국경 없는 공장》

 


- 책이름 : 국경 없는 공장
- 글 : 하종오
- 펴낸곳 : 삶이보이는창 (2007.5.14.)
- 책값 : 8000원

 


  이주노동자는 일을 하러 한국에 오지 않습니다. 돈을 벌려고 한국에 옵니다.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고향나라를 떠나 한국에서 여러 해를 살아갑니다. 돈을 벌러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인 만큼 뼈빠지게 일을 하고서 일삯을 떼이거나 못 받거나 적게 받으면 몹시 슬프고 서운합니다.


  이주노동자뿐 아니라 한국사람도 돈을 벌려고 일자리를 찾습니다. 공무원이 되려 한다든지, 사법고시에 붙으려 한다든지, 교사자격증을 따려 한다든지, 큰회사에 들어가려 한다든지, 하나같이 돈을 벌 생각으로 찾는 일자리입니다. 곧, 한국사람 누구라도 이녁 일자리에서 일삯을 떼이거나 못 받거나 적게 받으면 무척 슬프고 서운할 테지요.


.. 사출공장 사장은 봉급을 줄 때 / 한국인 노동자들에게는 다달이 꼬박꼬박 다 주고 / 동남아인 노동자들에게는 다달이 절반씩 미루면서 / 한국인 노동자들은 처자식에 부모 있고 / 동남아인 노동자들은 혼자이기 때문이라고 씨부렁거렸다 ..  (체불)


  이주노동자이기 때문에 일삯을 적게 받아도 된다고 여기면, 비정규직노동자 푸대접이 태어납니다. 정규직 아닌 비정규직을 두어 ‘회사 관리비 아낀다’고 생각하면, 대학교 졸업장이랑 고등학교 졸업장이란 초등학교 졸업장 사이에 금을 긋고는 푸대접을 하고 맙니다.


  졸업장 갖고 일삯을 나누려 하는 곳에서는, 이런 자격증 저런 영어점수를 따지겠지요. 군대를 나왔느냐 안 나왔느냐를 놓고도 이런 말 저런 말 불거지겠지요.


  다시 말하자면,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모두 같습니다. 겉모습이 한국사람이건 이주노동자이건, 겉이름이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겉껍데기가 대졸자이건 고졸자이건 무학력자이건, 일매무새에 따라 일삯을 살필 노릇입니다.


.. 십 년간 한국에서 직장 다닌 아버지는 / 스리랑카로 돌아가고 싶어하고 / 아이는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 그곳에도 슈퍼에 가면 아이스크림이 있는지 없는지 / 게임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 아버지의 모국이 아이에겐 다른 나라다 ..  (한국 아이)


  시인이 쓴 시를 놓고, 이주노동자 시인이 쓴 시인가, 한국사람이 쓴 시인가, 하고 나누지 않습니다. 시인이 쓴 시를 읽으며, 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다닌 이가 쓴 시인가, 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나온 이가 쓴 시인가, 아무 대학교도 중학교도 안 다닌 이가 쓴 시인가, 하고 가르지 않습니다.


  아니, 누군가는 가를는지 모릅니다. 어떤 시인한테서 시를 배워 쓴 시인가를 낱낱이 가를 평론가 있을는지 모르지요. 어떤 대학교를 다니고, 어떤 문학상을 받으며, 어떤 문학잡지에 실은 시인가 하고 따질 비평가 있을 수 있어요.


