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모두 알거나 모두 모르는 말

 


  우리가 쓰는 말은 모두 아는 말이거나 모두 모르는 말입니다. 우리가 쓰는 말을 가만히 돌아보면, 국어사전을 그때그때 들추면서 이야기를 하거나 글을 쓰는 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요. 그러니까, 어느 모로 보면 모두들 ‘어느 말이든 다 안다’ 할 만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을 살피면 제때 제자리에 제대로 옳거나 바르게 쓰는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어느 말이든 다 안다’ 하듯이 쓰는 말이지만, 정작 ‘서로서로 어느 말이든 다 모른다’고 할 만해요.


  《음악가의 음악가, 나디아 불랑제》(포노,2013)라는 책을 읽다가 115쪽에서 “그 잊지 못할 말을 쓰는 사람은 한편으로 새로운 것을 지어내고, 또 한편으로는 언어의 속성을 압니다.” 같은 글월을 봅니다. 줄거리가 좋구나 싶어 밑줄을 긋고 여러 차례 되읽다가 문득 한 가지 더 깨닫습니다. 이 글월은 앞과 뒤가 살짝 어긋나는군요. 보기글 앞쪽에는 “잊지 못할 ‘말’”이라 적지만, 보기글 뒤쪽에는 “‘언어’의 속성”이라 적어요. 한쪽은 ‘말’이고, 다른 한쪽은 ‘언어’예요.


  국어사전을 뒤적이면, ‘말’을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쓰는 음성 기호”라 풀이합니다. ‘언어(言語)’는 “생각, 느낌 따위를 나타내거나 전달하는 데에 쓰는 음성, 문자 따위의 수단”이라 풀이해요. 자, 그러면 ‘말’과 ‘언어’는 서로 얼마나 어떻게 다를까요. 아니, 두 낱말은 다르다 할 수 있을까요. 두 낱말을 다르게 쓰거나 가르는 일은 얼마나 쓸모가 있을까요. 두 낱말을 애써 나란히 적어야 글쓴이 마음을 깊거나 넓게 나타낼 수 있나요.


  ‘사람’과 ‘인간(人間)’ 사이에서도 그래요. 어른들은 두 낱말을 조금 다른 자리에서 쓰지만, 아이들한테는 두 낱말이 똑같아요. ‘밥’과 ‘식사(食事)’라든지, ‘아침’과 ‘오전(午前)’, ‘빠른전철’과 ‘급행(急行)전철’, 또 ‘늦다’와 ‘지각(遲刻)하다’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은 쉽고 바르며 고운 말 한 가지만 쓰기를 바랍니다. 어렵거나 딱딱하거나 메마른 말은 재미없어요.


  한쪽은 한국말입니다. 다른 한쪽은 한국말 아닌 한자말입니다. 한겨레가 예부터 이 나라 삶터에 걸맞게 지어서 쓰는 낱말이기에 한국말입니다. 한국말을 쓰는 한겨레가 토박이말로는 어딘가 모자라거나 아쉽다고 여겨, 또는 한국 바깥에서 쓰는 말이 한겨레한테도 도움이 되거나 좋다고 여길 때에 받아들이면, 이 ‘한자말’인 ‘바깥말’을 한겨레도 쓸 수 있습니다. 곧, 한국말은 토박이말이고, 한자말은 바깥말, 그러니까 외국말입니다.


  오늘날 누구나 흔히 쓰는 ‘버스’와 ‘택시’는 틀림없이 영어입니다. 바깥말, 곧 외국말이에요. 그러나, 외국말이자 영어인 ‘버스’와 ‘택시’는 한국사람 누구나 즐겁게 쓰는 낱말이에요. 뿌리는 한겨레 삶터하고 걸맞지 않지만, 오늘날 흐름하고는 잘 어울리니까 받아들여서 씁니다. 이 흐름을 헤아린다면, ‘인간·식사·오전·급행·지각’ 들을 한겨레한테 도움이 된다고 할 때에는 넉넉히 받아들여 쓸 만해요. 이 낱말들이 한겨레한테 도움이 안 된다고 할 때에는 굳이 받아들일 까닭이 없으니 안 쓰면 돼요.