.. 공장장은 걸핏하면 손으로 머리를 밀었다 / 네팔리는 머리를 소중하게 여겨서 / 모자를 즐겨 쓴다는 걸 / 공장장은 잘 알면서 / 마음에 안 든다며 손으로 머리를 밀고 / 일시키면서도 손으로 머리를 밀고 / 말하면서도 손으로 머리를 밀었다 / 체류기간 지난 여권을 빼앗은 / 공장장은 돼지 주인이고 / 청년은 돼지인가? / 네팔에선 돼지 주인이 막대기 잡고 / 등도 배도 목도 밀며 우리로 몰아 넣어도 / 돼지가 말 듣지 않는다고 머리를 후려갈기진 않았다 ..  (머리)


  아이들이 자장노래 들으며 새근새근 잠듭니다. 아이들은 이녁 어머니가 자장노래 부르든, 이모나 삼촌이 자장노래 부르든,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자장노래 부르든, 오페라가수나 대중가수가 노래를 부르든, 딱히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랑을 담아 따스하게 부르는 자장노래가 반갑습니다. 웃음꽃 피우면서 살가이 부르는 노래가 즐겁습니다.

  아이들은 그림책을 읽거나 만화책을 읽으면서 ‘이름 높은 작가 아무개가 빚은 작품’이기에 더 좋아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그림책 작가나 만화책 작가 이름을 안 살핍니다. 오직 ‘책을 들여다보’면서 재미있는가 아름다운가 좋은가 즐거운가 하고만 생각합니다. 작가 이름을 살피는 사람은 오로지 어른뿐입니다.


.. 국도변에서 식당 하는 친구는 / 손님이 많아지는 철에 / 동남아인 여종업원 둘 그만두자 / 화가 치밀어 씩씩거렸다 ..  (몸값)


  그런데, 전라도와 경상도와 강원도와 경기도와 충청도는 흙이 다르고 물이 달라요. 그래서 어느 곳에서 거둔 나락인가에 따라 맛이 살짝 다릅니다. 느낌이나 결이 조금씩 달라요.


  다만, 전라도 나락이 경상도 나락보다 좋다 할 수 없어요. 충청도 나락이 경기도 나락보다 정갈하다 할 수 없어요. 다 다른 시골 삶터에 따라 다 다른 시골 나락일 뿐입니다.


  전라도사람은 전라도말 쓰고, 경기도사람은 경기도말 써요. 서로 다른 삶이고, 서로 다른 사랑이며, 서로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삶과 사랑과 이야기는 한 곳에서 만납니다. 푸른 숨결 아끼며 맑은 빛 어깨동무하는 한 곳에서 만납니다.


.. 왜 말 걸지 못했을까 / 내가 그들 말 몰랐던 탓일까 / 그들이 우리말 모른다고 여겼던 탓일까 / 같이 나눌 이야깃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던 탓일까 ..  (말문)


  하종오 님 시집 《국경 없는 공장》(삶이보이는창,2007)을 읽습니다. 이주노동자 이야기를 다룬 시를 읽습니다. 그래, 이주노동자 이야기 다룬 시일 테지요.


  그런데, 이 시집에 나오는 이주노동자를 ‘이주노동자’ 아닌 ‘비정규직’으로 바꾼다고 해도, 한국 사회에서는 참말 똑같은 이야기가 됩니다. ‘비정규직’ 아닌 ‘학력 차별’이나 ‘성 차별’이나 ‘지역 차별’로 바꾸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그야말로 똑같은 이야기가 돼요.


  골칫거리가 꼬리에서 꼬리를 물며 이어집니다. 아픔과 슬픔과 생채기가 자꾸자꾸 이어집니다. 어느 하나 속시원히 풀거나 맺는 이야기가 못 됩니다. 어느 한 곳 슬기롭거나 아름다이 엮거나 놓아 주지 못합니다.


.. 새들이 흰 날개를 펴고 선회하고 있었다 / 고국에선 전혀 볼 수 없었던 늦가을 풍경에 / 외국인노동자병원에 진료 받으러 가야 한다는 걸 잊고는 / 두 인도네시안은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저렇게 아름다운 / 잎사귀들을 기꺼이 놓아버리는 나무들이 자라는 땅에서 / 자신들이 홀대받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  (외국인노동자병원 가는 길)


  공장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사랑에도 국경이 없습니다. 교육과 문학에도 국경이 없어요.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한테 국경이 있을까요.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한테 국경이 있을까요. 그러니까, 대통령이건 정치꾼이건 국경이 있을까요. 더 나아가, 군대에 국경이 있어야 할까요.


.. 정형외과 병실에서 / 서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필리피노는, / 네팔의 산봉우리들이 아름답겠다, 고 / 네팔리는, / 필리핀의 섬들이 아름답겠다, 고 ..  (병상)


  국경이란 울타리입니다. 울타리란 나와 너 사이에 가로놓는 걸림돌입니다. 서로서로 잇는 징검돌 아닌 걸림돌로 울타리를 둔다면,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을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됩니다. 비바람 너무 드센 바닷가에서 바람을 막으려고 쌓는 돌울타리 아닌, 이웃과 이웃 사이를 꽉 막는 울타리를 세운다면, 이리하여 서로 다른 삶을 사랑하지 못할 때에는, 서로서로 등치거나 밟고 올라서려 합니다. 이른바, 중·고등학교에서 입시시험 치르면서 내 동무를 마치 적으로 삼는 짓하고 똑같아요. 내가 살려면 너도 함께 살아야 하는데, 입시지옥 중·고등학교에서는 내 동무를 죽이고 밟고 올라서야 내가 산다는 듯 잘못 가르쳐요. 곧, 이런 한국 사회에서는 이주노동자 푸대접이 불거질밖에 없고, 이주노동자한테뿐 아니라 비정규직한테도 무학력자한테도 시골내기한테도 온통 푸대접입니다.


  아니라고요? 시골내기 푸대접하는 짓은 이제 사라졌다고요? 글쎄, 시골에서 살아가는 제가 흙 묻은 고무신 차림으로 서울로 마실을 갈라치면 다들 쳐다보면서 키득키득 웃던걸요. 거꾸로, 양복 차려입고 까만 구두 꿰차며 까만 자가용 모는 이들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으면 어찌 될까요.


  누가 누구를 바라보며 웃을 까닭 없고, 누가 누구를 ‘어떤 이름’으로 금을 그어 나눌 까닭 없습니다. 서로 같은 사람이고 삶이며 사랑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도시가 커지면 커질수록 자꾸자꾸 사랑이 옅어지거나 잊혀집니다. 이 나라에서 서울이나 부산 같은 도시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꿈도 믿음도 이야기도 흐려지거나 어느새 사라지고 맙니다. 4346.3.2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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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23 08:51   좋아요 0 | URL
저도 걸림돌이 아닌, 징검돌같이 서로서로 이어 주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파란놀 2013-03-23 15:12   좋아요 0 | URL
우리 서로 좋은 어깨동무 할 수 있으리라 믿어요

페크pek0501 2013-03-23 11:56   좋아요 0 | URL
푸대접과 차별이 없는 사회, 자신과 다름을 긍정적으로 인정하는 사회, 친구를 적으로
알기보다 이 시대를 함께 사는 동반자로 아는 사회를, 우리가 지향하길 희망합니다.

파란놀 2013-03-23 15:12   좋아요 0 | URL
우리 스스로 즐겁게 바라면서
아름다운 누리 지을 수 있기를 빌어요......
 

 8. 모두 알거나 모두 모르는 말

 


  우리가 쓰는 말은 모두 아는 말이거나 모두 모르는 말입니다. 우리가 쓰는 말을 가만히 돌아보면, 국어사전을 그때그때 들추면서 이야기를 하거나 글을 쓰는 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요. 그러니까, 어느 모로 보면 모두들 ‘어느 말이든 다 안다’ 할 만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을 살피면 제때 제자리에 제대로 옳거나 바르게 쓰는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어느 말이든 다 안다’ 하듯이 쓰는 말이지만, 정작 ‘서로서로 어느 말이든 다 모른다’고 할 만해요.