  나는 우리 시골집에서 우리 아이한테 ‘인간·식사·오전·급행·지각’ 같은 낱말을 안 씁니다. 쓸 일이 없습니다. 내 둘레 다른 사람들은 이 낱말을 쓰지만, 나와 아이들이 이 낱말을 써야 하지 않습니다. 나와 아이들이 이 낱말을 안 쓰고 다른 사람이 이 낱말을 쓰더라도 알아들어요.


  그나저나, “언어의 속성(屬性)을 압니다”는 무엇을 뜻할까요. 이와 같이 쓰는 말은 우리한테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먼저 ‘속성’이 무슨 뜻인지부터 살펴야겠지요. 이 한자말은 “사물의 특징이나 성질”을 뜻합니다. ‘특징(特徵)’은 또 “다른 것에 비하여 특별히 눈에 뜨이는 점”을 뜻해요. ‘특별(特別)’은 다시 “보통과 구별되게 다름”을 뜻하지요. 이룰 간추리자면 ‘속성’은 “어느 사물 하나가 다른 사물하고 다른 모습”을 일컫는다 할 수 있어요. “언어의 속성을 압니다”는 “말이 서로 어떻게 다른가를 압니다”라는 이야기이고, “말은 어떤 속살인가를 압니다”라든지 “말빛이 무엇인가를 압니다”라는 이야기가 되기도 해요.


  《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대원씨아이,2011)이라는 만화책 3권 23쪽을 읽습니다. “시식회가 아니라 스미오 팬모임 같구만.”이라는 글월을 봅니다. 빙그레 웃습니다. ‘팬모임’이라는 낱말에 눈을 번쩍 뜹니다. 그래요. ‘팬모임’이 될 테지요. ‘팬클럽(fan club)’이 아닌 ‘팬모임’이 될 테지요. ‘팬’이라는 낱말은 이럭저럭 쓴다 하더라도, ‘클럽’은 ‘모임’으로 얼마든지 거를 수 있어요. ‘동아리’로 풀어도 되지요.


  우리 스스로 조금 더 생각을 기울이면 ‘팬’이라는 영어도 살짝 풀어낼 만해요. “시식회가 아니라 스미오 좋아하는 모임 같구만.”이라 하든지 “시식잔치가 아니라 스미오 사랑모임 같구만.”이라 할 수 있어요. “맛보기잔치가 아니라 스미오잔치 같구만.”이라 해도 앞뒤가 잘 맞습니다.


  살려서 쓰려고 하면 살려서 쓸 수 있는 말입니다. 이냥저냥 쓰려고 하면 그야말로 이냥저냥 쓰고 마는 말입니다.


  말 한 마디 읊을 적에 곰곰이 생각합니다. 나는 시골마을에서 두 아이와 살아가니까, 두 아이한테 밥을 차리는 마음을 가만히 생각합니다. 아이들한테 아무 밥이나 차려서 내밀 수 없고, 아이들한테 아무 말이나 되는대로 읊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 읽을 그림책을 아무것이나 값싸게 장만해서 건넬 수 없어요. 아이들이 아무 짓이나 함부로 해도 아름다울 수 없어요. 곧, 아이들한테 가장 맛나며 좋은 밥을 차려서 내줄 때에 즐겁고, 이러한 밥은 어른인 내가 먹을 때에도 즐겁습니다. 아이들이 듣기에 가장 곱고 쉬우며 맑은 말을 읊을 때에 아이들한테 반가우며, 이러한 말은 어른인 내가 듣거나 쓸 적에도 반갑습니다.


  사랑을 담은 밥일 때에 맛나게 먹고, 사랑을 담은 말일 때에 즐거이 나누며, 사랑을 담은 삶일 때에 서로 어깨동무하는 아름다운 나날을 누립니다. 봄볕은 봄꽃을 곱게 피우고, 여름볕은 여름꽃을 환하게 피웁니다. 고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고운 말을 주고받고 싶습니다. 4346.3.2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