  《음악가의 음악가, 나디아 불랑제》(포노,2013)라는 책을 읽다가 115쪽에서 “그 잊지 못할 말을 쓰는 사람은 한편으로 새로운 것을 지어내고, 또 한편으로는 언어의 속성을 압니다.” 같은 글월을 봅니다. 줄거리가 좋구나 싶어 밑줄을 긋고 여러 차례 되읽다가 문득 한 가지 더 깨닫습니다. 이 글월은 앞과 뒤가 살짝 어긋나는군요. 보기글 앞쪽에는 “잊지 못할 ‘말’”이라 적지만, 보기글 뒤쪽에는 “‘언어’의 속성”이라 적어요. 한쪽은 ‘말’이고, 다른 한쪽은 ‘언어’예요.


  국어사전을 뒤적이면, ‘말’을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쓰는 음성 기호”라 풀이합니다. ‘언어(言語)’는 “생각, 느낌 따위를 나타내거나 전달하는 데에 쓰는 음성, 문자 따위의 수단”이라 풀이해요. 자, 그러면 ‘말’과 ‘언어’는 서로 얼마나 어떻게 다를까요. 아니, 두 낱말은 다르다 할 수 있을까요. 두 낱말을 다르게 쓰거나 가르는 일은 얼마나 쓸모가 있을까요. 두 낱말을 애써 나란히 적어야 글쓴이 마음을 깊거나 넓게 나타낼 수 있나요.


  ‘사람’과 ‘인간(人間)’ 사이에서도 그래요. 어른들은 두 낱말을 조금 다른 자리에서 쓰지만, 아이들한테는 두 낱말이 똑같아요. ‘밥’과 ‘식사(食事)’라든지, ‘아침’과 ‘오전(午前)’, ‘빠른전철’과 ‘급행(急行)전철’, 또 ‘늦다’와 ‘지각(遲刻)하다’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은 쉽고 바르며 고운 말 한 가지만 쓰기를 바랍니다. 어렵거나 딱딱하거나 메마른 말은 재미없어요.


  한쪽은 한국말입니다. 다른 한쪽은 한국말 아닌 한자말입니다. 한겨레가 예부터 이 나라 삶터에 걸맞게 지어서 쓰는 낱말이기에 한국말입니다. 한국말을 쓰는 한겨레가 토박이말로는 어딘가 모자라거나 아쉽다고 여겨, 또는 한국 바깥에서 쓰는 말이 한겨레한테도 도움이 되거나 좋다고 여길 때에 받아들이면, 이 ‘한자말’인 ‘바깥말’을 한겨레도 쓸 수 있습니다. 곧, 한국말은 토박이말이고, 한자말은 바깥말, 그러니까 외국말입니다.


  오늘날 누구나 흔히 쓰는 ‘버스’와 ‘택시’는 틀림없이 영어입니다. 바깥말, 곧 외국말이에요. 그러나, 외국말이자 영어인 ‘버스’와 ‘택시’는 한국사람 누구나 즐겁게 쓰는 낱말이에요. 뿌리는 한겨레 삶터하고 걸맞지 않지만, 오늘날 흐름하고는 잘 어울리니까 받아들여서 씁니다. 이 흐름을 헤아린다면, ‘인간·식사·오전·급행·지각’ 들을 한겨레한테 도움이 된다고 할 때에는 넉넉히 받아들여 쓸 만해요. 이 낱말들이 한겨레한테 도움이 안 된다고 할 때에는 굳이 받아들일 까닭이 없으니 안 쓰면 돼요.


  나는 우리 시골집에서 우리 아이한테 ‘인간·식사·오전·급행·지각’ 같은 낱말을 안 씁니다. 쓸 일이 없습니다. 내 둘레 다른 사람들은 이 낱말을 쓰지만, 나와 아이들이 이 낱말을 써야 하지 않습니다. 나와 아이들이 이 낱말을 안 쓰고 다른 사람이 이 낱말을 쓰더라도 알아들어요.


  그나저나, “언어의 속성(屬性)을 압니다”는 무엇을 뜻할까요. 이와 같이 쓰는 말은 우리한테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먼저 ‘속성’이 무슨 뜻인지부터 살펴야겠지요. 이 한자말은 “사물의 특징이나 성질”을 뜻합니다. ‘특징(特徵)’은 또 “다른 것에 비하여 특별히 눈에 뜨이는 점”을 뜻해요. ‘특별(特別)’은 다시 “보통과 구별되게 다름”을 뜻하지요. 이룰 간추리자면 ‘속성’은 “어느 사물 하나가 다른 사물하고 다른 모습”을 일컫는다 할 수 있어요. “언어의 속성을 압니다”는 “말이 서로 어떻게 다른가를 압니다”라는 이야기이고, “말은 어떤 속살인가를 압니다”라든지 “말빛이 무엇인가를 압니다”라는 이야기가 되기도 해요.


  《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대원씨아이,2011)이라는 만화책 3권 23쪽을 읽습니다. “시식회가 아니라 스미오 팬모임 같구만.”이라는 글월을 봅니다. 빙그레 웃습니다. ‘팬모임’이라는 낱말에 눈을 번쩍 뜹니다. 그래요. ‘팬모임’이 될 테지요. ‘팬클럽(fan club)’이 아닌 ‘팬모임’이 될 테지요. ‘팬’이라는 낱말은 이럭저럭 쓴다 하더라도, ‘클럽’은 ‘모임’으로 얼마든지 거를 수 있어요. ‘동아리’로 풀어도 되지요.


  우리 스스로 조금 더 생각을 기울이면 ‘팬’이라는 영어도 살짝 풀어낼 만해요. “시식회가 아니라 스미오 좋아하는 모임 같구만.”이라 하든지 “시식잔치가 아니라 스미오 사랑모임 같구만.”이라 할 수 있어요. “맛보기잔치가 아니라 스미오잔치 같구만.”이라 해도 앞뒤가 잘 맞습니다.


  살려서 쓰려고 하면 살려서 쓸 수 있는 말입니다. 이냥저냥 쓰려고 하면 그야말로 이냥저냥 쓰고 마는 말입니다.


  말 한 마디 읊을 적에 곰곰이 생각합니다. 나는 시골마을에서 두 아이와 살아가니까, 두 아이한테 밥을 차리는 마음을 가만히 생각합니다. 아이들한테 아무 밥이나 차려서 내밀 수 없고, 아이들한테 아무 말이나 되는대로 읊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 읽을 그림책을 아무것이나 값싸게 장만해서 건넬 수 없어요. 아이들이 아무 짓이나 함부로 해도 아름다울 수 없어요. 곧, 아이들한테 가장 맛나며 좋은 밥을 차려서 내줄 때에 즐겁고, 이러한 밥은 어른인 내가 먹을 때에도 즐겁습니다. 아이들이 듣기에 가장 곱고 쉬우며 맑은 말을 읊을 때에 아이들한테 반가우며, 이러한 말은 어른인 내가 듣거나 쓸 적에도 반갑습니다.


  사랑을 담은 밥일 때에 맛나게 먹고, 사랑을 담은 말일 때에 즐거이 나누며, 사랑을 담은 삶일 때에 서로 어깨동무하는 아름다운 나날을 누립니다. 봄볕은 봄꽃을 곱게 피우고, 여름볕은 여름꽃을 환하게 피웁니다. 고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고운 말을 주고받고 싶습니다. 4346.3.2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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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몰라도 돼

 


  제비꽃 모르는 사람 뜻밖에 퍽 많다. 도라지꽃 모르는 사람 또한 꽤 많다. 감꽃이나 능금꽃 알아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돌이켜보면, 나라고 해서 이런 꽃 저런 꽃 처음부터 알지 않았다. 내 곁에서 늘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가 이런 꽃 저런 꽃을 알아보면서 “어머, ○○꽃 피었구나, 예뻐라!” 하고 말할 적에 꽃이름 하나둘 익힐 수 있었다. 국민학교 다니는 동안 학교에서 교사나 동무가 “이야, ○○꽃 피었네, 예쁘구나!” 하고 말하면 새롭게 꽃이름 둘씩 셋씩 받아들이곤 했다.


  그러나, 꽃이름을 모른대서 꽃이 어여쁜 줄 모르지는 않다고 느낀다. 꽃이름을 안대서 꽃이 아름다운 줄 안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마음으로 아낄 때에 비로소 꽃을 어여삐 여겨 사랑한다. 마음으로 아끼지 못할 때에 얄궂게 지식만 머리에 담을 뿐, 꽃내음 꽃결 꽃빛 어느 하나 가슴으로 스미지 못한다.


  내가 제비꽃을 언제부터 알았는지 떠올려 본다. 잘 모르겠다. 퍽 어릴 적 내 어머니 놀람말 한 마디부터 알았지 싶지만, 또렷하게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른다. 인천에서 나고 자라면서 제비꽃 볼 일은 아주 드물었다. 충남 당진 외가에 마실을 가면서 비로소 제비꽃을 보았지 싶고, 이때 빼고는 어디에서고 제비꽃 만날 일 드물었으리라 느낀다. 어른이 되어 인천에서 골목마실 바지런히 하는 동안 제비꽃 거의 못 보았다.


  시골집 우리 밭자락과 대문 앞과 마을 논둑마다 제비꽃 한창이다. 이 제비꽃을 알아보는 사람은 알아보고, 못 알아보는 사람은 그냥 지나친다. 제비꽃 곁에서 봉우리 한결 일찍 터뜨린 봄까지꽃을 알아볼 만한 사람이라면 이 꽃도 알아보지만, 아기 손톱보다 작은 봄까지꽃 못 알아보는 사람은 어른 새끼손가락 손톱 크기만 한 제비꽃 또한 못 알아본다.


  나는 제비꽃을 바라보며 싱긋빙긋 웃는다. “이야, 논둑 따라 이렇게 물결치듯 피었어요! 참 이쁘지요!” 서른 마흔 쉰 예순 되도록 제비꽃이라는 꽃 한 송이 느긋하게 돌아본 적 없던 이웃들이 “이게 제비꽃이에요? 처음 보네.” 하고 말씀한다. 시골에서 살더라도 자가용으로만 움직이던 이웃들도 제비꽃을 못 알아본다. 두 다리로 걸어서 논밭에서 살고 흙을 만지던 할매와 할배가 아니고서는, 시골사람이라 하더라도 제비꽃을 모른다. 그렇지만, 참말 제비꽃 몰라도 된다. 삶을 알면 되고, 사랑을 알면 된다. 꽃이름 모른다 하더라도 ‘이렇게 조그마하면서 어여쁜 꽃이 우리 누리를 밝히는구나.’ 하고 생각하면 된다. 이 작은 들꽃 어여쁜 봉우리 빛깔과 내음과 결을 내 가슴에 담아 사랑스러운 이야기 한 자락 누리자고 생각하면 된다. 삼월 셋째 주는 ‘제비꽃 물결’이다. 4346.3.2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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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숲

 


꽃잎 살몃 만지면
꽃결 살결로 스며
손가락 머리칼 가슴에
꽃내 물듭니다.

 

봄에는 여린 싹처럼
여리고 맑은 눈망울,
여름에는 푸른 잎처럼
푸르고 산뜻한 눈빛,
가을에는 붉은 열매처럼
붉고 따사로운 눈길,
겨울에는 작은 씨눈처럼
작고 고운 눈물.

 

숲은
바람이 싹트고
씨앗이 자라며
꽃이 피어나는
너른 보금자리.

 

살구꽃잎 감꽃잎 모과꽃잎
톡 따서 먹으며
꽃숨 쉽니다.

 


4346.2.1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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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23 08:58   좋아요 0 | URL
아..꽃내 물드는군요.!
이 아침, '꽃숲' 읽으며 기뻐서 웃음 짓습니다~*^^*

파란놀 2013-03-23 15:13   좋아요 0 | URL
좋은 꽃내음 헤아리면서
하루 기쁘게 누리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